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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스테판 에셀 - 93세, 해가 바뀌었으니 94세의 청년(?) 이다.
그는 1917년 베를린에서 태어나서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왔고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 프랑스국민이 된 사람이다.
그의 이력은 프랑스의 현대사와 같이한다.
전 레지스탕스 일원이었고,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 활약을 하다 내부 밀고자로 독일군에 붙잡혀 구사일생으로 그야말로 영화같은 한 편의 인생을 거듭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그러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인권선언문에 참여를 함으로써 오늘 날 우리 인류가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이 나오게된 것도 글래스고원에서 행한 연설을 들은 한 지방의 출판업자에 의해서였다.
그가 말하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에서 시작됬다고 한다.
그의 연설을 읽고 있노라면 현재의 우리나라가 안고있는 여러가지 경제적인 상황, 청년실업, 빈곤한 자들의 한계에 부딫칠 수밖에 없는 여건등이 두루 겹쳐 떠오른다.
그가 말하는 현재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렬의 예를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무관심에서 벗어나 분노를 표출하란 말이 심금을 울린다.
민영화된 은행들은 한 해의 영업실적을 놓고 자신들의 영업치하에 힘을 쏟느라 서로 나눠먹기식 이익배당, 경영진의 고액인봉 액수에만 관심만 가질 뿐 실지 영업에 도움을 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떠한 감사의 행동 자체를 하지 않음을 비판한다.
바로 얼마 전 모 신문 사설에서 나온 논설의 구절의 내용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내용을 닮고 있을까? 란 점에서 바로 이런 점이 온 세계의 대두되고 있는 자유경제주의의 함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한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서 가차없는 비판을 내세운다.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금융시장에 휘둘려서도 안되며,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위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논의가 분분한 복지국가의 이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퇴직연금제도, 언론매체들이 일부 부자들에 장악된 현 사회를 고발한다.
이런 경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노옹의 힘찬 발언은 그래서 잠자고 있는 무관심의 신경을 절로 한 발짝씩 내딛게하는 힘이 절대적이다.
분노하란 말은 누구에게나 좋지않은 감정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하고 있는 분노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갖고있어야 할 기본적인 자신의 의사표현과 사회에서 정의되고 있는 옳지못한 일에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아는 행동이 필요하단 말로 쓰인다.
투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함으로서 국민의 기본 소양인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하며, 무관심의 일환인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결국 참여란 기회를 영영 잃어버림을 경고한다.
최극빈층과 최부유층간의 간극, 유대인이면서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부분은 비폭력만이 가장 우선적인 방법임을, 인권의 권리에 대해서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21세기의 첫 10년을 퇴보의 시각으로 보고, 9.11테러, 이라크 침공에 대한 현 역사의 흐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함을, 자신은 그대로 분노를 생각하며 살아온 이력답게 모든 분야에 젊은이들의 분노를 촉구하고 있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저자와의 이멜 인터뷰가 실려있어 실재 이 책을 읽는데 그의 살아온 인생 내력을 좀 더 이해할 수있고 그가 말미에 주장한 잘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저자는 말하고 있다.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 현재도 진행중인 누구나 행복을 누리며 살 수있는 복지국가의 실현에 있어서 많은 생각과 실천의 방안을 두루두루 하게 하는 책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다고 말 할 수없는 진중한 삶에 대한 철학이 묻어나는 책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