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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지금 현재의 내가 과거로 되돌아간다. 굳어지고 완고해진, 온전하지 못한 기억 속에서 성기고 희미해진 빛을 따라 움직인다. 기억의 숲에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오래된 빛’은 나를 왜곡되거나 잘못된, 또는 혼란스러운 길로 안내한다. 설령 확실하게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지나간 인생의 밝은 빛조차 완벽하게 재현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식으로 해석되고 비틀어진 그 기억들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두고 무슨 단어로 그 느낌들을 생생하고도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 ‘존 밴빌‘은 제목 그대로 <Ancient Light>를 따라 한 남자의 50년 전과 10년 전의 과거, 현재를 오가며 집요하게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준다. ’알렉산더 클리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한 그의 15세 때의 몇 달에 대해-‘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우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p.14)’-서술한다. 매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했지만, 하이픈으로 연결된 부연설명이 가득한 삽입구가 읽기를 방해했다. 마치 영어 독해를 할 때, 주어 찾기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기억의 파편 조각들을 짜 맞춰 연결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작가는 그런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거의 끝부분까지 힘들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가서야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를 했고, 결국 나에게 감동과 여운, 무수한 생각을 하게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0년 전, 15세의 소년 앨릭스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봄바람에 치마가 뒤집어져 팬티가 노출된 어떤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처음엔 그를 향해 ‘하늘에서 곧장 덮쳐 내려오는 듯’한 여신의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의 엄마 같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것이 앨릭스와 가장 친한 친구인 빌리 그레이의 엄마인 미시즈 그레이(실리아 그레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 빌리의 집에서, 거울 속에 자신의 나신을 비추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또 다른 거울을 통해 엿 본 그는 그녀를 향한 수줍지만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욕망하지만, 사실 그 대상이 늘 배경에 불과한, 무슨 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의 모습이기도 한 미시즈 그레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이 한 사춘기 소년의 성을 자극했고 그는 어떤 다른 여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테니스 클럽에서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미시즈 그레이는 소년을 차에 태우고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질문한다.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p.61)” 이 말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왜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들의 친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소설의 끝에 그 당시 미시즈 그레이의 사정이 조금 밝혀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나 도덕적 심판이 아니었다. 계속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드는 의문점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자의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한 번의 일탈로 거침없이 시작된 육욕의 향연이었는지, 그 일탈이 소년에게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미안함의 책임이었는지, 답답한 시골구석에 갇혀 사는 중년 여자의 몸부림이었는지.....결국 이 모든 것이 노년이 된 알렉산더의 회상이기에 그 역시 추측과 자신의 생각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알렉산더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10년 전 임신한 채 자살한 알렉산더의 딸 캐스로 인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자신과 아내 리디아의 현재의 모습. 또한 ’악셀 판더(문인, 비평가, 교사)‘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알렉산더와 그의 상대배우인 돈 데번포트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사원인 빌리 스트라이커의 인생에 대해서도 나이 든 알렉산더는 관심을 갖는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날 하루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각자 견디며 살아내야 한다. 늙어버린 알렉산더 역시 아픔과 회한을 가진 채 하루를 감당하지만 지나온 세월이 준 쓰라림을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순명으로 승화시킨다. 딸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밤새 광증에 시달린 아내 리디아를 진정시키고 힘들어 둘이 침대에 누웠을 때, 커튼 사이의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빛이 들어와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의 형태로 보이는 바깥세상의 이미지는 아름다웠다. 새벽빛에 비친 선명하게 뒤집힌 세상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 완벽하게 슬픈 것도, 온전히 기쁜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오래된 빛‘에는 몇 개의 단편 소설로 출간해도 좋을 풍성한 내용들이 서로 교차되며 서술된다. 매 페이지마다 단편 소설 하나가 들어있다고 느낄 정도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단어 하나마다에 들어있는 비유도 좋았다. 구절구절 멈추어, 작가 존 밴빌, 아니 소년 앨릭스 그리고 노년이 된 알렉산더와 얘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고 공감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 많은 아름다운 문장의 감상을 표현하기 어려워 책을 들고 카페에 간 날이 많았다.
산책길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햇빛에 완전히 노출된 사진보다 빛이 살짝 들어간 사진이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세상 모든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없듯, 노년에서 바라 본 과거는 ‘전체적인 난파 속에서 건져 낸 무작위적인 표류물(p.14)’일 뿐이다. 그것들로 고해성사를 하든, 미숙함에 대한 어리석음을 인정하든, 지나온 인생의 여정은 그 어떤 것이라도 슬프고 아름답다. 여전히 모호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삶의 전진적인 난파’에 부표가 되어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여러 우주가 있고 그것이 모두 함께 존재하며 모두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키티의 낙원의 평원과 마찬가지로, 이 무한한 층이 있고, 무한히 가지를 뻗는 현실 안 어딘가에서도 캐스는 죽지 않았고, 그애의 아이가 태어났고, 스미드리가일로프는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또 미시즈 그레이가 살아남았고,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젊고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듯이. 어떤 영원한 영역을 믿어야 할까.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나의 모든 죽은 자는 어차피 나에게 다 살아 있고 나에게 과거란 영원히 빛나는 현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다 살아 있지만 사라졌다. 이렇게 말들로 이루어진 연약한 내세에만 있을 뿐.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