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송호근 교수의 이 책은 젠틀하다. 하지만 그 속에 저자의 야심이 가득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쉽게 정리하자면 송 교수는 '50대의 김난도'가 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어떤 조언 위주의 글보다는 자신을 포함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타인과의 땀냄새/침냄새가 섞인 젠틀한 필드워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저자가 나름 요즘 텍스트들을 챙겨보고는 있구나라는 점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50대의 엄기호'가 되고 싶어하는 듯도 보였다.

 

2

 

그러나 나 스스로 착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필드워크적 글쓰기'란 것이 비단 젊은 연구자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땅과 사람 그리고 접촉의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했던 많은 연구자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그의 필드워크적 글쓰기에 기반한 50대 베이비부머를 향한 그만의 인류학은 사실 그리 신선한 접근 방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외려 필드워크가 지향하는 경험의 지향성은 소위 "~해봐서 아는데"라는 한국 중년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필드워크적 글쓰기에 담긴 어떤 태도는 한국 중년 남성들이 흔히 갖는 약간 불쾌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교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있다.

다만 태도의 젠틀함에 섞여 그 교묘함이 약간 순하게 보여진다는 느낌일 뿐이다.

 

3

 

이 책은 참 순진한(?) 것이 왜 세대론을 통한 아픔의 위치와 그 중요성이 비단 베이비부머에겐 가면 안 되냐고 아우성치는 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내가 교묘하다고 쓴 이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저자는 우직하게 베이비부머의 가치 좀 한국 사회가 알아야 한다고 점잖게 그리고 자신이 '사회과학자'라는 그 전문성을 지긋이 내세우면서 책의 결말을 보여줄 때까지 그 태도를 멈추지 않는다.

 

4

 

이 책은 대학원생들이 자리잡은 교수들 가운데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어떤 학자형 대화의 연구 대상으로도 삼을 만하다. 저자는 호구조사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조상이 누구이냐면서부터 시작되어 그 조상과 관련된 역사적 정보를 꺼내어 공유해주고, 나름 젊은 친구들과도 그 호흡이 끊기지 않을 만큼의 유연함을 선보이면서, 묘한 온기를 내비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연약한 아버지이자 평범한 아버지이지만, 지적으로 화려하되 경제적으로는 (이 책에서 많이 쓰이는 '운좋다' 등으로 살짝 자신이 이루어놓은 어떤 태도가 자만으로 보일까봐, 그 수위를 낮추고자 겸양된 표현의 전략을 쓰는) 못 미친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위로 대상과 수평적이지만, 그 나름의 차별성도 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에서 정말 못마땅하다. 수평과 수직의 위치를 교묘하게 겹쳐놓으면서, 내가 이들을 위로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 관찰자/연구자적 위치에서, 라는 그 객관성으로  그 의중을 숨기면서,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얻은 성과들을 인정해달라고 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가 이 책에 대한 기분 나쁜 내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이유다.

 

5

 

그래서인지 그가 계속 '사회학자'라는 학문적 전문성을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도 매우 불편하다. 가교세대부터 시작해서 나름의 개념 설정/선정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공유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전문성에 대한 강조가 자신이 위무하려는 세대적 비극-베이비부머의 비극을 온전히 잘 전달하기보단 저자의 나르시시즘 그 이상으론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필드워크적 글쓰기를 통해 최대한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그리고 그것을 젠틀하게 담으려 했지만, 문제는 그 태도의 기본적 설정이다. 구리다/구리지 않다를 떠나서 왜 저자는 '피해의식'과  '알아주지 못함'이라는 정서를 통해 베이비부머를 위로하려는 시도를 시작했을까. 그러한 정서가 지배적이라서 이 젠틀한 필드워크가 내세우는 베이비부머의 특성 '그들의 소리내지 못함'과 '울지 않음'의 결합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세대적 고통의 특수성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젠틀한 필드워크는 구리다 이상의 느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6

 

베이비부머가 사회 속에서 정녕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느냐/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메시지를 잘 읽지 못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다시 돌아와서 더 이상 그런 고통의 감수를 보여주면서 사회를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소리내지 못함이란 상태를 연관시키는 건, 필드워크적 글쓰기가 지향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라는 가치와 전혀 만나지 못함이라는 것. 고로 송호근 교수의 필드워크적 글쓰기는 이미 자신이 내려놓은 사회적 법칙과 개념 틀 그리고 마음의 습관 속에서 자신의 말을 누군가의 입을 대신 빌려 전하는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이미 정해진 풍경과 그 언어 속에서 그만의 세계관이 정해진 사람인 것 같다. 그 안에서 자신이 만난 사람은 그를 깨우쳐주기보단 그의 꼭두각시라는 느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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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우유 2013-04-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사실 이 분의 포지션을 잘 모르겠어요.
이념상 보수이고 자의식도 무척 풍부하신 분 같은데...객관과 관조라는 가면은 쓰셨지만 (원래 그게 학자들의 특성이고, 사회학이란 학문의 특성이긴 하지만 ㅋ) 결국은 본인이 겪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틀 안에서 노실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시는 모습이 역력.
학교때 존경하던 K교수님께서 과연 학자들이 본인의 사회 경제 문화적 기반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게 과연 가능할까에 대해 얘기해주셔서 한참 토론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참 어렵겠다 싶긴 해요. ^^;;
차라리 걍 솔직하게 까놓고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게 더 진솔해보일것 같은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본인의 당파성을 드러내는거랑 학문의 객관성을 침해하는게 같은 걸로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이분도 그런 케이스 아닐까 싶어요.

2013-04-15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키틀러의 <광학적 미디어>를 정독중이다. 읽으면서 한국의 커뮤니케이션학 교육 과정에 대해 내 경험들을 돌아봤다. 내가 대학생 때 맥루언과 더불어 키틀러의 견해를 비교해서 공부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났다면, 커뮤니케이션학에 대한 지금의 내 심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한국의 커뮤니케이션학에 환멸을 느낀다. 


2. <광학적 미디어>는 좋은 번역도 한몫하지만, 키틀러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 더 나아가 확신이 들었다.


3. 왜 키틀러를 좋아하는 내 지인들이 기술사에 탐닉하는지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4. 지젝의 책과 키틀러의 책을 읽으면서 하나 공통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의인화/인간화의 오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두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말을 한번 만들어본 것인데, 가령 지젝은 시장에 대한 의인화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자기증식이 고도화하는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의 인간미가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음을 개탄한다. (동감한다) 키틀러 또한 기술/기술사를 대하는 태도가 마찬가지다. 키틀러는 마치 기술에 인간을 덧씌워 기술의 비인간성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주장은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술사는 아예 인간과 무관하다는 전제하에 키틀러는 조금은 센 이 견해 속에서 기술의 '사회문화적 의미'라는 국내에도 한때 참 유행했던 연구들의 무용함을 언급하는 듯하다.


5. 어떻게 보면 문화연구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과학-'이라는 부분에 대한 광활한 접촉의 필요성과 가능성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본다. 다만,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문화연구의 그 잡식성이'과학'을 흥미로운 수사로 전락시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6. 문화연구는 참 다양하고 넓은 공부를 하지만, 논문들을 보면, 이런 게 너무 연구가 안 되어왔다 그 정도의 '외로움 호소' 이상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이야기가 어쩌다 여기까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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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조퇴할게요


                            김신식



새벽 두세 시 울퉁불퉁한 표정으로 자기 매장

우육탕사발면을 드시던 패밀리마트 아저씨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미스테리다


출근길 개그맨 장두석을 닮은, 늘 후드 점퍼를

두툼하게 입고 안 어울리는 색감의 루이뷔통 숄더백을

맨 청년은 또 이유 없이 나를 뻔하니 쳐다본다

미스테리다


버스정류장에 뒤섞인 비누향, 샴푸향은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은 채 누군가는 자고도 있을 시간에 헐레벌떡

출근하는 그 혹은 그녀들의 행진이다

하지만 그들의 축축함은 미스테리다


근데 나 왜 이곳에 있는거지 미스테리다


사장님, 저 오늘은 조퇴할게요

(씩씩하게 누워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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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거리는 어려움


                        김신식 


지젝 할배는 자기를 문제삼는 게

자신에 대한 특권이라는데

난 스스로에 대한 바닥일 뿐이야

그래서 매일 가슴이 뛰지 그것뿐이니까


가슴이 뛰니 문제는 문제야

뛰는 건 좋은데 사는 건진 모르겠어

그래서 살려고 뭐라도 보는데

밑줄을 긋고 접을수록 눈이 가렵고

마음은 화생방이야


그래서 결국 실소만 남았는데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 그래

찡그리면 찡그린다고 뭐라 그래


그래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는 건

뭐라 그럴까봐 두려워서 그런가봐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인데

웃음이 멈추지 않아

가슴은 더 뛰고

...

쿵쾅거리는 것도 어렵대

웃기지? 무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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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 2013-05-11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 좋음요!!!
 

말의 땀구멍이 점점 늘어나는 사회에서 모순적이지만 어떻게 하면 침묵하면서 말할 수 있는가를 요즘 고민해보게 된다.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에서 표현이 두려워지는 분위기라는 비극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답답하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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