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비가 오지 않았다면
오늘 책이 배달되지 않았다면
이 시간 한가하지 않았다면
글을 써서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박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2.
요즘 미세먼지에 시달리다가 비가 오는 날을 맞고 보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 주문한 책 두 권이 하루 만에 배달되어 기분이 고조되었고.
3.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이 책은 신문에서 보고 제목이 길고 흥미로워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인터넷에서 내가 신뢰하는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다음과 같이 쓴 것을 보고 더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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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학평론가) : 이 책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떤 것에 대해 쓰더라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집요한 글쓰기는 다시없을 장관을 펼쳐놓는다.
- 알라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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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저자의 이력이 독특해서 더 관심을 가졌고 소설뿐만이 아니라 여러 장르의 글을 썼다는 것을 읽고 바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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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십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았고, 스무 살 무렵 첫 자살 충동을 겪은 후 평생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 자살 충동을 동반한 우울증 외에도 술, 마리화나, 텔레비전, 섹스, 설탕 중독으로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병균이나 물, 비행기 등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다. (···)
월리스는 소설로만 주목받은 작가는 아니었다. 문학비평, 글쓰기 창작 수업, 에세이로도 이목을 끌었다. 특히 현대적 실존의 단면들을 예민하게 느끼고 그걸 설명하려고 했던 에세이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이다.
- 알라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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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이 책은 내가 저자의 팬이기도 하지만 시를 쓰는 친구가 특별히 권해서 구입했다. 몇 줄의 인용문에 저자가 글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쓴 책이다.
5.
A 씨와 B 씨의 대화
A : B 씨는 왜 발레를 배우러 다니십니까?
B : 몸 운동을 하기 위해서죠.
A : 몸 운동이라면 다른 것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B : 발레만큼 재밌는 걸 못 찾았어요.
A : 아! 그렇군요. 재미 때문이군요.
B : 그럼요. 혹시 제가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발레를 배운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A 씨와 B 씨의 또 다른 대화
A : B 씨는 왜 블로그를 운영하십니까?
B : 취미로 하는 거죠.
A : 취미라면 다른 것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B : 블로그에 글 쓰는 것만큼 재밌는 걸 못 찾았어요.
A : 아! 그렇군요. 재미 때문이군요.
B : 그럼요. 혹시 제가 대작가가 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B 씨는 몸 건강을 위해 발레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정신 건강을 위해 글을 쓰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그뿐이다.
어떤 결과를 기대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가 먼 훗날 이 세상을 떠나는 시간이 임박해지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재미에 빠진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에 따라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다.
누군가가 죽기 전에 한 말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한다.
“많이 웃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