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마우로의 세계 지도
제임스 코완 지음, 강은슬 옮김 / 푸른길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지도제작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여행가? 한비야씨같은? 아닐 것이다. 많이 다니고 견문을 넓히는 일과 지도제작은 아무래도 다른 일일 테다. 프톨레마이오스나 메르카토르가 여행가였던가? 지도를 한 번 그려보자. 세계지도를. 인공위성에 올라 세상을 한눈에 바라보면 지도가 그려질까? 산과 바다와 평야을 그려넣으면 될까? 혹은 있지도 않은 국경을 선으로 그려넣는다? 있지도 않은 위도와 경도를 그려넣고 둥근 지구를 이리저리 펴서 끼워맞추면 지도가 될까? 그렇다면 테크롤러지가 고도로 발달한 지금, 지도는 그릴 이유가 없는 철지난 무엇으로 전락해버린 것일 지 모른다. 하늘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지구. 하지만 희한하게도 지도는 끝없이 그려진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무한히 확장되면서. 어쩌면, 지도는 그런 것일 테다. 상상의 산물.  

르네상스 후반, 베네치아의 산라차로데글리아르메니,라는 긴 이름을 가진 섬에 한 수도사가 있다. 아마 그는 그 섬을, 수도원을 그리 자주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도제작자이다. 그는 세상을 다닌 사람들을 맞아들여 이야기를 듣고, 지도를 채워 나간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나라도 출신도 종교도 다른 숱한 사람들이, 그런 수도사가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다. 들어주는 사람을 찾아서, 똑같이 고독하고, 미지의 세계에 똑같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보이는 것 너머에 시선을 두고 사는 닮은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다. 발로 다니는 사람과 이야기 속으로 다니는 사람이 서로 조우하는 수도사의 방. 그곳에서 지도가 조금씩 그려진다. 수도사의 이름은 프라 마우로. 

제임스 코완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의 철학 소설이라는데, 읽기 녹록치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 끌린다. 여기 이곳에서 태어나 살다 벗어나지 못한 공간에서 죽는 미물 같은 삶, 그 너머를 꿈꾸는 이들에게 깊숙한 내면으로, 무한한 우주로 넘나드는 삶과 죽음의 비밀을 열어보여주는 느낌 때문이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혼란스럽고, 작가와 화자의 관계가 혼란스럽고, 그래서 더욱 실감 나는 책.  

익숙한 사고의 바깥 쪽에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인식의 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122쪽.

내 지도는 거기에 그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 나를 열중하게 만든다. 지도를 응시할 때마다 그 여백에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실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더 많이 알기를. 새로운 나라와 사람들과 그들의 관습을 찾아내기를 갈망한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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