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이 글을 쓰면서 그 지겨운 '문화연구의 성찰게임'에 다시 발을 담그는 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우연히 본 한 소논문이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비판언론학 20년의 성찰과 전망'세미나에서 나온 <현존하는 적대,부재하는 이론 : 미디어문화연구의 비판적성찰>이란 글인데, 나는 미디어문화연구자들이 그동안 미디어문화연구의 위기를 진단하는 성찰과 논쟁을 보고, 이를 '미디어문화연구의 성찰게임'이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성찰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성찰이 문화연구에 더 나은 진전을 가져다주기보다는, 뭔가 그러한 성찰을 제기하는 연구자의 과잉된 욕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욕심은 결국 미디어문화연구의 진보라는 큰 목적을 뒤로 제낀 채, 연구자 개인의 무오류성과 미디어문화연구라는 필드 안에서 선구자적인 성찰적 위치에 자리 서서,문화연구의 오류를 발가벗기겠다는 과욕의 수사만이 넘치다는 걸 예전부터 느껴왔다. 

문화연구가 맥을 못추고 있는 현실은, 정작 문화연구의 성찰게임에 알맹이가 없다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문화연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자고 하는 이들도 지극히 제한적인 점도 문제다. 전규찬,원용진,이영주,박성일 등등등 문화연구의 성찰게임에 맛을 들인 자들이 보이는 전술은 좌파,우파라는 정치적 스탠스와 적절한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한 채, 그들만의 계몽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바로 삶의 정치라는, 그 지겨운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그런 진보를 자처하고 있는 문화연구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 속한 학문 사회 내 삶의 정치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벌이고 있는 착각은, 자신들의 성찰, 사실상 문화연구가 왜 이 모양이 되었냐라고 한탄하는 그들의 성찰이 당위 >현실이라는 입장에서 지나치게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고로 그들은 마치 앤서니 기든스가 '설득'이라는 말을 상당히 모호하고 교묘하게 자신의 대안으로 내세워, 수사를 실체적 대안으로 포장한 것처럼, 그들은 성찰과 논쟁이라는 말, 그것에서 오는 구체적인 경합 지점을 전혀 마련하지 못한 채, 그들의 강령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화연구가 정치성이 약하다, 미국의 실용적인 포스트모던한 문화연구 때문이다, 문화연구에 한국이 있는가, 문화연구가 소수자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연구는 이론을 너무 실용적으로 소비한다 등등등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과 옹알이는 사실상 새롭게 더 제시되는 문제점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의 순환'을 체현하고 있다. 그러한 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바로 이 논문이 드러내는 문제점이다. 이들은 문화연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돌아보고, 이를 다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이들은 여기서 지젝을 건드린다. 지젝이 문화연구를 비판하는 견해를 가져와서, 한국의 문화연구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자들의 의견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시도하는데, 나는 사실 이런 시도가 불만이다. 이것은 사실상 문화연구자들이 지겹게 문화연구에 대해 쓴소리를 해대는 것, 문화연구의 그 탐욕스로운 이론의 습득,소비,이식과정, 특히 나름 유행이되고 인기가 있는 지식에 대한 열정적 섭식을 또 한 번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문화연구를 정공법적으로 비판하는 게 필요하다. 홀,윌리엄즈,그로스버그와 싸우며 문화연구를 보다 키울수는 없는 것인가. 결국 문화연구를 진정성있게 비판한다는 그들도, 가장 '트렌디하게'비판하는 굴레에 들어가고 만다.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적 지점을 문화연구 내부에서 찾자. 즉, 역사적인 작업을 통해, 문화연구적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돌파하자. 그러나 이 논문의 저자들은 정작 문화연구를 비판하는 자들이 우회의 길을 걷고 있다면서,오히려 자신들이 문화연구의 이론적 다양성을 무기 삼아, 이른바 권력적 외부 형태의 지식(지젝,무페)을 무기로 하여, 그렇게 문화연구를 비판하고 있으니, 이것만한 모순이 없다. (차라리, 제임스 커런과 몰리 간의 논쟁이 훨씬 문화연구에 더 유익한 시간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 연구 방법의 오류 -기호학과 텍스트 과잉 이라는 챕터는 더욱 가관이다. 이것은 흡사 구조주의와 문화주의에 대한 문화연구적 개관의 시기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는데, 논문의 저자들은 한국적 문화연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다면서,되려 한국적 문화연구에서 기호학과 텍스트 분석에 제대로 천착한 논문들이 최근까지의 경향인가를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묻고 싶을 만큼 괴리적이다. 오히려 한국의 문화연구는 텍스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망각하고, 그것을 컨텍스트의 분석으로 은폐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이들은 구조주의가 전통적으로 받아왔던 비판, 역사적 시각의 망각 운운하며, 자신들의 강령을 전파하고 있는데, 이것은 너무나 오늘날 문화연구의 한국적 현실과 괴리적이다. 한국적 문화연구에서 지금 젊은 연구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한 상태에서 비롯된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컨텍스트와의 긴장감 설정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문화연구는 마치 '반텍스트'적이며, 심지어 문화연구를 한다는 사람들도, 문화연구를 컨텍스트 연구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화연구의 성찰게임에 내가 점점 기대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문화연구의 성찰을 강령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들은 감정과 논리를 혼돈하고 있다. 그래서 더 과장된 수사와 우회의 전략이 성찰을 뒤덮고, 문화연구적 본질에 대한 정공법적 탐색을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헌납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성찰게임은 좀 다른 형태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 다시 호가트를 불러내고, 몰리를 불러내며, 헵디지를 불러내야 한다. 왜 성찰을 한다면서, 계속해서 문화연구의 내부자를 소외시키고, 문화연구의 외부자로 내부의 문제를 덮으려 하는가. 오히려 이것은 문화연구에 신념을 가진 성찰적 주체들이 문화연구를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또다른 절망의 반영인가. 우리가 들일 노력의 시간은 지젝의 문화연구 비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쌓아야 할 비판적 자성의 시간은, 버밍엄문화연구소이며, 스튜어트 홀이며, 레이먼드 윌리엄즈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왜 이 당연한 성찰의 지점을 망각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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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이 <마음의 사회학>과 그 이전에 발표한, <87년 체제 이후의 스노비즘의 계보학>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적 주장은, 문화가 우리를 동물로 만드는가?라는 물음인 것 같습니다. 이 물음은 또한 단순한 인상 비평이라고 하기보다는, 그가 한국 사회의 문화적 기류를 살펴보며 내린 하나의 진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가 87년 체제 이후의 문화 기류를 분석한 내용을 전부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가 우리를 동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상당히 중요한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는 일정한 동의를 하는 바입니다. 

문화와 비문화를 가르는 경계에는, 문화와 인간이라는 두 연관된 요인이 있습니다. 인간이 단순한 '조에'로서의 삶이 아닌, '비오스'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분명 생각한다는 행위를 통해, 정치를 만들어내는 부분도 있겠으나, 여기서 우리는 '문화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될것입니다. 인간이 문화와 결부되었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일정한 자존감을 부여한 지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문명'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를 인식하고, 사회를 인식하며, 그 속에서 특정한 실천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에서 우리가 문화의 기본 바탕을 찾을 때, 인간은 다양한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가며, 특정한 삶의 형태들을 계속해서 생산했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어떤'문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잘 아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라는 대립쌍이 만들어지면서, 오르테가 이 가제트, 리비스 같은 사람들의 시선을 견지한 이들과 그것에 반하는 문화주의자들이 격론을 벌였죠. 하지만 이런 논쟁 속에서 우리가 그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넘어, 더 초월적인 사실로 다가온 것은 문화는 우리의 삶에서 이제 '잔여'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우리 삶의 일부로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문화의 무분별한 '감염 효과'로, 달라지고 있는 문화적 기류를 폄하하는 자들도, 그런 폄하에 대응하고자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흐름을 승인하는 자들도, 이제 문화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그 유명한  표현, '일상의 방식'이 되어갔던 것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인 것에서 문화적인 것의 침식'. '문화적 우세종'(프레드릭 제임슨)이라는 표현 속에서, 마이크 페더스톤이 감지한 것처럼, '신지식인(부르디외)'들은 '그들만의 문화'에서, '그들(대중)'의 문화로 비평의 지점을 변환, 확대시키기 시작했고, 예술은 더 이상 진공상태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순수적 진공'을 지향하는 예술의 의미는 이제, 그 진공 상태의 외부를 파헤치고, 예술이 다른 기류와 '섞일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문화적 전환'. 그 기류 속에서 이제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문화는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 넘쳐남 속에서 어떤 새로운 개념들을 도출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지금 지식인들은 '타인지향형 비평'속에서, 순간순간의 문화적 장면들을 쉬운 표현, 명랑스러운 수사들로 언급하는 것으로 자족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시적 해석들, 사건적 비평 속에서, 그 해석과 비평을 아우르는 거시적 시선을 만들어 본 김홍중에게 있어, 지금의 이 '문화 과잉'은 90년대 대중문화담론의 과잉을 걱정하던 비판적 대중문화론자들과는 좀 다른 맥락에 위치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는 <마음의 사회학>을 통해 우리가 문화를 통해 (다시)'동물'로 돌아가는 것인가.문화는 우리를 인간이 아닌 동물로 만드는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즉자적으로 내뱉는 감정의 언어들 같은 예들로 다 환원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김홍중의 역사적 시각을 좀 더 인용해보자면, 87년 체제에서 유지되었던 정치적 실체로서의 적대가 사실상 형식적 민주화를 이루면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그가 문화적 스노비즘이라고 칭한 이후의 문화적 경향들이 형성하는 '문화적 적대'의 체제가 쭉 유지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가 분출하는 적대의 실체는 정작 그 안이 텅빈 기호로만 존재하는 시간이 오래 가는 듯 합니다. 

혁명과 해방이 어려운 이 시대에,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마지막 출구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위안을 얻고 분노를 느낍니다. 사람들이 공분을 표출하고, 빨리 그 공분을 소모하여 공분의 대상을 쉽게 망각하는 것도 '실체'가 아닌 '문화적 가상'으로서 대상을 소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화적 가상'안에서 대중들이 내세우는 가장 최선의 저항은 결국 '도덕적 소비'일 것입니다. 그 안에서 '실천적 분노'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문화적 가상'안에서 실체로서의 적대로 추정되는 자들을 향한 풍자나 패러디는 위안을 주지만, 그 위안의 한계는 결국 진지한 저항적 자세를 필요로 했을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냉소와 무관심'일 것입니다. 

'문화적 가상'안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적대'에서 우려되는 지점은 '도덕적 소비'를 통한 약자에 대한 가녀린 연민이 사회 내부에 깊숙이 들어있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개인의 구제 차원으로 환원시켜, 개인을 둘러싼 모순을 지속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연동된 문제들을 외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적 적대'는 오늘날 현대 사회를 휘감는 가장 각광받는 논쟁의 시장입니다. 이 시장은 늘 있어 왔지만, 사람들의 불안이 갈수록 증대되는 상황에서,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문화적 적대'속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리처드 세넷이 <뉴 캐피탈리즘>에서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듯이, 상류 지점에 대한 모순을 알지만, 그 모순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못했을 때, 대중들은 하류 지점에 있는 자들을 향한 '원한'을 강하게 표출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지 못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때, 우리는 '적대감'을 표출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한 보험이라는 점을 하나의 위안거리로 삼게 됩니다. 

그러한 적대감이 가중될 때, 김홍중의 경고처럼, 우리는 문화를 통해 특유의 자존감을 확인했던 인간이 아닌,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의 인정 투쟁에 갇힌 동물이 될 지 모릅니다. 이건 지극히 상식적인 진단 같지만, 앞으로 가중될 현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은 국가로부터 개인의 욕망 억제를 요구받고, 사회가 부과하는 책임을 국가의 지도자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저항하려 하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인내로 받아들입니다. 그 안에서 문화의 보수화는 '두 개의 영역 이데올로기'(남성의 영역, 여성의 영역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다시 선호하게 되고, 모든 사안에서 '도덕 정치의 과잉'이 발생합니다. 이 안에서 시민사회도 절대 선의 위치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코뮤니타스를 꿈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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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고진은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사회구호 혹은 정화역할 들에 회의적이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책들을 읽어보면 한편으론 지나치게 학자다운 그러니까 지나치게 낭만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그러더군요. 미국이 자랑하는 기부문화의 대표격인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국이 얼마나 썩어있는 것인지의 반증이 아니냐고..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고 돌아갑니다. 얼그레이효과님.

얼그레이효과 2010-02-13 17:53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 반갑습니다. 고진이 그런 이야기를 했군요. 빌게이츠에 대한 지적은 저도 현대인들님생각과 같이 좀 그렇군요. 어떤 식의 사고 방향인지는 알겠는데, 요즘 그런 '입체적인'(?) 생각들에 조금은 회의감을 느끼게 되서.(그래도 그런 사람들의 기부까지 뚱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입장입니다 ㅎ)

지난 번 덧글 달려고 그랬는데, 고대는 더 심각하군요.. 대학원 등록금이 20프로 올랐던데..주위에 '그냥 내면 되지'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아 갑갑한 현실입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비로그인 2010-02-14 11:06   좋아요 0 | URL
아.. 그 글을 보셨군요.. 제가 학부때 이야기였거든요. 지금은 다른 곳 대학원에 있어서 그곳의 대학원 등록금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학교나 그렇듯 문제가 많습니다. 저번에 드렸던 글처럼 학교 게시판을 학교 측에서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학생들끼리 회의를 열고 모금운동을 벌여서 독립적인 서버를 구입하고 그랬습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의 표현에 발목을 잡았던 사건이예요.

고진의 이야기는 저는 시민사회에 대한 것보다 여타의 것에 더 많은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걸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마치 한때 에스페란토어를 세계 공용어로 하자고 했던 자율평론의 운동처럼 조금은 비 현실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빌게이츠의 이야기는 'germany' 라는 책의 한 구절인 듯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미국의 경제 혹은 business 문화의 썩은 단면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글로 기억해요.

사실 얼그레이효과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이 정말 옳지요. 개인의 기부를 #으로 만들 수는 없지요.ㅎㅎ 특히나 그것좋차 여의치 않은 한국의 경우를 보면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예요. 그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고 있다는 의식"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니까요..
새해 복된 일 부디 많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얼그레이님..^^

빵가게재습격 2010-02-1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지젝이 만난 레닌> 순서로 떠오르네요.(<레닌 재장전>이란 제목이 훨씬 와 닿지만요.) 이론을 다루는 분들의 시대적 좌표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인데, 떡국 맛있게 드세요. 인사드리러 왔다 갑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2-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가게님도 맛난 떡국 드세요! 참고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저자 아즈미 히로키의 신간 '자크 데리다 비평서'가 한국에 곧 나온다는데, 기대되네요.(일본인 친구가 그 책이 꽤 재미있었다고 해서 기대중입니다.) 요즘 레닌에 대해 저도 한 번 읽어볼까 준비중인데, 한 번 보고,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대학원 들어오면서 느낀 1년 반동안의 고민들.. 이제 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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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이후, 학문 시장에서 가장 기이한 '장르'를 꼽으라면 '문화연구'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왜 나는 이 장르를 사랑하면서도, '기이하게' 사랑하는가. 이제 그 속내를 밝히고 싶다. 나는 문화연구를 공부하러 오겠다는 똘망똘망한 후배님들을 보면 문화연구가 참 기이하다. 왜냐고? 문화연구는 최근 '지성의 시장'에서 사실 안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또 어떤 곳을 가 보면, 문화연구는 매우 활황 상태다. 문화연구에 통 뼈가 굵은 사람조차도, "야, 요즘 문화연구 누가 하냐?"라는 냉소적인 말을 한 지가 오래인데, 내 주변에는 "선배님, 문화연구를 좀 공부 하고 싶어서요. 대학원에 가려고 해요"라는 말을 꽤 많이 한다.


2


문화연구는 어찌 보면 가장 불쌍한 지적 장르이기도 하다. 본인이 속한 기존의 '원-장르'에서 별 매력을 못 느낀 이들을 받아주는 섬, 그것이 바로 문화연구라 할 수 있을진대, 이 용병들은 그래서 더욱 열심히 '장르 파괴'와 '장르 해체'를 일삼으며, 횡단을 즐겨한다. '문화학'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고 조금씩 그 꼴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문화연구라는 섬에 들어가려 하는 이들은 사회학도나 언론학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 또 최근에는 역사학의 호황을 등에 업고 국문학도들이 이 섬을 자주 찾는 것 같고, 서동진 같이 외롭게 '디자인 문화연구'라는 서브 장르를 개척해나가는 사람도 있다. 특히 언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커리큘럼 안에서 '대중문화의 이해'같은 것을 포섭시켰다는 이유로, 이 미디어가 담아내는 어마어마한 문화적 산물들을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미디어 세계가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소위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이름 아래, 미디어와 문화연구를 합한, '미디어 ․ 문화연구'라는 장르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화연구'앞에 붙은 '미디어'라는 접두어 때문에 미디어 ․ 문화연구자들은 많은 곤혹스러움을 겪고 있다. 소위 전통적인 '미디어'의 범주 안에서 문화연구적 정신을 실현할 것인가. 내가 알고 배운 문화연구라는 것을 써 먹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문화연구는 잠시 주춤거리는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문화연구'라는 학제가 생기면서, 문화연구 스스로가 갖는 그 자율성이 학문의 제도라는 영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나타나는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형 같은 연구자는 이제 '미디어'라는 수사에 너무 한계를 짓지 말자고 자신의 논문에서 주장한다. 그는 미디어의 존재 범주를 확장시키자고 주장하며, 미디어는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매스 미디어로서 사유할 것이 아니라, 도시 문제의 연구를 통한 '범미디어주의'를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3

솔직히 말해서 이기형 등의 연구자가 미디어 / 문화연구라는 특정 장르를 더욱 확장된 의제로 끌고 싶어나가는 것은 문화연구의 문제라기보다는 미디어연구의 입장에서 일단 봐야 한다. 소위 미디어연구라는 것을 하면서 언론학 자체가 예전부터 갖고 있는 위기가 나는 계속 가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학, 즉 우리가 신문방송학이라고 부르는 이 장르는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을 걱정하여, 내뱉었던 그 선언의 상황 만큼이나 어렵다. 미디어연구자들은 신문이 어렵다! 방송이 난국이다! 이런 진부한 시대 선언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미디어 연구 자체가 어려우며, 난국임을 봐야 할 것이다. 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문화연구로 떠날 채비를 하려는가. 그것은 단순히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핑계를 대기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는 권력이 있다. 더 나아가 지식과 권력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연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문화연구의 문제의식과 이에 비롯된 연구 주제들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애매하게 걸치고 있는 순응적인 젊은 연구자들의 의미 없는 '논문 찍어내기'도 일조한다. 미디어 연구에 사회가 죽었다. 미디어 연구에 권력 비판이 부재하다. - 더 노골적으로 말해 계급 문제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미디어연구에 남은 것은 '기술'과 '기능'뿐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미디어연구의 위기가 성찰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면서 문화연구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문화연구자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미디어연구의 전통적인 주제들, 혹 관례적 주제들 '대통령 연설문 조사' ,'대통령 후보 토론회 후보자들 수사 분석'와 같은 것들이 마치 문화연구자들의 연구적 태도로 '전이'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문화연구자들은 돌고 돈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만을 억지로 끌고 가보자고 한다. 끝까지 절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문화연구의 위기를 타진하는 비평들을 보면, 이것은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연구라는 장 안에서 왜 자신의 연구를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인정투쟁에 대한 하소연'에 가깝다. 그래서 문화연구를 사랑한다는 자들이 보여주는 문화연구에 대한 '성찰 게임'은 이미 관례화된 지 오래다. 다들 알다시피 문화연구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위기론을 맞은 기이한 장르이다. 이 장르는 위기를 맞으면서도, 그 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호황 상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술했다시피 이 장르는 참으로 기이하다.


이 기이함 속에서 이기형 등이 강조하는 '미디어'-'문화연구'의 관계. 그 딜레마에서 우리가 뜨겁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리고 논쟁이 필요한 부분은 사실 '문화연구가 왜 이 모양이야!"라는 구태의연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미디어연구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기생하는 듯한 문화연구의 현실을 문제 제기해야 한다.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문화연구는 미디어연구에 잠식당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대통령 수사 연구와 같은 형태의 관례적 문화연구식 소재가 남발될 수 있다.


4


문화연구가 억지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파도의 정신'이다. 우리는 섬이 아니라, 파도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섬은 고립되어 있지만, 파도는 움직인다. 그러나 이 다이내믹은 정작 문화연구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문화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변덕을 문화연구가 지닌 급진적 맥락성이라는 좋은 용어로 갖다 붙이지만, 이 변덕으로 인하여 문화연구는 사실상 주인 없는 파티장이 되어버렸다.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고민을 사회 문제의 '급변성'에 너무 예민하게 맞추다 보니, 사유의 깊이는 없고, 비평의 시선은 진부하고 또 진부하다. 문화연구자들의 변덕은 또 '쏠림' 현상과 연관성이 있다. 요즘 문화연구자들의 '쏠림'이라고 하면, 일부에서 보이는 '역사적 문화연구'다. 아마, 국문학에서 엄청나게 나오고 있는 한국 근대사의 성과에 관하여, 국문학을 한다는 친구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다루고 있으니, 정작 문화에 헤매고 있는 문화연구자들의 무의식엔 "어이쿠, 이것 큰일났구나"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들이 역사에 관심 있어 '역사적 문화연구'를 하려는 건 아닌 듯 보인다. 그들에겐 오히려 "내가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는 생명 연장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5


문화연구의 위기에는 가장 중요한 세대 교체의 실패가 두드러진다. 양은경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문화연구의 형성'은 문화연구를 지식 장 안에서 세대적 대립으로 보는 데, 나는 이 구도에 공감이 간다. 소위 90년대의 아이콘이었던 사람들이 지식에 똥을 싸고, 욕을 하고 실컷 놀던 시대가 있었다. 덕분에 리뷰나 상상 같은 문화계간지들이 돌출하고, 홍대를 비롯해 롯데월드까지 모든 게 문화였고, 모든 게 연구일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똘끼'가 주는 임팩트가 사실 세대적으로 또 한 번의 대립을 걸치면서 나타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하여, 젊은 문화연구자들이 이런 세대와의 대립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문화연구를 한다는 이들은 90년대를 좌지우지하던 그들의 이야기에 쌍욕을 하지 못하고, 그들에 순응하고 그들에 환호하기 바쁘며, 그들의 추억담에 웃기 바쁘다. '2009년'에 문화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논문에 90년대가 문화의 시대였다라고 하는 그 대표적 수사가 인용되기에 바쁘지, 그것에 남다른 의미를 붙여보려는 시도가 없다는 점은 우리들이 얼마나 문화연구적 클리셰에 젖어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문화연구'라는 장르 내에서 어설픈 연민으로 뭉친 사회 문제에 대한 연대가 아닌, 그 연대를 더욱 키울 수 있는 분열과 논쟁이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논쟁을 하려는 이들이 없다. 왜냐하면 문화연구자들도 한국의 지식 시장에서 문화연구가 배고픈 장르임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오히려 문화연구를 취미처럼 대하기에. 갈수록 커져가는 문화연구자들의 옹알이는 사실 문화연구가 한국에서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다는 자조를 스스로 너무 떠벌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서 문화연구 학회에 가보면 다들 문화연구 좀 사랑해달라고 난리다. 이 정도 되면 '한국문화연구의 종언'이라는 말을 꺼낼 때도 되었다고 본다. 생각보다 개판이며, 실제로 보면 더욱 개판이다.  

(어찌보면 최근 '무례한 복음'으로 90년대식 문화연구에 애정을 드러내시는 그 분께는 참 미안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마치 새로운 것처럼 강조할 때마다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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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고민을 갖고 계셨군요. 그리고 저한테는 어떤 말도 하시진 않으셨군요...ㅎㅎ 나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이 생길 수 있을지도..(그리고 그러고 싶은 맘) 입학하면 학교에 계시나요? 종종 같이 얘기하면 좋겠어요.

얼그레이효과 2009-12-2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안하지만, 논문학기라 학교에 안 간지 오래랍니다.ㅎㅎ 저때문에 대학원 입학의 희망을 너무 빨리 소모하진 마시고,,충분히 겪어보고 나서..언젠가 서로 편하게 이야기 할 때가 오겠지요.^^ 문화학과 분들은 영롱씨에게 희망을 줄 분들이 많으리라 개인적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학기 내가 고민했던 주제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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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되어야 할 문화연구 
  

얼그레이효과 혹은 김신식


1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이후, 많은 이들이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자연스레 이 불쾌함은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 소위 내가 '문학 내부자'라고 지칭하는 이들의 많은 공격을 받았고, 이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쉽게 생각해서, 실컷 문학을 하겠다고, 문학에 일념을 바치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그것도 일본 비평가가 - 사실 '일본'이라는 국가에 스며든 이 전통적이며 은밀한 적대의 자연화는 강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단지 지성의 시장이라는 외피를 둘러싼다고 해도 말이다. 이러한 포장 벗기기에 대한 지적은 한국의 문학평론가들도 일부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 '감히!' 내가 충분히 즐기지도 못한 문학에 애도를 표하고 있는 작태는, 제법 배가 아팠을 것이라는 건방진 추측을 해본다. 그러나, 문학을 심층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로선 - 적어도 '문학 초보자'로서 고급반에 입문하려는 관심이 있는 나에게- 이런 '선언'이 갖는 환기 효과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라도, 이 사회를 지탱해오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위기의식을 그 존재를 사유하는 자들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바라보는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소중한 위기의 광경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 위기의 광경에서 어떤 말을 끄집어내려 하는가. 거창한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과잉된 인정투쟁을 통해 지식 장의 주변부에 머물며 옹알이를 꾸준히 해대고 있는 문화연구라는 진부한 탕아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2


문화연구는 대체 무엇인가? 문화연구자들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이러한 질문은 흥미롭지만 구슬프게도 여전히 문화연구를 한다는 사람들 곁에 유령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문화연구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나! 문화 연구하는 사람이야!"라는 수줍은 고백을 한 채, 거기서 위안과 자괴감이라는 양가감정을 동시에 갖는다. 외국의 어떤 문화연구자는 문화연구의 왕성한 학제적 움직임을 상찬하려는 의도에서, 문화연구가 여러 군데에 부딪히는 파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 '유훈'같은 말에는 '겸양된 과시'가 숨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화연구는 여전히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문화연구자들은 제발 나를 좀 봐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한 애원의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는, 자신이 접촉하고 있는 장르에 대한 소개와 이 장르를 문화연구라는 양념을 발라, 어떻게 다른 요리로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 만들기다. 문화연구자들이 정성스레 쓴 논문들을 보면,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만든 공약을 소개하는 느낌이 강하다. - 그러나 이 공언은 곧 허언에 처할 운명에 있다 - 그들은 늘 자신의 처지를 봐달라고 소개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 이제 문화연구는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연구는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이루어진 문화연구 안에서 문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 여러분, 이제 문화연구는 세상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할 때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미디어 ․ 문화연구'라는 제도적 명명에 갇혀, 미디어에 국한된 연구에 몰입해야 하나요. 우리는 이제 미디어의 범위를 확장시켜 이 도시를 연구하고, 88만원세대 담론을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 여러분, 이제 우리는 다문화주의라는 관점 안에서 우리 안의 소수자들을 연구 안에 데리고 와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연구의 본질입니다. / 여러분, 문화연구의 본질로 돌아갑시다. 문화연구가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우리는 '신좌파적' 사유의 오리지널리티를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이 지어놓은 식당에 들어가보면, 정작 맛이 없다. 심지어 그 식당에는 음식이 없기까지 하다. 이것은 왜? 일단 좀 쉬운 수준에서 보자면, 문화연구자들의 초대는 (인터넷 관용어구로 표현하자면) '떡밥이 상한 경우'가 많다. 즉, 문화연구자들은 늘 자신을 사회 현상에 대해 적극적이며 친근한 사회적 존재자로서 상정하지만, 그러한 상정이 주는 안이한 환영은 그들이 얼마나 사회로부터 멀리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늘 푸코 흉내를 내며 진리에 의문을 품고, 사명감을 가진 기자 흉내를 내며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글을 쓰고 발언을 하지만, 거기엔 진리에 대한 끈질긴 사유는 없다. 다만, 진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는 과정의 날인만이 살짝 찍혀 있을 뿐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대로 '대용품 철학'으로 간주된 문화연구가 갖는 난점, 즉 자신들이 드러내고 싶은 진실이 숨어 있는 공간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적대'를 너무 안이하고 과장되게 '적대'하는 사유는, 자신의 안일한 탐구의 태도를 감추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리하여 문화연구자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대상을 적대의 우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그것을 붕괴하기 위해, 일단 '신자유주의적'이라는 수사를 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이 주는 친연성은 그들에게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는 적절한 위안을 줄 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이런 비판을 왜 하게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지겹게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문화연구가 도대체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는 거야? 문화연구는 대체 뭐 이리 영향력이 없어?라는 일정한 냉소주의를 친구로 사귀게 된다.


3


문화연구가 냉소주의와 맺는 친연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연구를 좌파와 진보라는 영역에 당연하게 동일시하려는 데서 나타난다. 왜 '아이러니하게도'라는 말을 쓰는가. 그것은 앞에서도 약간 언질을 주었지만, 좌파와 진보라는 레떼르 아래, 문화연구를 하는 '나'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문제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건실한 비판자로서, 그 위치를 충분히 담당하고 있다는 인식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반문의 한 입장으로, 문화연구의 원로들을 떠올리며, 이 원로들이 다져놓은 정치적 이념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이념 제시를 고수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기원 회귀의 전략'은, 고작해야 자신을 문화연구라는 장 안에서 혁명적 기운을 제시할 수 있을 만한 기대주라는 외피를 부여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부르디외가 무섭게 깔아 놓은 사회학적 사고를 알고 있지 않은가. 기원 회귀를 주창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장 내 도전자들의 전략은, 사실상 장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하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지분'을 달라고 하는 것 외엔 다름 아니다. 상징화된 권력자들을 더욱 권력자로 만들면서 말이다. 지금 와서 '신좌파적 사고'를 회복하자고 하는 / -소위 《문화과학》 을 열심히 챙기는 어느 학자의 말을 상기해본다 - 문화연구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이들의 주장엔, 과연 문화연구에 본질이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문제적 사유가 삭제되어 있다. 문화연구자들은 사실상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찾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화연구자들은 진리를 자신의 친구로 여긴다. 자신은 곧 문화연구를 함으로써 이미 진리는 자기의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으며, 이러한 망각은, 곧 가장 뜨거운 인본주의적인 외피를 쓴 연구로, 인간을 소외시키는 비극을 초래한다. 이미 있다고 가정된 그 진리에 대한 선점 의식은, 사실상 문화연구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란 기이한?) 선물을 주었다.


4


"정치적으로 올바른 문화 연구는 진리(관여된 주체적 입장)와 지식을 혼동함으로써 - 그 둘 사이를 갈라놓는 간극을 부인하거나 지식을 진리 아래 직접 복속시킴으로써(예컨대 양자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지식 분야가 지닌 고유한 개념 구조에 대한 적절한 숙지도 없이 사회 비평적인 안목만 가지고 이런 특수 과학을 성급하게 폄하해버린다)-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진지한 태도를 결여하고 있는 데다가 오만하기까지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특수한 분과 학문적 숙련성의 결여라는, 흔히 지적되는 문화연구의 문제점이다. 가령 문학 이론가가 제대로 된 철학적 지식도 갖추지 않은 채, 헤겔 철학을 남근-로고스-중심주의라고 험담하는 글을 쓴다거나 영화나 뭐 그런 다른 영역들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덤비는 것 등등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 여기서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적절한 지식도 없이 모든 것에 판단을 내리려 드는, 일종의 그릇된 보편주의적 비평 능력이다. 전통적인 철학적 보편주의에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문화 연구가 실은 자신을 일종의 대용품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꼴이다. 문화 연구의 막연한 관심들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띤 보편 개념으로 변용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령 탈식민주의 연구에서 '식민화'라는 막연한 관념이 헤게모니를 쥔 개념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내 보편적 패러다임으로 격상되며 급기야는 양성 간의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식민화한다거나 상층 계급이 하층 계급을 식민화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줄을 잇게 되는 것이다. "(Žižek, 2001/2008,p.341~342)


자, 지금까지 내 사고와 접촉한, 이미 잘 알려진 지젝의 문화연구에 대한 독설이 여기 있다. 지젝은 문화연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젝은 문화연구자들이 뭘 해보려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늘 어설프다는 것을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듯하다. 건방지게 이 인용문에서라도 지젝의 머릿속을 해부해보면, 그는 '개념 구조에 대한 적절한 숙지도 없이', '적절한 지식도 없이', '막연한 관심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문화연구자들의 자세를 문제삼는다. 하지만 어디 이런 문제적 자세가 문화연구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지적 태만은 비단 문화연구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보면 '문화연구적 태만'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화연구적 태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것은 소위 '문화연구적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인도주의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안일하게 포섭되는 이론적 전유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사회에서 무수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문화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학계의 동료들과 혹은 학계 밖 지인들과 나누면서, 그 중에서 소재를 골라잡는다. - 뭐, 자신이 잘 가는 인터넷커뮤니티에 논란이 일고 있는 사안을 주목하거나, 자신이 잘 보는 특정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고르는 경우도 있지만, 소재를 찾기 위한 담화에 이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 문화연구자들은 제도권의 유행어, "야! 그것 참 재미있겠다!"라는 흥미를 유발하는 듯한 소재를 골라잡은 뒤, 이제 논문으로 벼려낼 궁리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문화연구가 시도하는 비평적 기획을 논문이란 틀로 실천하는 것이 적절한가? 즉 1990년대 후반 한국 지식계에 반짝 등장했던 '논문중심주의'같은 비판 담론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연구 논문이란 틀 속에서 문화연구자들이 사회 문제에 개입할 때, 그것을 문제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이것은 다른 한편에서 문제적이다. 이전에 A라는 문제에 대해 열광적인 성토를 논문 속에 뿜어내던 한 문화연구자가 B라는 사회적 문제에 접근할 때 그 분노 섞인 정치적 올바름은, 현상에 어설픈 연민을 지식으로 재현/연기한다. A라는 문제에서 B라는 문제로 전환할 때, 문화연구자들은 자신들의 고민이 전환되고 있는 것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 이것은 문화연구자들이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자신들의 학문적 관심을 옮기는 것을 힐난하는 게 아니다. 이는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찾는 진리의 친구인 문화연구자들에게 타자는 그들의 지적 분노의 대상이지, 비평의 대상으로는 정작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문화연구자들은 그리하여 '연민적 타자'라는 정치적 올바름의 대상을 잘 모셔놓은 채, 성실하게 그 타자에게 제공할 지적 무릎담요를 찾거나 만든다. 이 지적 무릎담요를 찾거나 만드는 과정, 즉 문화연구자들이 타자가 있는 어느 현상에서 그 타자를 감싸기 위해 취하는 이론적 전유가 왜 인도주의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물음. 문화연구자들은 그것을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성찰적 의문으로 드러내야 한다. 이러한 의문을 은폐한다면, 최근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란 개념이 아주 당연하다는듯이, 다중, 마이너리티, 소수자, 이주노동자들에 접착되고 있음을 우려하는 김 항의 주장은, "왜 네가 이론을 소개했다고 해서, 너만 그 이론을 독점하려는 것이냐! 인문주의자들, '사회인문학'이니, '실천인문학'이니 하더니만, 아직도 그 전통적인 인문학적 습성(?)이라곤"같은 엇나간 비난에 매도당하기 쉽다.



5


"문화 연구에 대하여 우리는 벤야민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볼 필요가 있다. 즉 그들이 권력과 어떤 명시적 관계를 갖는가가 아니라 지배적인 권력관계 안에서 그들 자신은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가라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문화 연구가 지배적 권력 관계를 폭로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권력관계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의 사회적 존재 양태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비판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척하기만 할 뿐인 그런 담론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푸코가 '억압하고'/ 금지하는 사법 권력과 대비시켜 무언가를 생산하는 '생명-권력'이라고 불렀던 개념을 문화 연구에 적용해본다면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성을 규제하는 '억압적' 담론들이 실은 성의 번창과 완전히 상보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 연구라는 분야도 오늘날의 전 지구적 지배 관계를 위협하기는커녕 그러한 지배 관계의 틀에 꼭 들어맞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가부장적인/자기동일성에 집착하는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비판이 그런 것들을 전복하기 위한 의지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모호한 매혹에 빠져있음을 무심코 드러내는 것이라면 어떨까?"(Žižek, 2001/2008,p.344)


이 엇나간 비난을 촉진하는 것은 지젝이 언급한 문장, 문화연구가 지배적 권력 관계를 폭로한다는 것을 자임하면서 동시에 망각하는, 권력관계에 대한 동참에 대한 의문을 문화연구자들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문화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의 이상적인 비판자로, 진보주의적 사상을 체화한 이론가로 인식된다. 그러면서 문화연구에 사라지는 것은 논쟁이다. 고로 증가하는 것은 같은 테두리 안에서 땅따먹기다. 이 땅따먹기는 자유로움 속에서 느슨한 어떤 문화연구적 규범을 알고 있는 이들의 공약 제시의 남발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연구자들의 자기 문제에 대한 공약은 스스로를 군소정당의 대표로 남게 할 공산이 크다. 그러한 위기를 알고 있는 자들은 이제 매우 무감각해진 '성찰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들은 문화연구에 대한 '반-문화연구적'인 영역은 비평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문화연구자'라는 동인들에게 문화연구를 반복적으로 강의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강의의 풍경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공부는 스스로 하게 놓아두자. 다만 그 공부한 것을 서로 공개하며 다툴 필요가 있음은 지금 문화연구에 절실하다. 논쟁하지 않은 채, 소개만 하는 문화연구 안에서, 그들이 삼고 있는 위안이란, "자네, 참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잡았군"같은 진부한 인사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연구라는 제도 안에서 허용된, 이 방대한 지식을 충분히 접촉할 권리를 잡은 시간을 사유하기다. 이 시간을, 이 시간의 권리를 마땅히 사용하기 위해 '문화연구 사전'같은 안일한 작업이나 하는 학자의 주장을 순진하게 따르며, 그 사전 속에 소개된 용어를 순순히 암기하는 멍청한 짓은 집어치우고, 그 용어 자체가 왜 문화연구와 만나야 하는지, 그리고 그 용어를 둘러싼 인식론은 무엇인지 우리는 좀 더 괴로운 싸움을 펼쳐야 한다. 그 싸움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작 '정치적 상상력'같은 진부한 수사 아래, 날마다 유입되는 새로운 가면을 쓴 이론의 등장에 기립박수를 치며, "자네, 이 이론 아나?"같은 호들갑스러운 연기를 또 해야 할지 모른다. 이 연기는 충분히 / 마땅히 애도되어야 한다. 애도는 곧 극복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 끝 -


[참고] 주로 슬라보예 지젝(2001),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한보희 옮김(2008), 새물결, 291~349쪽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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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를 읽다가 소개한다.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612

 Horizon] 화장실 없는 26억 인구 무관심 속 무방비 질병 노출 

위생학자 매기 블랙

전세계가 핵화학 오염물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만 골몰하는 지금, 병원균이 득실거리는 배설물 같은 기본적 오염원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런던 템스강 대악취 사건 이후 선진국은 도심환경 정화와 청결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도국에서는 각종 질병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지난 몇 세기 동안 전염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해로운 공기’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점점 가속화되는 도시화는 늘 새로운 근심거리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오늘날 도시 인구의 대부분은 빈민촌에 거주한다. 판자촌 같은 빈민굴에서 10억 도시 인구가 위생시설 부족과 이로 인한 고통, 건강 악화와 인간의 존엄성 상실을 겪고 있다.

잠비아에서는 지난해 7천 건 이상의 콜레라가 발생했다. 이 중 162명이 사망했고, 수도 루사카에서만 30명이 숨졌다. 잠비아는 이에 125억 크와차(약 150만 유로)를 투자하고 복역수들을 동원해 하수도 정화사업을 벌이는 한편, 콘서트나 TV 드라마를 통해 대국민 의식 개선 등 위험 방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1)

그러나 도시화가 한창 진행 중인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국가들에서는 도시 외곽(간혹 도심 내)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도시 및 사회 전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국가들도 콜레라같이 비위생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대단위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병원 시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수돗물과 분뇨의 혼동
수세식 변기와 하수도 시설이 보급됨에 따라 사람들은 수도시설이 분뇨 처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즉, 분뇨 오염이 질병의 중요한 발생 원인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보건정책조차 설사 및 기타 배변 관련 질병을 ‘수돗물 보급’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주택 소유자들은 상수도 사용료를 부담한다. 그러나 여기에 하수도망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교묘한 말장난 덕택에 대중 여론과 국정 논의 석상에서 이 더럽고 불결한 용어는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일부 개도국의 대도시를 흐르는 강은 19세기의 센강·라인강·템스강처럼 썩어가고, 투기된 오물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악취원들은 화려한 호텔과 관광시설들이 위치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관심에서 멀어진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그 결과, 무려 26억 명의 사람들이(전세계 인구의 38%나 되는!) 분뇨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에게는 화장실도 없고, 하수도 시설의 혜택도 없다. 분뇨를 모아두었다가 투기하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재래식 변기도 정기적인 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수도가 보급된 경우에도 오물의 10%가량만 종말 처리되고 있다. 즉, 나머지 90%는 미처리돼 하천에 버려짐으로써 어장과 식물군을 포함한 수질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하천수가 세탁물, 세숫물, 목욕물 및 음용수로 그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이 오물 처리와 흡수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극소량의 배설물에도 미생물 박테리아가 수십억 마리 서식하는 것처럼 물에도 많은 병원체가 서식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여러 해 동안 유독성 산업폐기물 투척과 미처리 폐수 방류로 오염된 갠지스강 정화사업을 위해 세계은행에서 5년간 1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기로 했다.(2) 그러나 갠지스 강줄기에 즐비한 하수구를 따라 정화시설을 가동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정도의 투자로 인도 극빈층에게까지 하수도를 보급한다는 희망은 아직 요원하다. 실제로 위생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농촌에 살거나(70%), 도시 내 사방으로 뻗어나간 빈민가에 거주하고 있다(30%).

개도국 내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노상 배설이 일상적이다. 야간에 들판으로 나가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판과 체면, 순결이 걸려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하는 여성에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밤 나들이 때 발생하는 신체 폭행이나 성폭력 피해는 다반사다. 무엇보다도 낮 시간 내내 배변을 참아야 해서 방광뿐 아니라 여러 가지 건강상 문제가 발생한다.


   
 
 
야음을 틈타 들판에서 뒷일
농촌과 달리 도시에서처럼 밖에서도 해결할 곳이 없거나 어린아이나 환자, 장애가 있는 노인과 같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양동이를 사용하거나 음식 포장재, 플라스틱 봉투 등을 사용한다. 배설물이 담긴 봉투는 가까운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그 근처를 떠도는 개나 돼지들이 뒤처리를 한다. 이 불결한 봉투들은 ‘이동식 화장실’이라고 불린다.

농촌 지역 사람들은 냄새 나고 비좁은 화장실보다 자신들의 전통적 방식을 선호한다. 이들은 집 안에 화장실 칸을 두는 것을 꺼리고, 되도록이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 한다. 과거에는 태양과 바람에 의한 건조와 탈취, 유수에 의한 세척 작용만으로도 화장실 없이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노상 배설은 비위생적인 일이 되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천과 강가, 해변, 들판, 길가에 퍼져 있는 분뇨 입자를 통해 병에 걸린다. 병원균이 손과 발, 음식이나 식기, 옷에 묻거나 호수나 연못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과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인체 내로 흡입되는 것이다. 매년 150만 명의 영아가 설사와 관련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또한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정기적인 고열과 복통으로 학교를 결석하거나 성장 장애를 겪는데, 이는 곧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의 부담을 가중하는 동시에 가정의 금전적 손실을 야기한다. 맨발로 배설물을 밟아 생기는 기생충 감염이 빈번한데 매년 1억3300만 건을 넘어선다. 장기 내에 기생하는 회충은 어린아이가 섭취하는 영양분의 3분의 1을 흡수하는데, 이로 인해 흔히 발생하는 질병이 천식이다. 어린아이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자랄 경우 장기 내에 1천여 마리의 회충이 동시에 기생할 수도 있다.

정부가 위생·정화 시설 부족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더라도 일반 대중에게 화장실은 국가 차원의 위생 지원 정책이 아니라, 개인 생활용품의 일부처럼 인식되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화장실 없이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용변을 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개인만의 은밀한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극빈층 사이에 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 신분 상승에 성공한 경우 그 수요가 높다. 이는 화장실이 텔레비전처럼 세련미와 현대성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빈민층뿐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뿐만 아니라 욕실과 샤워 시설, 생활용수 처리를 위한 하수도 설비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가정용 설비 부품’ 수요가 증가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00여 년 전 유럽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하다.


 

 
 
 
 
화장실, 개인 차원의 문제 아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는 이러한 추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원도 의지도 부족하다. 지도층 내에서도, 소비자층 내에서도 위생설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실에는 원조 지원국의 책임도 일부 있다. 물 관련 원조 프로그램 지원금이 연간 130억 달러에 달하지만, 이 중 10억 달러만이 위생시설 확충에 활용되고 있다.(3) ‘물과 위생’ 프로그램 가운데 오물·오수 처리 설비 확충이나 화장실 홍보, 위생 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은 거의 없다. 유엔이 2000년 수립한 새 천년 개발 목표 어디에도 위생은 찾아볼 수 없다. 1990년 기준으로 기본적 위생시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가 추가된 것은 2002년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제2차 지구정상회의 때인데, 이조차 엄청난 로비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유니세프는 이같은 소극적 목표(위생시설 혜택이 부족함에도 목표 대상에서 제외된 인구는 18억 명에 이른다)조차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위생 측면에 대한 재정적·정치적·제도적·인식적 개선을 위해 유엔은 2008년을 ‘국제 위생의 해’로 지정했다. 유엔의 이런 노력은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마침내 위정자들이 식수 공급과 위생을 별개의 쟁점으로 인식한 것이다.

‘화장실의 비극’을 폭로하라
많은 지역에서 극빈층 거주 지역에 설치할 수 있는 화장실은 급수가 안 되고, 오물 처리를 위한 배수관 설치도 불가능하다. 거주민도 해당 지역 관청도 배수로나 분뇨 정화조에 투자할 형편이 못 될뿐더러, 분뇨 처리 시설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극동 아시아(중국 및 인도를 포함한)의 많은 국가들이 극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위생시설 보편화는 이미 실패가 예견되고 있다.

오랫동안 간과해온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마다 늘 그랬듯, ‘국제 위생의 해’는 그동안 잊혀져왔던 기술 향상과 교육 측면의 개선 현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상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폭로하는 계기도 되었다. ‘불법’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인구를 수치에 포함시킨 결과 생활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인구수는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관광 차원에서 국가 이미지에 끼칠 악영향을 두려워하는 많은 국가들이 상습적으로 콜레라 발병 건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콜레라가 ‘불결한 질병’으로 인식돼 많은 환자들이 병을 숨기고 있는 만큼 숫자 속이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4)

기존 위생설비는 선진국이나 부유층에서 편리한 하수설비일 따름이다. 따라서 위생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수확을 거두려면 좀더 저렴하고 설치와 유지가 용이한 위생설비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매기 블랙 Maggie Black
주요 저서로 <최후의 금기: 국제 위생 위기에 관하여>(런던·2008)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각주>
(1) 샘파이리, ‘잠비아: 정부, 콜레라·말라리아와의 전쟁 선포’, <Times of Zambia>, 루사카, 2009년 10월 27일자.
(2) <BBC News>, ‘세계은행, 인도 갠지스강 정화사업에 10억 달러 투자협정 체결’, 2009년 12월 3일.
(3) 세계 물 파트너십, ‘물 안보를 향해: 행동 지침서’, 스톡홀름, 2000.
(4) 세계보건기구 정기간행물, 87호, 885~964, 제네바, 2009년 12월.





1858년 런던 템스강 대악취 사건이란?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런던을 강타한 한여름의 혹서로 템스강은 악취가 심한 시궁창으로 변해버렸다. 당시 막 발명된 수세식 변기가 유행하면서, 런던이 일종의 대형 하수구가 돼버린 셈이다. 심한 악취 때문에 강가에 위치한 법원들은 개정 기간을 축소해야 할 정도였다. 당시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런던도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정기적으로 유행했는데, ‘해로운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시절이다. 

템스강의 악취가 독성이 강한 ‘해로운 공기’라는 믿음 때문에 의회는 즉각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웨스트민스터궁의 테라스와 창문들이 모두 강변 북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의회는 즉시 300만 파운드의 특별예산을 마련해 하수구 시스템을 개축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광역 도시사업국(1)은 기술자인 조지프 바잘게트에게 런던 시내 전체의 하수구 설치 책임을 맡겼다. 공중보건법 채택 및 지방행정제 개혁과 함께, 런던 하수구 시스템 개축사업은 위생 역사상 큰 획을 그었으며, 영국 내 공중보건제도 개혁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유럽과 북미로까지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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