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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오리진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3월
평점 :
《진화의 오리진》
(On the Origin of Evolution)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 권루시안 옮김 | [진선출판사]
‘진화론에 이르는 서구 지성사의 한 단면, 진화중인 진화론의 연대기’
지금부터 162년 전 3월, 50세 생일을 막 지난 중년의 남자는 자신이 쓰던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했다. 기대감과 일말의 두려움을 안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찰스 로버트 다윈, 그는 자신이 막 완성한 《종의 기원》이 당대에 논란의 중심이 될 것임을 짐작했겠지만, 이후 전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어버릴 줄 짐작했을까. 오늘날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한 그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이라도 누구나 다윈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에서는 ‘천재과학자’라는 타이틀도 심심찮게 사용한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기작’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그 역시 거인의 어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다양한 과학 분야의 소재에 대해 책을 쓴 메리 그리빈·존 그리빈 부부가 《진화의 오리진》에서 주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마치 물을 가열할 때, 물속에서 분자들의 운동이 빨라지고, ‘거대한’ 대류가 형성되며, 바닥에서 기포가 생성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끊어 넘치는 것처럼, 진화론도 수많은 이들의 고민과 이의제기, 논쟁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나아가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진화론의 계보에 속한 많은 이들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글쓰기가 인상적인 이유는 고대의 자연철학자들부터 현대의 후성유전학 분야까지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내놓은 핵심적인 주장을 짚어 내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간결하게 정리해내는 능력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끼지만, 이런 작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 ‘진화론’이라는, 섭씨 100도의 상태에 도달하기 직전의 물속을 면밀히 조명하고, 나아가 진화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론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진화의 세 가지 요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같은 종 내의 경합과 생존 투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개체들 간의 변이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할 것,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세대를 거쳐 ‘상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 요건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두 명의 사냥꾼을 쫓는 회색곰 이야기’다. 곰은 두 사람보다 빠르지만, 이 위기에서 생존가능성이 큰 사냥꾼은 두 사람 중에 보다 빠른 사람이다. 이 우스개에는 진화의 첫 번째 요건의 핵심이 담겨 있다. 바로 다윈이 말하는 ‘생존 투쟁’은 종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같은 종 내에서의 경쟁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두 요건은 책의 후반에서 보다 깊은 의미가 다루어지고 있다. 현대생물학의 발전으로 DNA의 구조와 역할이 규명된 이후, 후성유전학과 같은 분야의 등장으로 진화의 의미가 보다 확장되고 깊이 이해되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이러한 진화의 개념과 요건들이 다윈 혼자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개념은 이미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이 고민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좀 더 가깝게는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떠나기 전인 1831년에 패트릭 매튜(Patrick Matthew)라는 사람이 쓴 책 부록에 이미 실려 있었다. 매튜는 ‘자연법칙에 의한 선택’을 언급하면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거의 만들어내었다(149), 라고 그리빈 부부는 지적한다. 게다가 매튜는 현대생물학 지식 없이도, 앞서 언급한 진화의 핵심 요건 세 가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끓는 물(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 직전 물속의 상태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렇다고 다윈의 업적이 빛을 잃는 것도 아니다. 다윈은 커다란 업적은 끓기 전의 자신의 시공간이라는 물속에서 진화론이 인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필요한 임계치를 성공적으로 넘었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아는 진화론으로 나오기까지 이미 많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는 점을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배울 수 있었던 부분은, 다윈의 업적이 오랜 시간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오랜 시간 거듭난 결과라는 점이다. 《종의 기원》에는 다윈이 20년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고, 책을 읽고 이해한 활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과의 서신 교환 및 토론의 흔적이 담겨 있다. 특히 《진화의 오리진》에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주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의 교류가 꽤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다윈의 세계와 월리스의 세계, 이렇게 다양한 각자의 시공간이 ‘진화론’의 정립이라는 목표을 향해 실감나게 병치되어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진화론이 ‘천재’ 다윈의 작품이라고 하기보다, 서구지성사가 이루어낸 인류 공동의 지적 결과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책을 읽으며 진화론에 이르는 과정이 지난한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이 무엇보다 기독교 전통이 강했던 유럽, 특히 영국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대립해온 인간 지성의 도전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샤를 보네(Charles Bonnet)가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를 자신의 책에 처음 사용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 ‘에볼루치오넴(enolutionem)'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만 보네가 이 용어에 담고 있던 생각은 ‘하느님이 종을 창조했으며, 이 종은 불변 한다’(51)는 것이었다. 바로 ‘이미 적혀 있는 (하느님의) 두루마리를 펼친다’(54)는 의미였기에,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의 진화관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므로 ‘진화’라는 용어의 개념조차도 진화해온 셈이다. 그 밖에도 진화론자들이 생물학자이자 사제였던 많은 이들과의 토론과 논쟁을 겪는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사제이자 역사학 및 정치경제학교수를 지냈던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맬서스는 자신의 《인구론》(1798)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인구 증가 기작을 언급했다. 나아가 인구 증가의 억제 요인으로 ‘포식자, 질병, 가용 식량’(151)을 제시한다. 앞에서 언급한 앨프리드 월리스도 자신의 책 《나의 인생 My Life》에서 ‘맬서스의 인구론 에세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198)고 기록하고 있다. 다윈의 경우, 그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진화’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맬서스의 《인구론》은 그 다음 해(아마도 1838년)에 처음 읽었다고 한다. 이 때는 《비글호 항해기》를 집필하던 시기이므로, 이 과정에서 ‘인구론’을 접하고 진화론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맬서스의 ‘인구론’은 진화론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맬서스 ‘인구론’의 기본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인구론의 기본 가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환경 속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는 우월하기에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논리는 자칫하면 살아남은 자들의 우월성을 강력히 지지하는 증거로 왜곡되어 변용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생학’의 역사가 이러한 논리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논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책으로 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 《총, 균, 쇠》를 떠올렸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살아남은 세력이 우위를 누리게 된 이유로 맬서스의 논리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곧 현재 우위의 차이는 바로 ‘우연한’ 여러 환경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점이다. 어느 개체나 집단이 살아남은 것이 그 자체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의 가정이 맬서스의 논리와 미묘하게 차이난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차이가 도달하는 지점의 결과는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처럼 개인의 굳은 믿음 혹은 신학적 신념의 비판과 공격, 얽히고설킨 입장 및 논리의 차이를 겪어내며 등장한 이론인 셈이다.
이렇게 진화론의 역사만 보더라도, 진화론은 분명히 과거의 전통 위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인간적인 요인’으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정체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후퇴한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진화론 발달사가 그러하다. 이 책에서는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의 사례를 떠올려볼 수 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퀴비에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인도코끼리의 골격을 비교하고, 이를 매머드 화석과도 비교 연구를 한 인물이다. 또 코끼리를 닮은 ‘오하이오 동물’에 마스토돈이라는 이름을 붙인 인물이기도 하며, 멸종이 실제 일어난 일임을 최종적으로 입증한 인물이기도 하다(135). 문제는 1810년 무렵 이후 사망할 때까지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생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종이 멸종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진화’한다는 사실을 반대했다. 그 결과 적어도 진화론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라마르크와 조프루아의 연구가 한 순간에 빛을 잃게 되었다. 프랑스 생물학계는 그대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퀴비에의 영향력으로 진화론 연구의 중심은 바다 건너 영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지성사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로, 스탈린 시대의 생물학을 떠올릴 수 있다. 흔히 ‘리센코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례는 스탈린의 요청을 받은 소련 생물학자 리센코가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되는 유전 및 진화이론을 공공연하게 부정했던 사건이다. 일명 ‘반멜델주의 생물학’으로 표현되는 리센코의 생물학은 스탈린 치하의 공식 생물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련 과학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사례에 해당한다. 이 이론에 반대하던 과학자들은 직업을 잃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가 현대사에 실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진화론을 세상에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앨프리드 월리스와 다윈이 ‘인간의 위치’에 대한 관점에서 크게 달랐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렇듯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대표되는 과학 연구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기에 ‘인간적인 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진화론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에는 현대생물학, 유전학의 발달 이후의 진화론에 대해 다룬다. 이제 과학자들의 관심은 다양한 생물 종과 개체들에서 세포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현미경 및 결정학의 발달 등으로 생물학은 ‘유전 인자’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용어만 알고 있던 ‘후성유전학’의 간단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수확이었다. ‘획득형질이 유전 된다’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후성유전학의 교훈은 특정 환경 속에서 개체가 획득한 특징이 최소한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평유전자 전달’사례처럼 유전되는 특성이 ‘수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유전자 수준에서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인 그리빈 부부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311)라고 했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현대생물학의 발달이 더해져 생명에 대한 이해를 지금도 더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되기까지 기독교 사상을 비롯한 사회의 통념과 금기시된 지식에 대한 도전의 역사와 다윈 이후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 무대에 최후의 승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큰 기여를 했지만 사회적 관습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의 모습도 발견한다. 월리스와 다윈의 경우는 그나마 훈훈하게 마무리된 보기 드문 사례다. 실제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계급의 차이나 성차별적인 관행에 의해 뛰어난 과학자들의 공헌이 가려지고 무시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한 번 더 노벨상을 수상했을 법한 매클린톡의 사례는 후대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진화론이 형성된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인간의 편견과 신념이 어떻게 여기에 개입했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어떤 폐해를 남길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현대생물학의 발달로 ‘유전체는 항상 역동적인 변화 상태’(299)에 있는 존재라는 것과 ‘생물체가 돌연변이 없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311)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생물체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진화론 역시 우리의 이해가 넓어짐에 따라, 지금도 여전히 진화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의 생물이 복잡한 정도에 따라 각기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존재의 사슬‘ 내지 ‘생명의 사다리‘ 관념을 그리스 도교 사상가에게 전해준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 - P17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자로 (...) 루크레티우스조차 인간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동물은 자기 종족을 복제할 수 있어야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여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의 요소가 확실히 존재한다." - P21
"린네는 종교적이어서, 새로운 변종의 식물이 때때로 생겨난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새로운 종이 진화하여 생겨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희한한 일은 종은 불변하며 종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라고 믿은 다른 사람이 ‘진화‘라는 용어를 생물학에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린네와 같은 시대 사람인 샤를 보네다." - P51
"모든 온혈동물은 위대한 제1원인으로부터 동물성을 부여받은 단 하나의 생명 가닥으로부터 생겨났으며, (...) 따라서 타고난 원래의 활동 방식에 의해 지속적으로 개량해 나가는 성질과 그렇게 개량된 점을 세대에서 세대로 영원히 물려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 자신의 책 <주노미아>에서 밝힌 생각 - P120
"매튜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세 가지 핵심 요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종의 개체가 늘어나 경합과 ‘생존투쟁‘이 일어날 것, 한 종에 속한 개체들 간에 ‘변이‘가 있을 것, 변이가 ‘상속‘될 수 있을 것이 그 세 가지다." - P150
"체임버스의 <창조 자연사의 흔적>(1844)은 선풍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진화를 상류 인사들의 대화 주제로 만들었다. " - P159
"월리스가 말레이 제도로 떠나기로 결정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밴 와이는 빈 출신의 어느 비범한 여성이 말레이 제도에서 보내온 귀중한 표본을 스티븐스가 취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여성은 이다 라우라 파이퍼(Ida Laura Pfeiffer)로, 1797년 태어나 1842년 남편이 죽은 뒤 여행을 시작했다." - P178
"1854년 9월부터는 종의 변성과 관련하여 내가 적어둔 어마어마한 양의 노트를 정리하고 관찰하고 실험하는 데 내 모든 시간을 바쳤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를 끝내고 다시 진화에 관심을 돌려 <종의 기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정황 - P182
"(<종의 기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현대의 종이 어떤 단일 개체로부터 이어 내려온 공통의 후손이라는 생각이었다." - P218
"세부 논쟁은 여전하지만 (진화론에 관한) 현대종합이론은 1930년대 초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 P254
"1980년대에 이르러 우리 인간이나 참나무 같은 복잡한 생물체의 유전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변화 상태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P299
"‘생명의 책‘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그 책에서 어느 구절을 읽고 행동할지는 세포가 처해 있는 상황, 즉 환경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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