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Ann Druyan) 지음 |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위한 짧은 변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모두 읽어본 한 지인은 앤 드루얀의 책이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아직도 칼 세이건의 이 유명한 책을 읽어보진 못했기에 지금 두 권을 비교해서 평을 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신간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점들을 독후기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칼 세이건의 저작은 이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인데다, 많은 독자 팬을 두고 있기에, 후속작이 전작을 능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내가 앤 드루얀의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이 공식적이든, 개인적이든 전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 책 나름의 자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앤 드루얀은 이미 여러 권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 <코스모스> 작업 등을 오래 해온 베테랑 작가이자 감독이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책이 남편의 작업이자 전작을 넘어서기를 목표로 경쟁했던 것이 아니다. 책 끝부분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저 독자와 소통하고 이어지길 바랐다’(423)는 고백을 하고 있다. 어느 작업이 더 훌륭하냐를 따지는 것은 물론 독자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이고, 이 문제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책이 그 나름의 장점과 주목할 만 한 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과거 칼 세이건의 주요 저작(물론 앤 드루얀과 공저한 작업을 포함하여)은 주로 미소 냉전이 한창일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과학기술에 힘입어 만들어진 원자 폭탄과 같은 가공할만한 무기로 인한 인류 공멸의 위험을 절실히 체험했고, 이를 꾸준히 경고했었다. 냉전 시대가 저문 후, 앤 드루얀은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문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책에 절실히 담고 있었다. 이 점에서 앤 드루얀은 과거 두 사람이 인류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던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볼 수도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앤 드루얀의 책은 아주 깊이 있게 내용을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문제를, 마치 스몰토크를 하듯 가뿐히 다루면서도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놓지 않는 다. 나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과학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편안한 자리에서 듣고 의견을 나누는 것 같아 독자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도 분명 독자의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물론 책에는 저자가 칼 세이건과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은 익숙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이는 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앤 드루얀의 공식적인 작업이 결국은 칼 세이건과 함께 했던 시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이 한 사람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상실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로 나아가 전 세계 독자의 삶에 닿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앤 드루얀의 염려는 저자가 인용한 스피노자의 한 마디에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한 마디,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 종자 은행 개념을 제안했던 식물학자 바빌로프의 행적에서, 지구의 재앙이 임박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마나베 슈쿠로의 논문 등에 관한 이야기들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써놓고 보니 꽤나 일방적인 칭찬만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두고 지인이 남긴 평에 대해 내가 좋았던 점을 정리해보고자 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가 후대인들이 선대의 업적을 기반으로 혹은 이 업적을 개선함으로써 선대의 지적 성취를 딛고 올라설 수 있었던 인류사의 장면들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 책이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는 만큼 각각의 화제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더 깊은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앤 드루얀이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던 연설을 인용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남겨보고자 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26)

 

우리가 흔히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할 때,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도 그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묻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 문장은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감안할 때, 여전히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한 아인슈타인의 연설 재인용 - P26

"사람들의 마음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과 이성으로만 정복할 수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 - P76

"꿈에서 책임이 시작된다"
-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처음 사용한 말 재인용 - P126

"바빌로프와 동료 식물학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미래가 그토록 손에 잡힐 듯하고 귀중한 현실로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71

"우리는 모두 똑같은 도구 상자로 만들어졌고... 똑같은 유전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다만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밟아 왔을 뿐이다." - P266

"양자세계의 무법적 카지노에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 - P325

"우리가 예측력을 발휘하는 과학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손 놓고 앉아서 그 예측이 현실로 실현되길 기다리기만 할 거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 P414

"나는 더 이상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독자와 소통하기를, 독자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코스모스> 이후의 내 모든 작업은 매일 칼에게 바치는 사랑의 선물이었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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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4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앤두루얀의 책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혀지게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넣었고 (지루하지 않게 편집도 잘됨)
남편의 인간적인 모습도 좋았어요
남편은 워낙 세계적인 과학자 였고 코스모스 라는 책보다 미국에서 영상물로 더 많은 대중들에 관심을 모아서 전문성을 놓고 평가하기보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마지막 헌사 처럼 읽혀졌어요.

초란공 2021-05-16 22:07   좋아요 1 | URL
저도 scott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한 사람을 그렇게 평생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일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