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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김나현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주어진 운명이란 타이틀 속에 등장인물들이 선택했던 그 과정과 결과들이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이자 대본처럼 다가온 작품이다.
나을이 여자배우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이후 학폭 관련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글쓴이가 누구인가에 대한 추적과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진행되는 흐름은 그녀 주변에 연관된 인물들의 다층적인 시선이 겹쳐지면서 새로운 사실과 비밀들이 곁들여진다.
나을의 엄마 소영, 시우의 엄마 하영, 영화감독과 제작자, 유진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타인의 삶에 관여하면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했으나 예기치 못한 결과들이 발생했다는 점은 인생의 한 방향이 아닌 여러 갈래 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 다른 인생판도가 펼쳐짐을 느낄 수가 있다.
구성 편집도 대본처럼 여겨질 수 있는 챕터 번호와 연령대에 따른 나을의 삶의 방향전환, 여기에 시우를 만나고 다시 앵두의 행동, 소영이 오로지 자신 곁에 두고자 했던 하영의 삶에 하영이 결단 내린 전개는 대물림되듯 그녀들의 자녀 인생에까지 계속 연관되는 집착과 후회스러움들이 드러난다.
인간은 때로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으로 본능적으로 속이고 그 속임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상대, 여전히 솔직히 터놓고 마주할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들이 각자 인생의 한고비 한고비마다 넘기며 시나리오 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본 속에서 같은 인물이자 다른 인물로 다시 이어가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포개지면서 그려진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내린 행동들을 접하면서 왜 이들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란 생각을 하며 공감된 부분도 있었지만 하영이란 인물이 내린 행동에는 약간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용 중에서 '액터스 헤븐'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지고 원하는 역할로 살아볼 수 있는 세계관으로 비친다.
오겸이 나을에게 건넨 이 말은 나을 뿐만이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개념이라 만일 나라면 어떤 역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에 대한 수많은 상상이 들게 한다.
나을, 시우를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나 원하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쓴 흔적들과 우연이 겹치는 일련의 패턴들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보다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서서히 드러나는 퍼즐의 짜맞춤이 현실 세계인지 시나리오 속에 흐트러진 여러 조각들이 하나의 다른 시간 속 여행을 그린 것인지에 대한 경계를 넘나든 내용이라 누구를 응원하든 그들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느껴 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책은 시나리오처럼 짜인 인생 속에서 인간 스스로는 어디까지 시나리오 범주를 벗어나 바꾸려는지, 허용이 된다면 그 범주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으며 이런 것들은 누가 정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들게 한 작품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