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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고 있다 나는 그녀에 대해 참 많이 궁금했다 일단 룩셈부르크라는 성도 그렇고 (나라 이름이 성이니까 신기했다) 여자 혁명가는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고, 전시 상황도 아닌데 군인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비참한 결말도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아는 독일은 선진국인데 법정에 세우지도 않고 때려 죽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박정희 시대 때도 이렇게 죽긴 어려운데 그녀는 대체 무슨 사연으로 선진국인 독일에서 이런 비참한 죽임을 당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모든 것이 다 앞설 거라는 순진한 착각이었지만, 어쨌든 그 때는 정말 이해가 안 갔다 그녀가 죽은 게 1919년으로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였고, 공산주의자를 아무데서나 암살하는 분위기였으니 그 뒤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내 생각 속의 로자는 강인하고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고 사랑 같은 자잘한 감정에 얽매이지 않으며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혁명가라는 이미지에 담긴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다 갖췄다고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서는 겨우 여성 혁명가라는 사실 밖에 몰랐지만, 막연히 그럴 거라고 상상했다 워낙 역할 모델을 해 줄 여성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명한 여성이 등장하면 인간적인 약점은 모두 가리고 완벽할 거라고 지레 짐작해 버리는 내 편견 탓이었으리라 이것도 피해 의식의 발로이고 강박 관념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자각하고 여성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 평전은 나에게 여성 혁명가 로자 대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던 인간 로자에 대해 조근조근 알려 준다 나는 그녀의 불행한 삶이 너무 안타까워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유태인에다가 절름발이, 더구나 여성이기까지 했던, 저자의 표현대로 불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험난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 그녀가 멋지게 보이는 대신,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인간적인 고통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걸 보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꼈다
어떤 분은 이 책이 로자의 혁명가적인 면보다 여성다운 면, 레오 요기헤스와의 사랑 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꼭 로자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어떤 위대한 인물이든지 인간적인 고통과 번뇌는 있기 마련이다 위인전을 읽을 때 제일 괴로운 것은 인간을 영웅으로 탈바꿈 시키는 과정이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인물을 구현시켜 놓고 독자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기라고 하라는 듯한 서술 태도는, 인물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들게 만든다 이 책은 600페이지에 걸쳐 인간 로자에 대해 조근조근 풀어 낸다 분량이 많이 때문에 그녀의 삶을 업적 위주로 압축하지 않고 삶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잘 풀어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오 요기헤스와의 사랑을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똑똑하고 잘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혼자 감내해야 할 가슴앓이가 큰 법이다 더구나 그녀는 위대한 애인을 숭배하는 평범한 여자도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박사 학위까지 받고 공산주의에 뛰어 든 최고의 인텔리였고 혁명가였다 영웅적인 애인 옆에 서는 여자는 얼마나 초라하고 외로운가 레오는 대부분의 잘난 사람들이 그렇듯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이었으며 애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여자를 지배하려고 했다 물론 로자는 누구에게도 지배당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유태인이었지만 폴란드 귀족들에게 지배당하지 않았고, 당시 폴란드를 통치하던 러시아인들에게도 결코 굽히지 않았다 절름발이였지만 정상인들 보다 훨씬 뛰어난 머리와 웅변술이 있었고, 여자였지만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쳤다 로자는 1900년대의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레오 요기헤스와의 사랑이 더더욱 불행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레오는 비단 애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강한 남자였다 로자의 강인함과 열정에 에너지를 얻고 사랑을 느꼈을 테지만, 진정으로 레오가 원했던 것은 어머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품어 주고, 자신에게 삶을 바치는 순종적인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처음 레오를 만났을 때 로자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 애인을 숭배했다 그는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사상적으로도 그녀보다 우월했다 레오 요기헤스의 인간적인 면 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반했을 게 틀림없다 로자처럼 강인한 여성을 휘어잡을 수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일지는 짐작이 간다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그는 꽤 잘 생겼고 카리스마가가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과 타협할 줄 모르고 독선적인 레오는 고립되어 갔고 로자는 독일로 건너간 뒤 뛰어난 웅변술과 학문적 능력으로 동료들을 압도해 갔다 레오와 로자의 사회적 관계가 역전되면서 더 이상 그녀는 일방적인 관계를 묵과하지 않았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자는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을 내 주는 대신, 한쪽 눈에는 두 눈을, 이에는 아가리 전체를 외치는 강인한 여자였다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고 로자는 친구의 아들과 연인 사이가 됐다 그러나 로자는 레오처럼 연하의 애인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보다 수평적이고 열린 관계를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둘만의 관계에서는 여자가 우위에 있을 때, 남자가 여자의 우월함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한 쪽이 다른 쪽을 끌어 주는 바람직한 관계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로자는 연하의 애인을 지배하는 대신 그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록 연하의 애인에게 빠져 공과 사를 그르친다고 비난을 받고, 겨우 2년 만에 관계를 끝내기는 했지만 내게는 둘의 관계가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비친다 적어도 한 쪽이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레오와 로자의 관계 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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