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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s 경성 무지개 - 그들의 심장은 뛰었다 ㅣ 단비청소년 문학
민경혜 지음 / 단비청소년 / 2022년 2월
평점 :
이 책은 작가가 '내가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나는 친일 민족 반역자가 되었을까? 목숨을 건 독립 투쟁을 했을까? 그도 아니면, 나는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 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간혹 텔레비전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나 독립 운동가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나도 이런 자문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난 독립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용기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민족을 반역할만한 뻔뻔함도 없기에 아마 이 시대를 방관하며 살지 않았을까, 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그러다 얼마 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책을 읽으면서 독립 운동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독립 운동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 시대를 살면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낸 이들도 독립 운동 못지 않았던 삶을 살았을 게다. 단비청소년《1930 경성 무지개》는 제목처럼 1930년대를 살아낸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으나 아버지가 총독부에 끌려간 이후로 집안의 버팀목이던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뜨면서 고래 등 같은 저택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숙부에게 맡겨진 하연은 오래된 연인이었으나 큰 뜻을 품었기에 우진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하연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작은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거들 뿐이다. 반면 우진의 동생 혁진은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로 소식이 끊긴 아버지,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모진 고초를 겪고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어머니와 자신을 팽개친 채 독립에 대한 뜬구름을 잡으러 떠난 형을 원망하며 살아남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은 잡지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짐꾼인 춘복은 뒤늦게 야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간은 계급의 차이 없이 평등한 것이라는 것을 배우며 이 불평등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결심한다.
청계천 거리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백 사장은 헐값에 사들인 물건을 몇 곱절 더 받고 내다 팔면서 돈을 벌었는데 이는 수입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다. 사연많은 물건으로 주워들은 정보로 돈을 벌게 된 백 사장은 더 큰 욕심을 가지고 총독부 경무국 소속의 경찰서장과 손을 잡았다. 춘복의 동지들은 주기적으로 친일 재산가들의 집을 털어 전당포를 이용해 현금으로 바꿔 자금을 만들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 백 사장의 전당포에 들렀던 동지들은 그 자리에서 총독부에 끌려가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조직 안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은 전당포로부터 시작되었고 조직은 흔들렸고 위험에 빠졌다. 한편 기생인 초선은 자신을 그저 꽃이 아닌 꿈을 꾸게 해준 하연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춘복과 함께 백 사장을 제거할 계획을 꾸민다.
"나는 내 목숨 걸고, 총칼을 들고, 폭탄을 매달고 싸울 용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양심이 뭔지는 알아요. 그것은 조선인의 양심입니다. 이 양심이, 더는 오라버니를 붙잡지 못했고, 떠난 오라버니를 원망할 수 없게 하네요. 조선인의 양심이, 조선인의 이 헐떡거리는 심장이, 오라버니를 이해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꾸만 미안해집니다. 더 큰 용기를 가질 수 없어서, 작고 비겁해서 내가 너무 미안해집니다."
"하지만 양심만으로 나라를, 조국을 지킬 수는,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양심만으로 될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저는 그저 덜렁 양심 하나 지키고 있을 뿐인데, 우진 오라버니는 목숨을 걸고, 가족과 정인을 걸고, 모든 것을 다 걸고 나선 길입니다. 그러니 그 길을 제가 어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96,97p)
이 책은 이렇게 여러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1930년대를 살아가는 꿈 많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앞서 작가나 내가 가졌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뜨거운 심장을 내놓았던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있어 우리가 지금을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곤 한다.누군가는 조국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조국을 향한 뜨거운 양심과 심장이 오늘의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이 다시금 기억하게 한다. 그들의 고민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시대의 치열했던 삶을 짐작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삶이 더욱 소중해짐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잊혀져가는 그날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서 생생히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