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5층 책탑, 그리고 새로 도착한 책




 

지난 달 말에 홍범도 장군 3층 책탑으로 홍범도 장군의 업적 제대로 알기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한길사의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방현석 작가의 범도 1·2 두 권도 도착했고, 추가로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도 새로 도착했습니다. 한 일주일간 감기 몸살로 뭔가 끄적거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게을러진 마음을 심기일전하여 홍범도장군 5층책탑으로 읽기를 이어갑니다.


 

아직 진도가 많이 나가지 못했지만, 민족의 장군 홍범도는 구한말 백성들의 엄혹한 삶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는 없지만, 기술되어 있는 내용만으로도 일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생각해봅니다. 숨이라도 편하게 쉬며 살아보려, 압록강·두만강을 건너다 관군에 붙들려 참수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충격을 줍니다. 부정한 권력과 관리의 폭정과 학대, 과도한 세금 징수 등으로 개개인의 삶이 무너진 이들은 목숨을 걸고 탈주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겠죠.


 

책에는 연해주 방면 남북 만주로 떠나는 동포가 1800년대 말에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36)고 알려줍니다. 이 현상은 전쟁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나라의 무능하고 무도한 지도자들 때문에 집을 버리고 스스로 유랑민이 되어 나라 밖으로 떠돌게 된 것이었네요. 이들이 황폐한 연해주 일대를 개척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청나라 땅으로 건너간 유랑민들은 동포의 사기와 배신뿐만 아니라 숱한 마적들의 희생양이 되었구요. 불과 100여 년 전에 이렇게 엄혹한 삶의 조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지고 희생당해 사라져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인간의 조건에서 녹두 전봉준이 나타나고 여천 홍범도가 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1868년 무진년 8월 27한가위가 갓 지난 들판에 오곡백과는 잘 여물어가는데 평양 외성리 서문 안 문렬사 부근 가난한 오두막에서 한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렸다아버지 홍윤식(洪允植)은 금방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감격에 젖은 얼굴로 들여다보았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46)



그러니까 155년 전 가을, 바로 이맘때네요. 평양에서 태어난 범도의 출생 배경에 또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범도의 증조부가 농민혁명을 일으켰던 평서대원수 홍경래와 함께 싸웠던 장수로 홍이팔(洪二八)이라는 분이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맞설 줄 아는 마음도 유전이 되는가 싶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외로워하시지 않도록, 계속 조금씩 꾸준히 읽어가겠습니다.

 


순이삼촌 으로 잘 알려진 현기영 작가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3)는 해방 후 제주도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발생한, 4·3사건이라는 엄연한 국가 폭력의 역사를 풀어낸 역작입니다. 특히 대량 학살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미군정의 묵인 하에 무고한 도민들이 희생된 역사이기에 더욱 충격을 줍니다.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바로 개개 국민의 지지와 열망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바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념을 절대 기준으로 내세워 분열을 조장하고 억압하는 권력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섬뜩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의 행보가 과거의 독재적인 지도자들과 견주어 낯설지만은 안다는 점입니다. 지도자를 뽑을 때, 그 사람이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과 연민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인간에 대한 냉소와 멸시가 아니라, 존중과 애정이야말로 정치인의 최우선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도우다도 이어서 읽어나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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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9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서 접하고 홍범도 평전을 완독했습니다.

초란공 2023-09-19 12:23   좋아요 1 | URL
와~ 먼저 이끌어주셨네요. 함께 읽는 분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저도 부지런히 따라가겠습니다!

청아 2023-09-19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렬독서 하느라 느리지만 저도 초란공님 따라 한 권 읽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다>도 담아갑니다.

초란공 2023-09-19 22:24   좋아요 1 | URL
각자 속도대로 함께 읽어나가시지요~!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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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2020)




어제 동네 책방에 갔다가 놓여있던 책 <그냥, 사람>이 기억났다.  
아침에 무심하게 펼친 책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이다.


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124)


절대’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코 만날 수 없고, 넘어설 수 없는 무한대의 특이점 같은 것. 나는, 혹은 우리는 과연 타인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나는 결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당사자성'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들은 적이 있지만, 무엇보다 타인에게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느냐'고 기대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널 이해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타인의 손을 잡아야 한다. 나와 타인 사이의 절대 간극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길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가 아닐까 싶다. 타인의 손을 잡을 용기가 없어도,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므로 손을 내미는 일은 '상상하기'의 시작이다. '상상하기'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부터 시작된다. 우린 모두, ’그냥, 사람‘아닌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채워진 광막한 황야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오해라도 이것이 가득 차있는 '공유지', 시끌벅적한 ‘목초지’가 될 수 있기를.





"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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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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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언 어비나의 말 “바다는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말에 이 유동적인 공간을 둘러싼 문제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인권, 환경오염, 자원 남획 등등의 문제들..여기에 인간은 핵 오염수까지 더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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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내친다구요? 

무지하고 천박한 이유를 대는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하여,

홍범도 장군에 대해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근현대사에 무지했던 저를 반성합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의 책탑 사진을 구경만 해보다가 저도 동참해봅니다.^^

아직 빈약한 '홍범도 장군 3층 책탑'이지만,

최근 출간된 방현석 작가의 소설 <범도>는 곧 올 예정입니다. 

그럼 홍범도 장군 5층 책탑이 될겁니다. 


홍범도 장군을 내친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따져 묻고,

저들의 무식하고 모순적인 주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라딘에서라도 홍범도 장군 읽기를 제안합니다~!!


제가 모르던 홍범도 장군에 관한 다른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기를^^


<녹두 전봉준>을 함께 넣은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던 김삼웅님으로

<홍범도 평전>을 지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녹두 전봉준이 관군에 붙잡혀 취조당할 때, 스스로 이런 변론을 했다고 하죠.


일어난 것은 난이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백성들의 원성과 절규다. 봉기를 일으킨 것은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함이었다.”(<범도>, 1권 291면)


참수당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전봉준은 자신을 취조하던 갑신정변의 수괴 서광범 앞에서 당당히 이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녹두 전봉준의 정신이 곧 항일 전선에서 싸우고자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정신이기도 할 겁니다. 


 


가난한 백성들로부터 짜낸 혈세를 일본군 군영 건축비로 배정한 대한제국의 내각이나 그것을 받아 착복한 삼수 부사나 도적놈이긴 매일반이었다.”(<범도>, 2권 25면) 


이 문장을 다시 보니 기시감이 듭니다. 2023년 대한민국의 모습 그대로같습니다. 


그리고 <범도>는 책이 두꺼워서 좀 더 튼튼하게 양장본으로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리아스><오딧세이아>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되풀이되어 이야기되고 읽혀온 것처럼, 양장본으로 제작된 <범도>를 <일리아스> 옆에 꽂아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후손들도 오래도록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이 싸웠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말입니다.    






참고로 송은일 소설가의 저작 <나는 홍범도>도 치밀한 자료 조사에 기반한 소설이며, 두 권짜리 <범도>에 비해 얇고 가독성이 좋아 중고등학생들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강추합니다!

  저도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홍범도 장군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범을 잡던 포수, '범포' 홍범도의 아내는 일본군에 고문당하고 자진했으며, 두 아들은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했습니다. 나아가 함께 목숨을 걸었던 많은 동지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같은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정보를 넘겨준 이들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그는 일본을 위해 같은 민족을 괴롭혔던 이들, 그리고 일본군을 잡기 시작하며 홍범도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곧 범포가 내려온다~' 고 말입니다.^^

홍범도 함께 읽기 해봅시다!

 


기사를 찾아보니, 시인이자 평론가인 <민족의 장군 홍범도>의 저자

이동순 교수의 시와 서해성 시인의 시가 게재된 기사도 있군요.



[한겨례] ‘내가 돌아오지 말걸’…홍범도 평전 펴낸 한 시인의 토로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62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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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31 22: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유해 봉환식 영상을
다시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역사가 역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깨닫고
있습니다.

저도 참전하겠습니다.

초란공 2023-08-31 23: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해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되다니요....

청아 2023-08-31 23: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부의 노골적인 역사 지우기가 오히려 국민들로 하여금
근현대사 공부를 하게끔 하네요. 저도 한 권 담아갑니다.

초란공 2023-08-31 23:33   좋아요 4 | URL
국민을 공부하게 만들어주는 정부네요 -.-;; 어떻게 이정도로 뻔뻔할 수가 있을까요.

2023-09-01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어j 2023-09-01 0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구입해서 읽어봅니다!

초란공 2023-09-01 09:09   좋아요 1 | URL
네~ 함께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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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점을 밝혀 주는 지도를 손에 넣다

- 생각의 요새를 읽고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

 




내가 읽은 생각의 요새는 작전 지도와 같았다. 작가에게 이 책은 오랜 시간 여러 책을 읽고 사유하며 구축해 놓은 생각의 요새라면, 독자에게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지도가 되어준다. 이 요새를 독자와 함께 나누면서 독자는 이 요새를 출발점 삼아 새로운 책읽기의 고지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작가는 독자의 생각을 일일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이 작업은 독자가 스스로 생각을 전진시킬 수 있도록 길을 밝혀놓은 작업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한 권 한 권이 읽기 만만치 않은 사유의 결과물들이다. 다만 저자는 독자 보다 먼저 지적 모험을 경험하며 여러 거점들을 찾아 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적이고 지속적인 책읽기작전에서 중요한 고지를 독자를 위해 밝혀 놓은 것이다.


 

우선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각 저작의 핵심 개념을 명료하게 요약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약 잘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에 작가가 파악한 책의 가치와 맥락을 더하여 책읽기 작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도서들의 위상을 제시하여 독자가 이 책을 지도삼아 따라가다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개별적인 도서의 이해뿐만 아니라, 해당 작가의 사상, 또는 사상의 변화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은 생각의 요새에 보관되어 있는 일급비밀의 작전 계획서 같다고 느꼈다.


 

특히 이 책은 철학, 정치 및 사회, 종교, 문화, 동양 사상, 과학, 문학 및 비평 등 폭넓은 사유의 고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작전 지도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자가 요새로 삼고 싶은 사유의 거점을 먼저 정하면 좋을 것이다. 이 작전 계획서를 기반으로 독자가 사유의 거점을 정하고 이를 향해 나아가 이를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본문에서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당함으로써 비로소 실존하기 시작했다’(29)실존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듯이, 결국 독자는 저자가 마련해놓은 요새를 언젠가는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자신이 선정한 거점을 찾아 익숙한 요새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생각의 요새는 독자의 책읽기 작전을 도와주는 작전 지도이면서, 이 탐험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1장에 소개된 철학서들을 보면, 내가 이 책들을 읽고 이해하려면 족히 몇 년을 걸릴만한 책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해당 철학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모르는 철학자들의 저작도 많지만, 이름을 들어보았더라도 막연히 이 철학서들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책들도 있다. 여기서 저자의 소개를 듣다보면 왠지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철학서 읽기에 실제로 도전한다면, 현실은 다를 것이다. 곧바로 가수면 혹은 혼수상태에 빠져들 테다. 그러므로 생각의 요새을 읽을 때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이 철학서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유지하되, 저자가 마련해 놓은 생각의 요새를 출발점삼아, 다른 사유의 거점들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철학서들에 대한 저자의 소개를 따라가며 몇 권의 거점을 발견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철학적 사유의 거점들에 도전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수학 예찬, 그리고 신유물론 입문, 폭력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들이다. 언젠가 이런 사유의 거점들을 탐험하게 될 때, 나는 저자가 공들인 독서 및 사유의 시간과 글쓰기의 시간에 힘입어 그가 밝혀 놓은 길을 따라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또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꾸준히 묻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밝혀 놓은 다양한 사유의 거점들 가운데, 우선 나의 관심을 끄는 분야는 과학이다. 그래서 5마음과 우주라는 사유의 거점을 먼저 탐색해보았다. 이 지점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작가는 D. H. 로런스와 괴테, 뉴턴, 그리고 일본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이자 물리학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다. 뉴턴의 경우, 올해 새로 완역 출간된 프린키피아가 소개되고 있어 반가웠다.


 

이 장에서 이 책의 전반적인 특징 하나를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책을 소개할 때, 유명 작가의 저작과 해당 작가의 면모를 다룬 저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D. H. 로런스의 저작 아포칼립스를 소개한 후, 이어서 로런스의 면모와 그의 사상을 연구한 백낙청 교수의 저작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이렇게 관련 있는 주제아래 함께 읽기를 하면 로런스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어질 것이다. 나아가 저자가 보여준 것처럼 해당 주제에 대한 나름의 맥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같은 장에서 이렇게 동일 작가나 작품을 짝을 지어 다룬 방식은 관련 주제나 작가에 대해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이해를 깊게 해줄 수 있는 읽기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독자가 괴테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 수 있도록, 관련 도서를 짝지어 놓은 느낌이다. 괴테는 일생의 역작 파우스트60년 가까이 쓰고 고쳤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한 광범위한 해설서 불멸의 파우스트를 소개한다. 이어서 이 작품과 관련하여 괴테의 면모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는 괴테와 융이란 저작을 또 다른 사유의 거점으로 제시한다.


 

생각의 요새가 지니는 장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전에 파우스트를 읽었을 때,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레트헨은 과오 많은 파우스트를 인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파우스트가 구원을 얻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남자를 무슨 근거로 구원했는지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독문학자 전영애의 견해를 소개한다. 파우스트자체가 대문호의 방대한 사상이 응집된 작품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저자의 예민한 안목이 놀랍다. 이처럼 생각의 요새는 독자가 이미 읽었더라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 놓기도 한다. 나는 조만간 이 책을 출발점 삼아, 파우스트라는 높고 중요한 고지를 향해 다시 탐험에 나설 예정이다.

 


이 책에 재인용된 D. H. 로런스의 말 중에서 마음에 든 한 문장이 있다. 소설 읽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소설이란 감정의 모험의 기록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유의 모험이기도 해야 한다.”(391) 이전에 로런스의 고백적인 에세이와 소설 일부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처음부터 로런스의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작가의 지성적인 측면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책에 인용된 로런스의 말은 생각의 요새가 표방하는 사유의 모험이란 취지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로런스는 당대에 외설 작가라는 비난과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계급적이고 기득권적인 제약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병적인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다. 나는 저자가 설명해준 것처럼, 로런스가 자기다움의 실현을 추구했다는 점에 공감했다. 로런스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사유의 모험이라는, 지적인 면모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분야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유의 거점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작가와 그 저서였다. 저자 고명섭은 이 놀라운 작가의 여러 저작물 중에서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제목의 과학사 서적 1·2권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일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역작 과학의 탄생을 우연히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저자 고명섭은 소개하는 도서와 작가에 대한 이해를 마찬가지로 저자 나름의 맥락에서 알려준다. 역시나 그는 요시타카의 다른 저서인 과학의 탄생16세기 문화혁명, 그리고 나의 1960년대일본 과학기술 총력전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까지 묶어서 독자에게 소개해주는 꼼꼼함을 잃지 않는다. 이제 여기에 최근 출간된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3권까지 포함하면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근대 과학사 3부작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과학 분야에서 탐험할 사유의 거점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로 정했다.


 

생각의 요새을 읽는 독자마다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나는 내 책읽기 여정에서 하나의 거점을 발견하여 모험해보고 싶은 분야를 먼저 골랐다. 이후 관심이 가는 저자나 책을 선정하면, 이를 내 사유의 거점으로 삼는 방식으로 삼았다. 우리는 인생에서 저자가 소개한 인물 사마천, 마키아벨리, 단테처럼 언제든 궁핍해지거나 실존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책은 궁핍한 시기에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를 수 있는 견고한 생각의 요새가 될 수도 있겠다. 내게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사유의 거점과 가는 길을 밝혀주는 작전 지도와 같다. 그러므로 한 번 읽고 덮어 두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언제든 새로운 사유의 거점을 탐험할 때 참고가 되고 새로운 모험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1] "집을 떠나는 것은 바깥에 서기, 곧 실존하기를 가로막는 기존의 자기적응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 탈합치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관성대로 살지 않고 진정으로 실존하는 삶을 사는 길이다."(29)
- <탈합치> (프랑수아 줄리앙) 소개 글 중에서

[2]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45)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미셸 옹프레) 소개 글 중에서

[3] 인종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색인종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백인 자신들을 향해 쓰이지 않는다. 백인은 인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것이 백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백인은 언제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167)
- <화이트> (리처드 다이어) 소개 글 중에서

[4] "자연 현상에서 신의 존재를 유추하는 것도 분명히 자연철학의 일부다" 뉴턴이 중력의 배후에 신이 있다고 믿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야마모토의 책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자연철학의 신학적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데, 뉴턴의 고백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459)
- <프린키피아> (아이작 뉴턴) 소개 글 중에서

[5] "훌륭한 책은 독자의 뇌를 흔들어 깨운다. 뉴런에 충격을 가해 깜짝 놀라게 한다. 새로운 생각이 담긴 훌륭한 책은 독자를 사유의 새 길로 이끈다. 책을 읽다가 독자는 문득 자기가 낯선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훌륭한 책은 문장들을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면 그 책은 틀림없이 훌륭한 책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책은 독자의 대결의식을 불러일으킨다."(531)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고병권) 소개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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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8-26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초란공님^^ 이 책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놨는데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책이겠군요. 저는 책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지 기대가 됩니다.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초란공 2023-08-2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소개된 책들이 혼자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책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해당 책을 읽기 전에 큰 틀에서 이해하기에 좋을 것 같고요.책이 나오개 된 배경이나 저작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 혼자 이 책들을 무작정 읽으려면 10년은 넘게 걸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