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나 심리학자가 말한 것이 옳다는 것을 소설에서 확인하는 즐거움을 몇 번 경험했다. 내가, 소설가는 이미 철학자이며 심리학자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그중 하나를 <위대한 유산 1>에서도 발견했다. 주인공 핍은 조의 집에서 묵는 것이 싫어서 여관에서 숙박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에 대해 훗날 깨닫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해 놓고 그래야 하는 이유와 변명을 생각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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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집에 묵으면, 아무래도 폐가 될 거야, 내가 자고 갈 거라곤 기대하지 않을 거야, 내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지도 않을 거고, 또 미스 해비셤의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무르게 될 텐데, 그녀는 까다로운 사람이라 그걸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몰라, 등등으로 말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기꾼에 비하면 이 세상의 다른 사기꾼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런 핑계들로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만든 반 크라운짜리 가짜 돈을 내가 모르고 받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위조한 가짜 동전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그걸 내가 진짜 돈으로 여긴다면!
어떤 친절한 낯선 사람이, 안전을 위해 내 지폐를 꼭꼭 잘 접어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그 지폐를 슬쩍 빼낸 다음 가짜 종이돈을 나에게 건네주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날쌘 손재주는, 내가 만든 가짜 돈을 접어서 그걸 나 자신에게 진짜 지폐라고 속여 받게끔 하는 내 솜씨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 재주인가!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1>, 413~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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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이성적인 생각에 따라 결정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성적인 생각을 끌어댄다.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해 놓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한 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해 낸다.’
나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하나를 예를 들면 이렇다. 건강을 위해 커피를 하루에 한 잔만 마시다가 더 마시고 싶은 날은 이런 생각을 한다. ‘한 잔 더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건강에 더 나쁠 거야. 그러니까 마시고 싶을 땐 마셔야 돼.’라고.
그냥 한 잔 더 마시고 싶은 걸 참기 싫어서 마신다고 생각하면 될 것을.
(여러분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