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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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고 있다
나는 그녀에 대해 참 많이 궁금했다
일단 룩셈부르크라는 성도 그렇고 (나라 이름이 성이니까 신기했다) 여자 혁명가는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고, 전시 상황도 아닌데 군인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비참한 결말도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아는 독일은 선진국인데 법정에 세우지도 않고 때려 죽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박정희 시대 때도 이렇게 죽긴 어려운데 그녀는 대체 무슨 사연으로 선진국인 독일에서 이런 비참한 죽임을 당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모든 것이 다 앞설 거라는 순진한 착각이었지만, 어쨌든 그 때는 정말 이해가 안 갔다
그녀가 죽은 게 1919년으로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였고, 공산주의자를 아무데서나 암살하는 분위기였으니 그 뒤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내 생각 속의 로자는 강인하고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고 사랑 같은 자잘한 감정에 얽매이지 않으며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혁명가라는 이미지에 담긴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다 갖췄다고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서는 겨우 여성 혁명가라는 사실 밖에 몰랐지만, 막연히 그럴 거라고 상상했다
워낙 역할 모델을 해 줄 여성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명한 여성이 등장하면 인간적인 약점은 모두 가리고 완벽할 거라고 지레 짐작해 버리는 내 편견 탓이었으리라
이것도 피해 의식의 발로이고 강박 관념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자각하고 여성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 평전은 나에게 여성 혁명가 로자 대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던 인간 로자에 대해 조근조근 알려 준다
나는 그녀의 불행한 삶이 너무 안타까워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유태인에다가 절름발이, 더구나 여성이기까지 했던, 저자의 표현대로 불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험난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 그녀가 멋지게 보이는 대신,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인간적인 고통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걸 보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꼈다

어떤 분은 이 책이 로자의 혁명가적인 면보다 여성다운 면, 레오 요기헤스와의 사랑 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꼭 로자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어떤 위대한 인물이든지 인간적인 고통과 번뇌는 있기 마련이다
위인전을 읽을 때 제일 괴로운 것은 인간을 영웅으로 탈바꿈 시키는 과정이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인물을 구현시켜 놓고 독자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기라고 하라는 듯한 서술 태도는, 인물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들게 만든다
이 책은 600페이지에 걸쳐 인간 로자에 대해 조근조근 풀어 낸다
분량이 많이 때문에 그녀의 삶을 업적 위주로 압축하지 않고 삶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잘 풀어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오 요기헤스와의 사랑을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똑똑하고 잘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혼자 감내해야 할 가슴앓이가 큰 법이다
더구나 그녀는 위대한 애인을 숭배하는 평범한 여자도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박사 학위까지 받고 공산주의에 뛰어 든 최고의 인텔리였고 혁명가였다
영웅적인 애인 옆에 서는 여자는 얼마나 초라하고 외로운가
레오는 대부분의 잘난 사람들이 그렇듯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이었으며 애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여자를 지배하려고 했다
물론 로자는 누구에게도 지배당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유태인이었지만 폴란드 귀족들에게 지배당하지 않았고, 당시 폴란드를 통치하던 러시아인들에게도 결코 굽히지 않았다
절름발이였지만 정상인들 보다 훨씬 뛰어난 머리와 웅변술이 있었고, 여자였지만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쳤다
로자는 1900년대의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레오 요기헤스와의 사랑이 더더욱 불행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레오는 비단 애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강한 남자였다
로자의 강인함과 열정에 에너지를 얻고 사랑을 느꼈을 테지만, 진정으로 레오가 원했던 것은 어머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품어 주고, 자신에게 삶을 바치는 순종적인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처음 레오를 만났을 때 로자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 애인을 숭배했다
그는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사상적으로도 그녀보다 우월했다
레오 요기헤스의 인간적인 면 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반했을 게 틀림없다
로자처럼 강인한 여성을 휘어잡을 수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일지는 짐작이 간다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그는 꽤 잘 생겼고 카리스마가가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과 타협할 줄 모르고 독선적인 레오는 고립되어 갔고 로자는 독일로 건너간 뒤 뛰어난 웅변술과 학문적 능력으로 동료들을 압도해 갔다
레오와 로자의 사회적 관계가 역전되면서 더 이상 그녀는 일방적인 관계를 묵과하지 않았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자는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을 내 주는 대신, 한쪽 눈에는 두 눈을, 이에는 아가리 전체를 외치는 강인한 여자였다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고 로자는 친구의 아들과 연인 사이가 됐다
그러나 로자는 레오처럼 연하의 애인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보다 수평적이고 열린 관계를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둘만의 관계에서는 여자가 우위에 있을 때, 남자가 여자의 우월함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한 쪽이 다른 쪽을 끌어 주는 바람직한 관계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로자는 연하의 애인을 지배하는 대신 그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록 연하의 애인에게 빠져 공과 사를 그르친다고 비난을 받고, 겨우 2년 만에 관계를 끝내기는 했지만 내게는 둘의 관계가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비친다
적어도 한 쪽이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레오와 로자의 관계 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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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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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는 뺨을 얻어맞고는 다른쪽 뺨까지 내미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대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원칙-"한쪽 눈에는 두 눈을! 이빨 하나에는 아가리 전체를!"- 을 따르는 여자였다-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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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서 있는 미술관 - 박정욱의 현대미술 산책
박정욱 지음 / 예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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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보면 스스로 느끼는 대신 전문가의 복잡다단한 해석을 듣고서야 거기에 짜맞춰 이해하려고 애쓴다
반면 르네상스 그림들은 참 편하다
그림 안에 숨겨진 신화 얘기나 상징 등을 모른다 할지라도 그림 자체만 가지고도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다
적어도 인상파 화가의 그림까지는 그렇다
그런데 피카소를 거쳐 다다이즘 등에 이르면 비평가의 평론이 없으면 저것도 예술이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저 정도면 애들도 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배낭 여행 때, 이 책의 저자가 현대 미술의 대표적 전시장이라고 소개하는 퐁피두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도 책에서 퐁피두 센터가 현대 예술의 메카라는 설명만 듣고 갔는데 그 안의 작품들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헌 옷을 한 방 가득히 걸어 놓은 곳도 있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수 십대의 TV를 상영하는 곳도 있었다
지금이야 뒤샹의 변기를 패러디 한 거라고 이해를 하지만, 당시로서는 화장실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조형들도 도대체 공감할 수가 없었다
루브르 미술관이나 오르셰 등에서 느낀 감동을 도무지 얻을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현대 미술에 대해 책도 읽고 관심도 가지려고 애쓰지만 지금도 현대 미술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어려운 장르다

저자는 현대 미술의 속성을 파괴의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과거의 미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현대 미술은 반대로 기존의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평범한 관람객들이 당혹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위로한다
저자는 인간에게 파괴의 본능이 있음을 지적하고 현대 미술은 사도마조히즘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일견 일리있는 지적이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수많은 전쟁들을 생각해 보면 인간은 확실히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파괴를 통해 새로운 창조를 계속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파괴는 또다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사전 작업인지도 모른다
비록 파괴에 따른 고통과 끔찍함이 뒤따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새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댓가로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현대 예술의 껄끄러움과 난해함, 부담스러움은 우리에게 또다른 예술 세계를 열어 주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긴 인상파 그림만 하더라도 19세기 파리에서는 감상할 가치도 없는 형편없는 쓰레기로 취급받지 않았던가
예술가들은 시대를 앞서는 감각을 가진 게 틀림없다
평범한 관람객이 현대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예술이란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기존 관념을 먼저 깨뜨려야 하고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작품 중 비트킨의 "키스" 라는 사진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사진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까닭은 있는 현실을 그대로 찍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여러가지 조작과 합성을 통해 또다른 현실을 재현해 내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의 정신 세계를 구현해 낼 수 있는 도구로써 기능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참화 중에 피어나는 들꽃 한 송이나 구걸을 하는 가운데도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등 현실에서 포착해 내는 감명 깊은 장면도 많지만, 비트킨처럼 한 사람의 얼굴을 좌우로 합성해 자기 자신과 키스하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도 독특한 느낌을 준다
저자는 이 사진을 두고 죽음과의 키스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도무지 죽음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과 사랑을 나누는 나르시시즘으로 읽혔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도 현대 예술의 또다른 묘미일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 팝아트의 기수라고 한다
"명화의 비밀" 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됐는데 막상 그의 그림을 보니 지극히 현대적이고 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호크니를 두고 예술도 하고 돈도 벌겠다는 야심을 밝힌 최초의 세대라고 지적했다
팝 아트란 말 그대로 대중적인 예술이다
텔레비젼이 일반화 되기 이전 대중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 예술을 찾았고 화가들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재기발랄한 그림들을 공급했다
저자는 1960년대 팝 아트를 일종의 광고들로 본다
그래서인지 팝 아트는 이해하기 쉽다
적어도 눈에 확 들어오고 깔끔한 포스터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는 호크니가 그린 수영장 그림이 나온다
시원한 수영장을 널찌기 배경으로 잡은 후 다이빙한 직후의 모습을 잡았는데 다이빙한 사람은 안 보이고 그 위로 솟아오르는 물거품만 그렸다
재치있고 산뜻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팝 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은 자기가 먹어 치운 수백개의 캠프벨 수프 깡통을 그렸다
그는 마치 광고처럼 수많은 모나리자 그림을 합성하기도 했다
같은 모양의 깡통이나 모나리자 그림들이 쭉 배열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꼭 포장지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앤디 워홀의 깡통 그림에서 자본의 거대한 힘을 읽어낸다
정말 워홀이 똑같은 제품을 찍어 내는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고발하려고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어쨌든 워홀의 그림은 만화처럼 재밌는 구석이 있어 마음에 든다

저자가 소개하는 프랑스의 건축물들을 들여다 보면 이제 건축도 단순히 실용적 기능을 위해서 짓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로써 건축가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임을 느끼게 된다
미관상 보기 좋고 편리한 기능 대신 독창적이고 보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건축가의 정신을 구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파리 공원에 있는 라빌레트라는 다리는 데리다의 해체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의미까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건축물도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얻은 느낌이다
또 저자는 earth art를 설명한다
대지예술, 즉 땅을 작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조경도 하나의 예술이 되어 감상할 여지가 생긴다
단순히 아름답다, 이렇게 미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또 하나의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현대 미술이란 상상력의 확대라는 생각을 했다
정교한 기술로 사물과 똑같이 모사하는 그림은 이미 수백년 동안 그려왔다
사진기가 발명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똑같이 그리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 되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보다 자유로운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이런 그림이라면 애들도 그리겠다는 말은, 어쩌면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유머 감각이 창의력과 연관된다는 말뜻을 확인한다
아직 현대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력의 세계를 훔쳐 보는 것은 즐겁다
다른 눈으로 접근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뜻밖의 해결책과 만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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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 세상을 보는 글들 4
애너 퀸들런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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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사람 마음을 확 끈다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나는 책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이런 책 에세이들이 너무 좋다
일종의 동지 의식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외국 작가의 책은 아무래도 공감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서재 결혼시키기" 에서도 느낀 바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책들을 읽기는 커녕 들어 본 적도 없는 게 대부분이라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책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재미가 덜 하다
"서재 결혼시키기" 에 등장하는 엄청난 양의 낯선 제목들에 기가 질려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될 정도였다
다행히 이 책은 분량이 짧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고전 위주라 별다는 장애는 없었다
오히려 감동깊게 읽은 책에 대한 서평 보다는 책 자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 위주로 기술하여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뜻밖에도 미국은 목적없는 독서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한다
뉴욕 지하철을 타면 하나같이 책을 읽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현상이라며 서구에 비해 독서율이 저조하다는 비판은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만큼 미국은 우리보다 독서에 대한 열정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용주의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미국인들은 아무런 목적없이 책 자체에 빠져드는 맹목적인 독서를 경계하고 오히려 그들을 몽상가로 여기고 사회적 접촉을 등한시 하며 고립 속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오해를 간혹 받는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실용적인 독서만을 의미있게 생각한다
실생활에 도움되는 책이 아니면 시간 낭비라는 식이다
그래서 그 많은 처세론과 자기 계발서들이 난무하는 것일까?
사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약간의 우월 의식을 갖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책은 다른 취미보다는 더 고매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정신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책은 인류 문화의 결정체인 만큼 책에 애정을 쏟는 사람은 자원 봉사로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처럼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통신 매체들이 발달할수록 책에 대한 인식은 고루하고 현학적이며 쓸데없는 취미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맹목적인 독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맹목적인 독서의 즐거움과 의의에 대해서 피력한다
책이 나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어떤 책을 읽든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에서 뿐만 아니라 "백경" 을 읽어도 경영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용적인 독서는 독서의 깊이와 폭을 줄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조화가 중요하겠지만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만을 중시하는 독서계의 풍토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긴다
(솔직히 요즘 난무하는 처세론이나 자기 계발서, 경영서, 돈 버는 비결 등등이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다)
책 읽는 것이 위로가 되고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길이 되고 세상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된다면 맹목적인 독서는 여전히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적어도 TV 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는가?

미국에는 수많은 독서 클럽이 존재하는데 특히 여성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아는 분이 미국에 갔는데 할머니들이 독서 클럽에 나와 열심히 책을 읽는다는 말을 전해 준 적이 있다
손자 키우기에 바쁜 우리나라 할머니들 보다 얼마나 풍요로운 노년인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육아 시설을 비롯한 제반 여건들을 먼저 갖춰야 할 것이다
저자는 종이책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단언한다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서 책을 읽기 위해 컴퓨터를 켜거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기 위해 가방에서 컴퓨터를 꺼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란 얘기다
비록 우리 다음 세대가 되면 어찌 변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 뿐 아니라 책 자체를 사랑하는 탐서주의자, 혹은 수집가들의 열정을 생각한다면 종이책의 종말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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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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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솔직히 다소 실망했다
이건 전적으로 저자의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시간 통계법을 이용해 단 한 순간의 낭비도 없이 치열한 삶을 산 류비세프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이 정도로 밖에 풀어내지 못하는 저자의 내공이 아쉽다
류비세프는 워낙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재이므로 누군가 다시 그의 삶을 멋지게 풀어 내리라 기대한다
다만 시간 통계법을 요즘 유행하는 처세론이나 자기 계발서의 소재로 이용하지 않고 류비세프라는 인물 자체의 삶에 초점을 맞춘 건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지만 자기 계발서는 인간을 수단화 시킨다
류비세프가 자기 계발서에 등장한다면 그는 주어진 생을 보다 치열하게 살기 위해 애쓴 과학자에서 효율성을 위해 감정을 억제한 기계적 인간으로 돌변할 것이다

사실 류비세프야 말로 내가 꿈꾸는 사람이다
나는 시간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효율적인 시간 관리로 고민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고민만 할 뿐 대부분의 시간은 흘려 보내고 만다
빡빡하게 계획만 세우다가 끝나는 식이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래서 파레토의 법칙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핵심적인 20%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편하게 지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고 상황은 늘 가변적이므로 하루를 계획할 때 지나치게 빡빡한 일정은 오히려 흐트러지기 쉽다는 얘기는 학교 다닐 때부터 누누히 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한 치의 낭비도 없는 완벽한 시간 관리를 꿈꿔 왔고, 계속 실패해 왔다
요즘은 내연 기관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열효율이 겨우 33%에 불과하다는데, 하물며 감정과 이성이 어울어진 인간이 하루를 완벽하게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위안삼고 있다
그런데 류비세프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거의 완벽하게 보냈다
물론 치열한 자기 통제와 정신 수양이 있었다
사실은 효율적인 시간 관리 자체 보다는 그 정신적인 노력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차 없는 기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절제하고 의미있는 일에 헌신하는 높은 정신력을 가진 인간을 추앙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 보다 위대한 점이 있다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본능 보다는 내면의 가치를 위해 욕구를 절제할 수 있는 고귀한 정신에 있을 것이다
류비세프는 시간 통계법을 통해 자신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목적을 위해 자신을 쥐어 짰다기 보다는 자신을 가다듬는 채찍으로서 사용한 것 같다
그는 유명한 학자가 되지 못했다
사실 그 점이 더 마음을 끈다
유명한 사람들의 철저한 시간 관리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감히 시도조차 못할 것처럼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고, 무엇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시간을 아끼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 헛수고 한 꼴이 되버리 위험이 있다
업적을 이루고 이름을 얻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취에 의미를 둔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 아닌 이상 죽을 때 되면 내가 한 것이 뭐 있나, 허망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적인 성취 보다는 내면의 가치와 만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형적인 것을 이루기는 참 힘들다
또 물질적인 가치는 때로 자신을 천박하게 만들고 일 중독에 빠져 정작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든다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업적을 이루기 위해 철저한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통제와 생을 열심히 사는 수단으로서 시간을 관리하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곤충학자였으나 곤충학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다
러시아 시골 대학의 교수로 평생을 보냈고 오히려 본인은 전혀 원하지 않았을 엉뚱한 시간통계법으로 죽은 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라도 결국 그의 삶이 무의미 하지 않았고 그의 치열한 삶의 방식이 의의를 얻게 되서 정말 기쁘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사실 이건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이다 운도 따라야 하고 여러가지 요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적어도 그는 성실하게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우리 모두가 인정한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80 평생은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려는 열정 때문에 그는 다른 데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적었다
이를테면 사치라든가, 의복이라든가, 남의 시선 같은 것 말이다
저자도 인정한 바처럼 그가 철저하게 내면의 세계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세속적인 지위나 재산 등에 관심을 두지 않아 가족들이 고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대명제를 생각해 본다면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모든 시간을 기록했고 월말, 연말, 5년마다 통계를 냈다
심지어 시간 통계 내는 그 시간까지 다 계산했다
그가 강박적일 정도로 시간을 관리했던 까닭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낭비없이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주어진 시간 활용에 몰두한 덕분에 지위나 재산, 사치 등에는 좀 더 초연할 수 있었다
또 자신에 대한 만족감도 컸을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물질 자체가 주는 만족감 보다는 내면의 가치와 신념을 지켰을 때 얻는 내적 만족감이 훨씬 클 것이다
그렇다면 류비세프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일에만 매달린 불쌍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내적인 가치가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물질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내가 많이 얻으면 남은 적게 가질 수 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얻어도 결코 전체의 크기는 줄지 않는 영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시간통계법을 통해 류비세프가 얻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영적 가치라고 확신한다

류비세프의 시간통계법을 흉내내 볼까 생각 중이다
워낙 철저하기 때문에 과연 나처럼 허술하고 빈틈많은 인간이 따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노력들을 통해 내 삶이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이 없도록,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만 견지한다면 그 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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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4-12-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옥 읽어봐야겠습니다. 읽지 않고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지만....요.


서구와 동양의 시간관도 그렇지만, 조금 달리 드는 생각이 있어요. 시간표하면 답답하고, 그 시간을 놓치면 왠지 부담감도 느끼고..꽉 짜여진 틀이 생각난답니다. 농사짓는 일하고, 이렇게 무덤덤한 시간 속에 사는 우리하고도 다르겠지만, 잔치나 축제가 어김없이 들어가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비효율적이고 시간죽이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농사 일에선 꼭 필요한 것이지요. (사실 농사짓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새참시간이든 막걸리 한잔 하는 시간이 길고 지루한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횡설하네요. 암튼 저자도 같은 생각이겠지만 시간 관리엔 여유/여백이나, (내 시간만이 아니라) 남이 들어올 시간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더욱 더 잘 즐기고, 잘 하고, 오래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렇지 않겠지만, 저두 그런 챗바퀴에서 허덕거리지만, 몸을 쉬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보내는 시간도 꼭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읽어볼께요.ㅎㅎ)

marine 2004-12-2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람의 성향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여울마당님은 저하고 다른 성향일 게 분명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류비셰프가 저하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임을 느꼈어요 그의 시간통계법이 옳다 나쁘다, 이런 게 아니라 저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의 일생을 읽으면서 일종의 동지 의식을 느꼈어요 완벽주의, 강박관념, 내적인 가치에의 몰두, 자기 확신 등등 이 사람과 저는 한 부류로 묶일 겁니다 물론 실생활에서 저는 실수투성이고 헐렁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지만 어쨌든 속성 자체는 그렇거든요 혹시 폴 오스터가 쓴 "달의 궁전" 읽어 보셨나요? 거기 등장하는 마르코 같은 인물도 이런 성향이죠 그런데 솔직히 별 재미는 없는 책입니다 작가 글 솜씨가 좀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