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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언약
김경민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산>의 드라마에 푹 빠져사는 나는, 이산이 죽음과 맞서 싸우는 모습과 쓸쓸한 모습에 안타까워했었다.
드라마 중간중간 나오는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아는 이선의 모습 전부이다. 그랬다. 학창시절에 국사에 대해 배울때도 사조세자는 언급되지 않았던 거 같다.
책을 읽는동안 드라마와 겹쳐지는 부분도 있었고, 더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그랬다. 아비인 이선은 정조보다 훨씬 더 쓸쓸하고 외로웠던 인물이였다.
그런 사도세자에게 조금의 숨통이라도 트여주고 싶어서 저자는 비화라는 인물을 창조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자에게는 조그마한 숨을 쉴 구멍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억울한 누명을 써서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는 것 이외에는 사도세자가 어떤 사람이였는지도, 그 슬픔이 어떠하였는지도 말이다.
영조는 천한 어미의 출신으로 인해 가져야 했던 자격지심으로 정사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비답을 완벽히 하려는 고질병이 생겼다. 혹여 자신이 천한 어미의 태생이라 삐뚜름하게 보지는 않을가, 속으로 깔보거나 업신여기지는 않을까, 자신들이 세운 왕이었으니 속까지 허수아비로 보지는 않을까..35p
그 이유로 영조는 어릴때부터 영특한 선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였을 것이고, 세워진 왕이라는 자리에 대한 불안으로 세자를 몰아세운 것일지도 모른다.
간신배들의 부축임에 갈 곳없는 세자에게 등을 돌린 세자빈 홍씨와 빙부인 홍봉한으로 인해 더욱 쓸쓸하고 외로웠을 사도세자였다.
저하! 신첩은 저하를 믿나이다. 저하계서도 신첩을 믿으시옵소서. 저하 곁에 신첩이 있음을 잊지 마옵소서. 또한 저하! 정사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는 마옵소서. 그리하지 마옵소서. 언젠가는, 언젠가는 저하의 것이, 모든 것이 저하의 것이 될 것이옵니다. 신첩을 믿으시옵소서.
빈궁께선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은 것 같구려. 타협을 하라? 죽은 듯 지내라..... 차라리 당당히 숨통을 조르라고 하시오. 92p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버린 세자였고, 그로 인해 부인마저 등을 돌려 외롭고 쓸쓸한 세자였다.
그러기에, 비화의 등장은 세자에게 행복이였고 숨통이였으리라..
드라마를 보면서 정순왕후의 모습에 섬특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것이 바로 아녀자의 한이였으리라.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영조와 살게 되어, 여자로서의 행복감을 누리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그 눈에 아들이라고는 하나 이선의 모습속에서 정순왕후는 자신이 여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었으리라..
가끔 이리라도 한 번씩 보여주세요. 구중궁궐입니다. 하루하루 지탱하는 낙도 없는 삶입니다. 그저 마음에만 둘 것입니다. 아닙니다. 마음 한 가닥이라도 나누어주십시오. 첫 정인입니다. 가슴으로 처음 담은 분이십니다. 압니다.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십시오. 377p
자신의 어려운 고백과 첫 정인에 대한 수치로 인해 정순왕후는 이선에 대해 받은 치욕과 아픔을 그렇게 앙갚음하였을 것이다.
어린 신부의 치맛폭에서, 간신배들 속에서...영조는 자신의 보위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그것이 권력의 힘이요, 달콤함이였을 것이다.
서로 살겠다고 남을 헐뜯고 죽이려는 전쟁속에서 사도세자는 조용히 물러나 주었다.
좁은 뒤주안에서 죽어가는 목숨에도 자신이 마음을 담은 비화를 걱정하며, 자신을 지키는 서우를 안스러워하는 서서히 죽어가던 사도세자의 모습이 쓸쓸하고 안스럽다.
살아서는 같이 늘곡,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힐 것이다. 이제 그대를 부인의 예로 대할 것이오. 오늘의 그 고마운 약조는 끝내 가져갈 것이니, 부인 또한 나를 홀로 두지 말지어다. 330p
이선과 이산은 같은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나,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중전이 있는 이산과 달리, 이선에게는 자신만 살고자 등돌린 혜경궁 홍씨가 있다는 것이다.
혹 홍씨가 이선의 편을 들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선은 끝내 살아남아 보위에 오르게 되었을까? 아니면 홍씨와 이산마저 죽음을 다하였을까?
아들과 자신이 살기위해 이선에게 등을 돌린 홍씨로 인해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던 것일까?
그건 아마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리라...허나, 나는 홍씨로 인해 더욱 쓸쓸하고 힘들었던 이선의 모습이 아프게만 다가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