서머싯 몸, <서머싯 몸 단편선 2>


단편 ‘탈출’(170~176쪽)에서 발췌함.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와 결혼하기로 일단 결심했다면 그 남자가 살길은 당장 도망치는 것뿐이다. 이것에 대한 나의 확신은 변한 적이 없지만, 이 방법이 항상 통하는 것은 또 아니다. 한번은 내 친구가 어렴풋이 도사린 그 사악한 위험을 감지하고 어느 항구에서 무작정(직면한 위험과 즉각적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한 터라 달랑 칫솔만 들고) 배에 올랐다. 이후 세상을 여행하며 일 년을 보냈지만, 이제는 안전하겠거니 마음을 놓고(“여자들은 변덕스러워. 게다가 열두 달이나 지났으니 나를 까맣게 잊었을 테지.”) 배에 올랐던 그 항구에 발을 내딛자마자 부둣가에서 그를 향해 열렬히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았으니, 그가 피하려 했던 그 여자였다.(170쪽, ‘탈출’에서)


⇨ 사귀고 나서 자기에게 1년간 연락 없이 지낸 남자에게 열렬히 손을 흔드는 여자가 있다니 놀랍다. 1년간이나 연락 없이 안 보고 지낼 수 있는 남자라면, 그는 상대편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 이런 일이 있다면,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떠났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잘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상대를 반기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다시 잘해 보겠다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떠난 사람은 떠날 만한 이유가 있어서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떠난 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상심할 필요는 없다.


소설 속 남자는 결국 기발한 아이디어로 여자가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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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5-13 20: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뭔가 가슴이 아픈 것 같지만 서로 오가는 감정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듯 해요. 읽어보고 싶어요. 기발한 아이디어 궁금합니다. 사진은 어디인가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바다와 같은 느낌이네요.

페크pek0501 2023-05-13 23:52   좋아요 3 | URL
꼬마요정 님, 반갑습니다.
더 나은 인연이 나중에 생길 수 있어요. 기발한 아이디어란 결혼해서 살 집을 둘이서 보러 다니는데
보는 집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남자가 계속 퇴짜를 놓아요. 그리고 계속 집을 보러 다니는 거죠. 지칠 때까지.
나중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와요. 여자에게 전혀 상처를 주지 않고 이별하는 방법인 거죠.
사진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3-05-14 16:51   좋아요 2 | URL
아... 그렇군요 ㅋㅋㅋ 남자는 진짜 여자가 마음에 안 들었나봐요. ㅋㅋ
역시 제주도 멋지군요^^

페크pek0501 2023-05-14 17:07   좋아요 1 | URL
눈에 씌어진 콩깍지가 벗겨진 게 아닐까요? 이런 경우도 있으니까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23-05-14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보고 있습니다.
괜찮은 드라마 같아요. 사랑도 젊으니까 하는 거지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사랑은 맨정신으로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드라마 같은 거 보면서 대리만족하는가 봐요.ㅋㅋ

페크pek0501 2023-05-15 10:14   좋아요 2 | URL
제가 모르는 드라마네요. 요즘 채널 수가 많다 보니 하도 드라마가 많아 남과 공통으로 시청하는 드라마가 없는 것 같아요. 눈에 띄면 볼게요. 저는 젊은이들의 연애보다 중년들의 연애가 재밌더라고요. 대리만족의 즐거움도 좋죠.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로 보니깐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 좋더군요. 그런데 이것도 부지런해야 볼 수 있어요.
저는 자꾸 미루게 되고 그래서 본 게 많지 않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5-14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eems like too much sarcastic -

페크pek0501 2023-05-15 10:16   좋아요 0 | URL
무슨 뜻인지요? 무엇이 비꼬는 것 같은가요? 서머싯 몸이? 소설 속 화자가? 혹시 제가?
댓글의 뜻을 모르겠어염. 시간 되시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당~~

레삭매냐 2023-05-15 10:43   좋아요 1 | URL
서머싯 몸이 쓴 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를 향해 열렬히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았으니,
그가 피하려 했던 그 여자였다.(170쪽, ‘탈출’에서)˝

페크pek0501 2023-05-15 10:57   좋아요 1 | URL
아하! 그런거군요.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저자가 피하고 싶었던 여자가 있었는지 모르죠. 서머싯 몸은 소설 속 화자의 직업을 작가로 설정하고
주변 지인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쓴 단편들이 있어요. 그래서 읽다 보면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쓴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것도 하나의 작법일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젤소민아 2023-05-16 0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옴의 작품은 장편만 읽었는데, 단편도 챙겨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3-05-16 12:41   좋아요 0 | URL
몸의 장편은 거의 읽어서-인간의 굴레에서,를 비롯해 다섯 권쯤 읽은 것 같아요.
요즘은 단편을 즐깁니다. 단편도 좋아요.~~~

희선 2023-05-18 0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비겁하네요 그때 바로 말하거나 그만두게 하지, 한해나 기다리게 하다니... 상처주지 않고 여자가 떠나게 만들었군요 그건 괜찮다고 해야 할지... 사람 마음은 참 모르겠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5-18 10:54   좋아요 1 | URL
희선 님처럼 볼 수도 있군요. 댓글의 좋은 효과를 봅니다.ㅋㅋ
자기 딴에는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지 몰라도 제가 상대방이었어도 화가 날 것 같아요. 진실을 바로 말하고 끝내야 하는 게 옳아요. 아예 만날 생각이 없다면 조금이라도 재회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아야 합니다. 차갑게 끝내야 해요. 본인의 마음이 약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헷갈리게 하면 그게 더 괴롭히는 게 되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