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런 책이 좋지. 다음 문장으로 눈이 가지 않고 한동안 시선을 멈추게 하는 글이 있는 책. 그래서 글 읽다가 그것과 관련해 생각에 골몰하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좋지. 어떤 문장을 읽고 내 기억의 창고에 넣어 두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 그래서 밑줄을 긋고 괄호를 치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이 좋지. 내가 있는 차원에서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나를 이동시키는 책. 다른 말로 바꾸면 나로 하여금 신세계로 들어서게 하는 책.
2.
책이 꼭 큰 감동을 주어야 하나? 꼭 어떤 깨달음을 주어야 하나? 꼭 독자를 위로해 주어야 하나? 독자가 놓쳐서는 안 되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책이지 않은가.
나 또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을 쓰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것도 어려운 걸까, 아니면 쉬운 걸까?
3.
소재나 주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내가 쓴 글의 소재나 주제를 누군가가 훔쳐 가서 글을 써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없지만) 속상해 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글에서 느껴지는 필자의 시각이다. 얼마나 인생을, 인간을, 세상을 깊이 보고 있는지 그 시각이 중요한 것. 다른 말로 통찰력이 중요한 것.
4.
어느 서재에서 내가 다음과 같이 댓글을 썼다.
..........
인간의 이상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점을 정확하게 포착해 그것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되어 소설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안 비밀을 독자들에게 터뜨려 주겠어.‘ 하는 생각으로. ㅋ
..........
그랬더니 서재 주인이 다음과 같이 답글을 쓰셨다.
..........
ㅎㅎ 그렇죠. 그런 이유로 소설을 쓰기도 하죠.
그러고 보면 언니도 뭔가 생각해둔 소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터뜨려 주세요!^^
..........
아! 어쩌나. 난 소설을 쓸 줄 모르는데. 그나마 소설이나 시에 비해서 재능이 덜 중요한 장르가 에세이나 칼럼이라서 난 이쪽을 향할 건데. 이것도 안 써져서 단상이나 쓰고 있는데...
5.
호사다마랄까, 좋은 일이 있고 난 뒤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경우를 몇 번 경험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은 일이 올 땐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를 달고 오는 법 아닌가, 라고.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나쁜 일엔 위안의 쥐구멍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라고.
그런데 위안의 쥐구멍이 보이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6.
A라는 사람은 행복의 총량보다 불행의 총량이 많은데 B라는 사람은 불행의 총량보다 행복의 총량이 많다면 이건 불공평하다.
누구나 똑같이 한평생 살면서 경험하는 행복의 총량과 불행의 총량이 같기를...
(요즘 어느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그동안 그들이 권세를 너무 누렸던 것들을 생각해 보며 써 봤다.)

꽃도 예쁘지만 푸름이 예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