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읽은 책이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서 금방 읽었다
한겨례에서 펴낸 책답게 미국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약간의 거부감도 있지만 아시아에 살면서 그들에게 너무 무지하지 않았나 반성도 든다

나는 현재의 미국에 대한 감정을 생각할 때마다 조선 시대의 명나라를 떠올린다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명을 떠받들었는데, 명이 망한 뒤에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자초할 정도로 의리를 지켰다
지금 눈으로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대주의였지만, 혹시 지금의 한국도 미국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지는 않는지 자기 검열을 해 본다
미국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고 가장 앞서가는 것이며 심지어 가장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막연한 충성심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본다면 주체성을 상실한 어리석은 행동일까?
그렇다고 반미 정서 내지는 미 제국주의라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다
일본 역시 세계적인 선진국이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누구도 떠받들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든지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데도 자존심 하나는 끝내 주게 높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 경험이 있었다지만 이렇게 높은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왜 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내제화 되버린 건 아닐까 걱정된다
미국을 배척하는 것은 곧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 흐름도 파악 못하고 멍청하게 미국을 쫒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평한 답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은 책과 언론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국가 간의 외교 문제는 결국 이기적이고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간의 관계와는 다르게 국가는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고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 후기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가?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이 있을 때만 우리의 우방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미국 외의 다른 나라, 특히 우리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여자의 지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성 총리나 대통령이 선출되느냐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을수록 일반 여성들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데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여성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들이 이해가 안 갔다
막연하게나마 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 느낌이 맞았다
문득 박근혜가 생각난다
박근혜는 여자 당수이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등장한 정치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권익 향상과는 실제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질까?
오히려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이 확고한 남자 정치인이 선출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현지 언론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 기자들이 그 나라들을 들여다 본 거라면 좁은 시야나 편견이 걱정될텐데, 그 나라 언론인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진단한 것이라 좀 더 믿음이 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가와티나 코리 아키노, 부토 등이 실은 가문의 후광으로 총리에 선출됐다는 것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나라들은 우리 보다 훨씬 더 족벌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간디에 대한 평가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간디처럼 완전무결의 성인으로 포장된 사람도 드물 거라는 인도 기자의 말이 이해된다
인간적인 약점이나 실책을 사실대로 말한다 해서 위인의 위대함이 퇴색되는 것도 아닌데, 언론은 좀 더 완벽한 그럴싸한 포장을 원한다
그래야 책도 팔리고 영화도 만들 수 있으니까
간디가 섹스를 혐오한 것은 성적 결벽성을 의미하지, 절대 그의 영혼이 고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국가의 통합을 위해 하층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인간이든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이것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상업주의일 뿐이다

킬링 필드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접할 수 있었다
킬링 필드라면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크메르루주의 학살 전에 미군의 대학살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5년 동안 200만명을 학살했는데 이 중 절반은 미군에 의해서였다는 진실을 우리는 왜 외면하려고 들까?
이 사실을 들춰 내면 크레르루주의 잔혹함을 덮는 것이라고 공격받는다

1980년 5월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다면 태국, 버마,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에도 5월은 있었다
못 사는 나라일수록 군사 정권이 지배하는데 정치 상황이 아마 60년대 박정희 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
그나마 박정희는 근대화라도 달성했는데 그 나라 지배자들은 독재 정권을 휘두를 뿐 아니라 무능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마치 전두환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 위치에 서게 된 게 자랑스럽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내전을 빨리 끝내고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해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시아 국가끼리 교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혈통 순결주의라는 것도 우스운 얘기다
미국 가면 유색인종이라 차별 받으면서도 흑인들을 똑같이 차별하고 그래도 흑인보다는 낫다는 어처구니 없는 우월감을 갖는 게 우리 나라 사람들이다
LA 폭동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천시한다
세계화란 단순히 영어를 배우고 미국 문화를 추종하는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을 대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지구촌이라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사용하려면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결혼도 적극 권장할 사항이다
해외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화 교류가 있어야 상대에 대한 마음도 열린다

버마의 니옹왕의 수기는 인상적이었다
의사 출신인 니옹왕은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밀림 지역에서 무장 독립 운동을 전개한다
군사 정권에 반대하여 정부의 세력이 닿지 않는 밀림으로 들어 간 학생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학생들의 집합체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지식인이겠지만, 니옹왕이 그래도 제일 지식인층에 속한 것 같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 수준이 그 집단에서는 최고 엘리트라는 얘기다
수기를 읽다 보면 그가 의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닥터 니옹왕이라는 걸 강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의사라는 게 혁명과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별 대단한 존재는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쑨원도 의사였고 체 게바라도 의사였다
일단 사회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득권층인데도 그것을 버리고 혁명에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긴 하다
그러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의사라는 이유가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의사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지지해 달라는 의견 때문이었다
세계화란 국경을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이념을 실현하는 정신일 것이다
그렇다면 버마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항쟁도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혹시 김대중 대통령도 그런 의미에서 아태 재단을 설립한 건가?
그는 아태 재단에 초대를 받은 후 우리의 민주화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경제 발전도 많이 부러워 했다
더불어 세계화의 시각에서 버마의 민주주의 투쟁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무장 투쟁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자각하고 정치적 투쟁도 병행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깨달음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앞으로 버마 사태가 보도되면 관심있게 지켜 볼 것 같다
더불어 니옹왕의 역할도 기대해 볼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시아를 돌아 볼 때 제 1순위로 떠오르는 문제다
솔직히 중동 평화와 이스라엘 얘기가 나오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기독교와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는 은연 중에 이스라엘 편을 든다
특히 교회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종말론을 부르짖는 교회일수록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당연시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 구원의 신비를 확신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에서 뻔뻔스럽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예언의 실현이라고 설교하는 걸 보면 화가 나고 부끄럽다
성경의 자의적 해석은 둘째 치고라도 어쩜 그렇게 잔인하고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중동 평화를 깬 사람은 명백히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적어도 개인 간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서 기쁘다
유럽만이 문명의 전부인양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지엽적이고 편협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되면 아시아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여행도 해 보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를 탈피해야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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