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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원작소설 ㅣ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원작소설, 이번에 이 개봉 소식 때문인지 새롭게 개정판이 출간됐다. (책 표지는 구판표지)
23년간 제지회사에서 성실하게 자신이 맡아온 일로 근무해 온 버크 데보레-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일명 통합이란 이름 아래 합쳐지면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실업수당을 받으며 꾸준히 재취업을 알아보는 51세의 가장이다.
그러나 구직 활동을 하면서 쉽게 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점점 어려워지고 실업수당마저 끊기게 된 가정형편은 아내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나서게 되고 두 아이의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선 필히 직장을 얻어야만 하는 그의 심정은 점차 절망과 분노에 다다른다.
이에 잡지에 가상으로 만들어낸 회사에 자신과 같은 경력의 구직자를 뽑는다는 가짜 구인광고를 내고 우편함에는 그의 의도대로 장기 실직자들의 이력서가 쌓인다.
이들 중 자신의 이력서가 같은 곳으로 모일 때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있다면 그만큼 자신에겐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이들을 추려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오래전 아버지가 지녔던 총을 지니고 아내에겐 거짓말로 면접 보러 간다는 구실로 죽일 대상자의 주변을 맴도는 그, 하나둘씩 그의 의도대로 범행을 저지르면서 그는 점차 자신도 모르는 새 살인에 대한 정당화를 인정하는 태도가 된다.
추리 스릴러 성격으로 보면 살인범행 동기가 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벌이는 주인공의 행동 패턴들이 일단 구성적으로 잘 이뤄진 부분에서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출간 시기상 IMF시대란 흐름을 배경으로 두고 있기에 남다른 생각할 거리가 많은 내용을 지닌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 한순간 가장의 실업으로 이어지면서 아내와의 소통, 자식들의 교육차원에서 서포트해 줄 여건이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아들의 일탈, 여기에 한때는 같은 직종의 동료란 인식에서 점차 나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는 이들을 찾아가 살인행위를 벌이는 일들의 모습들은 비단 미국만의 모습이 아니란 느낌이 들만큼 잘 그려진다.
-그들이 앗아 간 건 내 인생입니다. 내가 아니고요. 그들은 내게서 융자를 갚을 능력, 아이들을 돌볼 능력,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여유를 앗아 갔습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입니다. 직장은 내가 아니라고요, 퀸란 씨. 지난 5개월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한때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 온 동료들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해고된 수백 명의 직원 말이죠. 우린 항상 그 신뢰를 앞세워 함께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 적이 됐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카운슬러들은 절대 이런 얘길 하지 않죠. 우리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p. 252 ~ 253

베이비 부머 세대가 겪는 이러한 일들 근간에는 사무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한 육체 노동자는 물론 버크처럼 중간자 사무직에 종사하는 이들을 수용할 필요성이 점차 없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해고란 이름으로 이어질 때 인간의 이기심과 본능적으로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식의 표출이 버크란 인물을 통해 어떻게 흐르는지를 보여준다.
출간시기를 생각하면서 읽어도 여전히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에서 오는 한계, 여기에 중산층 가정이 겪는 부부의 갈등과 불안한 기류들, 회사 입장에서 인간이 할 일을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이윤확장이란 이름으로 해고를 시행하는 변화추이를 작가는 무리 없이 잘 그려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는 인간과 자동화 시스템의 조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주인공이 행한 일들은 분명 사회지탄과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만 하지만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왜 버크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게 되는지, 저자의 뛰어난 글 능력에 독자들이 빨려 들어간 결과로써 이렇게 응원해 보는 소설도 오랜만이다.
날 선 비판으로 풍자적 요소와 긴장미 높은 상황 속에서도 아이러니가 속출하는 극적흐름들이 흡입력 있게 다가온 소설로 박찬욱 감독이 처음 제목을 '모가지'로 생각했다는 말에서 작품과 찰떡이란 생각이 들었다.(실제 제목은 바뀌었지만...)
원작을 토대로 감독이 그리는 영상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다뤄질지, 비교해 보는 것도 기대된다. (액스’는 직장에서 해고될 때 ‘도끼질당했다’고 하는 영어 표현에서 나온 제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