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심장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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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숨의 장편 소설 한 권을 읽었다.

1947년 9월 16일 하루의 부산 풍경을 다룬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 소설에서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특정해서 읽기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조선소를 무대로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여준다.

조선소 전체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거대한 하나의 철상자가 그 공간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군들을 작가는 들여다보고 그냥 말한다.

그들의 깊은 심리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말과 행동으로 그들의 삶을 드러낸다.

특정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지만 몇몇 이름과 직업이 나온다.

화자가 있지만 그의 이야기보다 철상자의 노동자들이 실제 주인공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조선소를 무대로 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바로 <철>이란 소설인데 집에 모셔 두고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한 책이다.

하지만 <철>의 시대와 이 소설의 시대는 다르다.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노동자의 삶은 그렇게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삶은 하루살이와 같다.

반장에게 밉보이면 다음 날 일거리를 받을 수 없다.

여자 노동자는 반장의 성적 농담이나 성희롱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노동자라고 별다를 것 없다.

4호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법상 권리를 주장했다가 일을 잃었다.

그의 고용인은 폐업한 후 다른 이름으로 다시 하청업체가 되었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 구조다.

대기업은 자신들이 해야하지만 힘들거나 더러운 일을 하청으로 넘긴다.

이 하청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그 밑바닥 일은 가장 힘없는 노동자가 감당한다.

반장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다. 그들도 위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안전사고를 주의해야 하지만 환경은, 압박은 그것을 힘들게 한다.

용접공 최씨에게 내일 검사라고 하면서 반나절 일거리를 늦은 오후에 말한다.

잔업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일어나고, 최씨의 일상은 그 속에 짓눌린다.

이런 일은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원청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생각나는대로, 그들의 일정대로 말한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거대한 철판이 떨어져 노동자가 죽게 되는 상황이 일어난다.

구급차가 와서 싣고 가야 하지만 반장의 차로 병원에 이송된다.

왜냐고? 무사고 산업현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사고 며칠이란 숫자를 보면 믿기 힘들다.

그리고 나 자신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반성하게 된다.

조선업의 활황이 모두의 부를 올려줄 것이란 착각 때문이다.

정규직일 것이란 착각도 같이 말이다.

오래 전 활황기에 조선소 하청업체로 간 선배가 생각난다.


소설은 빽빽하게 글자를 채우기보다 적절하게 비웠다.

어떤 대목은 한 편의 시를 읽은 것 같다.

어떤 대목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대목은 연극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 같다.

그들의 이름, 소리, 감정, 힘겨운 일상 등이 빈 곳을 채운 체 강하게 울린다.

무수히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말과 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린다.

마지막 장면에 탈의실조차 없어 길에서 옷을 갈아 입는 남녀 노동자들이 나온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이 일마저 잃게 되면 삶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언젠가 <철>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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