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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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부커상 수상작. 흑인 여성 최초의 부커상 수상이자 마거릿 애트우드와의 공동수상이라는 타이틀,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 목록에 올라있을 때부터 관심을 두던 작품이었다.

 

 


첫 등장인물인 앰마-

 

그녀가 쓴 희곡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첫 공연이 내셔널 시어터에서 열리는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녀를 둘러싼 혈연관계, 친구, 그 친구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앰마는 순수혈통 영국인이 아니다.

오십 대의 여자, 아니 정확히는 레즈비언이다.

가나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기자 출신 아버지가 영국으로 도망치면서 엄마와 만나 결혼해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영국인이다.


일찍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같은 레즈비언인 도미니크와 함께 연극극단을 만들게 되는데 부시 위민(bush women)이란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도미니크가 미국인 레즈비언 응징가를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그녀는 프리랜서로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그녀의 딸 야즈는 게이 커플인 롤런드 박사의 정자를 기증받아 태어난 아이다.

부모 사이를 오고 가면서 성장한 그녀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자신의 진로와 자신의 성장배경을 통해 미래에  대한 걱정을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대학생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여기엔 야즈 외에도 이슬람을 믿는 친구, 잘난 아버지를 둔 덕에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친구, 다양한 이야기들이 또한 엮인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간 도미니크는 같은 레즈비언들이 사는 공동체에 들어가 살지만 모든 일에 편집증으로 자신을 가두는 응징가로 인해 스스로의 자각과 기대치를 넘어선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나가다 탈출에 성공, 제2의 인생을 찾는 노력을 한다.


캐럴-

고국에서의 엘리트로 인정받은 아버지와 엄마였지만 이민 온 영국에서의 삶은 운전기사와 청소부로 삶을 이어나가는 부모 밑에서 13살 집단 윤간을 당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유명 은행에 취업, 백인 남성과 결혼한다.

 

이들 외에도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순수 영국인이 아닌 부모세대나 그 훨씬 이전의 세대부터 거슬러 올라간 조상들이 백인들과 연관되어 있거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처음 등장하는 앰스의 커밍아웃인 레즈비언의 삶을 필두로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의 삶은 과거의 할머니, 엄마 세대를 거쳐 자식으로부터 한물간 구세대 인식으로 여겨지는 시간의 흐름들이 서로 연관성을 보이면서 풀어나간다.

 


영국 안의 영국인이되 같은 백인인 영국인으로부터 차별 어린 시선을 받으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성장의 기억들은 비단 이들 여성에 한해서만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이민세대들의 아픔들이 함께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았다는 것은 인종의 색깔을 넘어선 차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물음, 더 나아가서 부모들이 힘들어도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던(캐럴의 엄마 버미) 여인의 삶이 있다는 사실이 이민 1.5세대에 해당되는 캐럴의 인식과 대비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이런 부모의 바람대로 같은 혈통인 아프리카인과의 결혼을 거부한 채 사랑하는 사람인 백인 남성과 결혼한 캐럴의 경우 자신의 피부 색깔과 어려운 환경을 탈피하고자 기를 쓰고 공부에 매진한, 그러면서도 아픈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기성세대와는 다른 또 다른 인생관을 보인다.


책의 첫 흐름인 앰마의 레즈비언의 삶은 기존의 사회에서 인식되는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에 반하는 모습과 사회 인식에 반하는 삶, 규정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의 기조에 반발하는 모습들은 그녀의 친구인 셜리와는 우정을 이어나가되 셜리가 생각하는 앰스의 레즈비언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임으로써 같은 사회 안에서의 우정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셜리 또한 같은 피부색을 지녔지만 학교 선생님으로서 살아가는 모습 속에 중산층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은 앰스와는 다른 생활의 이면을 보이는 여성으로 그려지며 교육이란 것을 통해 그녀 자신의 성공 성취도와 그럼에도 여전히 불운한 환경으로 인해 그곳을 타파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처벌들을 통해 고민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셜리의 엄마, 윈섬은 읽으면서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두 손녀까지 본 할머니가 사위와의 불륜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것이 사위가 딸의 곁을 떠나는 것보단 낫다는 자신 스스로의 핑계 내지는 사위가 먼저 자신과의 사이를 통해 욕구 해소를 발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할머니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의 사랑의 또 다른  행동을 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한 인물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저자는 성 정체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변화와 여성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모습들을 그리면서 메건이 모건이 되는 과정, 레즈비언이 아닌 좀 더 확장된 성의 구분을 드러내는 젠더 확정, 젠더 프리를 통해 또 다른 그들만의 삶 모습, 인종 간의 차별은 물론 남녀 차별, 같은 젠더 안에서도 차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모건의 할머니 해티의 숨겨진 아픈 자식의 비밀, 그녀의 엄마 그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 그녀의 자식이 만나러 오는 장면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2명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린 그들만의 사연은 여성이란 이름으로 구분된 성에 대한 의미, 여성, 남성이란 이름으로 구분 짓고 그 안에서 사회의 인식대로 살아가는 통념적인 의미, 그에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성 정체성을 통한 사회의 차별을 견디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장대한 서사로 그려냈다.

 

어린 시절 소녀로서의 삶, 성장한 뒤의 여자로서 불리는 시기의 삶, 여기에 그녀들과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 같은 여성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 비 혈연이지만 가족이란 개념으로 맺어진 관계, 퍼넬러피의 경우를 통해 그 자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 또한 흑인의 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저자의 글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바라보는 차별 섞인 시선과 고정관념들, 야즈의 친구 와리스가 한 말은 현재의 우리들 모습 속에 감춰진 부끄러움을 드러낸 대목이 아닌가 싶다.


-

모슬렘 한 명이 총기 난사를 하거나 폭탄을 터뜨려 사람을 죽이면 그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지만, 백인 한 명이 똑같은 일을 하면 그는 미친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흑인 남성들은 안전한가?


셜리의 오빠들이 겪고 있는 생활 속에서의 행동 다짐은 그 또한 다르지 않다.

 


-셜리는 오빠들 역시 어릴 때부터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해 오래전부터 오빠들 편에서 분노를 느꼈다.

모든 흑인 남자는 이런 일에 대처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모든 흑인 남자는 거칠어져야 했다

경찰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구타하고도 자체 조사를 받거나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마치 지금의 미국의 어떤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은  운문 형식이라는 것을 빌려 내용 전체를 마치 긴 시처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긴 문장의 호흡을 통해 이야기의 끊임없는 궁금증 유발을 유도하게 만들기도 하는 독특한 장치를 이용해   읽은 후에도 여전히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는 작품 전체를 통해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 피부 색깔, 국적, 혈연도 아닌 인간 그 자체의 본모습인 존재의 가치를 그려낸 것이란 생각에 공감을 느끼게 한다.

 


앰마를 통해 저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모습도 보이고, 각기 개성이 뚜렷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진지한 토론을 해보게 만드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이 작품이 왜 그토록 많은 찬사를 받았는지에 대한 문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 가족에 속한 자매, 여자 형제, 언니 동생, 자매 같은 사이, 여성, 우먼(woman), 위민(womyn), 남성 동지 남성 동포, 남자 형제, 형제, 남성, 남성 친구, LGBTQLI에게 바친다란 책 장에 나오는 이 문구로 모든 것을 표현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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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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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를 블랙히스 하우스의 가장무도회에 초대합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숲 속에 있는 나, 에이든 비숍은 기억을 잃은 채 초대받은 블랙히스에 발을 들인다.

그곳은 피터 하드캐슬 경과 그의 부인 헬레나 하드캐슬 부부가 초대한 가장 무도회장이었고, 그들 부부에겐 19년 전 살해된 막내아들 토마스를 기리기 위한 모임이었다.

 

숲 속에서 한 여인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블랙히스에 도착해 도움을 요청하게 되지만 타인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비숍이 아닌 세베스찬 벨이라고 불리는 나 자신은 얼굴도 목소리도, 행동도 모두 자신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곳의 딸인 에블린 하드캐슬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는 흑사병 의사로 불리는 자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야만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블랙히스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게임, 단 주어진 시간은 8일, 같은 하루가 8번 반복됨과 동시에 그때마다 다른 호스트의 몸으로 깨어난다는 설정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마지막 호스트가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비숍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왜 이곳을 방문했으며 애나라고 불렀던 미지의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대상인지, 에블린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시간의 다툼은 자신이 무도회에 초청받는 호스트의 몸속으로 들어가 하루의 일을 통해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을 그린다.

 

매일 밤 11시의 총성, 에블린이 연못 쪽으로 다가가 총으로 자살하는 모습은 자살을 위장한 살인 사건인가, 아니면 어떤 사연에 얽힌 협박에 의한 자살인가?

 

책의 띠지 문구처럼 애거서 크리스티와 인셉션의 절묘한 만남으로 그려진 미스터리다.

음침하고 칙칙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블랙히스를 멀리했던 하드캐슬 부부가 왜 이곳으로 사람들을 19년 전 벌어졌던 그 장소로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일까?

 

비숍은 한 사람의 매번 다른 호스트의 몸속으로 들어간 자신의 생각과 호스트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면서 사건의 해결을 풀이해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같은 반복의 일을 통해 호스트들의 감춰진 비밀들을 알아가고 그에 덧붙여 혼돈의 미로를 탈출해 진정한 자신의 비숍이란 인생을 살기 위해 활약하는 모습이 시종 긴장감을 조성한다.

 

지루함을 동반할 수도 있는 같은 반복의 패턴을 다른 호스트의 몸속으로 환생한 듯한 설정의 그림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의 동선과 말, 그에 담긴 것들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구성을 통해 한 사건에 담긴 여러 단상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공포가 있고 초자연적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느낌, 그가 왜 블랙히스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기막힌 반전의 설정들은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촘촘히 엮은 이야기의 토대를 따라가야 하는 집중력을 통해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한다.

 

한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제대로 시간을 채우지 못하거나 중간에 낙오된다면 그 전의 호스트 몸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겪어야 하는 설정 과정도 기막힌 과정이었지만 하나의 게임 툴 속에 갇힌 인물이 벗어나기 위해 하나씩 장애물을 허물듯 반전의 비밀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추리로 엮은 설정 구도도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비밀과 배신, 사랑이 있고 욕심과 경계, 용서가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를 담은 600쪽이 넘는 추리 미스터리라 기존의 어떤 간략한 이야기로 들려줄 수 없는 플롯의 구성이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일단 읽어보란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사건의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터진 독자들의 허를 찌른 진짜 범인의 실체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끝까지 완독을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짜릿함을 모처럼 느껴보게 한 내용이었다.

 

곧 tv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잘 짜인 구성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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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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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람은 백인 주인 아버지와 흑인 노예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에겐 특출 난 능력이 있으니 바로 초능력 '인도'를 가진 점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에게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것에 대한 것을 귀담아듣는 사람, 한번 본 것은 놓치지 않고 '기억'이란 것을 통해 담아두는 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기억이나, 트라우마를 떠올리면, 지금 속한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하거나 사물을 보낼 수 있는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한때는 아버지가 가진 영토에서 주인을 꿈꾸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백인 형의 시종으로 일하게 된 것일 뿐 그 꿈은 더 이상 현실성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그가 사랑하는 소녀 소피아가 아버지의 사촌인 너대니얼 노예로서 그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길 반복하는 동안 소피아는 탈출 이야기를 하고 둘은 곧 자유 흑인이자 언더라운드 조직원이라고 알려진  조지에게 부탁해 도망을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조지의 배신으로 소피아와 떨어진 하이람은 그 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모진 고생을 한 후 자신을 테스트했던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한 언더그라운드’의 요원이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그가 알고 있던 능력을 이용해 거짓 서류를 만들고 북부의 필라델피아까지 가게 된 그는 버지니아에서 살았던 생활과 이곳의 천지차이인 생활의 모습을 통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고향에 두고 온 소피아의 행적과 나머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던 하이람은 초능력 ‘인도’를 경험하게 되면서  ‘인도’가 일어나려면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본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과연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소피아를 만날 수 있는 것인지, 고향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인도'를 통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쥐어줄 수 있을까? 에 대한 서사가 이어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부와 북부에 걸친 흑인 노예제도는 과거의 역사에 속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그리고자 한 모든 내용들은 현재에도 완전한 차별과 자유에 대한 모든 것이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환상적인 소설 장치를 이용해 묻는다.

 

가해자가 기억하는 것과 피해자가 기억하는 것에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책 속에서는 하이람이 가진 '기억'과 '인도'라는 능력을 통해 약자들이 겪는 개인의 역사와 그 윗대의 역사들, 인종, 빈부, 성별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어떻게 변질되고 감추어지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에 대한 면들을 그려낸다.

 

소피아처럼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의지를 지닌 대사는 스스로의 속박에서 그것을 뚫고 나가 자신이 꿈꾸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자유로워지는 건 시작일 뿐이야.
자유롭게 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소설 속에서 여러 사연들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내는지를, 약자에 선 입장에서 그 누구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없기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역사와 기억을 남겨야 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들이 환상과 실제 역사 흐름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 넌 자유로워진 거야.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사람의 주인이기도 해. 그 어떤 형편없는 노예 주인보다도 완고하고 끈기 있는 주인이지. 네가 지금 받아들여야 하는 건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매여 있다는 점이야. 모두가 자신이 모실 주인을 골라야 해. 모두가 선택해야만 하는 거야. 호킨스랑 나는 이쪽을 선택했어. 우리의 자유란 비자유와의 투쟁에 참여하는 소명이라는 복음을 받아들였어. 우린 그런 사람들이야, 하이람. 언더그라운드. 네가 찾던 바로 그 사람들.”

 

 

엄마가 물 위에서 추는 워터댄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속해서도 안되고 자기의 소유물처럼 착취해서도 안된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기억을 통해 남겨야 함을 보인 작품이다.

 

불평등한 사회적인 시선들, 같은 인종이라고 계급 차이로 느낄 수 있는 모습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지닌 '인도'란 능력을 십분 발휘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하이람이란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도 이런 점들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던진 작품이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작품과 함께 읽는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깝게 이해하며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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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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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생각나는 것이 대표적으로 마라톤, 와인, 음악, 고양이..


특히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이미지라고 할까 그가 쓴 작품들을 통한 내용들은 유쾌하면서도 찡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번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제목이 '고양이를 버리다'인데  요즘 말하면 길고양이를 연상하게도 하는 고양이의 등장으로 인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18살에 집을 떠나오기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보통의 모자간이나 모녀관계보다는 부자간의 관계는 또 다를 것이다.

 

꼬마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고 아버지보다 체격이 월등히 커지면서 바라보는 아버지란 존재, 작가는 어린 시절 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지역에서 가까운 해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고양이를 버리고 오지만 웬일인지 집에 와보니 고양이가 벌써 와있다는 사실을 그린다.

 

 

 


이내 아버지는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는데, 아버지의 생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 작품은 험한 시대를 견뎌낸 그 시대의 아버지 모습들, 동시대의 우리나라 한국 아버지들도 이렇게 힘들게 사셨을 것이란 생각을 함께  연상시킨다.


 


'나날의 습관'이라고 붙인 아버지의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불단에 기도하는 행동은 아버지가 겪었던 전쟁의 참상을 통한 위로의 기도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자신의 위안처럼 보인 행동을 지켜보는 아들로서의 기억을 그린 장면이라 인상적이다.


친할아버지 때부터 절과 인연이 닿았던 분위기는 아버지의 형제가 많음으로 인해 당시에 익숙한 절차처럼 보인 양자로 들어가거나 동자승으로 생활하는 모습, 이후 전쟁의 시대가 되면서 징집을 당하고 태평양 전쟁 전에  제대를 한 시간차의 세월, 이후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조명들은 작가라기보다는 아들의 시선으로 그렸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자신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삶, 아버지와의 불화는 긴 시간 속에 흘러가게 됐고 이후 병이 완연한 상태에서 마주한 아버지와의 짧은 화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연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어린 시절 고양이를 버렸지만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거둬들인 아버지의 마음은 당신 자신의 유년 시절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듯한 느낌이라 읽으면서 어린 시절 겪었던 어린 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돼 코끝이 찡하게 다가왔다.

 

 

 

특히 고양이를 보면서 느낀 저자의 글이 아버지와 작가 자신의 관계를 이어주듯 이어가는 매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특히 시대적으로 힘든 일들을 겪은 당시의 아버지들 모습들도 대부분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 없이 자신의 내적인 공간 안에서 삭히며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 비단 작가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 평범하게 살다 간 인생들의 한 단편을 보는 듯했던 이야기다.

 

작품 속에 함께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더욱 여운이 짙게 남는 이야기...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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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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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의 관광버스가 크로아티아를 출발해 슬로베니아로 넘어가는 경계선에서 잠시 정차한다.

관광객들의 여권을 모두 걷어들인 가이드는 차에서 내리고 한참 동안 버스에 승차하지 않는 동안 관광객들은 우리나라 고속버스 톨게이트를 연상시킨 그곳에서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창밖으로 볼 수밖에 없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아랍인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 톨게이트 기둥 구석구석에 군인들 행렬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고 일부는 그 너머 보이지도 않는 까만 점들로 인식될 만큼 모여 있었다.

 

여행용 트렁크를 동반한 그들, 그들은 누구일까?

 

무려 40분~1시간 사이에 관광객들은 내리고 버스 안을 조사하는 군인들(?), 나중에 알고 보니 난민들이 우리들 중 도움을 받아 버스에 있을 경우를 대비해 검사하는 것이란 말에 뉴스에서 보던 기사가 내 눈을 통해 직접 보게 된 이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5년 전  당시 기억을 되살리게 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린 난민 문제-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지금 이 시각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탈출한 그들을 우리들은 '난민'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탐욕의 시대』, 『빼앗긴 대지의 꿈』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보인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양심적인 글과 함께 지금의 유럽 난민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게 된다.

 

유럽 난민의 문제는 시간을 거슬러 2003년 이후 이라크 전쟁 이후 계속된 문제였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유럽 국가들에게 닥친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저자는 2019년 5월 유럽 인권 이사회 자문위원회의 부위원장 자격으로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을 방문한다.

 

유럽의 핫 스폿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다섯 개의 섬들 중(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 하나인 레스보스, 이름은 아름답지만 난민들에게 있어선 유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끈인 곳이자 험난한 곳이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 도착하기까지에는 어려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중산층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인 이 여정은 2011년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난민이 생김과 더불어 본격적인 시리아 내전을  통한 시리아인을 비롯해 쿠르드인, 아프리카인에 이르는 긴 난민의 행렬로 바뀐다.

 

 

 

                                             (다음에서 발췌) 

 

 

그렇다면 이들은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이후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난민 인정을 받고 유럽의 희망하는 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유엔 난민 망명 지원 사무소에서 1차 심사를 거친 뒤 레스보스 섬으로 이첩시킨 후 자국의 심사에 따른 결과에 따라 난민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3곳의 기관들은 각기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심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난민들에 대한 처우는 인권이란 문제를 대두시키는 문제로 떠오르게 한다.

 

푸시 백 작전을 통한 시초부터 망명 신청을 저지시키려는 목적에서 행해지는 작전은 쇠파이프로 구타하기, 인원 초과의 보트에 있는 난민들 배 주위로 돌면서 난민선 기울기, 포격 가하기, 심지어 고무보트 찢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일단 난민으로 섬에 도착했지만 그들의 끝 모를 여정은 끝은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긴 시간을 요한다.

 

입에 먹지도 못할 식량배급,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인원 초과, 올리브 숲이라 불린 곳에서 변변치 못한 생활로 버티는 그들에겐 이곳이 사각지대이자 희망의 지대란 점은 두 양면성의 유럽 모습을 보는 듯하게 다가온다.

 

이런 틈에 무기 로비스트들의 이익을 남기는 장사, 손이 찢어질 정도의 날카로운 철조망 건립, 보이는 즉시 사살할 수 있는 총기 난사 문제는 1948년 제3차 UN 총회에서 발표한  문구를 묻는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할 수 있다”

 

유럽의 딜레마는 솅겐 조약과 더블린 조약에 따른 이중의 잣대를 보임으로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취약한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교육의 문제까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심각한 양상을 보이는 난민의 문제는  각국의 이익과 정치적인 문제까지 겹쳐지면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다음에서 발췌)

 

                                      

                      

여기엔 유럽인들이 갖는 종교가 다른 이슬람인들에 대한 생각, 외국인 혐오에 일자리 고용문제와 잠시 거쳐가는 경유지의 유럽을 택한 것이 아닌 정착지로서의 유럽을 택하는 난민들의 문제까지 책 속에 담긴 관계 기관들과 실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실감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저자는 난민의 기준으로 또 다른 문제인 기근에 관한 난민 규정이 필요함을 말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수정과 협약을 통한 실천, 난민 신청의 시간 절약과 간소화, 전문인력 보충, 유럽 연합의 그리스 핫 스폿에 대한 지원금의 확실한 사용처에 대한 요구들은 주장한다.

 

부패온상을 이어지고 있는 핫 스폿-

난민 재배치 거부를 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주는 지원금 혜택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엔 유럽 국가 간의 협약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계속 자국을 탈출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몸만 나오는 난민들, 바위틈에 숨어 있는  물고기를 찾듯이 난민들을 찾는 사람들과의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다시 고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나라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인 유럽은 이 문제를 여전히 유지하고만 있을 것인가를 묻는 저자의 글이 잊히질 않는 책이다.

 

제목이 '인간 섬'인 것은 이들의 고달프고 긴박한 심정을 대변한 듯한 느낌과 함께 인간이 아닌 마치 바다의 기타 생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숨어 있는 난민들을 연상시킨다.

 

동일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책, "그들의 상처보다 그들의 두 눈을 바라보는 일이 훨씬 힘들다."는 본문이 잊히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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