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멀리서도 보이는 풍경
나태주 지음 / 푸른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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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선생이 쓰고 그린 시집 <이야기가 있는 詩集>을 접하며 나 스스로 맑게 정화되는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참 좋았던 기억. 마치 내 오랜 꿈이 거기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두 번째로 선생의 이 책을 접했다. <公州 멀리서도 보이는 풍경>. 멀리서도 보이려면 그 대상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가능하리라 싶다. 언제든 마음자락에 감고 있어야 멀리 있어도,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시인은 공주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이런 제목을 붙인 걸까. 

과연 읽으면 공주에 대한 이분의 지극한 사랑이 전해온다. 마치 짝사랑을 하는 젊은이같다고 느낄 만큼. 반면에 공주는 이분을 적당히 사랑하는 듯하다. 아주 냉정하게 대접하면 가버릴까봐 일정 거리에 두고 계속 사랑하도록 종용하는 듯한 여인네. 

이 책은 십대이래 선생의 삶의 터전이 되어 온 공주에 대한 소개책이다. 그리고 나태주의 공주에 대한 세레나데이다. 선생의 수필과 시와 여러 글이 어울려 있으니, 테마가 있는 문집이랄 수 있을 테고, 그저 공주를 지극히 사랑하는 어떤 작가의 여행안내서쯤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공주로 문학기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저 오래된 식당, 나무 한 그루, 골목길 하나가 마치 시처럼, 소설처럼 펼쳐지며, 군데군데 공주와 이런저런 인연을 맺었던, 혹은 선생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문인들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정제된 언어의 극치인 시를 쓰는 사람이 운치 있고 정갈한 산문(주로 에세이)를 쓰는 것은 당연할 수 있겠지만, 이 책 역시 낱말이나 문장이 모두 정갈하고 맑아서 읽는 내내 잔잔하고 흐뭇한 기분이었다. 이분이 이토록 사랑하시는 공주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가서 책 중에 소개하신 여여당이나 새이학식당이나 경북식당, 상록원 중 어디 한 곳에 앉아 밥, 차, 또는 술 한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와락 들었다. 그때 나태주 선생이 마주 앉아 계셔주시면 좋겠지만 그건 독자의 욕심일 테고. 그분의 시 한 수를 옮겨본다.

지금도 내 마음 속에는 

지금도 내 마음 속에는 열여섯 / 열일곱 살 먹은 소년이 살고 있다 / 그 소년은 옛 공주사범학교 2층 건물 / 유리창 가에 붙어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 금학동 수원지 쪽으로 열려진 산들, 굼실굼실 / 파도, 파도처럼 물결쳐 간 크고 작은 산들 / 가까이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짙어져 가는 / 초록에서 군청색 짙은 바다 물빛까지 / 가을 햇빛 아래 밝고 환한 가을 햇빛 아래서면 / 더욱 산들은 멀리 아득하게 보이곤 했다. // 그 때부터다, 가 본 일 없는 알프스가 떠오르고 / 머언 나라가 못내 그리워 꿈꾸게 된 것은 / 그 때부터다, 동경의 모가지가 가늘고 길고 / 또한 애달픈 보랏빛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가슴이 지긋이 아려 온다. 

글 중간중간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위험한 고비를 겪고 건강을 회복하신 듯한 선생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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