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Ann Druyan) 지음 |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위한 짧은 변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모두 읽어본 한 지인은 앤 드루얀의 책이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아직도 칼 세이건의 이 유명한 책을 읽어보진 못했기에 지금 두 권을 비교해서 평을 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신간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점들을 독후기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칼 세이건의 저작은 이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인데다, 많은 독자 팬을 두고 있기에, 후속작이 전작을 능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내가 앤 드루얀의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이 공식적이든, 개인적이든 전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 책 나름의 자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앤 드루얀은 이미 여러 권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 <코스모스> 작업 등을 오래 해온 베테랑 작가이자 감독이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책이 남편의 작업이자 전작을 넘어서기를 목표로 경쟁했던 것이 아니다. 책 끝부분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저 독자와 소통하고 이어지길 바랐다’(423)는 고백을 하고 있다. 어느 작업이 더 훌륭하냐를 따지는 것은 물론 독자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이고, 이 문제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책이 그 나름의 장점과 주목할 만 한 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과거 칼 세이건의 주요 저작(물론 앤 드루얀과 공저한 작업을 포함하여)은 주로 미소 냉전이 한창일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과학기술에 힘입어 만들어진 원자 폭탄과 같은 가공할만한 무기로 인한 인류 공멸의 위험을 절실히 체험했고, 이를 꾸준히 경고했었다. 냉전 시대가 저문 후, 앤 드루얀은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문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책에 절실히 담고 있었다. 이 점에서 앤 드루얀은 과거 두 사람이 인류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던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볼 수도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앤 드루얀의 책은 아주 깊이 있게 내용을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문제를, 마치 스몰토크를 하듯 가뿐히 다루면서도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놓지 않는 다. 나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과학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편안한 자리에서 듣고 의견을 나누는 것 같아 독자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도 분명 독자의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물론 책에는 저자가 칼 세이건과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은 익숙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이는 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앤 드루얀의 공식적인 작업이 결국은 칼 세이건과 함께 했던 시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이 한 사람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상실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로 나아가 전 세계 독자의 삶에 닿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앤 드루얀의 염려는 저자가 인용한 스피노자의 한 마디에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한 마디,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 종자 은행 개념을 제안했던 식물학자 바빌로프의 행적에서, 지구의 재앙이 임박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마나베 슈쿠로의 논문 등에 관한 이야기들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써놓고 보니 꽤나 일방적인 칭찬만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두고 지인이 남긴 평에 대해 내가 좋았던 점을 정리해보고자 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가 후대인들이 선대의 업적을 기반으로 혹은 이 업적을 개선함으로써 선대의 지적 성취를 딛고 올라설 수 있었던 인류사의 장면들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 책이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는 만큼 각각의 화제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더 깊은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앤 드루얀이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던 연설을 인용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남겨보고자 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26)

 

우리가 흔히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할 때,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도 그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묻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 문장은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감안할 때, 여전히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한 아인슈타인의 연설 재인용 - P26

"사람들의 마음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과 이성으로만 정복할 수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 - P76

"꿈에서 책임이 시작된다"
-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처음 사용한 말 재인용 - P126

"바빌로프와 동료 식물학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미래가 그토록 손에 잡힐 듯하고 귀중한 현실로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71

"우리는 모두 똑같은 도구 상자로 만들어졌고... 똑같은 유전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다만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밟아 왔을 뿐이다." - P266

"양자세계의 무법적 카지노에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 - P325

"우리가 예측력을 발휘하는 과학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손 놓고 앉아서 그 예측이 현실로 실현되길 기다리기만 할 거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 P414

"나는 더 이상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독자와 소통하기를, 독자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코스모스> 이후의 내 모든 작업은 매일 칼에게 바치는 사랑의 선물이었다." - P42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5-14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앤두루얀의 책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혀지게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넣었고 (지루하지 않게 편집도 잘됨)
남편의 인간적인 모습도 좋았어요
남편은 워낙 세계적인 과학자 였고 코스모스 라는 책보다 미국에서 영상물로 더 많은 대중들에 관심을 모아서 전문성을 놓고 평가하기보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마지막 헌사 처럼 읽혀졌어요.

초란공 2021-05-16 22:07   좋아요 1 | URL
저도 scott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한 사람을 그렇게 평생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일인것 같습니다~
 

, 만들어진 위험 (Outgrowing God)

: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시작된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 김명주 옮김 | [김영사]

 


찌르레기 무리의 움직임 패턴으로부터 인간의 본성과 대량 학살을 모형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문장(“나는 우리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성장함으로써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52)은 신이란 인간이 만든 허구적 개념임을 끊임없이 설파해온 리처드 도킨스의 요점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 만들어진 위험은 수십 년 동안 신의 부재와 종교의 허구성을 지적해온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도킨스는 진지하고 집요하게 논점을 파고들기 보다는 몇 가지 사항에 집중하여 대체로 가볍게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나는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신은 뻥이다’)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보고 싶다.


도킨스가 다루고 있는 여러 논점 중에서 5장의 선해지기 위해 신이 필요할까?’라는 주제를 우선 불러와본다. 흔히 서양의 3대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여겨지고, 이 종교들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근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도킨스는 종교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본인이 잘 알고 익숙한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다만 5장의 주제에 대해 저자는 흥미로운 통계자료를 제시한다. ‘신이 우리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가진 인간은 더 선하다는(도킨스의 표현에 따르면, ‘하늘의 거대한 감시 카메라 이론’) 암묵적인 전제를 다음의 사례로 검토한다.


20137월에 조사된 미국 연방교도소의 기결수에 관한 조사다. 자료에 따르면, 수감자의 28%가 개신교 그리스도인, 24%가 카톨릭 그리스도인, 5%가 이슬람교였다. 나머지는 불교도, 힌두교도, 유대교, 아메리카 원주민 등이었다. 여기서 도킨스는 50%이상의 재소자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언급하며, 종교가 사람을 선하게 만든다는 전제는 설득력을 잃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증에는 대체로 동의는 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예컨대 종교와 무관하게 미국의 백인과 흑인의 재소자 비율을 보면 실제 인구 구성비율과 크게 차이가 날 정도로 흑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점은 흑인들에게 결함 혹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단순히 결론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법이 제정되는 배경 혹은 기준에 대한 내막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백인들과 흑인들의 마약 사범들이 주로 손을 뻗는 마약의 종류가 인종별로 뚜렷이 나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만일 흑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마약에 대한 처벌 규정이 백인 마약 사법에 적용되는 규정보다 비관용적이고 더 엄격하게 제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흑인 마약 사범이 백인 마약 사범보다 더 많이 검거될 여지가 발생하며, 이들이 더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점은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지적해오고 있으므로 새로울 것은 없다.


달리 말해보자면, 법은 개인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기여하는 인간의 사회적 장치다. 판단의 기준을 인간이 만들고 제시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복잡한 인간 사회 속에서 절대적 기준이 되기에 법 자체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또 한편으로 모든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 사도 바울의 원죄 개념’(이제 보니 이 원죄 개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인 것 같다)처럼, 어떤 죄가 규정된 순간, 사회적으로 범죄자가 양산되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 마디로 법이 그 땐 문제없었지만, 지금은 문제다라는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 시대와 사회에 따라 법이 다르다. 인간이 라고 규정한 항목과 기준이 상대적이란 의미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도킨스의 기결수와 종교 분포 비율만 가지고 선함과 악함의 정도와 종교와의 관계를 판단하는 증거로 쓰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2013년 자료를 조사할 당시의 죄에 대한 관념과 법 규정에 대한 인식이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도 검토해야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 종교인들이 거리로 많이 나와서 시위를 하다가 범법자가 되어 수감된 것인지 자세한 내막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혹은 미국 내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조롱과 차별에 분노한 나머지 일부 이슬람 교도들이 범법 행위를 하고 수감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통계숫자는 대략적인 방향을 지시하는 인덱스로 사용될 수 있겠지만, 개별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도킨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제시하는 자료가 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타성,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도킨스의 논증에 대해

 

이 책에서 나의 흥미를 자극한 부분은 생명 탄생의 설계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는 DNA가 있다. 그리고 DNA는 흔히 생명체를 만드는 청사진이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도킨스는 표현이 주는 모호함과 왜곡가능성을 지적하고, 보다 정교하게 이 DNA의 역할을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DNA청사진이란 표현은 매우 잘못된 표현으로, 오히려 생명체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지시 세트’(271)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기의 DNA를 고려할 때, 아기의 신체 각 부분은 DNA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DNA에 아기의 각 부분을 만들어내는 모든 암호는 이미설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DNA는 오히려 케잌을 만드는 레시피와 비슷하다. DNA의 정보는 어떤 의미로든 아기의 지도가 아니다라고 의미를 밝힌다. 여기서 두 가지 흥미로운 생명 탄생의 설계 방식을 제시하는 데, 하나는 하향식 설계, 다른 하나는 상향식 설계를 언급한다.


도킨스가 이야기하는 하향식 설계는 생명체 구성의 모든 암호가 이미 구체적으로 완성되어 있다는 청사진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 내 얼굴 어딘가에 점이 나타났다면, 이건 이미 내 DNA의 어딘가에 묻혀 있던 부위가 어느 시점에서 기능을 발휘하여 내 얼굴에서 발현된 것이다. 이 하향식 설계(혹은 청사진 개념)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생장하고 변화하는 생명체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비효율적인 생명 설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상향식 설계는 애초에 모든 것이 결정되고 지정된 청사진이 아니라, 전체 움직임이나 행동이 국지적 규칙만을 따라 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상향식 설계 방식의 예로 흰개미 언덕과 찌르레기 떼의 군무를 언급한다. 그 중에서 거대한 찌르레기 떼의 사례가 더 흥미로운데, 이 새의 무리는 수만 마리의 개체가 무리를 이루어 함께 날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정밀하게 조정하고 일사분란하게 방향을 바꾸며 대형을 구성한다. 이를 레이놀즈라는 프로그래머가 이 움직임의 패턴을 재현해 냈는데, 그 방법은 단지 각 개체에게 옆에 있는 새를 주시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도록 규칙을 정한 것뿐이었다.


여기서 잠시 옆길로 빠져본다. 나는 찌르레기 집단의 움직임 패턴에 적용된 상향식 설계 기준을 인간의 대량 학살(genocide)에 관한 사례에 적용하여 모형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의도적인 대량 학살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애초에 그 주동자를 악한 인간으로 단정해버리기 쉽다. 대량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와 스탈린을 악의 화신이라고 규정해버린다면,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하향식 관점(‘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악한 인간이었다’)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우리가 대량학살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때, 찌르레기의 군무를 설명할 수 있는 상향식 관점을 적용하면, 대량학살을 효과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계에서 이미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나는 단순한 아마추어 독자일 뿐이므로 이런 연구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다시 말하면, 대량학살에는 이 작업을 지시한 지도자가 있고, 이를 숭배하는 측근과 대중을 위협하는 수단이 있으며, 그 결과 아무도 이들을 저지할 힘을 지닌 상대 집단이 없다면, 대량학살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찌르레기 군무 패턴을 프로그램할 때 적용된 규칙(‘국지적 규칙만을 따르면 된다’)은 대량학살을 모형화 할 때, 전범 재판장에 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업무 수행 규칙(‘나는 공무원이므로 명령에 따르기만 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다’)만을 적용하면 된다. 결국 600만 명의 유대인이 최종 해결책으로 스러져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히틀러나 아이히만 그 자체를 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독일군 집단이라는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지시에 따르기)만으로도 집단 학살이 가능하다는 점을 찌르레기의 움직임 패턴을 설명하는데 활용했던 상향식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히틀러의 인종주의(유대인 혐오/반유대주의)나 스탈린의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 그 구성원들은 심리적 단결과 함께 인류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덜어버리는 상황이 된다.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도킨스의 논점으로 돌아온다. 도킨스는 인간이 이타성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참고할만한 사례로 굶주린 박쥐를 소개한다. 야행성인 박쥐는 매일 밤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만, 언제나 성공하진 않는다. 따라서 운 좋게 먹이를 구한 개체는 그날 허탕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같은 동굴 출신의 박쥐에게 자신의 먹이를 나누어 준다고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른 동굴에 있는 박쥐에게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도킨스는 친절에 대한 진화적 압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다’(315)고 언급한다. 아직 명료하게 밝혀진 사항은 아니지만, 진화라는 개념이 성공적인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점점 많아진다는 것’(306)을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이 점이 친절의 진화적 바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타심에 대한 개념 역시 언제나 이타적/이기적행동이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굶주린 박쥐의 경우도 먹이를 구한 개체의 호혜적이타주의행동이 다른 동굴 출신의 박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타심이 적용되는 경계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언제나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어느 개체의 이타심의 발로라고 부를 수 있는 팔이 안으로 굽는 행동은 이 집단의 경계 밖에서 봤을 때 언제나 이기적 행위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이타심’(곧 다른 집단에게는 이기심에 해당)의 발로가 곧 집단과 의 생존 확률을 더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비전공자이므로 내 마음대로 펼쳐보는 상상에 불과하다.


도킨스는 책에서 자연선택은 우리 뇌에 제한된 친절의 바탕을 심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선택은 불친절의 바탕도 심는다. (...)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 균형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6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친절한 방향으로.”(306)라고 언급했다. 앞서 언급한 나의 생각을 여기에 적용해보자면, 친절의 바탕을 심는 것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이며, 불친절의 바탕을 심는 것은 타 집단에 대해서라고 생각하면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이 균형의 이동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도킨스는 인간이 점차 친절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논리로 주장하는 듯하다. 나는 이 논리가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주장했던 논지와 유사하다고 본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스티븐 핑커는 이 두툼한 책에서 인간이 폭력성이 역사 이래 줄곧 감소해왔음을 엄청난 데이터와 자료들을 제시하며 논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생각은 인간이 본성에 대한 스티븐 핑커의 논점은 자기기만적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스티븐 핑커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본성을 이미 하향식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의 관점은 인간이 폭력적인 존재이지만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교훈과 교육을 통해 선한 존재로의 교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 지점이 도킨스의 인간에 대한 이타심혹은 친절 행위의 진화적 바탕을 이루는 생각과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서 찌르레기의 움직임 패턴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규정하지 않고도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선하다거나 악하다혹은 본래 폭력적이다라고 규정하는 대신, 어떤 특정 조건에서 인간은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단지 이 논리를 대량 학살을 모형화할 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인간의 친철에 대한 진화적 바탕을 도킨스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이 부분은 앞으로의 연구결과가 더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오늘은 도킨스가 이 책 , 만들어진 위험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앞선 조상들의 지적 용기에 영감을 받아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341)는 것과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352))보다는 겨울철 찌르레기 군무에 관한 사례를 흥미롭게 읽다가 잠시 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전공자분들이 보시면 나의 엉터리 이야기에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의도한 부분만 배운다면 재미없지 않은가. 책을 읽다가도 가끔은 엉뚱한 생각도 필요하다. 도킨스가 책에서 언급한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종종 지적 용기를 내어 생각의 골디락스 존(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 않은, 생명의 출현에 적당한 구역)’을 벗어날 필요도 있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못한다‘는 내용에 대해)
"이 규칙은 알고 보니 "너희 부족 사람들을 살인하지 말라"는 뜻일 뿐이었다." - P108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나의 주님이자 구세주를 천사로 느낍니다. 나는 그를, 소수의 추종자에 둘러싸인 고독한 상황에서 유대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차리고 그들에 맞서 싸울 사람들을 소집한 분으로 느낍니다. 고행자가 아닌 전사로서 가장 위대했던 분으로 느낍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주님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마침내 주님이 어떻게 온 힘을 다해 일어나 채찍을 쥐고 독사와 살무사 같은 무리를 사원에서 쫓아냈는지 들려주는 <성경> 구절을 통독했습니다. 세계를 위해 악독한 유대인가 맞섰던 주님의 싸움은 정말 격렬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의무는 가만히 앉아 당하는 게 아니라, 진리와 정의를 위한 전사가 되는 것입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 발언(1922) - P122

"(...) 그리고 우리가 올바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그 골칫덩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내 민족에게도 의무가 있습니다."
-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 발언(1922): 앞의 인용에 이어서 - P122

"친절의 진화적 바탕은 무엇일까? 8장에서 우리는 진화란 성공적인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점점 많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P306

"내가 말하는 건 지적 용기이다.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능성을 심사숙고하고 이렇게 말할 용기.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틀릴 셈 치고 그 가능성을 조사해보자."" - P340

"나는 우리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성장함으로써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책의 마지막 문장 - P3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화의 오리진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화의 오리진

(On the Origin of Evolution)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 권루시안 옮김 | [진선출판사]

 


진화론에 이르는 서구 지성사의 한 단면, 진화중인 진화론의 연대기


 

지금부터 162년 전 3, 50세 생일을 막 지난 중년의 남자는 자신이 쓰던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했다. 기대감과 일말의 두려움을 안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찰스 로버트 다윈, 그는 자신이 막 완성한 종의 기원이 당대에 논란의 중심이 될 것임을 짐작했겠지만, 이후 전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어버릴 줄 짐작했을까. 오늘날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한 그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이라도 누구나 다윈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에서는 천재과학자라는 타이틀도 심심찮게 사용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기작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그 역시 거인의 어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다양한 과학 분야의 소재에 대해 책을 쓴 메리 그리빈·존 그리빈 부부가 진화의 오리진에서 주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마치 물을 가열할 때, 물속에서 분자들의 운동이 빨라지고, ‘거대한대류가 형성되며, 바닥에서 기포가 생성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끊어 넘치는 것처럼, 진화론도 수많은 이들의 고민과 이의제기, 논쟁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나아가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진화론의 계보에 속한 많은 이들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글쓰기가 인상적인 이유는 고대의 자연철학자들부터 현대의 후성유전학 분야까지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내놓은 핵심적인 주장을 짚어 내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간결하게 정리해내는 능력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끼지만, 이런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 진화론이라는, 섭씨 100도의 상태에 도달하기 직전의 물속을 면밀히 조명하고, 나아가 진화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론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진화의 세 가지 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같은 종 내의 경합과 생존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개체들 간의 변이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할 것,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세대를 거쳐 상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 요건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두 명의 사냥꾼을 쫓는 회색곰 이야기. 곰은 두 사람보다 빠르지만, 이 위기에서 생존가능성이 큰 사냥꾼은 두 사람 중에 보다 빠른 사람이다. 이 우스개에는 진화의 첫 번째 요건의 핵심이 담겨 있다. 바로 다윈이 말하는 생존 투쟁은 종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같은 종 내에서의 경쟁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두 요건은 책의 후반에서 보다 깊은 의미가 다루어지고 있다. 현대생물학의 발전으로 DNA의 구조와 역할이 규명된 이후, 후성유전학과 같은 분야의 등장으로 진화의 의미가 보다 확장되고 깊이 이해되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이러한 진화의 개념과 요건들이 다윈 혼자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개념은 이미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이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좀 더 가깝게는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떠나기 전인 1831년에 패트릭 매튜(Patrick Matthew)라는 사람이 쓴 책 부록에 이미 실려 있었다. 매튜는 자연법칙에 의한 선택을 언급하면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거의 만들어내었다(149), 라고 그리빈 부부는 지적한다. 게다가 매튜는 현대생물학 지식 없이도, 앞서 언급한 진화의 핵심 요건 세 가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끓는 물(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 직전 물속의 상태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렇다고 다윈의 업적이 빛을 잃는 것도 아니다. 다윈은 커다란 업적은 끓기 전의 자신의 시공간이라는 물속에서 진화론이 인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필요한 임계치를 성공적으로 넘었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아는 진화론으로 나오기까지 이미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는 점을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배울 수 있었던 부분은, 다윈의 업적이 오랜 시간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오랜 시간 거듭난 결과라는 점이다. 종의 기원에는 다윈이 20년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고, 책을 읽고 이해한 활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과의 서신 교환 및 토론의 흔적이 담겨 있다. 특히 진화의 오리진에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의 교류가 꽤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다윈의 세계와 월리스의 세계, 이렇게 다양한 각자의 시공간이 진화론의 정립이라는 목표을 향해 실감나게 병치되어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진화론이 천재다윈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 서구지성사가 이루어낸 인류 공동의 지적 결과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책을 읽으며 진화론에 이르는 과정이 지난한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이 무엇보다 기독교 전통이 강했던 유럽, 특히 영국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대립해온 인간 지성의 도전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샤를 보네(Charles Bonnet)진화(evolution)’라는 용어를 자신의 책에 처음 사용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 에볼루치오넴(enolutionem)'서 나왔다고 한다. 다만 보네가 이 용어에 담고 있던 생각은 하느님이 종을 창조했으며, 이 종은 불변 한다’(51)는 것이었다. 바로 이미 적혀 있는 (하느님의) 두루마리를 펼친다’(54)는 의미였기에,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의 진화관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므로 진화라는 용어의 개념조차도 진화해온 셈이다. 그 밖에도 진화론자들이 생물학자이자 사제였던 많은 이들과의 토론과 논쟁을 겪는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사제이자 역사학 및 정치경제학교수를 지냈던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맬서스는 자신의 인구론(1798)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인구 증가 기작을 언급했다. 나아가 인구 증가의 억제 요인으로 포식자, 질병, 가용 식량’(151)을 제시한다. 앞에서 언급한 앨프리드 월리스도 자신의 책 나의 인생 My Life에서 맬서스의 인구론 에세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198)고 기록하고 있다. 다윈의 경우, 그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맬서스의 인구론은 그 다음 해(아마도 1838)에 처음 읽었다고 한다. 이 때는 비글호 항해기를 집필하던 시기이므로, 이 과정에서 인구론을 접하고 진화론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맬서스의 인구론은 진화론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맬서스 인구론의 기본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인구론의 기본 가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환경 속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는 우월하기에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논리는 자칫하면 살아남은 자들의 우월성을 강력히 지지하는 증거로 왜곡되어 변용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생학의 역사가 이러한 논리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논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책으로 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 , , 를 떠올렸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살아남은 세력이 우위를 누리게 된 이유로 맬서스의 논리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곧 현재 우위의 차이는 바로 우연한여러 환경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점이다. 어느 개체나 집단이 살아남은 것이 그 자체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가정이 맬서스의 논리와 미묘하게 차이난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차이가 도달하는 지점의 결과는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처럼 개인의 굳은 믿음 혹은 신학적 신념의 비판과 공격, 얽히고설킨 입장 및 논리의 차이를 겪어내며 등장한 이론인 셈이다.


이렇게 진화론의 역사만 보더라도, 진화론은 분명히 과거의 전통 위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인간적인 요인으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정체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후퇴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진화론 발달사가 그러하다. 이 책에서는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의 사례를 떠올려볼 수 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퀴비에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인도코끼리의 골격을 비교하고, 이를 매머드 화석과도 비교 연구를 한 인물이다. 또 코끼리를 닮은 오하이오 동물에 마스토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인물이기도 하며, 멸종이 실제 일어난 일임을 최종적으로 입증한 인물이기도 하다(135). 문제는 1810년 무렵 이후 사망할 때까지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생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종이 멸종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진화한다는 사실을 반대했다. 그 결과 적어도 진화론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라마르크와 조프루아의 연구가 한 순간에 빛을 잃게 되었다. 프랑스 생물학계는 그대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퀴비에의 영향력으로 진화론 연구의 중심은 바다 건너 영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지성사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로, 스탈린 시대의 생물학을 떠올릴 수 있다. 흔히 리센코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례는 스탈린의 요청을 받은 소련 생물학자 리센코가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되는 유전 및 진화이론을 공공연하게 부정했던 사건이다. 일명 반멜델주의 생물학으로 표현되는 리센코의 생물학은 스탈린 치하의 공식 생물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련 과학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사례에 해당한다. 이 이론에 반대하던 과학자들은 직업을 잃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가 현대사에 실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진화론을 세상에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 다윈이 인간의 위치에 대한 관점에서 크게 달랐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렇듯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대표되는 과학 연구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기에 인간적인 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진화론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에는 현대생물학, 유전학의 발달 이후의 진화론에 대해 다룬다.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다양한 생물 종과 개체들에서 세포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현미경 및 결정학의 발달 등으로 생물학은 유전 인자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용어만 알고 있던 후성유전학의 간단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수확이었다. ‘획득형질이 유전 된다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후성유전학의 교훈은 특정 환경 속에서 개체가 획득한 특징이 최소한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평유전자 전달사례처럼 유전되는 특성이 수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유전자 수준에서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311)라고 했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현대생물학의 발달이 더해져 생명에 대한 이해를 지금도 더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되기까지 기독교 사상을 비롯한 사회의 통념과 금기시된 지식에 대한 도전의 역사와 다윈 이후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 무대에 최후의 승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큰 기여를 했지만 사회적 관습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의 모습도 발견한다. 월리스와 다윈의 경우는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된 보기 드문 사례다. 실제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계급의 차이나 성차별적인 관행에 의해 뛰어난 과학자들의 공헌이 가려지고 무시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한 번 더 노벨상을 수상했을 법한 매클린톡의 사례는 후대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진화론이 형성된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인간의 편견과 신념이 어떻게 여기에 개입했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어떤 폐해를 남길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현대생물학의 발달로 유전체는 항상 역동적인 변화 상태’(299)에 있는 존재라는 것과 생물체가 돌연변이 없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311)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생물체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진화론 역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짐에 따라, 지금도 여전히 진화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의 생물이 복잡한 정도에 따라 각기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존재의 사슬‘ 내지 ‘생명의 사다리‘ 관념을 그리스 도교 사상가에게 전해준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 - P17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자로 (...) 루크레티우스조차 인간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동물은 자기 종족을 복제할 수 있어야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여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의 요소가 확실히 존재한다." - P21

"린네는 종교적이어서, 새로운 변종의 식물이 때때로 생겨난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새로운 종이 진화하여 생겨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희한한 일은 종은 불변하며 종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라고 믿은 다른 사람이 ‘진화‘라는 용어를 생물학에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린네와 같은 시대 사람인 샤를 보네다." - P51

"모든 온혈동물은 위대한 제1원인으로부터 동물성을 부여받은 단 하나의 생명 가닥으로부터 생겨났으며, (...) 따라서 타고난 원래의 활동 방식에 의해 지속적으로 개량해 나가는 성질과 그렇게 개량된 점을 세대에서 세대로 영원히 물려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자신의 책 <주노미아>에서 밝힌 생각 - P120

"매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세 가지 핵심 요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종의 개체가 늘어나 경합과 ‘생존투쟁‘이 일어날 것, 한 종에 속한 개체들 간에 ‘변이‘가 있을 것, 변이가 ‘상속‘될 수 있을 것이 그 세 가지다." - P150

"체임버스의 <창조 자연사의 흔적>(1844)은 선풍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진화를 상류 인사들의 대화 주제로 만들었다. " - P159

"월리스가 말레이 제도로 떠나기로 결정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밴 와이는 빈 출신의 어느 비범한 여성이 말레이 제도에서 보내온 귀중한 표본을 스티븐스가 취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여성은 이다 라우라 파이퍼(Ida Laura Pfeiffer)로, 1797년 태어나 1842년 남편이 죽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 P178

"1854년 9월부터는 종의 변성과 관련하여 내가 적어둔 어마어마한 양의 노트를 정리하고 관찰하고 실험하는 데 내 모든 시간을 바쳤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를 끝내고 다시 진화에 관심을 돌려 <종의 기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정황 - P182

"(<종의 기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현대의 종이 어떤 단일 개체로부터 이어 내려온 공통의 후손이라는 생각이었다." - P218

"세부 논쟁은 여전하지만 (진화론에 관한) 현대종합이론은 1930년대 초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 P254

"1980년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이나 참나무 같은 복잡한 생물체의 유전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변화 상태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P299

"‘생명의 책‘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그 책에서 어느 구절을 읽고 행동할지는 세포가 처해 있는 상황, 즉 환경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엔드 오브 타임 Until the End of Time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지음 |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그러므로 나는 특별하며 동시에 우주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과 영웅들이 등장한다. 불사의 신과 필멸자 영웅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이야기의 주요 소재다. 하지만 이 두 부류는 모두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사랑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을 갖고 보복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보통의 인간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 중에 죽어간 용사들의 이름을 자신의 시에서 일일이 호명했던 현대 시인도 있듯이, 우리 개별적인 존재는 이름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특별해질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초끈이론이론의 관점에서 평생 우주를 설명하는 통일이론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이번에 읽은 그의 저서 엔드 오프 타임 Until the End of Time은 우리의 시선을 우주의 시작에서 끝나는 지점까지 안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펴냈던 전작들에서도 조금씩은 언급을 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몸담고 있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었다. 이번에 나온 저서는 자신의 신념에서 출발하여 이라는 과제를 좀 더 폭넓게 조망하고자 했다는 인상을 준다. 일리아드에서 영웅과 함께 죽어간 수많은 전사자들처럼, 우리 개별적인 존재들의 삶이 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엔드 오프 타임에서는 빅뱅으로 비롯된 우주의 시작과 엔트로피를 비롯한 물리법칙에 입각한 우주의 진화를 여러 장에 걸쳐 소개한다. 이어 생명체가 등장하고 진화과정을 거친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에게 의식이란 능력이 갖추어지는 정황을 제시한다. 이 의식이란 무엇보다 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을 의미할 것이다. 저자가 취한 환원론적인 시각에 따르면, 우리가 특별한 이유는 외부의 환경과 반응하여 내부의 입자들이 개별적으로 특별하게배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지점은 인간사의 모든 현상에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마음은 물리법칙을 따르는 생명체에 기반을 둔다는 입장에 있지만, 물질과 마음의 관계에 있어서 환원주의에 입각한 물리 법칙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도 진지하게 고려하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그린이 젊은 시절에 과학 특히 수학과 물리학을 업으로 삼은 이유가 영원한 가치를 갖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간간이 소개하는데, 그 중 흥미로웠던 점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친형을 언급한 부분이다. 저자가 종교와 과학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연하고 다양성을 고려하는 입장은 아마도 이런 배경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와 물리학은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곳에서 불변의 진리를 찾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291)라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저자는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견해와 유사한 접근법을 취하며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자유의지는 고전물리학(결정론적)이든 양자물리학(확률적)이든 이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렇게 자유의지와 물리학의 양립가능성을 취하는 대신, 우리 각각의 내부에 형성된 복잡한 배열이 다양한 행동을 낳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하고 다양한 (행동의) 자유를 지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의 도입부에서 잠시 언급되었지만, 여러 철학자들은 종교와 과학이 죽음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에서 탄생했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신화 역시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했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저자는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고 인간으로 진화해온 정황을 이야기하는데,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존재의 유한성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화와 종교,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예술에도 이러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전한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존재이기에(그렇다고 유일한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감과 해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한다”(37)고 선을 긋는다. 이것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분별이 생겨나고, 인식능력을 얻으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일 듯하다. 인간이 본래적으로 고독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9장과 10장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물리법칙, 특히 엔트로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우주의 진화를 최신의 연구 성과를 더하여 설명한다. 그것도 아주 머나먼 미래에 우주가 겪게 될 운명을 말이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사고(생각하는) 행위가 엔트로피와 열이 서로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도 먼 미래의 우주에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를 소개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고실험이었다. 저자는 지극히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열역학적 관점에서 사고활동을 포함한 생명활동이 정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 “우주에서 오랫동안 우주를 생각해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할 것”(436)이라는 저자의 결론은 이해가 가면서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막연하게 수긍하는 것과 분명하게 자각하는 행위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종교, 과학, 철학, 예술 등)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우주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닌다. 그렇다면 우린 거대한 우주라는 무대에 잠시 등장하여 사라질 양자적 잡음에 불과한가라는 다소 회의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저자는 앞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했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특별함이 지금 여기의 삶에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개별적인 존재가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 말이다. 환원주의적 시각에서 각 존재는 입자들의 독특한 배열로 이루어진 존재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에 더하여 우리는 각자만의 자유로운 몸짓,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관점이다. 이 부분은 물리법칙이 예측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영화 <애니 홀 Annie Hall>에서 주인공이 앞으로 수십억 년만 지나면 우주가 팽창하다가 찢어져서 모든 게 사라진다는데(빅립, Big rip을 의미), 숙제는 해서 뭐하게요?”(453)라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자녀가 오늘 숙제를 해야 할 이유를 고민하는 학부모라면, 자녀가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가 시작한 시점이나 종말을 인식할 수조차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있는 지금 여기가 특별하고 의미를 지닌다는 저자의 견해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칼 세이건의 말마따나 우주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대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주다라고 할 수 있겠다. 불확정성에 근거한 양자적 요동으로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입자가 형성되었고, 입자들이 구름이 되어 뭉쳐 중력과 핵력의 영향으로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별과 행성 뿐 아니라 생명체의 출현을 예비했다. 엔트로피의 열역학법칙을 고려할 때 생명은 다소 이례적으로 물질에 갇힌 엔트로피를 해방시키는 하나의 수단’(116)으로서 역할을 한다. 통계역학 및 열역학적 관점에서 유전 물질의 안정성과 구조적 규칙성을 탐구한 에르빈 슈뢰딩거와 비교할 때 더 큰 스케일에서 생명을 바라본 셈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역작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제시했던 것과 유사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우주가 빅뱅을 통해 입자들이 등장하고, 은하와 별, 그에 딸린 행성들이 어떻게 생겨나며, 생명체의 존재가 어떻게 진화를 거쳐 인간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지점은 엔드 오프 타임과 유사하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이 지점에서 인간의 존재란 어떤 존재인지 그 본성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가까운 미래를 염려한다. 미국이 구소련과의 냉전이 아직 진행중이던 시기에 쓴 저작이기에, 특히 핵문제를 비롯한 문제 상황을 염두에 두며 읽어야 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결과물은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칼 세이건은 인류의 생존을 염려하며 인간의 연대, 연결됨의 중요성에도 주목했다.


반면 엔드 오프 타임에서 저자는 인간의 출현까지 설명한 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 보다는 의식의 출현, 그리고 우주 전체의 종말에 이르는 보다 포괄적인 범위를 전망한다. 나아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의미 찾기에 보다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우주에 관한 진실을 알았다면, ‘지금 여기의 삶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찾을지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다. <애니 홀>의 앨비 싱어가 취한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할지, 아니면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인간의 삶은) 두 어둠 사이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틈”(33)이라고 한 것처럼, 우주 속의 작은 존재에 희망을 걸지는 각자의 선택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선택의 가능성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내가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언젠가 만났던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라는 카뮈의 문장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우리는 존재 자체로 경이로운 일’(456)이라고 했지만, 카뮈는 이 존재의 의미 찾기과정을 이미 한 층 더 진지하게 밀어붙였던 것 같다.


엔드 오프 타임에서 제시된 과학 이야기는 모두 흥미롭다. 다만 무엇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부분은 우리의 오랜 과거나 머나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포함한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는 네가 아니고 왜 나인가?’라는 문제를 독자와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우리가) 왜 특별한가?’라는 문제를 두고 앞으로 더 생각해보라는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를 잘 표현한 예술 작품을 꼽으라면, 난 폴 고갱(Paul Gaughuin)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떠올리겠다. 이 작품은 고갱이 자살을 시도 했다가 실패한 후 남긴 대작이기에, 카뮈의 문제의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그린의 관점에 따라 생각해보면, 고갱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진지하게 탐구한 사람이었다





Paul Gaughuin (1897년 작)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처럼 모든 생명 현상과 정신도 유한하다." - P22

"별과 행성, 그리고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우주를 생각할 때, 지금 이 시대는 참으로 특별하다." - P35

"분자의 수가 작거나, 온도가 낮거나, 점유 공간의 부피가 작으면 엔트로피가 작고, 부자의 수가 많거나, 온도가 높거나, 점유 공간의 부피가 크면 엔트로피가 크다."
- 엔트로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의 결론
- P57

"지금도 우주 곳곳에서는 증기 기관 내부의 엔트로피가 주변 환경으로 방출되는 것과 유사한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을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이라 부르기로 하자." - P72

"모든 동물의 세포는 서로 비슷하다. 현존하는 모든 다세포 생물은 먼 옛날에 존재했던 단세포 생물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이다." - P134

"모든 생명 현상은 최후의 쉼터를 찾아가는 전자(electron)의 여정이다"
- 생명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의 핵심이 ‘산화환원‘ 반응임을 의미한다. - P142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시행차오를 통한 혁신에 가깝다." - P151

"우리는 입자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감정이 생성되는 과정은 모른다. 곧 ‘마음이 없는 입자가 어떻게 마음을 만들어내는가?‘라는 문제는 환원주의에 입각한 물리 법칙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 P187

"자유의지는 우리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물리 법칙에서 온 것이 아니다."(219)

"당신의 행동은 자유의지와 무관하다 해도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484, 미주46) - P219

"인간의 감정은 문화적 적응이 아닌 생물학적 적응과정의 산물이다."
-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재인용 - P302

"예술이란 불멸을 추구하는 행위다."(319)
- 키스 해링 Keith Haring

"예술가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영원을 향한 갈망을 창조적인 작품으로 구현한다."(342)
- 브라이언 그린이 키스 해링의 표현을 조금 바꾸어 표현한 듯한 문장 - P319

"생명 현상(두뇌활동 포함)은 엔트로피 폐기물(폐열 waste heat)을 외부로 방출해야만 한다."
-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먼 미래의 생명과 마음을 예측하는 논문의 기본 전제

"사고체 thinker가 생각과 휴식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 영원히 생각할 수 있다"
- 다이슨 논문의 핵심 주장(사고 행위가 필연적으로 열을 낳기 때문임) - P386

"우리 우주에서 오랫동안 우주를 생각해온 생명과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 P436

"모든 사람들이 정체성을 잃었다. 죽음이 없으면 단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한다...나는 신이며, 영웅이며, 철학자이며, 악마이며, 세상 자체다. 이는 곧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루이스 보르헤스 <불멸 The Immortal>에 나오는 표현으로 보르헤스의 통찰이 감동적이기도 하고 놀랍다. - P447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 P4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지된 지식 -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지된 지식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Ernst Peter Fischer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

 

 

지식은 금지가 아니라 통제되어야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괴테의 파우스트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구약 성서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이 모든 캐릭터의 공통점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나는 이들이 앎 또는 지식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는 점이라고 답하겠다물론 이 관점은 과학저술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금지된 지식에서 제시한 것을 기반으로 종합해본 것이다저자는 오디세우스가 지식에 중독된 자이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어 하여항해를 통해 모든 경계를 넘어서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 말한다파우스트는 이 세상의 온갖 지식을 섭렵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결국 악마와 계약을 맺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기면서까지 감각적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추구하려 한다또 저자는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를 지식과 진실을 향한 인간의 욕망’(302)을 드러내는 인물로 해석한다신탁이 예언한 금지된 지식을 얻자어머니이자 아내는 자살하고오이디푸스 자신은 핀으로 눈을 찌른다구약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금단의 열매를 먹는다그 결과 분별을 얻는 대신 에덴에서 영원히 추방당한다.

 

이처럼 문화사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식에 목말라 한다는 점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 추구가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9)라고 언급했는데고대인들도 이미 알고자하는 충동호기심을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이 본능이 얼마나 강렬한지는 문학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이야기 문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천일야화를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화자인 셰에라자드 공주는 인간의 강한 호기심을 이용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제한하고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지켜낸다이 이야기를 지어낸 이들은 분명히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이들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 속의 이야기와 작품의 구성에 어떻게 반영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바로 이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앎에 대한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이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금지되어 왔는지를 폭넓은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저자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식의 위상에 대해 먼저 검토를 한다저자는 지식이 무엇인지 묻는데그에 따르면 지식이란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대상’(21)이다나아가 지식과 정보’, ‘데이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한다정보는 이해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곧 1차적으로 우리에게 접수된 것으로신체에 감지된 감각 정보를 떠올릴 수 있겠다이에 반해데이터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다이렇게 데이터정보지식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위계구조를 갖는데지식을 의미 있게 사용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따라서 지혜는 단지 인지 작용이 대상에 개입된 것을 넘어 어떤 가치를 내포하게 된다한편 지식에는 인간의 인지작용이 개입하기 때문에 각각의 인식 주체에 따라 지식 도출과정과 그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따라서 인간이 타인과 겪게 되는 충돌과 불화는 어떤 면에서는 앎에 대한 강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앎에 이르는 과정그리고 앎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에 따르면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지식과 성의 긴밀한 유착관계다뱀의 유혹을 통해 이브가 획득한 금지된 지식은 금지된 사랑’ 곧 성적 결합을 의미한다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사회 권력이 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규정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57)한다그는 인류사에서 지식과 성에 권력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보여주었다이렇게 권력이 지식과 성에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은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한편 서양 사회에서 이러한 특징을 예비했던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닐까한다그는 어느 시기에 계시를 받고 회개한 후,고백록을 쓴다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반성하는데중요한 것은 그가 원죄’ 개념을 생각하고 종교 철학에 도입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이 개념은 곧바로 지식에 대한 금지로 이어지게 되었다피셔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억누르고 금지했던 인물로 평가한다그의 원죄 개념이 종교라는 권위와 결합하여 도출한 금지된 지식은 인류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무엇보다 유럽 지식인의 관점에서 지식 금지의 역사를 방대하게 다룬다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내에 큰 영향력을 지니는 미국문화 중심 사례가 아니라 유럽 중심의 사례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한국인 독자로서 비교적 신선하게 다가왔다또한 저자는 구체적이고 수많은 지식 금지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금지된 지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이미 우리는 전 세계가 팬데믹에 영향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이 과정에서 우리는 왜곡되고 비밀스럽게 유지된 정보가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경험했다발병 초기에 (COVID-19의 시작이 정말로 중국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중국 정부 당국이 환자들에 대한 정보를 숨기기만 급급했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또 국내 모 종교집단의 방역지침 무시와 비협조정보의 은폐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분명히 보았다저자는 정보지식 사회에서 지식의 은폐가 권력에 의해 이루어질 때 사생활의 권리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예를 들면저자는 정보 권력에 의해 개발된 알고리즘으로 인간이 감시받게 될 때를 제시한다손글씨나 얼굴 분석만으로도 해당 사람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알아내는 사례는 독자를 왠지 오싹하게 만든다이제 우리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보다 더 공개되고 투명해질수록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은폐된 지식이 공개되어 왜곡되어온 진실을 바로잡고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지식의 투명성이 모든 경우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최종적인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할 때 제안된 근거 기록에 대한 열람 금지 기간이 지나 공개되었을 때저자는 실망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수상자를 결정한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무지와 오판을 알게 된 저자는 오히려 투명성이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모든 마술에 대해 비밀스러운 진실을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마술사의 침묵을 바란다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저자가 지식에 대해 갖는 양가적인 태도다다시 말해저자는 지식을 금지하기 전에 지식을 책임감 있게 대하는 일”(244)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아울러 고객을 착취하고 이들의 정보를 대가 없이 빼앗는’ 정보 권력 페이스북의 사례와 인간유전자 정보와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결국 저자가 지식에 대해 갖는 태도는 (지식이금지되어서는 안 되지만 통제되어야 한다’(364)는 입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결국 저자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항은인간의 지식을 향한 충동은 기본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인간의 호기심을 인정하고이를 강제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이런 본능은 유전자 조작이나 권력으로도 금지시킬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저자의 관점은 인간이 지혜를 모아 이런 지식에 대해 제한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에 더 가깝다금지되지 않은 것은 인간을 급속히 지루하게 만든다하지만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한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진실을 향한 열망과 환상에서 느끼는 기쁨으로 충분하다’(311)고 느끼는 역설적인 존재인지 모른다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금지된 지식과 관련한 과거 사례를 검토하여점점 강력해지는 정보 권력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나아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조건을 우리가 다시 인식하길 요구하고우리의 호기심그리고 지식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갖추길 바란다그래야 비로소 지식 그 자체가 또다시 만들어내는 비밀에 인간은 계속해서 호기심과 감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리뷰의 마무리는 이 책에서 줄곧 언급 된 파우스트의 한 구절로 마무리해본다.

 

그걸 인식한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어리석어서충만한 마음을 혼자 간직하지 못하고

몽매한 무리에게 자신이 느낀 것본 것을 발설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은 자고로 십자가에 매달리고 불태워졌지.

자아이보게밤이 깊었네,

이제는 그만해야겠네."

(파우스트 I, 정영애 역, 123)



"지식 추구가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언급한 말 - P9

"금지된 지식은 우리를 뜨겁게 만든다."
: 볼프 비어만의 말 - P15

"지식을 향한 갈망은 성적인 호기심과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P65

"(태양 중심 체제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저주는) 맹목적인 배척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우주론에 담긴 종교적, 정치적 함의가 불러올 막연한 공포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역사가(미시사 전공)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언급 - P145

"핵시대에 확실한 안전 보장의 근본 전제는 개방성과 공개성뿐이다."
"(인류는) 대중적 이해와 비밀 정치 및 권력 정치의 추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이후 ‘원자력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숙고하고 한 말. - P171

"인간은 지금까지 지성(Verstand)에 붙잡혀 있었고, 그 도움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성(Vernunft)을 생각해야 하며, 이성의 도움으로 지구 위에서 인류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 칼 야스퍼스의 말 - P205

"지식이란 인간이 관찰 감각을 통해 모으고 시각적 인지를 통해 인식한 경험적 재료를 개념이나 생각과 연결한 다음, 이 연결을 자신의 관점으로 표현하여 외부에 전달하는 일을 뜻한다." - P207

"진정 중요한 건, 지식을 금지하기 전에 지식을 책임감 있게 대하는 일이다." - P244

"진실은 인간에게 요구될 수 있다."
: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1959년 연설 인사말(진실과 작가의 역할에 대한 언급) - P274

"칼 포퍼에 따르면, 과학은 잠정 지식만을 전달할 수 있고 또 다른 실험에서 반박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고려와 의심은 오로지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활동이다." - P292

"금지되지 않은 것은 인간을 급속하게 지루하게 만든다." - P319

"국가의 정보 권력이 강해짐에 따라 ‘사생활의 권리‘는 어려움에 놓여 있다. 조세제도는 개인 정보에 대한 개입을 요구했다." - P328

"오늘날 절대적으로 사적인 것은 점점 더 공적인 것이 된다." - P348

"공적 영역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의 편재성 때문에 사적 에로스는 사멸한다."
: 사회학자 라이너 그로네마이어의 언급 - P355

"인간은 삶에 드리운 장막에 오히려 감탄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비밀을 준다. 인간은 이에 대해 진정으로, 계속해서 감탄할 수 있다." - P3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