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단편 소설집을 읽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 그러면서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이란 무엇이냐 하면 단편 소설을 하나 읽을 적마다 그것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놓고, 인상 깊은 구절을 골라 쓰기도 하고, 그것을 읽은 뒤의 내 느낌이나 생각을 정리해 놓아서 한 폴더에 차곡차곡 모아 넣는 것이다. 다섯 개의 단편 소설을 읽었다면 폴더에 다섯 개의 파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하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때에 소설의 내용을 넣어 활용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글을 많이 써 보았으나 재료 부족을 느껴 왔다. 소설을 읽고 나면 그것에 대해 정리해 놓지 않아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걸 읽고 내가 생각한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때가 많았다. 인상 깊은 구절만 써 놔도 그 소설의 내용을 기억해 내기가 쉬울 것 같다.
계획을 세웠다고 해서 바로 실천되는 것은 아니나 계획을 세우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된다. 마치 허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운 듯한 기분이다. 이 맛에 나는 계획을 자주 세우는 모양이다.
내가 읽은 ‘메이휴’라는 단편 소설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뽑아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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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4년 동안을 한결같이 노력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트를 작성하였고, 그것을 종류별로 분류하였다. 그 제재에 속속들이 정통하게 되자, 마침내 저술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문불출하며 저술에 몰두하다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메이휴, 225쪽)
- <서머셋 몸 작품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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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을 읽기만 해도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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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에게는 그의 생애는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것이었다. 즉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다가 결승점을 바로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의 그 환멸의 비애 따위를 맛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메이휴, 226쪽)
- <서머셋 몸 작품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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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소설이 끝난다.
읽다가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소설이 끝나다니. 저술에 몰두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걸 기대했다가 이런 반전이라니.
그런데 이게 또 이 소설의 매력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처럼 서머싯 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예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