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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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한 세기를 완전히 살다 간 여인
삶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실 이 여자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알라딘 서평으로 통해 우연히 그녀의 평전을 발견하고 집어든 책이다
이런 게 바로 독서의 확장이 아닐까 싶다
전혀 관심이 없고 모르는 분야인데, 어떤 기회를 통해 책을 접하게 되면 내 관심의 영역은 확장된다
참 멋진 일이 아닌가?
물론 평전이 워낙 길고 세세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은 없잖아 있다
일단 이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게 대부분이고 당시 나온 영화들도 본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영화라고 강조를 해도 그저 무덤덤하게 그런 게 있나 보다 할 뿐이니까
그렇지만 다음에 다른 곳에서 이런 영화들의 제목을 듣는다면 그 때는 보다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독서의 매력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확장되는 것, 그래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말이다

 

여기 나온 영화 중에 딱 하나를 본 적이 있다
프리츠 랑이 1924년에 만든 니벨룽겐이라는 무성 영화다
고전을 수집하는 아빠의 DVD 진열장에서 우연히 집어든 영화였는데 무성영화인지는 몰랐고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에 대한 관심 때문에 집어든 거였는데 뜻밖에도 흑백에다가 소리도 나오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당시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기준으로 생각하니까 레니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약간은 짐작이 간다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게 없을 때니 실제로 모든 장면을 배우가 직접 연기하고 찍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특히 레니는 산악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직접 맨발로 바위를 타는 장면도 찍어야 했다
촬영이 얼마나 힘들고 심지어 생명의 위험마저 느끼게 하는 고난이도의 일이었는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재밌지는 않을 것 같다
니벨룽겐을 보면 아무래도 대사도 없고 흑백이기 때문에 화려한 영상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불친절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녀가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푸른 빛"은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일단 스토리에 관심이 간다
중세의 마녀에 얽힌 얘기 같기도 하고 마을에 하나 쯤은 전해 내려오는 다소 잔혹한 전설 같기도 하고 하여간 분위기가 참 독특할 것 같다
그런데 재밌는 건 초창기 영화라서 그랬는지 배우들을 마을에서 직접 캐스팅 하고 출연 경력이 전혀 없는 경찰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주연으로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어찌 보면 낭만적인 얘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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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나 되는 꽤 긴 책인데 한 번에 죽 다 읽어 버렸다
두꺼운 분량에 질려 언제 다 읽나 심란하기까지 했는데 의외로 줄줄 잘 나갔다
그렇지만 독해가 아주 쉬운 건 아니었다
일단 외국 책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에 신경이 많이 쓰였고 개인적인 관심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집중도가 다소 떨어졌다
확실히 번역서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 책은 독일인이 주인공이어서 나은 편인데 러시아 책이나 일본 책은 정말 한 번에 죽 읽기 힘들다
어려운 지명과 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말이다
사실 나는 서평만 훑어 보고 이 책이 사진집이라고 착각했다
"재키 스타일" 처럼 사진 반 설명 반 이런 식의 전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손에 쥐고 보니 가운데 흑백 사진이 몇 장 끼여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독자를 위한 써비스 정도고 기본적으로 평전이었다
다소 난감했다
모르는 사람의, 특히 별 관심 없는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다는 건 굉장한 인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600페이지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읽어간 것은, 이 여자의 일생이 워낙 매력적이었고 친일 문제와 관련해 여러가지 생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치 핀업 걸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던 레니를 보면서 자꾸 서정주와 비교하게 된다
서정주를 친일 경력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가 문제는, 단정짓기가 참 어렵다
단지 작품과 작가는 별개로 평가되지 않아야 할까,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레니의 경우는 좀 다른 양상을 띤다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쟁 후 그녀는 단 한 편의 영화도 찍지 못하고 철저하게 영화계에서 소외당한다
학자도 아니고 대중 예술인에게 평단과 관객의 외면은, 더구나 투자자들의 외면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막말로 소설가나 시인은 누가 돈 대주지 않아도 읽어 주든 말든 혼자 집에서 써내려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영화라는 건 투자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매우 비싼 작업이다
그러니 아무리 상상력이 넘쳐 나고 예술에 대한 열망이 치솟아도 돈을 대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수고라는 얘기다
결국 레니는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사진찍기로 돌아 선다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레니 리펜슈탈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저 베를린 올림픽 영화를 찍은, 그래서 손기정 선수의 우승 장면 밖에는 생각이 안 나는 감독이다
책에도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 사진이 나온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라곤 이 책에 서술된 내용이 전부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이 내용만으로 본다면 과연 그녀가 뭘 그렇게 크게 잘못했는지 약간의 의문이 든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 억울하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레니 입장에서는 반유대주의 발언을 한 적도 없고 나치 정책에 특별히 동조한 것도 없고 단지 기록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히틀러의 연인이었다는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영화계에서 ?겨 나야 한다는 건 억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배우 경력이 있는 아름다운 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비난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매력을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성적 관계까지 갖는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건 여러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그저 악의적인 가쉽에 불과한 것 같다
더구나 히틀러의 애인이었던 에바 브라운의 일기가 날조됐다는 판결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거기에 나온 내용대로 레니를 히틀러의 숨은 연인 따위로 생각한다는 건 아무리 봐도 대중들이 그렇게 만들길 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 보다는 이야깃거리를 원하는 것이다

 

서정주는 그래도 문단의 권력을 놓치지 않았지만 레니는 완전히 영화계에서 축출됐다
부정 정권에 하수인이 됐다는 비난을 받으려면 적어도 나치 정권 하에서 그럴듯한 직함이라도 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레니의 평전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책 내용만으로는 대체 그녀가 나치에 협력한 게 뭐가 있는 건지 매우 의심스럽다
올림피아야 올림픽 기록 영화니 말할 건덕지도 못 되고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를 찍은 의지의 승리가 문제가 되는 모양인데 이것 역시 1934년 당시 독일인들은 거의 대부분 히틀러를 지지했고 미친 전쟁광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 두 편 찍은 걸 가지고 평생 동안 나치 협력자라고 비판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일들이 있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사실 예술가들을 도덕적이나 정치적으로 비난한다는 게 어느 선까지가 옳은 일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서정주만 해도 그렇다
대표적인 친일파 시인이지만 그 사람만큼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도 드물다
예술과 예술가는 별개라고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
그렇지만 또 예술가의 기본 정신이 시에 녹아나는 것이니 100%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는 바대로 레니나 서정주 모두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머무르지 못하고 진짜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기 때문에 끊임없이 평가의 대상이 됐는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말 것도 없는 함량 미달의 작품이었다면 오늘날 비평가들을 괴롭힐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너무 수준있는 예술 작품이 되버려서 무조건 그 정신이 나쁘다고 욕할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약간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생활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이혼을 한다거나 부적절한 대상과 연애를 하면 경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심지어 해고당할 위험도 있다
일만 잘 하면 됐지 사생활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있지만 이건 겉으로 하는 옳은 말일 뿐이고 실제 속마음은 어느 정도 비난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다면 좀 더 논의를 확대해서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했다고 예술 작품까지 비난받아 마땅한가?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고 감독이 영화만 잘 만드면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작품에 녹아 있는 정신이 문제라고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멀쩡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파시즘이 어쩌네 하는 비평이야 말로, 편견에 가득찬 악의적인 비판일 뿐이다
같은 사진을 다른 사람이 찍으면 찬탄의 대상이 되는데 레니가 찍으면 파시즘을 찬양하는 사진으로 돌변한다
저자가 일부러 어처구니 없는 사례를 뽑은 거겠지만, 아프리카 누부족의 육체를 찍은 게 대체 어떻게 파시즘과 연관되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수전 손택이라는 유명한 비평가가 이렇게 말했다니, 갑자기 그녀의 다른 해석들에도 의심이 생긴다
평론가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가 이미 정한 논리에 맞춰 작품들을 해석하는 건 아닐까?
레니의 사진이 그런 식으로 비난받는다면 거꾸로 그네들이 위대하다고 칭찬하는 작품들도 사실은 지나친 과장에 불과한 건 아닐까?

 

만약 예술가가 권력을 휘둘러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면, 과연 그의 예술 작품은 어떻게 평가되야 할까?
어려운 문제지만 가능하다면 분리되야 한다고 믿고 싶다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같은 걸 찬양한다면?
정말 어려운 문제지만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자유로 허용되야 하지 않을까?
비난받을 수는 있겠지만 단지 그 내용의 불순함 때문에 매장되야 하는 건 지나친 처사이지 않을까?
어찌 됐든 자유민주주의 사회란 자기 의견을 개진할 자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금지된다면?
솔직히 일개 예술가가 그렇게까지 대중을 계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인종 차별주의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건 감독이 대중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인종주의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1930년대 독일인들은 레니처럼 히틀러를 위대하게 생각했고 자신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의식조차 못했던 것이다
모두가 공범자가 아닌가?
레니 혼자 받아야 할 비난은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매력적인 삶이었다
102세라는 기록적인 수명을 산 것도 그렇고, 70세의 나이에 스킨 스쿠버를 배워 수중 촬영을 한 점도 그녀가 얼마나 도전적인지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영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선택을 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특히 60대의 나이로 무려 40여 세나 어린 20대의 청년과 동거한 것은 주목할 만 한 사건이다
얼마나 매력이 넘치는 할머니였으면 손자뻘 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을까?
그 남자와의 관계는 레니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됐으니 무려 30년을 넘게 살았다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프리카 누부족 촬영할 때 랜드로버를 운전해 주는 기사로 만나 스킨 스쿠버를 함께 배우며 평생을 살아간 동반자적 관계
마치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을 보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면 젊은 애인을 갖는 것도 대단한 능력 같다

 

산악 영화를 찍을 때의 강인함도 인상적이었다
맨발로 바위를 타는 장면을 찍을 때는 그녀의 열정이 정말 놀라웠다
천성적으로 육체 활동을 즐긴 듯 하다
스키도 좋아하고 등산은 평생 사랑한 취미였다
편집 작업에 지쳐 휴가를 얻으면 알프스 산으로 올라갔을 정도니 그녀의 산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 만 하다
그래서 늙어서까지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했고 무엇보다 체력이 튼튼하고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어쨌든 102세라는 나이는 경이적인 숫자다

 

아프리카 누부족들에 대한 비난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누부족의 전통이 사라짐을 안타까워 하는 게 문명인들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에 불과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길 원하지만 정작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길 원한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부족들도 더 이상 사냥하면서 원시 부족으로 살기 보다는, 그래서 그들의 관찰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물질 문명의 혜택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또 그래야 앞으로의 후손들도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레니의 입장도 틀린 건 아니다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해 봤자 사회의 최하층민이 될 것이고 자신들의 자부심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그들은 패배자가 될 뿐이다
그나마 모여 있을 때는, 또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에서는 전통에 기대어 전사로서의 자부심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부족 사회가 해체되면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할 울타리는 없어져 버린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찌 보면 레니의 비판자들처럼 이미 레니는 그들의 사진을 팔아다 돈을 얻는다
그런데도 누부족이 돈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문명세계 사람들의 관찰 대상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너무 이기적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뭐가 됐든 이제 전통 부족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하고 말 것도 없게 됐지만 그들이 사회 최하층민으로 편입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또 레니가 절대로 그들을 진실로 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누부족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부족의 해체를 안타까워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분량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특히 히틀러와 제3제국에 관한 얘기는 역사책에서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난 왠지 히틀러가 그 콧수염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자꾸 코믹한 느낌이 든다
무솔리니나 스탈린은 전혀 그렇지 않는데 히틀러는 왠지 꼭두각시나 어릿광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책에 묘사된 히틀러는 레니의 시각으로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다지 잔인하지도 미치광이도 아니었다
인간에게는 원래 여러 면이 있는 거니까 그렇겠지만 말이다
괴벨스라는 사람도 나치 선전부장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 난다
역시 역사책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 정열적인 여자는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진부한 말이 딱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그녀의 전기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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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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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은 인용이 너무 많다
신문 자료 오린 걸로 책 한 권을 쓰는 기분이 든다
자료 조사의 성실성은 인정하지만 가끔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중 문화의 겉과 속" 이라는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럭셔리 신드롬"이라는 책을 거의 그대로 옮겨 왔기 때문에 그 책을 이미 읽은 독자로써는, 두 책의 차이점을 알기가 힘들었다
좀 더 자기 주장과 색깔이 뚜렷한 책을 쓸 수는 없는가?
자료 전달로서는 훌륭하지만,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강준만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 책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 부분은 맨 마지막, 노무현에 관한 평가다
논객으로서 절필을 선언한 후 사회 분석학 쪽으로 관심을 돌렸지만 현실 정치에 대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는가?
어찌 보면 그게 이 사람 전문 분야인데 말이다
여러 가지 자료를 인용해 노무현의 실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글쎄, 아리송한 부분이 많다
노무현이 요즘 워낙 죽쑤고 있어서 누구에게도 동정을 사기 어렵게 됐긴 하지만, 노무현을 영남 지역주의자로 정의내리기 위한 편파적인 자료 수집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가 어렵다
노무현의 실책이 과연 영남 지역주의, 혹은 호남 소외론 때문인가?
민주당과 분당한 것이 100% 배신 행위일까?
배신이라는 것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자기를 대통령 만들어 준 민주당에 대해 "의리"를 지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책에서 의리란 매우 부정적인 어투로 쓰인다는 점이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야 워낙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어쨌든 이 책의 논리 전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차라리 고종석처럼 복지정책 주장하는 좌파적 분위기라도 확실하게 냈으면 옳든 그르든 훨씬 더 선명했을 것 같다
이도 저도 아니고 정치적 주장을 한다기 보다는, 노무현이라는 인물 비판에 그친 것 같아 (그것도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 비판) 씁쓰름 하다

 

이 책 보다는 앞서 출간된 "한국인 코드" 가 훨씬 더 와 닿는다
사회 일반의 보편적인 현상을 이야기 해서 그런가?
책 제목과는 달리 저자가 기술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와 닿지가 않는다
모호하게 여러 주제를 그저 나열해 놨다는 인상을 준다

 

한국 사람은 특히 인정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집단적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쏠림 현상이 강하고 반감, 더 쉽게 말해 비호감이 기본 정서라고 한다
인터넷 댓글 문화나 노무현 당선만 봐도 상당히 일리있는 지적이다
흔히 얘기하는 냄비 근성과도 통하는 건지 모르겠다
확실히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살기 때문에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고 거기에서 파생한 위계질서나 호칭 문제, 획일주의, 권위주의 등이 기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평등주의는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시기심과도 연결된다
시기심이란 그를 시기한다고 해서 나에게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가진 사회적 선을 부당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흔히 한국 사람은 남 잘 나가는 꼴을 못 본다고 하는데 이것도 시기심의 발로, 더 넓게는 곡해된 평등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남보다 잘나고 싶은 시기심은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아직도 역동적이라고 평가한다
재밌는 건 시기심이란 나보다 월등하게 잘난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또래 집단에서 앞서 가는 사람,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재벌이 잘 사는 것 보다 내 이웃이 비싼 차를 굴리는 게 더 못마땅 하다는 얘기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는 속담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이 권력 관계임을 밝힌 것도 주지할 만 하다
흔히 자본주의, 즉 돈이 사랑을 훼손시킨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본주의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청춘 예찬과도 비슷한 맥락인데 광고를 통해 있지도 않은 환상을 심어 줌으로써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기기변화에 열광하는 얼리 아답터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결혼은 계급을 지키는 수단이었고 재산 보존 내지는 증식의 방법이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시대 이후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퍼졌으니 돈이 사랑을 망쳤다고 할 것도 못된다
결혼은 팀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즉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 확보를 통한 홀로서기임을 강조한 에릭 프롬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효를 인권의 차원에서 보자는 말은 새롭게 들렸다
여태까지 우리 사회는 유교적 질서에 의해 움직였기 때문에 장유유서나 부자유친 등의 도덕 규범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그러므로 약자를 보호하는 인권의 차원이 아니라, 강제와 의무감이 수반된 지극히 구속력 있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제 노인들은 젊은 세대에게 권력을 뺏긴 후 비참하게 스러져 가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만큼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곳이 또 있을까?
안티 에이징 열풍도 이것을 방증한다
노인 문제를 유교적 이데올로기로 풀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즉 인권의 차원에서 풀자는 말은 새로운 해법으로 들린다
자발적인, 혹은 측은지심에 의한 부모 봉양은 얼마나 아름다운 미담이 될 것인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시집살이를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일 것이다
(여기서도 강준만은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는 정동영에 대한 간접적 비난을 빼 놓지 않는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족 우선주의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유달리 끈끈한 한국 사회는, 복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가족에게 떠넘겨 버리는 경향이 농후하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길은 내 가족 우선주의, 혹은 가족 제일주의의 극복인지 모른다

 

자기 주장이 모호함이 불만스럽긴 하지만 여러 자료를 한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음은 만족할 만 하다
한국인에 관한 보편적인 정서나 가치관 문제는 잘못하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흥미롭다
우리 자신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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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두기 -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자서전
다이애나 애실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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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열심히 읽은 책
재밌는 소설을 읽듯, 한 자 한 자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읽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유머 감각이 풍부한, 위트 넘치는 사람 같다
글에 재미가 베어 있다
지루하지 않고 툭 던지는 문장들이 웃음을 유발할 만큼 재밌다
이런 글솜씨라면 편집자 노릇도 훌륭하게 해냈을 것 같다
80이 넘은 할머니의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 하고 속된 말로 쿨하다
어쩌면 그녀의 인생관 자체가 책에 쓰여진 것처럼 돈 쓰기는 좋아하지만 버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승진이나 연봉 보다는 출판일 자체가 좋아서 매달리는 그런 심플한 스타일이었는지 모르겠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2차 대전을 겪은 저자는, 일을 하기 위해 옥스퍼드로 진학한다
지금 같으면 대단한 수재 소리를 들었을텐데, 당시만 해도 지참금 없는 여자는 직업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20세기 전반만 해도, 아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자는 남자에 비해 적은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중요한 직책은 맡지 않는 게 자연스럽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던 것 같다
똑똑하다는 말이 욕으로 쓰일 정도였으니, 영국 역시 남녀차별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출판사 내에서의 당연한 권리 찾기 투쟁에 나서기 보다는, 정말 출판일 자체가 좋아서 연봉이나 승진 따위에는 별 관심을 안 두고, 또 여자라서 겪는 사회적 차별에 둔감한 채로 그저 일이 좋아서 페미니즘 운동을 무심하게 바라봤다는 고백은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들린다
사실 1917년에 태어난 저자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당위적으로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러울 수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모두 권리 찾기 투쟁에 앞장 설 수는 없다
연봉과 승진에 관심이 없는 일부 남자들이 있듯, 그런 것에 무심한 채 일에 매달리는 여자도 있을 수 있지 않냐는 저자의 재치넘치는 문장이 마음에 든다
왜 차별을 받는지 따지기 보다는 차라리 참는 쪽은 선택했다는 말을, 저자는 참 위트있고 재밌게 써 내려간다
전기를 쓴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시대정신이라도 구현하는 양 모든 분야에서 항상 투쟁적이고 그 싸움에서 늘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현실에 순응하고 부당한 대우에도 그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채 엎드려 사는 평범한 여성들을 만나기란 참 어렵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들이 참 좋다
무엇보다 이런 문장들은 위트가 넘쳐 사이사이 웃음을 유발한다
너무 매력적인 할머니가 아닌가!

 

뒷부분의 작가와 맺은 특별한 인연들은 마치 한 편의 단편들인 양 흥미진진하다
도미니카의 백인 지주 딸로 태어나 영국에 건너 온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작가 진 리스를 돌보아 준 이야기는, 정말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가 이런 것인가 다소 놀라울 정도였다
어느 정도는 유모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 딸마저 부양하기를 거부한 철 모르는 이 할머니 작가를 말년까지 보살펴 준다
친하게 지내는 작가 부부가 또 다른 부부와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다가 서로 짝을 바꿔 눈이 맞은 얘기는 정말 소설 같다
한 쪽이 눈이 맞아 도망가자,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위로하다가 재혼을 한 것이다
아일랜드 지주 딸로 태어난 몰리 킨의 얘기도 재밌었다
귀족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예절이나 품격들이 사실은 인간적인 감정마저 억제한 매우 위선적인 것임을 간파해 낸 할머니 작가의 분석력이 놀랍다
저자는 여름 휴가를 그녀의 집에서 보낸다
정말 편집자가 작가들과 이 정도로 친교를 유지하는지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책을 찍으면 기본적인 독자는 확보해 두던 호시절에 출판일을 했음을 감사해 하는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출판업의 어려운 사정을 통감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영상물과 경쟁을 해야 하는 책은, 오락거리라고는 책 밖에 없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다
독자들이 더 재밌는 놀이 형태를 찾아 버렸으니 출판사로서는 이제 단순히 좋은 책을 펴내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될 문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재밌다
한 편의 재밌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중간중간에 웃음을 터뜨렸다
비단 편집자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즐거운 이야기책을 읽는 것처럼 재밌으니 일독을 권할 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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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0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대로 두기'는 힘들겠어요. 장바구니에 넣을래요.^--^
이 책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marine 2006-11-0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정말 재밌는 책이예요 80대 할머니 센스가 대단하세요^^
 
한반도 (2disc) : 한정판 - 초도출시 양장본
강우석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어색한 차인표의 연기만큼이나 억지스런 상황 설정이 매우 불편했던 영화
감독이 주장하는 바가 뭔지 궁금하다
영화에서처럼 민비가 자객들의 칼에 맞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며 장렬하게 죽어갔다면 아마도 대한제국은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족주의의 부흥이 과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인가?
이런 식의 영화가,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일본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인가?

영화 주제와는 별도로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도 지루하고 현실감이 떨어졌다
주제가 바람직하지 못하면 스토리라도 재밌어야 하는데 두 가지 점에서 모두 실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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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학생이 자긴 울면서 보았다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더라구요. 조오금.. 난감했어요^^;;;

marine 2006-11-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은 감수성이 예민하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동물행동학 살림지식총서 226
임신재 지음 / 살림 / 200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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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낼 때는, 특히 살림문고처럼 100페이지 미만의 짧은 책을 낼 때는 주제를 좁은 범위로 한정시켜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겨우 90페이지 책에 "동물행동학" 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들이밀면 대체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한 것인지...
하다못해 야생조류의 생태학이라든지, 포유류의 습성, 아니면 야생동물과 환경보호 이런 식으로 좀 줄여서 기술해야 할 게 아닌가?
용두사미의 대표적인 책이고 "동물행동학" 이라는 책 제목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살림문고는 짧은 분량에 좋은 내용을 담은 훌륭한 문고판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가끔 보면 수준에 맞지 않는 책들이 끼여 있다
저자들이 문고판이라고 너무 쉽게 책을 내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100페이지 미만으로 한정해 책값을 3300원에 맞춘 건 이해는 하지만, 앞으로 필자를 선정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서 어지간한 책의 수준은 유지해 줬으면 좋겠다

 

책의 내용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1. 도토리 줍기가 그것을 주식으로 삼는 다람쥐나 청솔모들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된다고 한다
산에서 나는 도토리를 주어 묵을 해 먹는 게 별미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저 낭만적으로 여기던 관습이 실은 약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큰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야생 도토리 줍기 같은 일은 홍보를 통해 자제해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다람쥐들이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아사되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2. 보신주의와 관련된 밀렵 행위
보신주의야 말로 잘못된 의학상식의 대표적인 예인데 아직도 몸에 좋다는 이유로, 더 정확히는 정력이 세진다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에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밀렵되고 불법적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지적대로 불법 거래되는 야생동물들은 보관 상태도 좋지 않아 위생상에 큰 문제가 있으니 정말 자제해야 할 일이다
서식지 부족으로 얼마 남지도 않은 야생동물들을 그나마 인간들이 불합리한 이유로 남획을 한다면 한 종의 씨를 말리는 끔찍한 범죄 행위가 될 것이다
웅담을 먹는다는 이유로 농가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반달가슴곰의 사연도 안타깝다
웅담이 과연 보신 작용을 하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살아있는 곰에게 직접 빨대를 꽂고 웅담을 마시는 행위는 엽기 그 자체다
그나마 이 곰들은 좁은 우리에 가둬 키우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비단 이런 곰 뿐이 아니라 호랑이나 사자 같은 거대 맹수류는 동물원에서 키울 때도 서식지가 너무 협소해 번식을 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으나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번식 본능을 저해하는 것이다
동물원 문제는 참, 해결점이 쉽지 않은 답답한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교육 효과가 있고 사람들에게 관람의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로 거대 야생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둬 놓는 것이 옳은 일인지 회의가 들 때가 많다
요즘은 가능하면 자연과 비슷한 형태로 넓은 부지를 확보해 비슷하게 꾸며 주려고 애쓰지만 그것도 서울의 큰 동물원이나 해당되는 일이지, 지방의 동물원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좁은 우리에서 어슬렁 거리지도 못하고 그저 누워만 있는 사자나 호랑이를 볼 때면 즐겁기는 커녕 한숨만 나온다
좀 비약하자면, 인간의 가학성을 보는 기분까지 든다
 

3. 어미가 새끼를 핥을 때 나오는 페로몬으로 자기 새끼를 구별한다고 한다
페로몬은 후각 중추를 자극해서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동물들은 특히 후각에 민감한데 개의 경우 사람보다 100배나 민감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똘이가 음식 냄새만 맡으면 멀리서도 뛰어 오는 모양이다
아무리 몰래 간식을 먹으려고 해도 일단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기만 하면 절대 똘이의 감시 영역을 피할 수가 없다
똘이가 보이지 않는데서 먹으려고 해도,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내 방으로 달려 온다
인간보다 후각 기능이 100배나 발달했다고 하니, 똘이로서는 안 맡을래야 안 맡을 수가 없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개는 참 예민한 동물이다
아무리 깊은 잠이 들어도 사소한 소리나 냄새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경계 태새를 갖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작은 자극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아파트에서 집을 지킬 일이 뭐가 있다고 한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경계 태새에 들어가는 똘이를 보면서, 얼마나 피곤할까 싶기도 하고 사람과 함께 살아도 본능은 버리지 못하나 보다 싶어서, 어떻게 하면 개의 본능에 거슬리지 않게 키워야 하나 고민해 보기도 한다
애완견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벌써 무리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에, 또 전혀 다른 종과 평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본능에 어긋나는 것이긴 하지만, 이미 인간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상태로 개종되어 왔기 때문에 그나마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 할 것 같다
다음에는 애완견의 행동학에 관한 책을 읽어 봐야겠다

 

4. 반포지효라는 고사성어 때문에 까마귀가 늙어서 자식의 봉양을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뜻밖에도 까마귀는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나도 이 고사성어가 매우 의심스럽긴 했다
효라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그러니까 지극히 인위적인 규율이라고 여겨왔는데 자연 상태에서도 이런 현상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었다
그런데 역시나, 까마귀가 부모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일 따위는 없다고 한다
부모보다 커 버린 새끼 까마귀가 부모에게 먹이를 받아 먹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까마귀가 효라는 개념을 알 것이며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저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에 인간의 도덕 규범을 대입한다는 건 억지스럽다
그러고 보면 항상 문제는 과학적인 진실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진화론자들에게 있다
유전이나 형질 등의 과학적 현상에 대해 인종주의나 남성 우월주의 등의 잘못된 해석을 들이대는 게 문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생태계를 봐도 너무 당연한 것인데 여기에 이상한 남성 우월주의를 덧붙여 다름이 곧 차별의 근거인 듯 내세우는 사회학자들이 문제다
인종주의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거대한 종의 특성으로 보면 매우 동질한 존재이고, 세부적으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인데 거기에다 말도 안 되는 인종주의를 결합시켜 우월한 백인이 열등한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세운다
이미 말도 안 되는 논리임이 입증됐지만 여전히 이런 파쇼적인 주장을 과학, 혹은 유전이라는 말을 내세워 심증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런 이유로 자연 현상이나 과학적 사실을 밝히는데 있어,혹시 우생학이나 남녀 차별론에 이용될까 봐 주저하는 분위기도 있다는 게 참 안타깝다

 

짧은 책에 너무 광범위한 주제를 담으려고 한 게 무리이긴 했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동물과 생태 보호에 대해 생각해 본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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