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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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한 과잉 살육과 멸종의 연대기

그리고 오래된 인류의 미래 - 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지음 |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쌤앤파커스] | (2022)

 

 


우리가 바로 그들에게 닥친 불운이었다.

 

이 말은 독일 쾰른의 어느 박물관 연구원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에게 건넨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를 가리키고,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을 가리킨다. 인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등장하면 으레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대 연구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는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절시켰다는 것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고유전학의 창시자 스반테 페보도 인류의 DNA가운데 몇%정도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들이 함께 자손을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DNA 안에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참으로 놀라운 면모를 지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로 사라져간 존재는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닌 듯하다. 인류가 존재한 흔적이 있는 곳에서는 으레 대형 동물이 비슷한 시기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 주목하기 전에는 생물 종의 멸종이라는 생각이 인류의 지성사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시기에 지식인들이 생물의 멸종에 대해 가정하고 있는 지배적인 관점은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멸종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나마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멸종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는 점진적인 멸종개념이었다.

 

한 가지 예로, 찰스 다윈과 공동으로 진화 개념을 정립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처럼 생물의 멸종이 기후 변동에 따른 결과로 해석했다. 기후 변동설을 지지한 인물에는 다윈에게 큰 영향을 미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월리스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에서 생물(특히 고대 생물)의 멸종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꾸게 된다.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 (...) 나는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급격히 절멸한 것이 사실 인간이라는 행위자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322)

 

점점 드러나는 화석의 증거들로 생물이 멸종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힘을 잃게 되었지만, 이후 멸종에 관한 개념은 고대 생물이 점진적으로 멸종했다는 견해와 급격한 절멸로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해부학자로 알려진 조르주 퀴비에다. 그는 탁월한 해부학적 지식으로 마스토돈이라고 부른 동물이 다른 대륙에서 발견된 전혀 다른 종의 코끼리였음을, 그리고 이 오래 전의 생물이 빠른 시기에 멸종했음을 주장했다. 조르주 퀴비에는 (급격한) 멸종이 사실임을 입증했던 셈이다. 반면 라마르크는 대격변 이론으로 불리던 퀴비에의 멸종 개념에 단호히 반대했다고 한다. 다윈 역시 점진적인 진화와 멸종을 지지한 덕에 퀴비에의 멸종 개념을 비판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종의 기원에서 종의 멸절이라는 주제는 불필요한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었다.라고 써두었겠는가. 여기에는 퀴비에에 대한 다윈의 암묵적인 조롱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퀴비에의 급격한 멸종 개념은 당시에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증거가 쌓이면서, 연구자들은 수많은 동물, 특히 거대 동물이 절멸한 까닭이 바로 인류의 도래 때문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대자가 많이 있던 시기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대형 동물의 급격한 절멸의 이유가 인간 때문이라는 결론이 다시 힘을 얻은 셈이다. , , 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왜 수천만 년 동안의 숱한 가뭄에도 살아남았던 호주의 거대 동물이 공교롭게도 정확히 최초의 인류가 도착하자 거의 동시-수백만 년을 단위로 하는 지질사적 의미에서-에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324) (, , 에서 재인용)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저자가 보다 문제시한 사항은, 지구 역사상 지금까지 발생했던 다섯 번의 대멸종이 아니다. 이런 대멸종은 우연에 의해, 혹은 불가피한 우주의 현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이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절멸의 위기에 놓였다는 경고가 이 책의 강력한 메시지다. 여기에 더하여 전 지구적인 멸절 문제가 제기하는 우려 사항의 핵심은 멸종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변화의 속도. 여기에 인간이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백악기 말에 소행성 충돌로 공룡을 비롯한 생물종의 대량 멸종을 처음 설명한 월터 앨버레즈의 말처럼, 우리는 바로 인간이 대량 멸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369)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날지 않는 새모아의 멸종을 한 사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모아는 단테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까지 살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상륙한 마오리족이 모아 사냥을 시작한 이후 몇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멸종했다. 1800년대 초에 뉴질랜드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거대한 모아 뼈가 쌓여 있는 무덤만 보았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약 10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 100만 마리 가까이 있던 검은코뿔소는 이제 약 5000마리 남짓 남아있다. 이마저도 고가에 팔리는 뿔 때문에 다시 밀렵꾼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인간의 손이 닿은 곳에서 어김없이 거대 동물이 멸종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사례다.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도 고래는 멸종할 것인가?’라는 장을 통해 동물의 멸종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거대 포유류의 멸종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40(인간에게 반평생의 시간)전만 해도, 일리노이주에서 버팔로의 개체 수는 현재 런던의 인구수를 앞섰으나, 지금 그 지역에서는 버팔로의 뿔이나 발굽을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충격적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창이었다.”(561, 모비 딕,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2)

 

이 소설이 다윈의 종의 기원보다 8년 앞서 출간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구자는 아니지만 지식인으로서 멜빌은 실제 자신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과잉 살육행위를 면밀히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어느 생물 종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멸종현실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이제는 무엇보다 인간의 활동 때문이다. 이 상황을 우려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생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침입종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생 인류가 침입종이 된 시기는 우리의 조상이 약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주한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이 설명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단일기원설’(343)에 근거한 추정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고유전학의 창시자 스반테 페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작은 인구집단의 후손이라고 보는 단일 기원설에 배치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가설이건,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하여 아이들을 낳고, 유럽, 아시아, 신대륙의 인구를 구성하는데 기여했지만, 결국 네안데르탈인을 멸절시킨 장본인으로 여겨진다.

 

정리해보면 침입종으로서의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거대 포유류의 멸종을 초래했다. 다만 이 경향을 더욱 가속한 계기가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사건이다. 이로부터 아프리카인의 노예 매매를 비롯하여 각종 동물의 대륙 간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저자 콜버트는 콜럼버스 시기 이후 초래된 방대한 생물학적 스와핑을 콜럼버스 교환(Columbus Exchange)'라고 부른다. 콜럼버스의 시대에 지구 반대편으로 항해하려면 1-2년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치명적인 감염병 보균자가 하루 만에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콜럼버스 교환은 더욱 큰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많아졌다.

 

저자가 언급하는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특히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파나마에서 희귀종인 황금개구리와 청독화살개구리가 항아리 곰팡이 때문에 사라지고, 이 곰팡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저자의 책 출간(2014) 직전인 2013년에 호낭성 균류(곰팡이)가 박쥐에게 일으키는 흰코증후군으로 몇 년 사이 북미 대륙에서만 박쥐 600만 마리가 사라져버린 일은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위기의식을 주었다. 이 모든 결과가 인간의 부단한 이동 때문에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외래종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침입종이 되는 사례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는 지역의 종 다양성에 기여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침입종이 고유종을 멸절시키는 사례도 많다. 결국 전 지구적인 다양성은 결국 감소하게 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멸종의 쓰나미사례는 큰 포유동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곰팡이, 바이러스에 이르는 침입종의 유입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299). 여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이다. 이제 지구상에는 야생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인간은 지리적인 경계를 허물고 이를 넘어버렸다. 저자는 이 현상을 신판게아라고 부른다. 판게아는 33500만 년 전 즈음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초대륙은 부단한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갈라지고 이동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지질학적으로 오랜 시간 분리된 대륙이 이제는 인간의 행위로 지질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판게아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극적인 속도로 재편하고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는 이 변화의 속도. 한 침입종은 생태계에 유입되어도 대개는 살아남지 못하거나 지배종으로 될 수 있는 적절한 시간과 조건이 주어질 때, 지역에 적응하여 하나의 고유종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상징적인 초대륙 환경을 급속히 재편하며 지구를 혹사시키고 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수많은 멸종 사례 및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언급하며 인간이 야기하는 여섯 번째의 대멸종을 경고한다. 이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 역시 생태계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과 부단히 연결된 상태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기에, 사람이 야기한 파괴의 끝은 결국 우리 인간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다른 생태계 구성원들을 멸종에 몰아넣고도 아무런 영향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강인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발휘했지만, 저자는 이들의 회복력이 무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페이지마다 일러주는 듯하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글 앞에서 독일의 어느 연구원이 저자에게 했던 말을 조금 바꾸어보면 우리가 대답해야하는 질문은 이거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 될 것인가?” 




[1] "모든 개구리의 가치가 저에게는 코끼리만하게 다가옵니다."(35)
- 백악기 대멸종에도 살아남은 양서류가 사라지는 상황을 보고 한 양서류보전센터 책임자가 한 말

[2] "종들이 사라지는 데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 과정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늘 동일한 범인인 ‘일개의 나약한 종(인간)‘을 만나게 된다."(45)

[3] "18세기 말까지는 멸종이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146)
- 멸종은 해부학자 조르주 퀴비에에 의해 입증되었다.

[4] "생물다양성 감소가 일어날 것이라는 증거는 확실하다."
"해양 산성화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놈이 곧 다가올 겁니다."(181)
- 환경연구가들의 경고

[5] "인류는 땅속의 석탄과 석유를 꺼내 태움으로써 수천만 년 이상 - 대개는 수억 년 동안 - 격리되어 있던 탄소를 대기 중에 되돌려 놓고 있다. 그것은 지질사를 거꾸로, 그것도 초고속으로 되돌리는 일이다."(186)

[6] "여러 세대에 걸친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산호의 방식은 인간이 해온 방식과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그 과정에서 다른 생물들을 쫓아내지만, 산호는 다른 생물들을 돕는다."(193)

"산호는 생태계의 건축가입니다. 그러니 산호가 사라지면 그 생태계 전체가 사라지는 건 자명한 일이지요."(207)

[7] "관건은 속도다. 오늘날의 온난화는 마지막 빙기를 비롯하여 이전의 모든 빙기말에 일어났던 것보다 최소 10배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235)

[8] "무척추동물은 윌슨이 말한 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일 수 있지만, 작다는 이유로 간과되기 쉽다."(269)

[9] "인간 활동은 기후 변화 - 자연적인 기후 변화를 포함하여 - 에 따라 생물다양성이 확산할 수 있는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왔다. (이 결과는) 역사상 생물에게 닥친 그 어떤 위기보다 심각한 위기가 될 수 있다."(271)
- 환경운동가 톰 러브조이의 말

[10] "먼 미래를 내다보자면, 생물계는 궁극적으로 더 복잡해지기보다는 더 단순하고 빈곤한 상태가 될 것이다."(300)

[11] "나는 그렇게 많은 대형 포유동물이 급격히 절멸한 것이 사실 인간이라는 행위자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322)
- 진화론의 창시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마지막 저서에 언급한 말

[12] "유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미학적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358)

"기호와 상징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능력은 세계를 변화시킬 능력을 수반하며, 그것은 곧 세계를 파괴할 능력이 된다."(359)

"인류는 기호와 상징을 사용하여 자연 세계를 표상하기 시작하자마자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370)

[13] "멸종 현상의 문제는 멸종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다."(369)

[14]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간이 쓰고, 그리고 건설한 모든 것이 먼지가 되고, 초대형 쥐 혹은 다른 어떤 생물이 지구를 물려받은 후에도 오랫도안 생명이 가는 길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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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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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상대로 한 팡글로스의 도박

- 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지음, 김보영 옮김, [쌤앤파커스] (2022)

 



근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콩트 캉디드를 남겼다. 이 풍자소설을 통해 볼테르는 라이프니츠식의 낙천주의, 세계는 조화롭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믿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물이 캉디드의 철학 스승 팡글로스다. 소설 속의 인물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에 편재해 있는 악과 부조리를 겪지만, 그는 이 세상이 언제나 최선으로 이루어졌다고 굳게 믿는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저술하며 인류세의 위기를 경고하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자신의 신간 화이트 스카이에서 팡글로스 같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물론 이 책에서 만난 과학자·공학자들은 현재 지구가 마주한 여러 문제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팡글로스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이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마주한 지구적인 환경 문제들을 과학기술로 해결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저자는 이들이 가진 논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독자에게 제시하고 점검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는 인류가 처한 어떤 위기보다도 심각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마련이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경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인류가 마주한 위기를 경고했던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헤친 현장을 따라가 보면 생각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처한 환경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자연 환경에 개입하고 이를 바꾸어 놓은 결과, 으레 또 다른 재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지역을 물로부터 보호하고자 시행했던 토목공사의 결과 이 지역은 1시간 반마다 축구장만한 땅이 수몰되어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뉴올리언스 일부는 10년에 거의 15센티미터씩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5년에 이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에는 도시 해체를 신중하게 계획하기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오랜 세월 미시시피강이 퇴적해 놓은 이 지형은 이렇게 자연을 통제하려 했던 인간의 선한 프로젝트의 결과 홍수의 범람은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퇴적 작용마저 중단되게 되었다.


 

뉴올리언스에서 인간이 거대한 자금을 들여 개입한 프로젝트의 목록은 우리의 4대강 사업처럼 제방을 높이고 강물을 막았던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남부의 대홍수를 계기로 미시시피강 홍수 통제권을 국유화한 미국 의회는 자연을 개조할 권리를 미 육군 공병대에 부여했다. 이들은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강 주변으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제방을 쌓았고, 나아가 세계 최대의 양수장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뉴올리언스의 토지 손실은 계속되어 멕시코만과의 거리가 도시 형성 초기보다 32킬로미터나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치지 않는 투지와 마르지 않는 희망으로 승리를 다짐하며 이 지역을 바꾸어 놓았다. 여기에 석유 산업이 들어와 습지에 운하까지 팠던 것이다. 이제 가라앉던 습지는 바닷물까지 들어와 갈대 등의 식생이 죽고 습지의 많은 생태계가 회복하기 힘든 교란을 겪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엔지니어링의 힘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 넘쳐났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자연을 엔지니어링하는 작업의 선봉에 섰던 집단이 바로 미육군 공병대였다. 자연에 대한 이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공병대가 만든 구조물이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재앙에 휩싸일 뻔한 후에도 공병대의 한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병대가 명령하면 미시시피강은 그게 어디든 가게 되어 있다.”(89) 나아가 공병대원들은 우리는 강을 틀어쥐고, 바로잡고, 길들이고, 족쇄를 채웠다.”(56)라고 말하는 이들이었다. 이정도면 뻔뻔한 것이 아니라 광신도 집단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21세기에도 이들의 태도는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한 공병대원은 저자에게 문제가 있는 곳에는 공병대가 있습니다.”(90)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공병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야 할 듯하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본인이 취재하는 이들에 대한 평가나 판단을 곧바로 드러내지 않고 이들의 말을 거리를 유지하며 전한다. 오히려 저자의 입장이 너무 중립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거대한 정치 세력과 연결되어 있는 미 공병대에 대해서 저자의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기에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 대신 저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던 로마 서정시인 호라티우스의 말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한 듯하다.


 

쇠스랑으로 자연을 긁어낸들 자연은 이내 돌아와 우리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우리의 비뚤어진 경멸을 뚫고 승리할 것이다.”(82)


 

하지만 토목 공사로 환경을 변화시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저자는 생태계 보전에 앞장 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2부에서 들려주고, 지구의 대기 환경을 바꾸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제3부로 가면서 점차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미육군 공병대가 주장하는 논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통제가 문제라면 더 큰 통제가 해법이다’, 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를 인류세의 논리라고 정리한다. 1부에서 저자가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주변의 광활한 지역에 개입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면, 2부에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에 대한 통제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크리스퍼(CRISPR)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로 생태계를 통제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하여 생태계에 발생한 재앙을 해결하고자 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백화현상을 겪는 산호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하여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에 강한 내성을 가진 산호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 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면 이들 유전공학자들의 주장이 공병대의 인류세 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물론 이들의 주장 가운데 우리 환경이 이미 유전적으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이들은 애초에 존재하면 안 되는 2만 개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지 10개 정도의 유전자를 추가하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큰 질적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에서 이루어진 유전자 변형은 오랜 시간생물과 환경이 상호작용하며 적응하여 최적화된 결과다. 여기에는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생태계 그물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반면 인간이 단 10개의 유전자를 바꾸어 생태계에 노출시켜 빠른 시간에 생태계에 영향을 주게 된 상황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개입은 환경을 교란시키고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다. 이들 유전공학자들은 단지 10개 정도의 유전자 변형이라고 대중을 교묘하게 설득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선한 프로젝트라는 선민의식으로 과학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게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저자가 언급한 수수두꺼비도 한 가지 사례다. 또 다른 예로, 일부 과학자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유전자 기술로 생쥐를 멸종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연선택을 무력화시키는 드라이브 유전자를 가진 생쥐를 만들어 수컷만 낳도록 조작함으로써 멸종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자신의 견해를 점차 드러낸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181)는 점도 지적한다. 여기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회의론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생물의 다양성이 생태계 구성원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 자연 스스로의 회복력을 기대하는 것과 유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이 마주한 문제를 값싸고 빠르게 해결하는 방식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이들 과학자들이 지적하듯, ‘그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견해에 크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본질적인 원인에 손을 댈 일이다. 인간이 환경 및 생태계의 어떤 이상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특정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을 교란시키는 일을 직접 해결하려고 뛰어들기 보다는 자연의 치유력을 이용하는 일이 보다 근본적이며 필요한 일이라 여긴다. 물론 이들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문제의 해결책은 문제의 원인을 곧바로 공략해야 할 일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무분별한 성장과 자연의 과도한 이용을 줄이고 자원을 보다 고르게 분배하는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이 영원히 무궁무진한 것처럼 취하고 소모해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 육군 공병대나 유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생태계 재앙을 해결하려는 공학자와 과학자들이 포기하지 않는 일말의 희망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가 인간 세계에 편재하는 모든 부조리를 경험한 뒤에도 세계의 최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팡글로스의 공허한 희망을 이들에게서 본다면 너무나 지나친 해석일까 자문해본다. 이들의 사고는 북미 대륙에 침입한 아시아 잉어를 제거하고자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죽이려는 이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토착 생명의 순수성을 지키고자하는 서양 백인들의 사고와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이처럼 인간이 적극 개입하여 자연을 엔지니어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우려를 보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취약점을 지닌다.

 


3부에 이르면 과학자들의 자신감이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기 환경을 바꾸는 계획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지구 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지구 성층권에 햇빛의 반사율을 높이는 입자를 살포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지구 온도를 강제로 낮추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태양빛을 상당히 반사시켜준 극지방의 얼음과 빙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아이디어는 보다 더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1815년의 탐보라 화산 분출과 같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례처럼 자연이 기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개입으로 지구 생태계를 갑작스럽게 교란하는 일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도 이를 분명히 지적한다. 그는 햇빛의 반사율을 높이려고 하늘에 수많은 입자들을 살포하는 시도에 대한 부작용으로 하늘도 흰 색으로 보이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화이트 스카이인 이유다.

 


저자는 인간이 마주한 여러 환경적인 재앙을 해결하고자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때론 이들의 명분에 동의도 하고 수긍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과학자들이 여러 방면에서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지만, 해결 방안의 실행은 또한 정치적 결정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물론 이 문제에 과학기술자들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결정의 문제이기에 이는 모두의 문제가 된다. 이런 중대한 문제의 결정이 전문가 혹은 정치인들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더 생각거리를 던진다. 만약 전문가 혹은 정치인들의 결정으로 하늘에 무수히 많은 입자들을 뿌리게 되었다고 상상해보길 요구한다. 전 세계의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말이다. 이 때 전 인류가 태양빛의 반사율을 성공적으로 높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만일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주어들지 않고 계속 늘어난다면, 인류는 다시 이전의 기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어쩌면 인류는 하얀 하늘 아래기후가 교란되어 여름에 작물이 얼어 죽어 식량 대란이 발생한다면 인류에게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독자에게 암시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제목으로 사용된 화이트 스카이는 인간의 어리석은 개입으로 인류가 보게 될 또 다른 재앙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경고하는 말을 읽고 다시금 캉디드가 생각났다. 지구 온난화를 늦추자고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입자들을 대기에 뿌리겠다는 생각은 도박과 다름없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팡글로스의 마음가짐을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인류를 상대로 벌이는 도박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다 인간 세계의 온갖 부조리를 경험하고 고향에 돌아온 캉디드와 스승 팡글로스가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최선인 세계의 존재를 믿는 팡글로스의 말에 캉디드가 대꾸하는 말 때문이다.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이 말을 공병대나 일부 과학자들이 들으면 자연을 통제하려는 의욕이 더욱 고취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자를 포함하여 아마도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할 마음가짐이란 우리가 꽃과 열매를 당장 맺을 수 있게 기후를 바꾸거나 물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운 정원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책 속으로]

[1] "통제가 문제라면 더 큰 통제가 해법이다. 그것이 인류세의 논리다."(56)

[2] "엔지니어들의 개입 덕분에 범람을 막았고, 대혼란도 없었으며, 새로운 땅의 조성도 없었다. 그 대신에 루이지애나 남부의 미래는 바다로 쓸려 내려갔다."(64)

[3] "미국 의회는 ‘대홍수’에 대한 대응으로 미시시피강 홍수 통제권을 사실상 국유화하고 그 임무를 육군 공병대에 맡겼다."(71)

[4] "공병대가 명령하면 미시시피강은 그게 어디든 가게 되어 있다."
(한 공병대 장군의 말)

[5] "하나의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그에 비하면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108)

[6]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협력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150)
- 이 견해는 인류 최대의 오판인 듯하다.

[7]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파괴하면서 인간에게 아무런 고통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오만이 맞다. 그러나 ‘모든 산호초를 아우르는 규모의 개입’이라는 것 역시 또 다른 오만이 아닐까?"(151)
-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

[8] "우리는 애초에 존재하면 안 되는 2만 개의 유전자에 단 10개 정도의 유전자를 추가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개는 나머지를 파괴하고 생태계에서 몰아냄으로써 균형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162)
- 일부 유전공학자들의 지극히 인간중심적 시각, 책임회피, 생태계의 균형에 대한 근시안적 사고와 무지를 드러낸 말.

[9] "수학적 모델링에 따르면 효과적인 억제 드라이브는 엄청난 효율성을 발휘하여, 정상적인 생쥐 5000마리가 서식하는 섬에 유전자 드라이브 생쥐 100마리를 방사하면 몇 년 안에 생쥐를 박멸할 수 있을 것이다."(179)

[10] "우리는 신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을 잘 해내지는 못했다. (...) 우리는 재미로 아름다운 것들을 죽이는 로키(북유럽 신화의 장난꾸러기)이며,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농경의 신)다. (...)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낫다. 또 때로는 그 반대다."(187)
- 영국 환경 운동가이자 작가인 폴 깅스노스의 말.

[11] "우리가 배출량을 반으로 줄인다고 해도 - 그러려면 전 세계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재편해야 한다 - 이산화탄소농도는 덜 빠르게 상승할 뿐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204)

[12] "신속한 염가 솔루션으로 보이는 SAIL이 그렇게 빠르고 저렴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진정한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온난화의 증상만 치료할 뿐,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236)

[13] "과학자들은 권고를 할 수 있을 뿐이며 실행은 정치적 결정의 문제다. 우리는 그 결정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랬던 적이 별로 없다는 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259)

[14] "전 세계 - 혹은 적극적인 소수의 국가 - 가 SAIL함대를 띄운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만약에 SAIL이 점점 더 많은 입자를 하늘에 뿌리지만 전 세계의 탄소 배출도 계속 늘어난다고 하자. 우리는 산업화 이전의 기후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악어가 북극해 해안에서 볕을 쪼이던 플라이오세나 에오세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얀 하늘 아래 백련어가 반짝이는, 전례 없는 기후의 전례 없는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259)
-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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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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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 도약 

- 마법의 비행


(원제) Flights of Fancy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 야나 렌초바(Jana Lenzova)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



 

지난 5(202285)에 날아올랐던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가 순항중이라고 한다. 달에 도착하면 달 궤도를 돌면서 탐사활동을 하게 된다. 다누리를 탑재한 로켓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의 흑백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의 비상 장면을 떠올렸다. 꽤나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장면이었다. 마침 이번에 생물학자이자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가의 마법의 비행을 읽으면서, 그가 비행을 중력으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의 탈출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생물학자로서, 도킨스는 수많은 육상 동물뿐만 하늘을 나는 동물들(, 곤충 등)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간직했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마법의 비행은 비행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과 설레임이 담긴 책이 아닐까하는 인상을 받았다. 창조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진화론을 강력하게 옹호해온 과학자로서, 그에게 이번 책은 비행이라는 키워드 아래 동물의 비행과 인간이 쌓아 올린 비행으로의 도전 과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이 책을 엔지니어이자 테슬라 자동차의 창업자,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에게 헌정한 것도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처음 던지는 질문은 생물들에게 비행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진화적 관점에서 비행이 지니는 이점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생물들이 날아다니게 된 것일까. 우선 주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생존을 위해 이주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구는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해 일정한 각도로 기울어져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 이것이 주기적인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말은 지구상의 지역에 따라 거주 동물의 서식 환경이 변화한다는 의미다. 이 때 비행은 생물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북국제비갈매기의 사례를 보자. 이 새는 두 달 간 북극권에서 남극권 사이를 오가며 매년 겨울 없이 여름만 두 번 보낸다고 한다. 날개가 있다는 것따라서 비행은 특정 생물이 환경 변화에 대해 융통성 있게 대응하도록 해주었다.

 


이와 달리 어느 지역 환경이 좋아서 생물이 이주할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특히 천적이 없고 이동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았던 새는 날아다닐 필요가 없게 된다고 도킨스는 말한다. 한 사례로, 날개가 있지만 날 필요가 없게 된모리셔스 섬의 도도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이 새는 비둘기과의 대형조류로 유럽에서 온 선원들에 의해 17세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도와 마찬가지로 날 필요가 없게 된 새에는 날개가 퇴화해버린 뉴질랜드의 국조 키위, 아프리가의 타조, 남아메리카의 레아, 호주의 에뮤, 지금은 멸종해버린 뉴질랜드의 모아, 그리고 역시 멸종한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가 있다. 도도를 제외하고 지금 언급한 새들은 모두 날지 못하지만 튼튼한 다리로 달리기를 잘하는 주금류(ratite, 走禽類)에 속한다.


 

여기에서 다시 궁금해지는 것은 북극제비갈매기와 도도가 모두 날개를 지니고 있지만, 어느 종은 날개의 기능을 다 하지만 또 다른 종에게 날개의 기능이 퇴화되는 이유다. 비둘기과에 속한다는 도도의 선조가 날 수 있었다면, 멸종하던 시기의 도도는 왜 날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냥 나는 기능을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닐까싶은데 말이다. 저자는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을 던지고 있다. 도킨스에 따르면, 비행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진화적 관점에서 생물이 비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이 점을 짚고 가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행은 생물들에게 보기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기능이다. 생물이 이 기능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깃털처럼 가벼운 벌새의 경우, 정지비행을 비롯한 정교한 비행 기술을 펼치기 위해서 몸집에 비해 매우 큰 용골돌기(가슴뼈)와 잘 발달된 날개근육을 필요로 한다. 반면 날개가 있는 여왕개미나 흰 개미 여왕은 평생 한 번 하는 짝짓기 후 자신의 날개를 떼어내는 행동을 한다(64, 67). 이들에게 날개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도구일지를 보여준다. 새뿐만 아니라 말벌도 비행을 위한 날갯짓에 엄청난 당을 태워야 한다. 게다가, 튼튼한 날개를 자라게 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결국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65). 따라서 모리셔스 섬의 도도처럼 날개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도, 생존을 위해 날아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는 비행에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하여 이를 번식과 종족 보존에 더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곧 종의 생존 과정에는 한정된 자원과 생존을 위해 이 자원을 사용한 무기 장착 과정 사이의 경제학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해 쓰곤 한다”(114)라고 한 이유를 검토해볼 수 있다. 예컨대, 칼새는 알을 낳고 품을 때만 지상에 내려오는 반면 짝찟기를 비롯하여 일생 대부분을 하늘에서 보낸다. 이렇게 에너지가 훨씬 많이 드는 비행을 칼새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반면, 갈비뼈가 양옆으로 나온 구조를 활공에 사용하는 날도마뱀이나(290) 갈비뼈를 양옆으로 내밀어 몸 전체를 납작하게 만들고 30미터를 활공하는 날뱀(309), 가슴의 겉뼈대가 자라 갖추어진 곤충의 날개(183)처럼 생물은 생존에 필요한 몸의 특정 기능을 새로 만들어내기 보다는 기존의 해부학적 구조를 변형 또는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지만, 조류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변형된 것(119)이라는 설명은 여러 생물들이 자연의 제약 조건 아래에서 비행을 향해 보여주는 진화 과정(수렴 진화)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개체, 혹은 종이 갖추게 된 생존전략의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물들은 거창하게 생존을 위한 장치부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변형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변이를 통해 생존 확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다양성을 갖추게 되는 변이의 과정이 이를 위한 목적을 갖추고 여기에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양성을 갖춘 변이를 통해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들이 결과적으로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환경이 주는 선택압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총동원하여 필요한 기능을 갖추되, 이를 이루기 위한 균형점을 찾는 융통성이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생물의 비행은 생존에 필요한 경우 몸을 변형시켜서라도 갖추게 되지만, 어떤 이유로 필요 없어지면 곧바로 퇴화해버리는 값비싼 기능이었던 셈이다.


 

도킨스는 진화론의 옹호자로서, 그리고 무신론자로서 줄곧 창조론자들과 논쟁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동료 과학자들과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논쟁을 해온 과학자다. 자신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이나 만들어진 신 비롯한 여러 작업을 통해 거침없고 신랄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면밀한 관찰자로서 도킨스의 섬세한 설명이 돋보이는 부분도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동력 비행과 작동방식을 다룬 장에서 비행기 날개가 기류와 만나는 각도가 커져 비행기의 속도와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실속)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그는 왜가리나 백로 같은 큰 새가 착륙할 때 일부러 실속(통제된 실속)을 일으킨다고 언급하는데, 이 새들이 내려앉을 때 뒤쪽 깃털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은 바로 이 실속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공기 전문가였다면, 새의 이런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이유를 항공기 날개의 구조와 연관 지어 이처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도킨스의 섬세한 설명과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마법의 비행에서 다소 아쉬운 점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앞부분에서 했던 내용이 뒤에서 여러 번 중복되어 설명되고 있어서 짜임새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나온다. 또 뒤로 갈수록 앞에서 유지되던 글의 힘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아쉬운 점은 이 책에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이 애초에 청소년 대상으로 집필된 책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의 교양과학서에 빠지지 않는 참고도서 목록이 원서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주장이나 근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비행이라는 기능에 도달하고자 했던 노력을 종합하며 흥미 있게 전달한다.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비행을 둘러싼 자연의 제약과 생존 전략 사이의 균형을 찾아온 자연의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했다. 말벌이나 여왕개미와 같은 곤충의 날개나 흰 개미 여왕의 날개, 날다람쥐의 활공을 돕는 비막이나 박쥐의 날개 사례는 서로 독자적으로 몸의 일부 구조를 변형 또는 보완하여 비행이라는 기능을 갖춘 자연의 수렴진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달 궤도 탐사선의 비상이 갖는 의미처럼, 인류에게 비행은 중력을 극복하여 인류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 도약을 의미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인간의 이성에 기반 한 과학 활동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이에 저자는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322)고 과학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수정 건의]

(41) ‘태양을 기준으로 을 수 없다 을 수 없다

(70) “한편 비둘기의 몸집은 점점 커졌다.” 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비둘기를 언급하는데, 이 부분은 도도가 비둘기(pigeon & dove)를 포함하는 과(family)에 속하기 때문에 도킨스가 도도를 the pigeon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를 추가적으로 달지 않는 한, ‘비둘기를 그냥 도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혼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외딴섬은 대체로 포유류가 아니라 조류의 세상이다."(54)
- 모리셔스 섬의 도도와 이웃 섬의 날지 못하는 새(특히 주금류)에 대한 언급을 하며

[2]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해 쓰곤 한다."(114)

"진화는 기계 설계자처럼 처음부터 새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하나하나 변형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 변형 단계에서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278)

[3] "깃털은 세계의 경이 중 하나다. 공중에 띄울 수 있을 만치 튼튼하면서 뼈보다 딱딱하지 않은 경이로운 장치다."(116)

[4] "복잡한 기관과 행동은 많은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단순한 규칙을 따를 때 출현한다. 즉, 복잡성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출현한다."(193)
- 찌르레기들의 군무와 창발(emergence)의 원리에 대한 언급.

[5]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322)

"비행이 중력으로부터 세 번째 차원으로의 탈출인 것처럼,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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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
브라이언 크레그.애덤 댄트 지음, 이종필 옮김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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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 속에 산다

- 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브라이언 클레그(글), 애덤 댄트(그림)

이종필 옮김 [김영사] (2022)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P. Feynman)은 자신의 강의록을 담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별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했다. 시인들은 으레 과학자들이 별은 단순히 기체 원자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야기하며 별의 아름다움을 앗아가 버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인 자신 역시 사막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더하여 별들의 패턴과 형성 원리, 존재의 이유를 더 숙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취지로 언급했다. 그러니 과학자들은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제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더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 뿐이다.


 

현대인은 방대한 인터넷의 바다에서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무제한에 가까운 방대한 사전을 곁에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 꽤나 특이한 종류의 과학 사전이 있다. 빽빽하게 그림이 채워진 페이지를 지나면 그림의 각 부분에 관계된 과학 현상이나 과학 법칙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사전이다.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린 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이후 모든 순간의 과학)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 저술가 브라이언 클레그와 수차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고 MoMA(뉴욕현대미술관)나 리옹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 경력을 갖고 있는 예술가 애덤 댄트가 힘을 모아 만든 과학 사전이다. 저자들은 이 방대한 인터넷 기술의 시대에 왜 이러한 형태의 과학 사전을 만들었을까? 앞에서 언급한 파인만의 말에서 한 가지 실마리를 떠올리자면, 그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인식을 확장할 수 있을 때 우리 주변의 모든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보다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우선 이 책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모든 순간의 과학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부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에서 시작하여 대우주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자연 현상과 과학법칙을 책 속의 그림과 더불어 간단히 설명해놓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각 장의 첫 페이지에 배치되어 있는 전면 그림을 찬찬히,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본다. 예를 들어 4장 과학관 편을 보자. 그림의 한 가운데에 물리학자 파인만의 초상이 신전 모양의 구조물 지붕에 올라가 있다. 각 장마다 주요 과학자 한 명씩 등장하는데, 4장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바로 파인만이었다. 책의 부록을 참고하면 파인만에 대해 좀 더 자세한 프로필이 나와 있다. 프로필 설명을 보면 그의 주요 업적으로 빛과 물질에 대한 과학인 양자전기역학(QED)를 개발한 공로를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는 파인만이 개발한 파인만 도형그림과 함께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표제어를 간단히 설명해놓았다(45). 물론 이 설명만으로 관련 표제어의 내용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학생 혹은 일반 독자들은 이 표제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시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독자들에게 분명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아래 사진 참조)


 




여러 장면이 빼곡하게 들어찬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들어간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액자 속에서 호랑이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보자(40-41). 이 그림은 어떤 과학 현상 혹은 법칙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을까? 알쏭달쏭하다. 책장을 넘기면 전체 그림 가운데 특정 부분을 가져와 설명해놓은 부분이 나온다(44). 내가 궁금해 했던 이 그림은 바로 레이저로 3차원 영상을 만드는 홀로그램이라는 표제어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또 이 책이 과학사전인만큼 앞에서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나갈 필요는 없겠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나 장면이 과학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다. 아울러 추가적인 공부에 대한 확장 가능성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책을 즐기는 법 하나는 각 장의 처음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어떤 과학이 관련되어 있을지 상상해보는 일에서 지적 탐험을 시작해볼 수 있다.


 

반면 모든 순간의 과학을 통해 어떤 과학 법칙이나 현상에 대해 곧바로 이해하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아쉬움은 있다. 각 개념에 대해 상당히 간결하고 핵심적인 설명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과 용도는 오히려 분명하다. 일상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과학과 연관 짓고, 이를 발견하여 새로운 앎으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마중물이 되는 일이다. 본문을 볼 때 여기에 소개된 번역 용어들의 원어도 함께 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 뒤의 색인을 보니 우리말 용어를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고 여기에 영어로 된 용어가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해당 표제어를 출발점삼아 관련 사항을 더 찾아보려고 할 때 검색의 실마리로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이 책은 이 한 권으로 과학에 대해 지식을 습득하도록 의도된 책이 아니다. 반면 독자의 호기심과 지식의 확장을 준비하는 여정에 출발점이 되어주는 책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과학 영역을 넘나들며 주요 핵심 용어들을 담고 있다. 각 과학 영역은 인간이 정한 기준에 따라 나눈 것일 뿐이다. 자연은 그 스스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나누지 않는다. 또 우리의 소소한 일상 한 가운데에 과학이 존재한다. 과학은 어느 순간, 어느 장소든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천체 물리학자이자 작가였던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인간의 이성, 그 중에서도 과학이 이루어낸 성취를 집대성했다. 인류의 조상이 자연과 우주와 만난 어느 시점에서 과학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주술에서 마술로, 그리고 마술이 다시 과학으로 말이다. 모든 순간의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지닌 독자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던 과정을 직관적으로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림의 어느 부분에서 호기심이 일었다면 해당 그림에 대한 항목을 찾아보고 궁금증을 풀어갈 실마리를 얻는 것이다. 그림으로 가득한 이 과학책이 내게 준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가 과학 속에 살고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깨달음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때,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감수하는 능력도 더욱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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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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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관계성을 바라보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2022)


(원제: Visualizing Nature)

레이철 카슨 외 19명 지음 |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우리는 자연이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자연이 뭐야?’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는 여러 사상가, 지식인들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레이철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보고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레이철 카슨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정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25)라는 표현이었는데, 이제 행성 지구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자연은 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무언가로 다가온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지만 또한 어떤 대상을 명확히 지시하기 어려운 무엇. 영어 단어 nature가 품고 있는 여러 의미처럼, 존재물의 성질이나 본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닐봉지나 통조림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되고,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 호르몬이 알라스카의 이누이트 족이나 북극곰 체내에 가득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선뜻 레이철 카슨이 말하는 자연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는 DDT와 같은 살충제의 폐해를 경고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 GPGP와 같은 풍경이나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를 알기 전에 사망했을 터이므로 이 자연의 정의를 고수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반면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다시 뜯어보면 자연이란 실체와 인간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정확한 용어를 찾긴 어렵겠지만, 카슨의 자연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미개척지로서의 야생(wilderness)’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행성 지구 위의 장소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카슨의 자연과 달리 이제 우리는 자연의 다른 정의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처음 만난 글에서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내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물음을 갖고 나는 계속 여러 저자들의 에세이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은 시인이나 작가, 저널리스트, 조경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저자들이 자연을 주제로 쓴 짧은 에세이를 담고 있다. 숲이나 늪지에서, 바다 속에서, 나무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단상이 모여 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글이지만 이들에게서 결이 맞는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이들이 모두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말을 걸 때, 이들은 이에 귀를 기울이고 여기에 화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엮은이의 말에 따르면, 이 저자들은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담겨 있는 주제들을 숙고하고, 오늘날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당대에 마거릿 풀러,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소통하며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다. 따라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저자들은 한편으로 에머슨의 후배 사상가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레이철 카슨이 언급한 자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다른 저자들의 글을 읽어보니 자연이란 어쩌면 관계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연이란 관계성을 품은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아키코 부시는 기억이라는 지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인간)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을 파악하려는 활동으로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우리의 모습과 시간을 두고 기억에 새겨진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저자는 불과 한 인간의 일생이 지나는 시간 동안 변해버린 숲의 모습, 그리고 몇 개월 사이에 인간의 영향으로 변해버린 땅, 장소를 바라보고 성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자연의 장소는 바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가 아닌가. 만약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으로 변해버린 장소는 자연의 지위를 잃은 것일까. 인간이 행성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긴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해 변해버린 지구의 모습,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장소,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된 공간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관계성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면 어떤 환경이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행성 지구가 갖추게 된 모습은 결국 또 하나의 자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아마존 밀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명 속에서 살게 된 인간에게 도시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된 셈이 아닌가. 관계성을 염두에 둘 때, 콘크리트에 덮인 도시가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자연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인간과 도시의 새로운 공진화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 진 바우어의 글에도 주목해본다. 그는 여러 책의 저자이면서 먹거리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글의 서두에서 그는 거리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하나를 인용한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163) 바우어에 따르면, 이 말은 인간의 오만함,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을 암시하고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경고하면서, 특히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육식 보단 채식을 함으로써 건강과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을 존중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가 언급하는 인류세의 특징 중 인상적인 표현은 인간이 닭 뼈가 수북하게 박힌 지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시점에서 일흔일곱이 된 저자 월리스 코프먼의 에세이가 기억난다.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글에서 그는 딸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바람을 전한다.


 

일흔일곱 해를 산 지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소박한 관에 담겨 땅에 묻히고 내 위에서 검은 호두나 도토리가 아래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인데, 딸이 그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부활하여 세상의 영주자가 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174)


 

월리스 코프먼의 이 바람 역시 생명이 또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연 속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성찰이 아닌가. 나 역시 나의 마지막 모습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자연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과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저자들의 글들을 보면 각자 자신의 배경에 따라 자연과의 관계를 숙고하고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visualizing nature'. 글로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했던 시도가 아니었을까싶다. 각자가 경험한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독자에서 제시하는 활동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도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명의 저자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 모두 자연이란 실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에세이들은 현대인이 자연과의 대화가 중단되거나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은 모습을 일깨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자연을 보여주려는행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이면서 자연과의 우주적 합일을 바라는 주술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길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있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이 문장이 이 책의 정신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일이다.”(13)

 




[책 속으로]

[1]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다."(13)
-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 제7장 ‘정신‘에서 재인용한 문장

[2] "이 책에는 2차림에서, 사막에서, 늪지에서, 산호초에서,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에서, 저지Jersey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에서 온 소식들이 담겨 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세상에 조화로움이 존재한다는 소식일 것이다."(19)

[3]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관한 정의는, ‘자연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입니다."(25)
- 레이철 카슨,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에서 재인용한 ‘자연’의 정의.

[4] "브리슬콘소나무는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산다. 그 뒤틀린 나무들은 경게에 선 보초들이다."(63)

"브리슬콘소나무는 ‘긴 시간’을 산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이 나무들은 긴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산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66)
- 데이비스 해스컬,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스론소나무를 찾아서」에서 인용.

[5] "나는 솔방울이나 벌보다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와 운명 사이의 문제다. 나를 필요로 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환영해주는 세계에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완벽한 본보기다."(73)
- 후안 마이클 포터 2세, 「자연의 무심함 속에 사는 영광」에서 인용.

[6]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 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 아키코 부시, 「기억이라는 지리」에서 인용.

[7]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란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131)

"나는 단편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이 림보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암초상어가 부럽다."(133)
- 폴 베넷,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에서 인용.

[8]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치 있는 말은 우리 종의 오만이 다른 동물들과 자연,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쳐왔는지를 강조한다."(163)

"이제 과학자들은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질시대는 인간의 지배, 멸종, 플라스틱과 닭 뼈가 박힌 화석 기록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164)
- 진 바우어, 「우리는 본래 농업 인류였다」에서 인용.

[9] "나의 묘비명:
여기 잠든 남자/ 그의 삶은 길었고/ 의지는 약했고/ 모은 튼튼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은/ 생각을 키우고 말(언)을 수확하며/
세상의 경이를 키우는 것./ 이제 그는 위에 있는 나무를 키운다."(174)
- 월리스 코프먼,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에서 언급한 자신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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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1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건 좀 딴 얘긴데, 초란공님의 글은 글자가 커서 좋습니다.ㅋㅋ

초란공 2022-07-11 20: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젠 글자가 커야 답답하지 않더라고요 ㅋㅋ^^;;

페크pek0501 2022-07-23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자연이 개발이다, 뭐다 해서 그 영역이 좁아지고 있는 게 문제예요.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