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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평점 :

이렇게 가슴이 아픈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런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가장 잔인한 것은 인간들이란 사실을 다시 느낀다.
식민지 시대를 겪은 나라라면 거의 대부분 느꼈을 내전의 고통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치환처럼 다온 것은 물론이고 기억과 망각, 이러한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강압적인 모습으로 강요당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듯 가슴을 계속 후벼파고 든다.
5살 때 성대를 잃어버린 아이는 평생 자신의 목에 튜브를 달고 살며 '미소'를 장착한 채 살고 있다.
어느덧 26살 이란 여인으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오브, 자신을 거둔 제2의 엄마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모른 채 목소리를 찾아주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 상태다.
작품은 알제리란 나라의 식민지 시대의 소산이자 종교와 이념, 권력의 쟁취 다툼으로 이어진 검은 10년의 내전 사태를 통해 희생당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내세운 내용으로 특히 여성들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슬람교의 교리가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런 영향 속에 발생한 내전은 총 3장에 걸쳐 등장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주는 바, 이미 목소리를 잃은 오브가 자신의 뱃속 아이 '후리'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내전으로 양측 모두에게 희생당한 이들의 삶을 들려준다.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어린 여인들이 끌려가 강제로 유린당하며 원치 않은 임신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고통은 하늘에 계신 분만이 알까? 안다면 이토록 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브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면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는 그녀와 같은 모습이자 다른 목소리의 변형으로 들려준다.
몸과 기억만으로 모든 것을 본 아이사의 기억력은 숫자만 부르면 당시의 상황이 녹음기처럼 술술 나오는 입에서 시작해 오브를 통해 자신이 본 모든 것의 증거임을, 그렇기 때문에 오브와 아이사의 목소리는 한데 합쳐진 합창처럼 들리면서 여기에 또 다른 목소리 함라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름이 잊히길 원치 않는 희망과 두려움이 게릴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변주다.
- 십 년간의 학살은 악몽이었다가, 꿈이었다가, 소문이었다가, 다른 마을에 있던 캐롭 나무의 낙엽들에 불과했다고.- p 370

이처럼 등장인물들은 피해자, 게릴라, 그런가 하면 셰이크의 목소리는 가해자의 대변으로 등장하기에 작품은 내전이란 상황에서 각기 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 그들의 기억과 망각을 통해 종교와 국가의 교묘한 쟁취 전쟁이 불러온 양상이 폭력으로 드러날 때 희생당한 이들은 모두 평범한 국민이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정말 마음이 아파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이념과 종교가 무엇이길래, 과연 종교의 의미는 정말 선한 뜻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의문들이 쌓였고 이는 비단 알제리란 나라에서 벌어진 일만이 아닌 마치 우리나라의 한 역사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념에 대한 과도한 투쟁이 낳은 결과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여기에 종교적 교리가 어떻게 여인들의 삶을 억압하고 과도한 폭력에 대한 정당성의 주장은 그들이 당한 모든 것들에 대해 희생을 강요하듯 시민 화해 법률의 혜택까지 부여하며 잊기를 원하는 정책은 오브를 비롯한 희생당한 자들의 망각을 종용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용서란 말이 무색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평화를 위해서 과거는 잊고 지금을 위해 살아가자는 취지, 과연 목소리를 잃은 그들에게도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저자가 그린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실감 있게 와닿는다.
역사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거울이란 점에서 한없이 얇고 가벼운 스카프를 감싸며 자신의 미소를 감추고 살아야 했던 오브의 목소리, 그녀를 대신한 그녀의 아이 쿨숨은 엄마를 대신하는 후리다.
저항의 역사이자 삭제된 기억을 들려주는 작품, 모든 희생된 이들이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