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 역사에서 1910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연도다. 그해가 바로 얼마 전까지는 한일합방으로, 지금은 경술국치로 불렸던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유전자에 그 해와 그 당시의 매국노들은 깊이 각인되어 지금도 일본이라면 치를 떨게 만들 정도다. 물론 일부 보수 세력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선동을 하고 바람을 쏟아내지만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뒤면 어떨까? 일제 치하 35년 동안 사람들 뇌리 속에 뿌리박힌 친일사관과 문화가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기 1910년, 경술국치,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이 누군가? 하고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인 21명은 낯익은 인물과 낯선 인물이 교차한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인물도 깊이가 얕아 이름과 그 놈이 나쁜 놈이다는 것 정도에 그쳤는데 이 책은 그들의 죄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당시 일본의 시대상과 변화를 같이 그려내면서 그 인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하는데 이 부분이 사실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이 시각은 한국의 것이라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새롭게 평가한 부분은 역사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은 정한을 꿈꾸었던 인물들이고, 다음은 열도의 침략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사랑했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을 다룬다. 이들 개개인의 평가는 시대와 그 나라에 따라 많이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제국주의 욕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진실보다 거짓과 폭력으로 조선을 대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근대화와 조국 번영에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위선과 거짓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그들을 평가한다.

21명의 일본인 중에서 두 명이 일본 천황이다. 이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천황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주고, 그들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보여준다. 목적에 의해 신으로 군림했다가 패전으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목숨과 자리를 보전한 그들을 보면 맹신과 우상에 휘둘린 일본 국민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 속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피눈물과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731부대와 관련한 최근 연구 결과는 히로히토의 거짓과 위선을 낱낱이 벗겨버린다. 이 사실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첫 다섯 명은 일본이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중심인물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그중 ‘식민은 문명의 전파’라고 외친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최근 친일세력의 주장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를 지나 명성황후 제거의 선봉에 선 이노우에 가오루를 만나게 되면 그 당시의 살인자들이 단순한 야쿠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강제 병탄 후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성을 무시하고 굴절시키면서 그들이 노렸던 바를 현재의 우리 모습에서 만나게 될 때 친일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머리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마지막 장에서 다룬 한국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분석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조선 문화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연구들이 오히려 문화 통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에선 그가 이룩한 업적들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란 틀 속에서 조선의 구원을 찾으라고 외친 우치무라 간조의 주장은 그가 사랑했던 일본과 예수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또 다른 방식의 통치에 대한 옹호임을 말해준다. 그 후 만나게 되는 박연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아사카와 다쿠미 등의 열정과 인본주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동시에 전후 반일감정과 반공산주의에 의해 그들의 업적이 폄하되고 무덤이 훼손된 것에선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책은 조선 병탄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똑같이 우리에게 우린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대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이 땅에 온 수많은 이민자와 산업연수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이유가 그 시대를 통해 현실을 알고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 사유의 장을 현실의 우리에게 확장하는 것도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망령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지우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겠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