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4 - 고국원왕, 사유와 무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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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천왕 14년 -

 마침내 낙랑이 완전히 고구려의 품으로 돌아온 후로 고구려는 무역의 활발로 문화가 융성해지고 세수가 고스란히 들어오는 풍요를 누린다.

 

미천왕으로 등극한 소금장수 을불 그에겐 두 아들이 있었으니 사유와 무다. 

정반대의 성격으로 모두들 뒤를 이을 왕의 재목으로 동생 무를 꼽았으나. 미천왕은 예상을 깨고 동맹제 때를 이용해 유약하고 섬세한 사유를 태자로 정한다. 

 

 이에 자신마저도 왕이 될 것이란 예감에 차 있던 무는 자신이 좋아하던 아달정효의 딸인 정효와의 결혼도 깨지게되고 정효는 부모들간의 상의로 정해진대로 태자비로 책봉이된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무예의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던 여노를 뿌리치고 궐을 나간후 소식이 끊긴다.

 

한편 선비족의 모용외는 자신이 한 때 사모했던 아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맘에도 없는 여인과의 하룻 밤 인연으로 낳은 아들 모용황을 자신의 책사 원중목걸이 데려오자 다른 아들과 같이 자식으로 인정하지만 자신이 젊었던 시절의 모습을 가지고 있던 아들 모용황은 잔인함의 극치를 보이는 무사로 생활한다.

 

 진의 책사이자 충신인 최비는 자신과 진의 황제를 죄여오는 선비족의 틈바구니에서 책략을 펴서 진의 옥새를 반으로 갈라 한쪽은 선비족에게, 다른 쪽은 스스로 고구려에 들어가 미천왕과 대면함으로써 서로 이간질을 이용한 진을 보호하려했지만 이마저도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연방세력들은 선비족의 계략에 따라서 흩어지게 되면서 뒤를 다시 도모한다.

 

 모용부의 고구려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하성 공방이 시작되지만 여노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서 성을 열지 않던 차에  이름없는 병사의 출현으로 그 뜻을 버리고 그 병사를 구하기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게된다.

 

 그 병사는 바로 무 왕자-

 

자신의 행동때문에 스승 여노가 죽자 다시 모용부의 목숨을 노리게된 무는 고구려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자취를 감추게되며 최비는 고구려의 국상 창조리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고구려를 살릴 편지 한 통을 받게되면서 모용외와 대적하고있는 후조의 석륵을 이용, 상황은 선비족과 후조의 반립으로 이어지게된다. (이후 10 년간 선비족과 후조의 싸움으로 고구려는 숨을 돌릴 수있게 된다. )

 

 무는 치밀한 계획아래 모용외의 침실에 들어가 그를 찌르게되고 여노의 복수를 하게되면서 상황은 선비족의 모용황이 아버지를 버리면서 최고 우두머리로 나서게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 자신의 출생엔 을불의 부인인 아영의 존재때문이란 분노와 사유의 유연한 사신으로서의 처신, 무의 출현등이 모두 복잡하게 얽힌 관계에서 일대 혈전을 벌인 전투는 미천왕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될 사유태자, 즉 고국원왕의 시대로 접어들게된다.

 

 폭군 봉상왕을 무혈로 몰아내고 덕있는 정치와 나라 밖으로 영토를 찾는 일에 일평생을 받쳐온 소금장수 을불의 시대는 이렇게 접어진다.

 

 야만인족을 스스로 고구려 품에 안음으로써 아달을 뛰어난 장수에 앉히고 그들 숙신과 동화되어가는 과정, 창조리,여노, 조불 같은 뛰어난 장수를 두고 결코 한 귀에만 기울이지 않았던 을불의 고구려를 다스린 정치 이념은 언제나 백성위주였단 사실이다.

 

 과감히 자신의 죽음을 끝까지 불사하며 생명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적에게 늘름한 모습을 보이려한 그의 정신은 뒤를 잇게될 사유에게 미친 영향이 대단히 컸을 것이란 짐작이 된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태자책봉에 관한 부분이다.

 부인인 아영마저도 첫 아들과는 달리 무에 대한 사랑과 기대감에 들떠서 정혼자를 미리 정해 둘 만큼 자신감에 차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빼 닮은 무를 제치고 사유를 정했을 때의 원칙이 사뭇 자신에게도 조차 엄격한 모습을 보인 군왕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들이기 전에 한 나라의 군주란 무엇인가?

 

군주가 되려면 과연 어떤 기량과 품성,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하는가에 대한 아비로서의 고뇌가 가득 들어있는 구절을 읽고있노라면 자신의 맘 속에도 이미 무가 어느정도  적임자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보단 넓은 의미의 군주로서 사유의 품성을 고려해 책봉한 대목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를 수있는 절대권력자라 할지라도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안위가 결정됨을 느끼게 해준다.

 

 무의 사라짐은 분명 아비로서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나 이미 선비족과 최비와의 관계, 여러정황을 생각해가며 집권자로서의 녹록치만은 않은 군주의 길을 솔선수범하여 보여준 을불의 인생의 행로는 여타 많은 생각을 준다.

 

 역대 고구려왕 중에서 힘든 삶을 살았던 고국원왕의 다음 일대기도 그래서 작가가 그려보는 고구려의 시각을 정리해보는데, 기대가 크게 만든다.

 

고구려 역사에 관한 시리즈 연작이라서 이미 3권을 읽은 후에 시간이 지나 출판이 된것이라 처음엔 인물등장에 생각을 좀 해봐야 떠오르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대사와 상황이 묘사, 전략적인 방어와 공격의 흐름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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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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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셀 - 93세,  해가 바뀌었으니 94세의 청년(?) 이다.

 

그는 1917년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왔고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  프랑스국민이 된 사람이다.

 

 그의 이력은 프랑스의 현대사와 같이한다.

 

전 레지스탕스 일원이었고,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 활약을  하다 내부 밀고자로 독일군에 붙잡혀 구사일생으로 그야말로 영화같은 한 편의 인생을 거듭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그러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인권선언문에 참여를 함으로써 오늘 날 우리 인류가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이 나오게된 것도 글래스고원에서 행한 연설을 들은 한 지방의 출판업자에 의해서였다.

 

그가 말하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에서 시작됬다고 한다.

 그의 연설을 읽고 있노라면 현재의 우리나라가 안고있는 여러가지 경제적인 상황, 청년실업, 빈곤한 자들의 한계에 부딫칠 수밖에 없는 여건등이 두루 겹쳐 떠오른다.

  그가 말하는 현재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렬의 예를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무관심에서 벗어나 분노를 표출하란 말이 심금을 울린다.

 

 민영화된 은행들은 한 해의 영업실적을 놓고 자신들의 영업치하에 힘을 쏟느라 서로 나눠먹기식 이익배당, 경영진의 고액인봉 액수에만 관심만 가질 뿐 실지 영업에 도움을 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떠한 감사의 행동 자체를 하지 않음을 비판한다.

 바로 얼마 전 모 신문 사설에서 나온 논설의 구절의 내용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내용을 닮고 있을까? 란  점에서 바로 이런 점이 온 세계의 대두되고 있는 자유경제주의의 함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한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서 가차없는 비판을 내세운다.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금융시장에 휘둘려서도 안되며,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위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논의가 분분한 복지국가의 이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퇴직연금제도, 언론매체들이 일부 부자들에 장악된 현 사회를 고발한다.

 

 이런 경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노옹의 힘찬 발언은 그래서 잠자고 있는 무관심의 신경을 절로 한 발짝씩 내딛게하는 힘이 절대적이다.

 

 분노하란 말은 누구에게나 좋지않은 감정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하고 있는 분노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갖고있어야 할 기본적인 자신의 의사표현과 사회에서 정의되고 있는 옳지못한 일에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아는 행동이 필요하단 말로 쓰인다.

 투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함으로서 국민의 기본 소양인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하며, 무관심의 일환인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결국 참여란 기회를 영영 잃어버림을 경고한다.

 

 최극빈층과 최부유층간의 간극, 유대인이면서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부분은 비폭력만이 가장 우선적인 방법임을, 인권의 권리에 대해서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21세기의 첫 10년을 퇴보의 시각으로 보고, 9.11테러, 이라크 침공에 대한 현 역사의 흐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함을, 자신은 그대로 분노를 생각하며 살아온 이력답게 모든 분야에 젊은이들의 분노를 촉구하고 있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저자와의 이멜 인터뷰가  실려있어 실재 이 책을 읽는데 그의 살아온 인생 내력을 좀 더 이해할 수있고 그가 말미에 주장한 잘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저자는 말하고 있다.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  현재도 진행중인 누구나 행복을 누리며 살 수있는 복지국가의 실현에 있어서 많은 생각과 실천의 방안을 두루두루 하게 하는 책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다고 말 할 수없는 진중한 삶에 대한 철학이 묻어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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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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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간간이, 직업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난 청탁에서 뒤로 앉아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고 싶을 때 써 내려간 글 7편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온 이 소설의 제목은 '모르는 여인들'이다.

 

단편이기에 각기 다른 소재의 글에도 불구하고 신경숙 님의 글 곳곳에 따스함이 번진다.

 

1. 세상 끝의 신발

 

 첫 문장부터 신발얘기부터 시작하련다는 말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6.25때  자신의 아버지 목숨을 구한 낙천 아저씨의 신발 사이즈와 아버지의 사이즈가 같은 것으로 시작해 평생을 한 형제처럼 지내다 아저씨의 부고를 듣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그 아저씨의 딸인 순옥언니를 직장에 가지 못하게 하려한 나는 언니의 신발을 숨기게되고 세월이 흘러서 순옥언니의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야기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상황,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딸의 손을 놓치 않으려했던 낙천 아저씨의 생활상이 담담이 그려지면서 자신의 신발을 또한 순옥언니의 딸이 거두어 감으로써 서로 연관이 되어지는 과거, 현재의 일이 주마등처럼 그려진다.

 

2. 화분이 있는 마당

 

 사귄 애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선언을 당한 인터뷰어인 나는 언어장애와 식이장애를 겪는다.

그런 와중에 동료의 이사를 자신의 집 근처에서 하는 것을 도와주게되고 그 집 마당 안에 늘어서있던 나무며 화분을  출장간 동료대신 돌봐주는 사이 묘령의 여인을 만나게되고 그 여인으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는 새 병이 고쳐지는 느낌을 받지만 정작 그 여인의 존재 자체는 아예 없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된다.

 

3. 그가 지금 풀숲에서

 

여동생 태희, 아내, 엄마는 죽은지 3년이 흘러서 자동차 운전 전복사고로 나는 풀숲에 누워있는 채 아내의 친정이 있는 거제도로 가던 중 회상에 잠긴다.

 

왜계인손 증후군을 앓고있는 아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정도로 남편의 뺨을 때리고 어이없는 돌출행동을 견딜 수없어한 , 이혼을 요구한 아내를 데리러 가는 중에 그는 과거의 아내와의 생활, 어마와의 관계를 생각해내면서 동창이 얘기했듯이 아내가 자신에게 바라는 사항이 말로 표현이 되는 대신 손이 그 뜻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하는 말을 생각해내고 차후에 자신이 좀 더 노력을 해야겠단 생각을 하지만 이미 멀리 야생짐승의 소릴 듣는다.

 

4. 어두워진 후에

 

자살 살해용의자로 몰린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어느 지방의 절의 일주문 앞에서 매표소 여직원에게 무료입장과 하룻 밤 투숙을 말하게되는 상황이 되지만 여 직원은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집에 데려가 자신이 봉양하고있는 아픈 어머니, 남매 동생들 건사하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신발이 닳아있음을, 다시 집에 갈 수있는 용기를 가지면서 그녀에게 고맙단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왔음을 알게된다.

 

5. 성문 앞 보리수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전에 간 S는 그 곳에서 재혼해 살고 있는 동창 경을 만나고 같이 투숙을 하게된다.

예전에 같이 술을 마시던 보리수란 곳의 가게에 들르게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호텔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경은 자신의 첫 결혼생활의 실패한 이유가 그 자신의 젊었던 시절의 짧았던 생각의 후회, 소식이 끊긴 친구 수미에 대한 안부를 묻다가 실은 진정으로 이미 그녀가  이 세상사람이 아님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서로가 차마 서로에게 진실로 그 얘기를 하지 못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헤어진다.

 S의 손엔 언젠가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뿌릴 정착하고 살게된다면 그 때 같이 키워볼 수있는 백합구근의 꽃 뿌리를 받아든 S가 있다.

 

6. 숨어있는 눈

 

 길가의 고양이를 키우던 A가 가출한 후 그녀의 재혼한 남편으로부터 그녀의 소식을 묻는 것에 내가 그녀로부터 회색고양이를 거두어들인 얘기, 그녀가 고양이를 거두어들이게된 경위들을 들려주는 얘기다.

 

7. 모르는 여인들

 내가 아는 한 아주머니는 마라톤을 하러 일본에 간 사람이다.

 그녀는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을 걷기 시작하다 어느 날 비가 내리자 뛰기시작하고 그런 것이 하프 마라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마라톤 우먼이 된 사연을 말한다.

 

 다른 여인은 남편이 다리 수술로 인해서 병원에서 번갈아가며 간호 하던 중 첫 애인이었던, 채의 만나자는 편지를 받고 고민에 빠진다.

결국 약속장소에 나간 여인은 채가 건넨 한 권의 공책 속에 그의 부인과 도우미 아주머니간에 주고 받은 살림에 필요한 요구사항의 짧은 메모가 점차 자신들의 속내 얘기로 번지게되는 편지를 읽게되고 이어서 채의 부인이 자신의 병으로 인해서 가족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않아 자취를 감춘 사연을 알게된다.

 

 채는 묻는다.

지금의 부인처럼 그 때의 너도 왜 나를 피했느냐고?

여인은 그가 몰랐을거라고 살아왔던 그 이후의 삶이 실은 채가 자신이 그를 버리고 군중 속으로 도망쳐가는 모습을 봤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되고, 그 이유는 그의 군화 신발 때문임을 알게된다.

 

모두 각기 다른 구성이 이야기들이지만 누구나 느낄 수있고 공감 할수 있는 이야기들이 수록이 되어있다.

 

낙천 아저씨와 아버지의 인생고락의 의미은 인생의 잔잔함 속에 스미는 고독과 이별을,  자신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신비의 여인이 차려준 밥상을 대하고 병을 고친 이야기는 마법적이지만 어떻게보면 인간의 내면에 깃든 현대인들의 고독한 심상을 다독여주면서 치유해나가는 따뜻함이 깃들어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에게 선뜻 방을 내주고 밥을 차려준 매표소 여직원의 행동은 기실 어떤 자비행위내지 종교적인 신비감마저 주지만 그 여인의 집에 있는 우물을 봄으로써 그토록 우물을 만들고자 했던 죽은엄마의 생각으로 다시금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인 한 남자의 하룻밤 이야기, 고양이를 주제로 A와 나의 관계, 재혼남에 대한 관계,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저 제목 그 자체로 쓰인 모르는여인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을 수있고 듣게되는 우리네 삶의 정취를 그려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느끼는 인생에 대한 철학, 이제는 유행노래를 제대로 따라부르지 못한단 사실로서 내가 즐긴 시대의 노래가 이젠 과거의 노래로 되어버리는 현실성을 드러낸 글귀는 자뭇 심성을 울리고도 남는다.

 

 가장 잊지못할 구절들은 바로 신경숙님만의 밥상표현이다.

 

 구수한 된장에 아욱을 넣어서 끊여낸 국, 깻잎, 멸치, 갖은 반찬들의 묘사는 평소에 보는 반찬이라도 글 속에 표현대로 따르자면 그저 군침이 절로돌게하는 매력의 글 솜씨가 두드러져보인다.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세계속엔 분명 알게모르게 맛깔스런 음식의 향연이 있고 우리 주위엔 연결된 사람들이 있으며,  그럼으로해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총 7편의 단편이지만 같이 연계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내용이 연결이 되어있고 그것은  동떨어진 주제를 가진 글이 전혀 어색함이 없단 느낌 하나만으로도 바로 신경숙 님표의 소설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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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레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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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들이 다니는 성 세례 요한 성당에서 이 곳의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는 칠레출신의 괴츠가 비명과 함께 살해된다.

 

 마침 그 곳엔 퇴직한 강력범죄수사대 출신인 리오넬 카스단이 다니고 있던 교회라 그는 이 수사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흔한 범죄에 사용된 흔적조차 없는 도구의 방향,  단지 비명, 240mm의 신발 사이즈 자국, 흔한 나뭇가지만이 유일한 단서로 포착될 뿐 이렇다 할 증거 확보에 애를 먹는다.

 

동료인 법위관으로부터 범인은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있단 말과 함께 귀의 고막을 뚫고 고통을 줌으로서 죽게 했단 말을 들은 카스단은 괴츠의 집을 방문하게되고 그가 음반 작업에도 관여했단 사실을 알게된다.

괴츠가 작성한 소년 레지스 마주아예가 부른 성가곡을 들음으로서 막연히 이 노래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한 카스단은 괴츠의 동성애 애인인 나세르로부터 그가 일명 남미에서 행해졌던 콘도르 작전과 관계가 있음을 듣는다.

 

한편 미성년자 보호수사대 소속인 세드릭볼로킨은 자신의 마약 중독을 다스리기 위해 재활 센터에 입소한 가운데 이 사건을 접하게되고 카스단에게 이 사건의 범인은 아이란 사실을 말한다.

 

같이 수사를 동조하게된 두 사람은 괴츠가 살해된 성당말고도 여러군데의 성당과 다른 가정의 아이들에게 성가 수업을 했단 사실을 접하고 수사를 하는 가운데 2 년전에 한 어린아이가 실종된 사건을 발견, 이후 나세르의 참혹한 시신발견, 다른 성당의 신부가 살해되는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모두 죽은 시신을 두고서 피로 쓴 글씨엔 성서의 구절이 담겨있고 이를 본 세드릭은 구약성서의 속죄의 기도, 용서를 비는 일명 미세레레에 나오는 구절임을 알려준다.

 

이후 계속된 괴츠의 행적은 칠레 대사관으로부터 페테르 한센이란 사람을 소개받고 찾아간 곳에서 칠레 당시의 피노체트 정권아래서 행해진 고문의 실체 얘기를 듣게되고 괴츠가 베를린 출신 하트만이란 사람의 수하였단 사실, 피노체트 정권이 사회주의 정권의 아옌데의 존재들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프랑스 출신 고문기술을 가진 3명의 장군들을 추천받은 사실을 알게된다.

 

인맥을 통해서 3명의 장군들을 찾아가 면담한 결과 하트만이 칠레에서 공통체 개념의 아순시온이란 것을 운영하다 프랑스로 모종의 협약으로 옮긴사실, 프랑스 내에서도 국가의 한 독립적인 형태를 띤 작은 왕국을 건설했단 사실을 알게된다.

 이런 가운데 괴츠가 녹음했던 미세레레 성악파트에서 노래했던 레지스 마주예르가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되면서 더욱 그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서 그들이 있다는 치외법권의 영토인 지역으로 세드릭은 카스단을 남겨두고 침투하게 된다.

 

한편 카스단 또한 세드릭의 메모를 받고 다시 그 현장에 침투함으로서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프랑스 정부에게 일망타진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어린 소년들을 구출하게된다.

 

제목 미세레레란 뜻이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이란다.

 처음에 이 작가을 알게 된 것은 크림슨 리버 영화를 본 이후에 그의 글 세계에 빠져버렸다.

프랑스적이지 않은 영화가  주인공이 프랑스인이 아니었더라면 미국영화라고 생각될 만큼 소재면이나 영상자체가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

 

이 책 또한 그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다른 책의 연장선을 보인다.

 

악의 근원은 진정 무엇인가?

 

단순한 성가대 지휘자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그 사건을 헤쳐나가면서 걷잡을 수없는 대 역사의 흐름을 타게되는 여정이 일말의 쉼없이 독자들을 몰아친다.

 

흔히 말하는 강대국들이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식민지의 주도를 놓지않으려 행한 이 책에선 프랑스가 행한 알제리 내전의 내막에서 상처를 받은 카스단이란 인물이 겪은, 아니 에티엔쥐바란 자신의 실명을 버리고 그 현장에서 죽은 카스단이란 아르메니아인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던 제 2의 카스단이 겪고있는 트라우마, 괴츠가 목소리가 아름다운 미성의 소년을 유괴해 하트만이 운영했던 아순시온에 넘겼던 것처럼 불운한 고아 아닌 고아였던 세드릭의 잊혀진 망각속에 자신도 모르게 미성년들 유괴범에 대해선 불의를 가리지않고 행동하게된 트라우마들이 모두 이 소설속에 작가가 드러내보고자 했던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하고 세뇌된 명령속에 잔학한 행동을 할 수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타의 인류가 발명해내는 치명적인 무기가 아닌 천상의 목소릴 타고난 아이들을 발굴, 그들에게 갖은 전기고문과 각기 다른 형태의 고문을 가함으로서 내질를 수있는 고음의 한계를 발굴해냄으로서 그것을 무기삼아 상대를 죽이고 세상을 평정하고자했던 하트만 부자의 생각은 어찌보면 터무니 없는 소설속의 상상에서나 이뤄질 수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나 인간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비춰보면 작가의 말처럼 어느정도의 실험의 결과를 토대로 이뤄낸 글이기에 수긍이 가게 하기도 한다.

 

서양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종교상의 구원문제에서부터 그것을 모태로 자신의 그릇된 망상을 빚어가는 잔인한 인간의 근성, 참혹할 정도의 고문 묘사장면등은 실지 프랑스 시내을 같이 돌아다니면서 소설속의 그들과 같이 뛰고 호흡한다는 일심동체의 느낌이 들게하며, 불쌍히 여겨달란 그 미세레레의 성가곡을 들어보고 싶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폭 넓은 클래식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카스단과 세드릭의 부자간이 아닌 점차 부자간처럼 느껴가는 동료애, 두 사람의 트라우마를 서로 허물면서 비로소 세상에 다시 한 번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가는 과정, 커다란 정부의 비밀스런 큰 우산아래 결국은 그들이 빅브라더의 보이지 않는 꼭두각시 놀음에 이용이 된다는 설정도 소설이라고는 하나 국가가 추구하는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냐, 아님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냐하는 두 갈래의 생각도 해 보게하는 책이다.

 

더불어서 끝에 번역가(이세욱... 이 분의 책이라면 두 말할것 없이 집어들게된다. 그 만큼 많은 수의 작품들을 접하게되고 일단 책을 집어들 때 번역이 누군가에 따라서 선택을 하게되는 나의 취향도 어느 정도 부합이 된다. ) 와 작가와의 대담은 이 책을 읽고나서도,  읽기 전에도 한 번 들여다 보게되는 이 소설의 흐름과 작가의 생각을 더욱 알기쉬운 보너스가 들어있어서 즐겁다.

 

다만 한 가지 궁금증이 인다.

 

미세레레... 철자를 보니 불어를 발음하는 규칙에 의하면 s 발음이 z발음으로 나야되는데, 책의 제목은"세"다. 이것이 라틴어 고유의 발음으로 불리어서 그대로 프랑스에서도 적용이 되어 불리게 된 것인지, 한국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냥 "세"라고 붙인 것인지, 불어 발음에서도 예외의 발음이 더러 있는지라 "세"라고 불리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

 

다른 분이 알려주셨다.

라틴어 고유의 발음으로 부른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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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사십 대의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인 파스칼린은 결혼 생활 15년의 종지부를 찍고 지금은 전 남편이 된 프레데릭과 헤어져 홀로서기에 필요한 집을 장만했다.

 

정말 한 순간에 맘에 쏙 드는 집이었다.

회사 동료인 엘리자베트가 도와주는 가운데 이상하게도 오한, 더부룩함,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지만 새 집에 적응이 안되려니 하고 첫 밤을 맞는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으로부터 그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1992년 안나라는 여인이 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6명의 여자가 같은 연쇄살인범에게 강간에 이은 살해를 당했단 사실을 알고 경악을 하게된다.

 

이후부터 컴에서 당시의 자료을 추적해나가면서 그녀들이 죽음을 맞이한 장소를 차례대로 찾아가는 순례를 하게되고 이는 친정엄마로부터 어릴 적 그녀 자신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고통을 호소한 경험이 있단 말을 듣게된다.

 

그녀 자신은 이미 자신의 딸이 한 송이의 꽃으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어느 날 친정엄마과 영화를 보고 집에 들른 그 순간 남편이 봐 주기로했던 아이가 돌연사했단 사실과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자신의 자식을 보는 슬픔을 가진 여자였다.

 

 그 후 남편이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봤단 사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원망으로 변하게되고 이는 서로간의 불신, 거짓말하기,외도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파국에 이르게되고 프레데릭은 미모의 여인과 만남을 하면서 이미 그녀의 뱃속엔 새 생명인 여아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된다.

 

사건의 피해자인 7명의 여인들이 모두 자신의 딸이 살아있다면 비슷한 또래일 것이란 생각부터 시작해 자신이 그려보는 딸의 미래, 엄마란 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한 채 이별을 맞아야했던 자신의 슬픔, 연쇄살인범이 탈옥을 시도하다 다시 독방에 수감됬단 사실을 방송에서 접하면서 이미 자신의 딸을 그에게서 잃은 한 엄마의 절규에 찬 목소릴 듣게 되면서 파스칼린은 정작 죄를 지은 연쇄살인범도 감옥에 갇혀있는데, 사랑하는 둘 만의 결실인 자식을 앞세운 책임이 있는 프레데릭이란 전 남편이란 자는 전원의 주택에서 제 2의 부인을 맞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준비하고 있단 생각에 울분을 감출 수가 없음을 느끼게된다.

 

공간이 주는 특별함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웬지 처음 장소에 들어선 순간 그것이 주는 익숙함 내지는 서투름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이 소설도 그 연장선에서 시작이 된다고 볼 수가있다.

 자식을 잃고서 삶에 지친 부부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파스칼린이란 여인은 자신이 새로 입주한 집에서 느끼는 벽이 주는 어떠한 괴기한 느낌으로부터 출발해서 오로지 상상속의 피해를 입은 7명의 여인들의 삶을 쫓고 연쇄살인범의 성장과정을 추적해가는 집요함을 보인다.

 

읽다보면 편집증적인 증세를 보이는 가운데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그의 체취를 그리워하는 ,아직은 확실한 홀로서기준비가 미흡한 면을 보이는 연약한 여인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죽은 자식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여정은 그녀 자신이 아직도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고 있지않았단 안타까움과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생각하면서 함께 겪을 수있는 여러가지 생활의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에서 뭐라 말 할수없는 위로의 심정을 건네고 싶어진다.

 

왜 굳이 새로 이사온 집을 나왔으면 됬지 죽은 여인들의 사고현장에 가서 흰 장미를 건네놓고 오는 행위를 반복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운 행동은 결국 그것이 그녀 자신의 깊이 내재된 자식 잃은 엄마로서의 공통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단 점, 그러는 사이 죄의 무게는 다르지만 연쇄살인범의 정당한 처벌에 비해 버젖이 태어날 여아를 기다리고 있는 행복한 모습을 짓고있었던 프레데릭의 모습을 용서치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극적인 행동을 보여주고있진 않지만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스릴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을 하고 엘리자베트의 차를 타고 내린 프레데릭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면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작가는 그녀가 어떤 행동을 했단 결말을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이 소설의 모태가 되서 나온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의 흐름속엔 딸을 잃은 엄마들의 고통과 유태인들을 강제 수용했던 벨라통가의 사건들을 덧붙임으로서 긴박한 흐름의 긴장을 놓치지 않는 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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