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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쟁이 풀빵장수 ㅣ 눈높이 어린이 문고 66
장문식 지음, 김천일 그림 / 대교출판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들 서로의 마음에 작은 오솔길을 터 줄 그림움과 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서로를 보듬어 가며 살아가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3p
책을 펼쳐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삭막해져가는 우리들 마음 속에 따스한 단비를 내려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뉴스와 사건 사고들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따뜻하고 마음 훈훈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다.
사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그 사랑이 우리 나라 구석구석 가득히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8편의 단편들이 담겨있는 이 책은 가족, 이웃, 친구 등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담았는데, 우리 주위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로 하여금 내가 아는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사랑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공장에 다니던 아들이 일자리를 잃자 며느리가 집을 나가게 되고 풀빵장수 할아버지는 하루아침에 엄마 아빠를 잃은 손자 녀석을 위해서 삶의 터전이던 시골을 떠나 서울로 오면서 초등 학교 앞에서 풀빵장수를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민호라는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랑 둘이만 사는 것을 알게 되고, 풀빵장수 할아버지는 민호에게 늘 엉터리 셈을 해준다.
"글쎄, 풀빵 칠백 원어치 사 먹고 천 원짜리 냈는데 칠백 원을 거슬러 주는 거야."
"이 할애비도 가끔씩은 셈을 잘못 할 수도 있지 뭐. 어허 어허허허." <방귀쟁이 풀빵장수>
이름난 무역 회사에 다녔던 푸름이 아빠는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푸름이 때문에 말도 못 하고 끙끙 속앓이만 하면서 아침에 회사 가는 척하며 집을 나서곤 했다.
그러다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그 모습을 푸름이에게 들키게 되었다.
’우리 푸름이가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을까?’
"아빠 줄타기 아주 멋졌어요.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다고요."
아빠에게 선물을 내밀면서 푸름이는,
"아빠 얼굴이 햇볕에 타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어도 내가 아빠를 금방 알아보게 꼭 쓰고 계셔야 해요." 41p <빨간 모자를 쓴 거미>
"에이! 비엉신 자식, 어쩌다 저런 게 다 생겼는지 몰라." 아버지는 늘 복남이 형을 보면서 곧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버지의 말에 복남이 형은 원망이 깊어져 갔다.
엄마가 복남이 형을 위해 목발을 사오던 날.
"오런 건 왜 사주는 거여! 돈이 아깝지도 않아? 못 걸으면 버러지처럼 기어다니게 놔 두란 말이여!" 하며 목발을 대문 밖으로 내던졌다.
복남이 형은 분노와 오기로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일어서며 걷기 연습을 했고 어느새 걷는데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골목길을 돌다가 큰길에서 거닐고 있는 복남이 형을 보았고 낡은 자전거를 받쳐 놓고 몰래 지켜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복남이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비틀걸음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복남아! 위험해!" 복남이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뜻밖에 아버지가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세상 아버지들이란 다 그런 거예요. 오직 자식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
아버지가 복남이 형에게 왜 그리 매정하게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서 자라고 있던 커다란 미움 나무도 뿌리째 뽑혀 나둥그러지고 있었습니다. 114p <아버지의 탈>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복남이 아버지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정하게 다가선 사랑도 있을 것이고,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푸름이네 가족들의 사랑도 있다.
때로는 잔소리로 다가서는 엄마의 사랑, 때로는 투정으로 다가서는 아이들의 사랑, 또는 울며 떼쓰면서 다가오는 아이들의 사랑도 있다. 사랑의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그 사랑속에 숨어있는 거대한 힘은 느낄 수 있다.
몇백원이지만 그 속에 몇백만원어치의 사랑을 담아주는 풀빵장수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사진출처: '방귀쟁이 풀빵장수'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