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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세상 사람들에게 세계 문학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나는 주인공 이름 딱 10개만 말해보라고 할 때,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주인공의 이름이 표제작인 이 작품을 거의 10년 만에 재독했다. 처음 읽었을 땐 약간 지루했는데, 다시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담백한 문장과 세련된 소설 구성에 감탄하며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일관되게 애정하고 러시아 최고의 작가라 생각하는 도스토옙스키가 톨스토이에게 자리를 내 줄것 같은 나쁜 예감마저 들 정도로 좋았다.(일단 1권에서)
여기엔 여러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 삶을 살아간다. 소설 첫 문장의 ‘저마다 나름의 이유(p.13)"는 가정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며 나름의 선택으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지만 그것은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이 내린 판단일 뿐이다. 언뜻 안나 카레니나의 생의 결말이 불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선택은 행복을 위해서였다. 행복과 불행은 다양한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교차될 수밖에 없는 빛과 그림자와 같은 양면성이다.
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와 카레닌, 레닌과 카체리나(키티)의 두 축으로 진행된다. 물론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불륜)이 가장 주된 내용이지만 이 두 사람이 소설 전반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의 시작을 찰나적으로만 표현한다.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스치면서 서로를 본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라는 것에 구구절절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듯하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랑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서술되기 전, 안나의 오빠 ‘스테판 오블론스키’와 ‘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이 먼저 등장한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너무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스테판의 가정에서 먼저 시작된다. 자기 집의 프랑스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스테판은 아내 다리야(돌리)와 냉전중이다. 이 에피소드는 사건의 포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을 중재하기 위해 안나 카레니나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오게 되고 그것은 브론스키를 만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 하나는 여기에서 스테판과 레빈의 사랑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
스테판은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서른 네 살의 미남인 그는 벌써 다섯 아이와 죽은 두 아이를 낳은 서른 세 살의 아내 돌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바람피운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제 아름답지도 않고 쇠잔해진 돌리가 관대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남자이다.(소설 초반의 스테판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브론스키도 이런 유형에 속한다. 브론스키는 키티에게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유혹하는 짓(p.128)’을 한다.
반면 레빈은 사랑과 가정은 연결되고 하나인 것으로 생각하며, 절대 배반이란 있을 수 없고 서로에게 충실해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이다. 돌리의 동생 키티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한 레빈은 실의에 빠지고, 괴로운 상황을 벗어나고자 농민 운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키티를 사랑하며 그녀에게만 관심을 둔다. 맑고 선하며 빛나는 키티는 그에게 영원하며 끝까지 지켜져야 할 여자인 것이다.
얼핏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레빈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사랑관에는 차이가 많다. 레빈에게 사랑은 자신의 삶 자체이지만 카레닌의 사랑은 남에게 보여 지는 것에 불과하다. 카레닌은 사교계에서 자신의 가정이 완벽하게 보여 지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레닌에게 가정은 정치가로서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많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기차역에서 안나를 우연히 마주친 브론스키는 ‘한 번 더 그녀를 꼭 보아야겠다는 충동(p.137)‘을 가진다. 안나 역시 다정한 눈빛으로 브론스키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것으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기차에 치인 경비원의 사고와 스테판의 집에 잠깐 들른 브론스키를 보며 안나는 어떤 공포감과 불길함을 느낀다. 여지껏 평온했던 안나의 삶에 불쑥 들어 온 브론스키를 떨쳐버리려 그녀는 모스크바를 급히 떠나지만 곧바로 브론스키는 안나를 따라 페테르부르크로 온다.
안나 카레니나 1권에서의 압권은 어쩌면 처음일 수 있는, 운명적 사랑에 빠진 안나의 심리적 변화이다. 이 부분을 톨스토이는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 모범적이고 습관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 안나에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좇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p.221)'였다. 브론스키를 떠올리며 뜨거움을 느끼는 그녀는 이제 자신이 예전의 안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페테르부르크 역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본 순간 안나는 ‘아, 어쩜! 저이의 귀는 어떻게 저렇게 생긴 걸까?(p.229)'라고 생각하며 남편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 심장이 조이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그러한 감정은 오랫동안 느껴온 것이지만 이제야 그것이 고통스럽고 더 이상 남편에게 위선적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안나의 시선은 이제 카레닌이 아닌 브론스키로 향한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사랑의 시작은 안나를 솔직하게 만든다. 그녀의 전부였던 아들에게조차 다른 감정이 든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표적이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평소 모든 것이 완벽했던 안나를 시샘한 사교계 사람들은 이때다 여기며 덥석 미끼를 문다. 사교계 사람들 대부분은 보통 공공연히 불륜을 저지른다. 다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래 숨기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 숨길 수가 없다.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인식한 카레닌은 안나를 통해 처음으로 인생의 벽을 느낀다. 그는 예의와 법도를 언급하며 안나에게 경고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급기야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한다. 경마 대회에 출전한 브론스키가 말에서 떨어지자 그것을 구경하던 안나는 일어나 비명을 지른다. 그 일을 계기로 안나는 확실하게 카레닌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브론스키라고 못을 박는다. 키티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레빈은 시골로 돌아가 농장일에 몰두하고, 브론스키에 의해 실의에 빠진 키티는 온천으로 요양을 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으로 2부는 끝이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분명 불륜이지만 적어도 그들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아무 의심 없이 이러한 인식을 할 수 있는 건 분명 작가 톨스토이의 힘이다. 잔잔하고도 애잔하게,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강렬한 이 소설의 흐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2권이 기대된다.
[“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 내게는 당신이 삶의 전부라는 걸. 난 평온이란 걸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 사랑...., 그렇습니다. 난 당신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당신과 내가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평온 따윈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내 눈에는 정말과 불행, 아니면 행복, 그것도 커다란 행복의 가능성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 -p.305]

독서 동아리에서 항상 고민되는 건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는 것이다. 동아리 멤버들과 2026년에 읽어야 할 책을 정하다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로 했다. 1년에 한 번은 굵직한 고전을 읽고자 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재독이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읽고 싶었던 책이라 반가웠다. 마침 안나 카레니나 뮤지컬이 상연된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뮤지컬을 먼저 관람하기로 하고 얼리버드로 예매했다. 안나 역에 세 배우가 더블캐스팅 되었지만 아무래도 옥주현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를 관람하고 싶었다.
예매할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총 38회 공연 중 출연 횟수가 옥주현은 23~25회, 나머지 두 배우는 8회와 7회에 불과한 사실이었다.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똑같이 연습할 건데도 출연 횟수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나머지 배우는 정말 허탈할 것 같았다. 옥주현의 욕심에 실망했지만 이왕 예매를 했으니 이번에만 보고 다음에는 옥주현은 패스하기로 했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방대한 내용의 작품을 뮤지컬에 다 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나, 브론스키, 카레닌 VS 키티, 레빈의 두 관계만을 집중해 보여주었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계속 변화시켜 보여주는 무대 연출도 괜찮았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앙상블의 출연도 좋았다. 계속 어두운 분위기로 이어지는 뮤지컬을 보면서 안나는 불행해지더라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느꼈다.
옥주현 배우의 노래와 연기는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안나 카레니나에 걸맞는 카리스마도 보이지 않았다. 뮤지컬의 넘버는 거의 같은 분위기였다. 이 넘버를 살리기 위해서는 노래 실력이 좋아야한다. 옥배우의 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상당히 지루했다. 뮤지컬 말미에 패티 역의 한경미 소프라노가 나와 아리아를 부른다. 한경미 배우가 노래를 너무 잘 불러 옥주현 배우가 너무 묻혀버렸다.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은 뮤지컬을 상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배우들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국립 뮤지컬 전용극장이 새롭게 건설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