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대로인 것은 없다 :
어제도 그저께도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귀뚜라미 소리가 곧 가을이 온다는 징조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있고 모든 건 시간과 함께 변하기 마련이므로.

 

 

시간과 함께 모든 게 변하므로 두 개의 똑같은 풍경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의 풍경과 오늘의 풍경은 다르고, 조금 전의 풍경과 지금의 풍경은 다르다. 햇볕을 받고 있는 나뭇잎과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은 다르다. 또 햇볕의 세기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나뭇잎은 다르다. 먼지가 89개 앉아 있는 나뭇잎과 90개 앉아 있는 나뭇잎은 다르다. 시간에 따라 나뭇잎에 먼지가 더 앉기도 하고 날아가기도 할 것이니 같은 나뭇잎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강물처럼 흐르는 이 시간은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서 현재는 소중하다. 

 

 

 

 

 

 

2. 시대의 변화 :
예전에 내가 글 잘 쓰는 분에게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려 보라고 했더니 그분이, 정말 글 잘 쓰는 사람은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는다고 말해서 할 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묶어 책으로 내서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3. 모방의 유익함 :

예전에 좋은 문체를 가진 작가의 글을 노트에 필사해 본 적이 있다. 그 문체를 닮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지금의 내 문체가 그 작가의 문체를 닮았을까. 전혀 닮지 않았다. 그 작가는 나와 다르게 문학적인 문장을 잘 구사하는 작가였다. 그 문체는 내 문체처럼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필사의 노력이 헛수고였을까. 그렇지 않다. 나의 문제점을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유익했으므로.

 

 

뛰어난 화가든 작가든 전 시대의 예술가로부터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 개성이 뚜렷한 예술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
배우기 위해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뽑아 밑줄긋기 칸에 넣었다.

 

‘인성 교육’ 중에서 : 인성 교육이란 폭넓게 말하면 인문학 교육이고,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다. 사람은 산업 역군이기 전에 사람이고 국가의 간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벌써 사람을 배반한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진실이고,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진실이다.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부총리의 마음속에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인성부터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112~113쪽)

‘다른 길’ 중에서 : 예술가는 남이 가지 않는 다른 길을 간다는 말이 있다. 그 다른 길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당신이 저 상투적인 ‘살랑살랑’ 대신 다른 말을 써 넣는다면 당신은 벌써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벌써 예술가다.(119쪽)

‘표절에 관하여’ 중에서 : 문학은 아무리 세속화하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기능을 제일의 기능으로 삼는다. 표절 시비를 국가 제도의 판단에 넘긴다는 것은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손에 넘기는 것과 같다. 한 나라의 문학에, 또는 한 나라의 미래 전망에 이보다 더 큰 재난은 없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작가 자신의 손에 쥐여져 있다고 나는 벌써 말했다. 이 말은 그가 왜 최초에 작가가 되려고 했는지, 자신에게 글쓰기의 진정한 동력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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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8-31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해서
차에 싣고 배달하는데, 자동차 유리창에
어디선가 나타난 귀뚜라미가 딱 하니
버티고 있어서 잠시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슬슬 가을이 다가온 모양입니다.

근데 정말 황현산 작가가 지적한 표절작가
가 제대로 반성은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왜 쓰기 시작했을까요 과연.

2018-08-31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31 15: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에 대한 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31 15:43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 님,
귀뚜라미 하면 왠지 도시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골스러워서 좋아요.

오늘 아침 날씨는 늦여름의 전형적인 날씨 같아서 좋았습니다.

저도 왜 쓰기 시작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외국에 있을 듯한) 작가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궁금하기만 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08-31 15:50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매미소리가 사라진 듯! 매미에서 귀뚜라미로...그런거 보니 페크님 대개 섬세하시네요 역시 글쓰시는 분이시라 남다르다는. 모든게 그냥 익숙한 소리들로 채워지고 무덤덤히 살아가는 데 귀를 열어두고 사시네요...지난번에 올린 시원한 계곡 사진이 생각나네요 계곡 맞나?ㅎ

페크pek0501 2018-08-31 15:56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 님, 반갑습니다. 저에게도 (귀를 열어 두는) 그런 특이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평범해서 말이죠. ㅋ

계곡 맞습니다. 더울 때면 그 계곡 물의 차갑던 느낌이 생각납니다. 수돗물이 미지근해서 찬물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으니.
그 계곡 물은 발을 담그면 발 시럽다는 느낌이 들어 감히 몸까지 들여 놓을 엄두를 못 냈답니다. 얼음 물 같았습니다. 피서다웠어요.
댓글, 고맙습니다.

hnine 2018-08-31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변한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란 뜻도 되는것이라고요.
미사여구가 너무나 훌륭한 문장들이 많으니 저는 오히려 뻣뻣하고 딱딱해보이는 글들에 더 호감이 가던데요 ^^

페크pek0501 2018-09-01 12:43   좋아요 0 | URL
뻣뻣하고 딱딱해 보이는 글들에 호감이 간다고 하시니 저에게 위로를 주시는 말씀 같네요. 저는 부드럽게 쓰려고 해도 되질 않습니다. 누군가는 저의 문체를 교과서 문체라고 하더군요. 제 맘대로 칭찬으로 접수했죠. ㅋㅋ

미사여구에 제가 약하다 보니 그런 글귀에 밑줄을 긋게 되더라고요.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자신은 미사여구 없이 할 말만 딱 하는 책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시간 낭비라는 거예요. 독자 취향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8-08-31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낮에는 햇볕도 뜨겁고 매미소리도 들려서 진짜 여름 같았어요.
며칠 전까지는 여름 아니라 너무 더운 여름 같았고요.
내일부터 9월입니다. 좋은 일들 많은 9월 되세요.
페크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09-01 12:46   좋아요 1 | URL
9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숫자가 9예요. 꽉 차지 않아서 오히려 여유로움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에게 행운의 숫자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다 날씨도 그리 덥지 않아서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은 맑으니 제 마음도 맑아지려 합니다.
좋은 시간으로 9월을 채우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8-09-01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로그는 누구나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는 온라인 공간입니다. 작성자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관심사‘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블로그의 글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블로거는 누구나 아는 내용을 진부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글을 씁니다(저도 해당됩니다). 글을 많이 쓰다보면 이 점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해요. 블로거들이 모여있는 환경(특히, 알라딘 서재)에서는 글에 대한 비판과 첨삭 의견이 주고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아요. 그래서 ‘글 잘 쓰는 사람은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는다‘는 주장에 일부 동의해요.

페크pek0501 2018-09-01 15:2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저도 일부 동의합니다만, 반론을 써 보겠습니다.

제가 알기론 ...
이곳 알라딘에서 유명한 서평가 이현우 님이나 금정연 님의 경우 블로그 덕분에 더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저자를 아는 사람들이 그분들의 책도 사 보게 된다는 거지요. 또 리뷰도 올리게 되고요. 이분들은 어느 지면에서 연재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쓴 이석원 님도 블로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어요. 블로그에 짧은 글을 올리기만 해도 좋아요 수가 5백을 넘게 기록합니다. 네이버에선 <보통의 존재>를 검색해 보면 네티즌리뷰가 지금 1280건으로 나오는데 제 생각엔 블로그 덕을 본 것 같아요. 이젠 블로그가 자신을 알리는 데 큰 덕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외국의 경우 <폴리, 나 좀 도와줘>라는 책을 낸 저자 헤더 히브릴레스키는 블로그에서 시작한 고민 상담 칼럼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서 나중엔 <뉴욕 매거진>에 연재를 하게 되어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 낸 케이스입니다. 출간 즉시 아마존 심리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젠 작가도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잘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글 잘 쓰는 사람은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는 고정 관념은 깰 때가 되었다, 로 봤습니다.

사실 이런 글을 함께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글을 올리는 게 부담스러워 그냥 제가 느낀 바만 올렸던 것인데 cyrus 님의 댓글을 보고 나니 제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ㅋㅋ

쓰다 보니 제 답글이 길어졌는데요... 좋은 지적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님 덕분에 정리를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님의 일부 동의에 저도 동의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