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실의 근친혼 이야기
김동섭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저자의 전작을 재밌게 읽어서 신간도 기대를 했는데 자잘한 오류들이 너무 많고 내용도 프랑스 왕실 혼인 관계를 쭉 나열한 느낌이라 약간 실망했다.

역사학자라면 뭔가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길 기대해는데 위키백과에 나온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느낌일 정도로 밋밋해서 아쉽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근친혼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해서 유럽 왕실의 근친혼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는데 그냥 누가 누구랑 결혼했다는 통혼 관계들 뿐이다.

대신 복잡한 유럽 왕실들의 혼맥은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간단히 말해 유럽의 왕실은 한국이나 중국처럼 중앙집권체제가 아니고 자식이나 귀족들에게 땅을 분봉하는 봉건제였기 때문에 타 가문과 혼인을 하게 되면 영지가 나누어지므로 자기 가문 내에서 배우자를 찾았다.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표적이고 이 가문이 유독 삼촌과 조카 사이의 혼인이 많았고, 프랑스 왕실 역시 사촌이나 육촌 정도의 혼인은 아주 흔했다.

가톨릭에서는 근친혼을 금하고 있으나 수도원을 지어 주거나 교회에 땅을 바치는 식으로 편법적으로 왕실과 타협해 승인을 해 줬다.

여자가 시집을 오면 몸만 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상속받을 땅을 들고 오기 때문에 유럽의 왕실들은 결혼 정책을 통해 영지를 넓혀 왔고 기왕이면 자기 가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다른 가문으로 땅이 넘어가는 것을 막았던 셈이다.

또 격에 맞는 가문을 찾다 보면 왕실 내에서 배우자를 고를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유럽이나 이슬람 지역에서는 4촌끼리 혼인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던데 이 정도의 결합이 유전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되는지 궁금하다.


<오류>

35p

도표 <리샤르 1세-리샤르3세-장엄공 로베르>

-> 리샤르 1세-리샤르 2세-리샤르 3세, 로베르이다.

또 보두앵 4세의 아내 엘레오노르는 리샤르 3세가 아니라 리샤르 2세의 딸이다.


윌리엄의 조상은 리샤르 1세인데 그는 911년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의 수장 롤롱의 아들이다. 

-> 리샤르 1세는 기욤 1세의 아들이고 롤롱의 손자이다.

59p

고딕 건축 양식이 태동한 곳이 파리 근교의 생드디 성당이므로

-> 생 드니 성당이다.

84p

헨리 1세가 마틸다를 낳고, 마틸다의 외손이 존 왕이므로, 헨리 1세는 존의 4대 조부가 된다. 결국 존 왕과 글로스터의 이자벨은 4대조인 헨리 1세에서 만난다.

->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가 존을 낳았으므로 외손이 아니라 친손자이고 헨리 1세는 4대가 아니라 존의 3대 조부이다. 또 글로스터의 이자벨의 증조부가 헨리 1세이므로 둘 다 3대조인 헨리 1세에서 만난다.

85p

존과 이자벨은 4대조가 같은 조상, 즉 헨리 1세였다.

-> 둘의 증조부가 헨리 1세로 3대조로 바꿔야 한다.

98p

루이 9세와 마르그리트의 맏아들 루이는 16세에 요절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동생 필립이 고조부 필립 2세의 뒤를 이어 필립 3세에 오른다.

-> 필리프 2세는 루이 9세의 조부이고 필리프 3세의 증조부이다.

100p

그러니까 영국과 프랑스의 구원은 헨리 2세의 손자(헨리 3세)와 루이 7세의 손자(루이 9세) 대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 루이 7세의 손자는 루이 8세이고 루이 9세는 증손이다.

106p

초대 왕인 위그 카페(재위, 980~996)부터 

-> 위그 카페의 재위 기간은 987년부터 996년이다.

120p

가계도 <루이 8세-프랑스의 샤를 2세>

->루이 8세의 아들은 샤를 2세가 아니라 샤를 1세이다. 

<앙주와 헝가리의 샤를 1세 = 합스부르크의 클레망스>

-> 앙주의 샤를 마르텔의 아들이 바로 앙주와 헝가리의 샤를 1세이고 샤를 마르텔이 합스부르크의 클레망스와 결혼했다.

143p

샤를 6세의 5대 조부인 루이 9세의 동생은

->샤를 6세의 6대 조부가 루이 9세이고 5대는 필리프 3세이다.

167p

펠리페 1세의 아들 카를 5세는 할머니(마리 드 부르고뉴)로부터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았고, 어머니 이사벨라로부터는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는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았다.

-> 할머니 이사벨라와 어머니 후아나로부터 카스티야 왕국을, 할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았다.

171p

카를 5세는 독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대를 동원하여 로마를 약탈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2세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 클레멘스 2세가 아니라 7세이다.

228p

루이 16세의 증손자인 루이 16세가 물려받은 프랑스는

-> 루이 16세의 증손자는 루이 15세이다.

232p

그러므로 루이 10세가 프랑수아 1세를 사위로 삼아

-> 루이 12세가 프랑수아 1세를 사위로 삼았다.

239p

앙리 4세는 메디치 가문의 딸이자 카트린 드 메디치의 조카뻘인 마리 드 메디치와 결혼하였다.

-> 카트린과 마리는 위대한 로렌초의 후손인데 조카가 아니라 8촌 손녀뻘이다.

252p

1648년 부르봉 왕가에 대한 귀족세력의 반란이 일어났다. 루이 14세는 스무 살이었고, 재위 6년째 되던 해였다.

-> 루이 14세는 1638년 생으로 프롱드의 난이 일어날 당시 10세였다.

262p

다시 말해 펠리페 4세는 고모의 딸 마리아나와 결혼한 것이다.

-> 펠리페 4세는 고모가 아니라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다.

264p

카를로스 2세는 다시 결혼을 하는데 상대는 마리아 안나 폰 팔츠노이부르크로, 그에게는 7촌 당숙모였다.

->마리아 팔츠노이부르크의 언니가 카를로스 2세의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의 황후로, 친척이 아닌 사돈 관계이다.

273p

사실 마리 레슈친스카는 루이 15세보다 다섯 살 많았다.

-> 마리 레슈친스카는 1703년생이고 루이 15세는 1710년생이므로 일곱 살 차이가 난다.

284p

세 번째 아들인 루이가 루이 16세(재위, 1774-1789)로 왕위에 오른다.

-> 루이 16세는 1774년부터 1792년까지 재위했다.

288p

이 무렵 루이 16세의 숙모 2명이 프랑스를 탈출하여 

(이 부분이 나무 위키에 나온 문장과 똑같아 누가 먼저 베꼈는지, 아니면 원전이 같은지 궁금하다)

-> 루이 16세의 숙모가 아니라 아버지 루이 페르디낭의 여동생들인 마리 아델라이드와 빅투아르, 즉 고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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