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북
F. E. 히긴스 지음, 김정민 옮김, 이관용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아주 큰 것에서 조그마한 것까지. 그 비밀을 숨기고 싶은 마음과 남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생기곤 한다. 이해 당사자들에겐 숨기고 쉽고, 그 일과 전혀 관계없고 그 비밀로 자신에게 피해가 없는 경우는 말하고 싶어 한다. 후자의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는 짐을 덜기 위해서다. 블랙북은 러들로가 마음의 짐인 비밀을 받아 적은 것이다. 그 비밀들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참으로 희안하다.  

 처음은 작가의 창작이 아닌 블랙북과 러들로 피치의 회고록을 발견하고, 그것을 편집해서 출간한 것으로 포장한다. 누구나 소설임을 알고 있다. 그런 후 본격적으로 러들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첫 장면은 러들로가 악명 높은 돌팔이 의사 앞에서 눈을 뜨는 것이다. 그의 부모가 아이의 이빨을 의사에게 팔러 온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지만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묶여 있지 않던 발로 아빠의 배를 힘껏 찬 후 달아난다. 상대들이 좇아온다. 그러다 한 마차를 타게 된다. 마차 주인은 제레미아 래체트고, 그가 사는 곳은 파구스 파르부스다. 우연히 탄 마차로 도착한 곳이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된다.  

 

 러들로는 소매치기다. 부모에 의해 소매치기로 키워졌다. 하루 동안 돈을 훔쳐 가져다주지 않으면 매가 날아온다. 부모는 그 돈을 술로 탕진한다. 그러다 아이를 팔아 한 몫 챙기려 한 것이다. 필사의 탈출 후 만난 사람이 조 자비두다. 그는 전당포 주인이다. 새롭게 온 마을에 전당포를 열고 사람들의 물건을 산다.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진짜 목적은 사람들의 비밀을 듣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돈을 지급한다. 가격은 비밀의 정도에 따라 조에 의해 결정된다. 왜 이렇게 비밀을 사는 것일까? FBI를 만든 후버의 경우라면 이 정보로 권력과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는 결코 그런 의도를 비밀을 사는 것이 아니다.  

 

 러들로와 조가 도착한 마을은 빈곤과 빚에 허덕인다. 마을의 부자 제레미아는 자신의 돈이 떨어지면 세를 올려 받아서 충당하고, 상대방의 비밀이나 약점을 잡아서 돈을 긁어내거나 자신의 수하로 부린다. 마을 사람들의 비밀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악한 행동들은 대부분 그와 관련이 있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빚이 있다. 그러니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무리다. 자신들 속에 첩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단결조차 힘들게 만든다. 그런 그에게 조의 전당포는 자신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비밀이나 집에 있던 물건들을 팔아 자신의 빚을 갚아가기 때문이다. 조에게 악의를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일반적 판타지라면 조와 제레미아의 대결로 압축되겠지만 작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 조는 단지 기다릴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고, 자신들의 바람을 착각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조차도 기다린다. 인위적으로 변화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 기다림은 당사자에겐 지독하게 길고 힘든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비밀을 사고 기록하는 입장에선 다르다. 비록 제레미아가 만들어낸 악취 나고 추악한 행동에 마음이 움직인다 하여도 중립을 지킨다. 처음 읽으면서 이해가 힘든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러들로의 회고록 기록과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시점의 변경으로 다른 관찰자를 등장시킨다. 시대 상황도 같이 보여준다. 비밀을 담은 블랙북을 둘러싸고 강한 액션도 마법도 없다. 약간은 밋밋할 것 같은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과 사람들을 짓눌렀던 비밀들로 읽는 재미를 준다. 뒤에 가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개운한 느낌을 주지 않고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군중심리는 다시금 인간 본성과 이기심을 생각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