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작가가 쓴 책을 읽다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내용이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 마다 네이버 지식 백과 등을 이용해 검색해보지만, 단편적인 설명만으로는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궁금증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 로마 신화’,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원전으로 직접 읽어 보는 것이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많은 문제를 풀기보다 개념을 먼저 완벽히 숙지해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어로 된 원전은 숲 출판사의 ‘천병희’씨가 번역한 책들이 거의 유일하다. 원전으로 번역된 이 책들은 읽기가 쉽지 않다.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기에 각 권의 행, 즉 시의 운율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 그리스어와 한글의 구조가 다르다보니 그것을 읽는 사람은 전혀 그 음률의 묘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무수히 많이 나오는 신과 사람의 이름도 잘 모르고, 그들이 무슨 신이며, 무엇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번역자가 첨가한 주석은 책의 끝에 있어서 두꺼운 책의 앞, 뒤를 계속 왔다가야 해야 한다. 조금 전에 읽은 내용도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1권도 읽지 못하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면 안 된다. 수학 하나 못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대학에 가지는 못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호메로스의 서사시 역시 읽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에는 읽을 책이 넘쳐나기에 다른 책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언제나 다른 책에도 신화와 서사시의 내용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그럴 때 마다 읽지 않은 것에 대한 한숨은 계속된다. 안 풀리는 수학 문제처럼 그 소리는 답답하다.
‘명화로 보는...’시리즈는 원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책이다. 원문과 주석을 따로 볼 필요 없이 본문에서 설명을 다 해주고 있어 일단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천천히 읽어나가기만 하면 이해가 잘 된다. 중간 중간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볼 수 있어 유익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이미 읽은 사람에게는 복습의 효과가,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예습을 시켜주는 책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파리스의 사과’가 가장 큰 이유이다. ‘파리스의 ’사과‘는 다시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인 펠레우스와 그의 어머니인 테티스의 결혼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신, ’에리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네이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는 달리 공적인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라는 로마의 지배자를 찬양하고 기릴 목적으로 베르길리우스가 썼다. 하지만 너무 직접적인 찬양은 지도자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에, ‘아이네아스’라는 인물을 빌려오고,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기술한 형식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원전에는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의 유민을 데리고 카르타고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명화로 보는 아이네이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인 테티스 여신과 펠레우스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일리아스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후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만남으로 진행된다.
2018년에 출간된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그림의 가짓수가 적고, 약간 조악한 면이 있다. 어떤 것은 피규어의 모습으로 대체된 것도 있어 조금 황당하다. ‘명화로 보는 아이네이스’는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전작에 비해 훨씬 더 그림이나 내용의 구성이 좋다. 그림도 풍부하고 알차다. 나는 1월에 ‘아이네이스’를 원전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 책으로 다시 복기한 느낌이다.
그 어떤 것도 한 번으로는 잘 알 수 없다. 특히 어려운 것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익혀야만 머리에 들어오는 법이다. 여러 가지 책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사시를 읽어 나간다면, 어느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올 것이다. 읽어두면 여러모로 편리하기도 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헥토르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안드로마케'-자크 루이 다비드
'아킬레우스의 죽음'-페테르 루벤스
'투르누스의 죽음'-아우렐아노 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