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바라고 남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나 막상 보답이 없으면 섭섭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한 지인은 보답이 없는 이를 보면 몰인정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보답이 없는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보려 한다. 몰인정한 게 아닌데 오해를 받는 사례가 있다고 믿어서다. 내가 경험한 일도 있고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도 있어 이를 바탕으로 예를 들어 보겠다.  



첫 번째 예. A씨는 어떤 강좌를 듣는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한 수강생이 복도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수강생 전원에게 돌린다. 그 수강생은 스스로 선심을 쓰며 기쁨을 누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오후였고 A씨는 카페인이 수면에 방해를 준다고 여겨 오전에만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어 수강생이 주는 커피를 사양했다. 그랬더니 그 수강생은 커피 대신 다른 음료를 갖다 주겠노라고 해서 미안하여 그냥 커피를 받곤 했고 마시지는 않았다. A씨는 상대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커피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커피를 몇 번 받았으니 그에게 보답을 해야 할까?



두 번째 예. B씨는 걷는 걸 좋아한다. 지인들 모임이 끝나 집에 갈 때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지하철역까지 걷는 걸 즐긴다. 그런데 걷고 싶은 B씨를 방해하는 이가 나타난다.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지인으로 모임이 있을 적마다 같은 방향이라며 차에 B씨를 태워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려는 사람이다. 그가 동승을 권해 B씨는 몇 번을 사양했으나 자꾸 사양하기가 미안해서 그 차에 타서 신세를 진 게 두 번이었다. 신세를 진 B씨는 즐거운 산책을 포기하고 동승했는데도 그에게 꼭 답례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지 않으면 인정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세 번째 예. C씨는 중학생인 딸아이에게 독선생으로부터 수학 과목을 배우게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집에서 수업하는데 겨울 방학이 되니 하필 아이와 점심을 먹으려는데 선생이 올 때가 많았다. C씨는 선생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여러 번 권했고 선생은 사양하다가 함께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이 수업료를 인상하게 됐다고 알렸다. 수업료가 높지 않아 좋았는데 갑자기 올린다고 하니 C씨는 기분이 언짢았고 선생에게 잘 말해서 수업료 인상액을 조금 깎기로 마음먹었다. 둘이 얘기를 하는 중에 C씨는 선생한테 그동안 점심 대접을 한 적이 많으니 수업료를 깎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은 이렇게 응대했다. “제가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계속 같이 먹자고 해서 밥 생각이 없는데도 예의상 먹었던 거예요.” 이 말이 만약 진실이라면 점심을 얻어먹고 수업료를 올린 선생을 몰인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까지 세 가지 예를 들어 봤다.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속담에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 말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은혜를 갚지 않거나 배은망덕하기 일쑤이니 도와주지 말라는 뜻이다. 이 속담이 옳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면 그 이유는 은혜를 갚지 않는 몰인정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예처럼 상대편의 속마음을 몰라서 몰인정하게 보였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몰인정해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타자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타자와 똑같은 처지에 있지 않고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인간이란 불합리한 존재라서 상대편의 속마음을 모르면서도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는 탓에 오해가 생겨 문제다. 남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서로 의견과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어서 거절하는 사람의 불편함이 없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거절하고 싶을 때 거절 의사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된다. 



누구나 자신이 원치 않는데도 뿌리치기 어려워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리라. 자기가 도움을 베풀었음에도 답례하지 않은 그 누군가도 뿌리치기 어려워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음을 헤아려야 하겠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세를 가져야 대인 관계가 원만할 수 있고 대인 관계가 원만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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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은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2060701000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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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2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6-09 23: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호의의 경계가 사람에 따라서 참 애매한거 같아요. 상대방이 고마워 할 수도 있고,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고.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상황도 발생하고... 그래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것보단 있는게 좋은거 같아요 ㅋ

3번 클릭했습니다 ^^

페크pek0501 2022-06-12 21:30   좋아요 2 | URL
그 애매함이 참 어려워요.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순수한 마음으로 한다면 호의를 베푸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죠. ^^

서니데이 2022-06-10 0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 해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달라서, 글로 쓰면 같은 문장인데 사례마다 의미가 다른 경우도 있었어요.
상대의 호의나 어려운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순간에도 잘 대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옆에서 보면 적절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잘읽었습니다.
페크님,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2-06-12 22:16   좋아요 2 | URL
저는 거절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ㅋㅋ
처세에 능한 사람이 있긴 하지요. 좋은 하루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2-06-16 0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이 거절하면 마음이 안 좋기는 하겠지만,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좋을 듯 싶어요 거절을 잘 하는 사람 대단해요 그게 서로한테 좋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좋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2-06-17 14:36   좋아요 0 | URL
거절이라기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한 걸로 알면 서로 좋을 듯합니다.
누구나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아 사양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16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의에 반응하는 다양한 반응도 그렇고, 호의의 의도도 그렇고 ... 이제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쪽으로 .... 그닥 서운하거나 하지는 않는듯요

페크pek0501 2022-06-17 14:39   좋아요 1 | URL
다양함, 서로 다름, 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생각한 것은 호의를 거절해도 괜찮을 만큼 친한 관계에서만 베풀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건 더 생각해 볼 문제지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