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봄, 공녀 세창역사산책 11
조혁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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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쥘 수 있는 문고판 정도의 짧은 분량의 책이라 신선하다.

역사산책이라는 이 시리즈의 제목답게 하나의 주제를 가볍게 살펴볼 수 있는 괜찮은 기획의도 같다.

다만 표지 디자인이 요즘 책답지 않게 너무 촌스러워 이 부분만 좀 개선을 하면 훨씬 매력적인 책이 되지 않을까.

일단 공녀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항상 이 부분이 의문이었다.

중국은 왜 한반도에 공녀를 요구했을까?

청나라 때 포로로 붙잡아 간 것도 아니고 일종의 화친 정책이나 복속의 상징으로 일부 처녀들을 끌고 간 것일까?

전 시대에 걸쳐 행해진 것도 아니고 고려 말의 원나라 때와 조선 초 명나라 때 잠깐 있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일종의 공물처럼 생각하고 사대의 예를 다하는지 시험해 보기 위함일까?

엄청난 수를 데려간 것도 아니고 단순히 노비나 성노예로 부리려고 한 것도 아닌 듯하고 오히려 양반집 규수들을 뽑아 황제의 후궁으로 삼아 기황후나 한확의 누이들처럼 중국에서 출세한 여인들도 있으니 참 독특한 현상인 듯하다.

저자는 명나라가 건국 초 만주의 여진족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북원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과의 확실한 동맹을 위해 일종의 정략결혼 개념으로 공녀를 원했다고 본다.

그래서 영락제는 3차에 걸쳐 뽑은 공녀들에게 모두 후궁 작위를 내리고 그 아비와 형제에게 황친의 자격도 하사했다고 한다.

영락제는 베트남에도 환관들을 요청해 이들이 북경의 황궁을 지을 때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정말 영락제는 복속과 화친의 의미로 속국에 공녀를 요구한 것일까?

영락제 이후로는 공녀로 뽑혀 가도 후궁의 작위가 내리지도 않고 오히려 조리사나 바느질 하는 사역인을 더 원했다고 한다.

점점 결혼동맹의 의미가 퇴색된 탓일까?

저자는 영락제와 경태제의 생모가 조선인 공녀였을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데 근거가 매우 부족한 야사라고 생각한다.

영락제의 고려인 생모 이야기는 중국에도 많이 퍼진 야사 같던데 일본인 교수가 쓴 <영락제> 평전을 보면 근거없는 이야기로 보이고 마치 진시황이 여불위의 아들이었다는 식으로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에 대한 민간의 복수가 아닐까 싶다.

권위를 흠집내기 위해서 말이다.

저자는 한 술 더 떠 경태제가 조선인 공녀 오씨의 생모일 거라 말하는데 역시 야사에 불과하고 실제로 명나라 정치에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했으니 생모의 출신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97p

1차 공녀는 전체 7차례의 공녀 가운데서 유일하게, 진헌된 5명 모두가 영락제의 후궁이 되었다. 이처럼 영락제가 5명의 공녀를 후궁으로 대우한 데는 고도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영락제는 조선을 확실한 우방으로 묶어 두고, 북방의 유목민족을 정복하려 하였다. 이렇게 동북아 역사에서는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그 북쪽의 오랑캐(유목민족)와 그 남쪽의 중화족(한족), 그리고 그 중간에 우리나라가 정립하는 삼각구도가 자주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동북아 정세는 크게 출렁거렸다.

172p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한 '마의 삼각구도'는 동북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간헐적으로 형성되었다가 중국 대륙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들어서면 해체되었다. 그러면 대륙의 국가와 한반도의 국가 사이에는 어김없이 공녀 현상이 발생하였다.

 공녀는 일종의 공물이고, 그 공물은 동아시아 국가 사이에 존재했던 조공과 책봉이라는 외교적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녀는 종주국인 중국과 그 주변 국가인 번속국 사이에 성립되었다. 이 경우 국력이 강한 종주국은 '갑'이 되고, 열세은 번속국은 '을'이 된다.

176p

고려와 원나라, 조선와 명나라의 공녀는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원나라가 고려에 공녀를 징구한 배경은 원의 일부다처제 풍습, 병사들에게 아내를 공급하기 위한 求妻 차원, 원 황실이 인력공급이었다. 기황후가 바로 원 황실의 使役 용도로 진공되었다가 황후의 위치까지 오른 경우이다. 

 원나라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던 우리 역사의 공녀는 명나라가 중원 대륙을 통일한 후 다시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 배경은 고려-원나라의 공녀 수수 관계와는 크게 달랐다. 명 태조 주원장은 인접국 조선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조선 왕실과의 정략결혼 추진으로 나타났으나, 주변 정세의 변화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명나라 영락제도 정략결혼이라는 유화책을 통해 조선을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묶어 두고 대몽골 공격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하였다. 그 결과, 영락제 재위기간의 1~3차 공녀는 흠이 없는 경우 모두 '후궁'의 품위를 받았고, 그 친족은 '황족'의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영락제 재위 후반부터는 공녀 요구 내용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영락제는 음식 잘 만드는 조선 여자와 음식을 징구하다가 사망하였다. 명나라의 새 황제 선덕제는 조선에 동녀 외에도 다반부녀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6,7차 공녀에서는 그 선호도가 더욱 명확해져 아예 조선 음식과 반찬 만드는 집찬녀를 집중적으로 요구하였다. 따라서 4차 이후부터는 일부 특별한 경우는 제외하고 후궁의 품위가 주어지지 않았고, 친족도 황족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다만 한확의 여동생 한계란(5차 공녀)에게는 후궁의 품위가 주아졌고, 그 친족은 황족의 대우를 받았다.

 조선의 공녀 진공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처음에는 명 황실과 조선 왕실 간의 정략결혼 차원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명 황실의 사역인 용도로 변해갔다는 점이다. 정략결혼에는 명나라 황제 개인의 성적 욕구 해소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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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김선주 지음, 김범 옮김 / 푸른역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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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간만에 너무 재밌는 역사책을 만났다.

역사서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책.

3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마치 소설을 읽듯 흥미로워 한번에 쭉 읽었다.

역시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영어로 쓴 논문을 한국인 학자가 번역한 독특한 책인데, 그래서인지 약간의 번역투 문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고 무엇보다 사건을 보는 시각이 외부자라서 그런지 훨씬 날카롭고 비판적이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연구자의 이런 실제적인 비판을 듣기 위함이지 단지 역사적 사실 나열을 읽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또 가끔 국내 필자책에서 보는 당위적이거나 명분론, 도덕적 포폄의 서술이 없어 너무 재밌다.

무엇보다 인용한 자료들이 아주 풍부해 저자의 주장에 신뢰가 가고 19세기 당시 조선의 지방 사회와 중앙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홍경래의 난이 지배 계층에 대항하는 피지배층의 계급 투쟁이 아니라, 중앙에서 소외받던 지역 지배층이 일으킨 반란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적인 계급투쟁론, 혹은 농민운동 같은 시각은 서구에서도 어쩐지 철지난 이론처럼 취급하는 느낌이다.

역사는 도덕적으로 혹은 정치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 사건이 당시 사회에 미친 "실제적인" 진짜 이유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억압받던 민중의 힘이 모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차별받아 온 평안도 지역의 지배층들이 차별에 울분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정감록 같은 유교적 왕조 교체설과 풍수지리, 도참설 등에 힘입어 반란을 꾀한 것으로 본다.

간단히 말해 수탈받는 민중은 반란을 조직할 정치적 의식이나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의아했던 것이, 왜 조선 정부는 관북 사람들을 차별하고 중앙 정계에 받아주지 않았냐는 점이었다.

조선를 세운 이가 다른 지역도 아닌 함경도 출신인데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비단 관북 사람들만 소외된 것이 아니라 16세기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울 이외의 모든 지방 사대부들이 거의 중앙으로부터 소외됐음을 지적한다.

또 평안도 지역은 국경에 가까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진족과의 투쟁 속에서 영토를 확보해 갔기 때문에 변방이라는 지역적 차별이 존재해 왔다.

기존의 양반층이 세거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이주시키고 유배 등 형벌로써 어쩔 수 없이 정착하게 된 경우가 많아 삼남 지방에 비해 뿌리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16세기 이후 당쟁이 격화되자 지역 산림들의 정치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유교적 풍습 자체가 늦게 정착되는 바람에 중앙에 진출한 북부인들을 끌어 줄 세력이 없었다.

자연히 이들의 고위직 진출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상업이나 청과의 무역 등을 통해 자산이 증가하면서 북부 양반들의 과거 급제율은 올라가고 관직을 얻지 못하자 불만이 쌓여 갔다.

저자는 지역 지배층의 이러한 울분을 반란의 원동력이라 생각한 반면, 당시 조전 정부에서는 단순히 삼남의 민란처럼 탐관오리의 횡포가 원인이라 봤기 때문에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북부에 대한 차별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 정부의 군사력도 매우 미약하여 겨우 수백 명의 반란군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5개월을 끌었고 결국은 외세에 의해 망하게 됐음을 지적한다.

어찌 됐든 조선 정부가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고 그 후로도 안정적으로 이 지역을 통제했던 것을 보면, 상당히 안정된 통치체제였음은 분명하다.


<오류>

169p

한국사에서 예언적 신앙을 이용한 것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7세기 후반 정여립의 음모였다.

-> 정여립의 난은 1589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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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실의 근친혼 이야기
김동섭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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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의 전작을 재밌게 읽어서 신간도 기대를 했는데 자잘한 오류들이 너무 많고 내용도 프랑스 왕실 혼인 관계를 쭉 나열한 느낌이라 약간 실망했다.

역사학자라면 뭔가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길 기대해는데 위키백과에 나온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느낌일 정도로 밋밋해서 아쉽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근친혼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해서 유럽 왕실의 근친혼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는데 그냥 누가 누구랑 결혼했다는 통혼 관계들 뿐이다.

대신 복잡한 유럽 왕실들의 혼맥은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간단히 말해 유럽의 왕실은 한국이나 중국처럼 중앙집권체제가 아니고 자식이나 귀족들에게 땅을 분봉하는 봉건제였기 때문에 타 가문과 혼인을 하게 되면 영지가 나누어지므로 자기 가문 내에서 배우자를 찾았다.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표적이고 이 가문이 유독 삼촌과 조카 사이의 혼인이 많았고, 프랑스 왕실 역시 사촌이나 육촌 정도의 혼인은 아주 흔했다.

가톨릭에서는 근친혼을 금하고 있으나 수도원을 지어 주거나 교회에 땅을 바치는 식으로 편법적으로 왕실과 타협해 승인을 해 줬다.

여자가 시집을 오면 몸만 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상속받을 땅을 들고 오기 때문에 유럽의 왕실들은 결혼 정책을 통해 영지를 넓혀 왔고 기왕이면 자기 가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다른 가문으로 땅이 넘어가는 것을 막았던 셈이다.

또 격에 맞는 가문을 찾다 보면 왕실 내에서 배우자를 고를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유럽이나 이슬람 지역에서는 4촌끼리 혼인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던데 이 정도의 결합이 유전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되는지 궁금하다.


<오류>

35p

도표 <리샤르 1세-리샤르3세-장엄공 로베르>

-> 리샤르 1세-리샤르 2세-리샤르 3세, 로베르이다.

또 보두앵 4세의 아내 엘레오노르는 리샤르 3세가 아니라 리샤르 2세의 딸이다.


윌리엄의 조상은 리샤르 1세인데 그는 911년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의 수장 롤롱의 아들이다. 

-> 리샤르 1세는 기욤 1세의 아들이고 롤롱의 손자이다.

59p

고딕 건축 양식이 태동한 곳이 파리 근교의 생드디 성당이므로

-> 생 드니 성당이다.

84p

헨리 1세가 마틸다를 낳고, 마틸다의 외손이 존 왕이므로, 헨리 1세는 존의 4대 조부가 된다. 결국 존 왕과 글로스터의 이자벨은 4대조인 헨리 1세에서 만난다.

->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가 존을 낳았으므로 외손이 아니라 친손자이고 헨리 1세는 4대가 아니라 존의 3대 조부이다. 또 글로스터의 이자벨의 증조부가 헨리 1세이므로 둘 다 3대조인 헨리 1세에서 만난다.

85p

존과 이자벨은 4대조가 같은 조상, 즉 헨리 1세였다.

-> 둘의 증조부가 헨리 1세로 3대조로 바꿔야 한다.

98p

루이 9세와 마르그리트의 맏아들 루이는 16세에 요절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동생 필립이 고조부 필립 2세의 뒤를 이어 필립 3세에 오른다.

-> 필리프 2세는 루이 9세의 조부이고 필리프 3세의 증조부이다.

100p

그러니까 영국과 프랑스의 구원은 헨리 2세의 손자(헨리 3세)와 루이 7세의 손자(루이 9세) 대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 루이 7세의 손자는 루이 8세이고 루이 9세는 증손이다.

106p

초대 왕인 위그 카페(재위, 980~996)부터 

-> 위그 카페의 재위 기간은 987년부터 996년이다.

120p

가계도 <루이 8세-프랑스의 샤를 2세>

->루이 8세의 아들은 샤를 2세가 아니라 샤를 1세이다. 

<앙주와 헝가리의 샤를 1세 = 합스부르크의 클레망스>

-> 앙주의 샤를 마르텔의 아들이 바로 앙주와 헝가리의 샤를 1세이고 샤를 마르텔이 합스부르크의 클레망스와 결혼했다.

143p

샤를 6세의 5대 조부인 루이 9세의 동생은

->샤를 6세의 6대 조부가 루이 9세이고 5대는 필리프 3세이다.

167p

펠리페 1세의 아들 카를 5세는 할머니(마리 드 부르고뉴)로부터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았고, 어머니 이사벨라로부터는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는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았다.

-> 할머니 이사벨라와 어머니 후아나로부터 카스티야 왕국을, 할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았다.

171p

카를 5세는 독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대를 동원하여 로마를 약탈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2세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 클레멘스 2세가 아니라 7세이다.

228p

루이 16세의 증손자인 루이 16세가 물려받은 프랑스는

-> 루이 16세의 증손자는 루이 15세이다.

232p

그러므로 루이 10세가 프랑수아 1세를 사위로 삼아

-> 루이 12세가 프랑수아 1세를 사위로 삼았다.

239p

앙리 4세는 메디치 가문의 딸이자 카트린 드 메디치의 조카뻘인 마리 드 메디치와 결혼하였다.

-> 카트린과 마리는 위대한 로렌초의 후손인데 조카가 아니라 8촌 손녀뻘이다.

252p

1648년 부르봉 왕가에 대한 귀족세력의 반란이 일어났다. 루이 14세는 스무 살이었고, 재위 6년째 되던 해였다.

-> 루이 14세는 1638년 생으로 프롱드의 난이 일어날 당시 10세였다.

262p

다시 말해 펠리페 4세는 고모의 딸 마리아나와 결혼한 것이다.

-> 펠리페 4세는 고모가 아니라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다.

264p

카를로스 2세는 다시 결혼을 하는데 상대는 마리아 안나 폰 팔츠노이부르크로, 그에게는 7촌 당숙모였다.

->마리아 팔츠노이부르크의 언니가 카를로스 2세의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의 황후로, 친척이 아닌 사돈 관계이다.

273p

사실 마리 레슈친스카는 루이 15세보다 다섯 살 많았다.

-> 마리 레슈친스카는 1703년생이고 루이 15세는 1710년생이므로 일곱 살 차이가 난다.

284p

세 번째 아들인 루이가 루이 16세(재위, 1774-1789)로 왕위에 오른다.

-> 루이 16세는 1774년부터 1792년까지 재위했다.

288p

이 무렵 루이 16세의 숙모 2명이 프랑스를 탈출하여 

(이 부분이 나무 위키에 나온 문장과 똑같아 누가 먼저 베꼈는지, 아니면 원전이 같은지 궁금하다)

-> 루이 16세의 숙모가 아니라 아버지 루이 페르디낭의 여동생들인 마리 아델라이드와 빅투아르, 즉 고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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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궁극 : 서평 잘 쓰는 법 - 읽는 독서에서 쓰는 독서로 더행의 독서의 궁극 시리즈 1
조현행 지음 / 생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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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어렵다기 보다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작업이라 읽을 책이 쌓여 있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건너 뛰게 된다.

그나마 알라딘에 읽은 흔적이라도 남기기 위해 간단한 감상문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럴 듯한 서평을 쓰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어 이런 책들을 읽게 된다.

그렇지만 늘 느끼는 바대로, 서평을 읽는 것과 직접 책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남의 서평은 그저 참조만 할 뿐이고 오히려 서평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이 책을 읽고 정리하는데 의의를 둬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직업적인 서평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또 논술 시험을 보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게 아니므로 서평 보다는 오히려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문이 일반 독자에게는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서평이란 그저 아,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들면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된다.

서평을 읽고 책을 요약하는 게 아니라 이 책을 한 번 읽어볼까? 이런 호기심이 생긴다면 좋은 글이 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주로 비문학을 읽기 때문에 감상문 쓰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내용을 요약 정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400 페이지 정도의 책이 전하는 지식을 하나의 주제로 압축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대로 중요한 부분을 따로 적어 둔다.

확실히 필사를 하면 어려운 문장도 더 쉽게 이해가 된다.

글을 쓰면서 한 번 더 곱씹어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사는 정말 힘이 많이 들고 시간도 꽤 걸리며 필사한 노트를 다시 읽어보면 전체 맥락에서 동떨어져 있어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책에 나온 것처럼 단순히 필사를 한다고 문장력이 좋아질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다.

저자는 감상문과 서평의 차이에 대해, 서평은 타인의 동조를 구하고 주장에 대한 근거를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간단히 이 책은 읽어 볼 만 하다. 왜냐면 이런 점이 좋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남들도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밝힌 게 서평이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서평을 못 쓴다는 말에 공감이 됐다.

적어도 2/3 정도는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글이 써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재독이다.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워낙 새로 배우는 내용들이 많아 일일이 표시를 해 둔 후 옮겨 적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요즘에는 표시한 부분만 다시 읽고 있다.

도서관 책은 이 점이 아쉽긴 하다.

재독하고 싶을 때 바로 읽을 수 없고 표시한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반납해야 한다는 점.

한 권의 책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적어도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단 간섭 효과가 있으므로 시간차를 두고 읽는 게 제일 좋은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써 보고 왜 동의하는지, 혹은 왜 반대하는지, 주장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보다 입체적인 독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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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 하버드 최고의 뇌과학 강의
제레드 쿠니 호바스 지음, 김나연 옮김 / 토네이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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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있는 하버드 교수라는 광고에 혹해서 신경과학적으로 보는 기억에 관한 책인 줄 알고 기대를 했었는데 아쉽게도 자기계발서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것 같다.

하버드에서 강의했다고만 하는 것이, 진짜로 연구하는 학자는 아닌 것 같다.

기억보다는 프리젠테이션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일회성 에피소드가 종종 나와 끝까지 완독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뒤로 갈수록 도움되는 내용이 많아 결과적으로는 만족한다.

역시 어떤 책이든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훨씬 낫다.

항상 내가 궁금한 것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하면 읽은 책의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잘 저장할 수 있느냐이다.

알고 싶은 호기심이 많아 많은 책을 읽지만 시험을 봐야 하는 수험생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 눈으로만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늘 아쉬웠다.

문학책을 읽는다면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감동받으면 되니까 이런 고민을 안할텐데 내가 읽는 책은 역사책들이라 좀더 책의 정보를 많이 기억해서 배경지식으로 쌓아두고 싶다.

그래서 항상 책의 내용을 어떻게 기억하고 정리할 것인가에 대해 방법론적인 고민을 한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맞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1) 멀티태스킹은 환상이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 못한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냥 빠르게 작업전환을 할 뿐이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 지연이 있기 때문에 실수할 위험이 있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들은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두 가지가 가능해 보일 때도 있다.

이를테면 늘 가던 길을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곳에 집중하게 되면 습관적 행동의 주의력도 흐트러질 수 있다.

나 역시 운전하다가 듣는 음악에 너무 빠져들면 순간적으로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결론은 한 번에 하나씩!


2) 장기 기억의 핵심은 주기적으로 회상을 반복하는 분산학습이다.

시간차를 두고 복습하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왔다.

실제로 책을 읽을 때도 몇 달 후 재독하게 되면 앞서 읽었던 내용들이 조금씩 떠오르면서 훨씬 더 잘 이해되고 선명해진다.

그런데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라 24시간 후, 1주일 후, 한 달 후 이런 식으로 바로 읽는 건 간섭 효과 때문에 독서에는 안 좋은 것 같다.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하는 수험생이라면 이렇게 해도 되는데 독서는 너무 빨리 재독하게 되면 지루함을 느낀다.

개별 사항을 외우는 것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몇 달의 간격을 두고 다시 읽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충격적이게도 리뷰, 즉 그냥 다시 읽는 건 장기 기억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형광펜으로 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장기 기억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진정한 장기 기억은 단지 다시 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으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것,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회상이 가능해야 한다.

전에 어떤 대학원생이 교수님 강의를 마치면 빈 종이에 배웠던 것을 써 본다고 했던 게 생각난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을 떠올려 보고 틀린 부분이나 부족한 것을 피드백 해 주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저자는 플래시 카드를 추천한다.

앞에 문제를 써 놓고 답을 떠올린 후 뒺장을 보고 맞는지 확인하는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또 익히고자 하는 개념을 학습한 후 다양한 맥락에서 복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도 이 점 때문에 많은 책을 읽게 된다.

주제가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여러 권의 책을 보면서 시대적 배경과 전쟁의 성격에 대해 익히는 식이다.

하나의 개념을 다양한 책에서 만나면 훨씬 더 쉽게 기억이 된다.

저자는 복습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끼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복습은 지루하고 힘들어서 실천하기기 쉽지 않다.

알라딘에 리뷰를 쓰는 것도 일종의 복습인 셈인데 이마저도 에너지 소모가 많아 대충 간단하게 기록하게 된다.


3) 스트레스는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일 뿐이다.

저자는 감정과 느낌을 구분한다.

감정은 일종의 감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겼을 때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무서운 일을 당하면 공포감이 들고 손발이 축축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대신 무섭고 두렵다고 해석하는 게 바로 느낌이고 스트레스로 작용할지는 나의 해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일종의 정신승리 같고 긍정 마인드 이론 같은데 사건을 바꿀 수 없으니 거기에 대한 나의 반응을 바꾸자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래서 저자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달리기를 하는 식으로 정신에서 육체로 관심을 돌리라고 한다.

결국 인간의 정신도 몸의 일부분이니 운동을 해서 엔돌핀이 분비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쓰이나 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바로 심리적 안정이라고 한다.

사실 사건이 생기면 내가 컨트롤 하지 못해 나쁜 결과가 생길까 봐 두려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궁극적으로 감당하지 못할 일은 없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여 주고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게끔 노력하라고 한다.

이 심리적 안정을 찾는 과정이 명상이고 마음수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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