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를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이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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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직업병은 무섭다. 자신도 모르게 생활 속에 그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귀여운 여인 이자벨이 한 남자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직업병 때문이다. 그녀의 가족이 사립수사관이 아니었고, 그녀가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이번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건은 바로 옆집 남자이자 그녀의 열한 번째 남자 친구인 존 브라운을 뒷조사하는 일이다. 멋진 외모에 예절까지 갖추었지만 조금 이상한 행동 때문에 그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았고, 조사를 넘어선 집착으로 발전하여 체포까지 된 것이다. 소설은 바로 그녀가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체포로 시작한다.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체포라니 조금 이상하다. 이런 애매한 표현을 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금 이상한 그녀 가족과 생활 속에 존 브라운이 나타나면서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펼쳐진다. 하지만 존 브라운을 둘러싼 의문보다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 그녀의 동생 레이와 경찰 헨리의 이상한 관계, 어머니의 늦은 밤 외출, 아버지의 알 수 없는 변화,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결혼한 오빠의 갑작스런 우울과 변화 등이 재미있고 유쾌하며 즐겁게 펼쳐진다.  

 

 전작 <네 가족을 믿지 말라>를 보지 않아 앞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오히려 전작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만 높아졌다. 이렇게 만든 첫 째 공신은 역시 이자벨이다. 그녀의 좌충우돌하는 활약을 보는 재미는 대단하다. 전 남자 친구들의 결혼 소식에 우울해 하고, 여동생 레이 때문에 고생하는 헨리를 방문하여 습관처럼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녹음한다. 이런 것들을 시간 순으로 하나의 파일처럼 엮어서 소설을 만들었는데 한 편의 영화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존 브라운에 대한 집착은 핵심 줄거리인데 무섭거나 집요하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코믹하다. 몰래 들어가려는 이자벨과 꼭꼭 숨기려는 존 브라운의 대결은 긴박감이나 긴장감은 전혀 없고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역시 이 이상한 가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을 읽었다면 적응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나니 엽기적이다. 직업병으로만 이 모든 사항을 치부하기엔 너무 치밀하고 때로는 유치하다. 이자벨이 의문을 가진 것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일반적인 가족들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일들이다. 바로 이 점이 이 가족의 이야기에 빠져 웃고 즐기게 하는 매력이기는 하다. 그리고 부록의 전 남자친구 리스트에 나오는 헤어질 때 한 말들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추론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것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집안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찰 헨리는 정말 대단하다. 운전교습 중 자신을 친 레이를 결코 좇아내지 못하고, 이제는 집을 잃은 이자벨 마저 자신의 집에 살게 한다. 이런 보면서 앞으로 펼쳐질지  모를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한다. 그리고 왜 레이가 그렇게 헨리에게 집착하는 지 살짝 의문이기도 하다. 이것을 싫어하면서도 받아주는 헨리의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도 역시 궁금하다. 이것은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는 내내 웃게 되고, 기발한 착상과 유머 있는 대사에 킥킥거린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자벨의 집착이 만들어내는 상황들과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유쾌한 탐정극이자 상황극이다. 존 브라운의 비밀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지면서 미스터리는 약해진다. 하지만 정말 멋진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이 다음에 벌어질 사고나 사건을 기대하게 만든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이 가족을 보면서 입가에 계속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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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여름방학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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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초등학생이 나에게 와서 ‘아빠’하고 외친다면 어떨까? 아마 엄청나게 당황하고, 허둥지둥할 것이다. 그리고 냉정을 찾은 다음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연구소로 달려가지 않을까? 검사 결과 나의 아이가 맞다면 어떤 느낌일까? 농담 삼아 다 자란 아이가 나타나 준다면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화나 이 소설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엄청 복잡하고 곤란하고 어려우면서 가슴 한 곳에 고마움이 자리 잡을 것 같다.  

 

 호스트 야마토에게 한 소년이 찾아온다. 첫 말이 “아버지, 처음 뵙겠습니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다. 아이의 엄마 이름을 듣는 순간 사실임을 직감한다. 이렇게 만난 부자는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호스트인 야마토는 전혀 호스트답지 않다. 고객에게 웃음과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줘야하는데 오히려 진실을 까발리고 손찌검까지 한다. 당장 모가지다. 바른 말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장 취미가 있는 사장 재니스의 소개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택배기사다.  

 

 허니비 택배. 이곳이 그가 앞으로 일한 직장이다. 묘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첫 날 지역을 한 번 돌고 나서 힘들어 하지만 전직 폭주족이었던 그는 차를 잘 몰 자신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그에게 배정된 것은 리어카다. 경량으로 새롭게 개조되었지만 분명히 리어카다. 지역밀착형 소형 택배사고, 배송차들의 불법주차 문제가 있다지만 놀라운 발상이다. 그런데 작가 후기를 보면 실제 일본에 이런 택배사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그는 물건을 배달하면서 지역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택배 현장의 모습은 약간의 마찰이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전직 호스트의 습관과 노력으로 점점 좋아진다. 힘들지만 고객을 배려하는 마음과 노력은 늘 택배사고를 불만스럽게 말하는 우리 현실을 보면 비교된다. 물론 우리의 현장 환경이 더 열악하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는 한다. 그렇지만 가끔 정말 좋은 택배기사를 만나면 고맙고 미안한 마음까지 생긴다. 이 소설 속 상황은 작가가 한 부분을 강하게 미화한 점이 있기는 하다. 

 택배기사만 따뜻하고 훈훈한 것이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이 그렇다. 호스트 유키야나 손님 나나나 사장 재니스나 직장 동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지만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렇다. 그중에서도 아들 스스무 군은 발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구김살이 없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척척 잘도 한다. 요리도, 청소도, 숙제도 모두 자신이 알아서 한다. 이 아이를 보면 나라도 어디서 이런 자식이 나타나 준다면 감사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스스무 군의 여름방학 동안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을 다룬다. 잔잔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다. 좋은 사람들의 일상과 두 부자의 관계 만들기는 빠르게 읽히면서 마음에 전혀 걸리는 것이 없다. 이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현실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단점이 읽는 동안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겨울 방학 이야기가 기다려질 뿐이다. 앞으로 이 부자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등장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티격태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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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클럽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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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직접 뽑은 자신의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유일한 단편집이다. 13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고 미스 마플의 놀라운 추리력을 선보인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미스 마플의 놀라운 추리력과 직관력은 그녀가 등장하는 소설을 볼 때마다 놀란다. 비록 그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과 트릭이지만 책을 읽다 몰입하는 순간 잠시 가공과 현실의 경계를 잊게 된다. 이 부분이 우리가 추리를 읽고 소설 속 탐정들에게 매료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3개의 사건 속에서 많은 수의 답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가 탁월한 추리력이나 관찰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어왔고 애거서 여사의 작품도 여럿 읽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기를 보니 이 중 몇 편은 장편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니 어딘가에서 책이나 영화 등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앞의 몇 편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이전에 읽은 책이 아닌가 의심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둔한 기억력으로 정확한 정보를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편 한편이 보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 ‘푸른 제라륨’과 ‘크리스마스의 비극’과 ‘방갈로에서 생긴 일’이 마음에 들었다. ‘푸른 제라륨’이 마음에 든 것은 트릭 자체가 기발한 것도 있지만 인간이 가진 미신에 대한 공포가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비극’의 경우 범죄가 발생할 것을 직관적으로 감지하지만 결국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두뇌대결과 트릭이 재미있었다. ‘방갈로에서 생긴 일’은 무시무시한 살인이 아니라 범죄 계획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해설에서 ‘피 묻은 포도’는 ‘백주의 악마’로, ‘친구’는 ‘예고 살인’이라는 장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친구’의 경우 왠지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떠올려 주었고, 다른 작품들도 여기저기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가지게 한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연 이 13편의 단편 추리소설이 과연 추리소설사에 걸작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몇 편에선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재미도 있지만 애거서 여사의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단서 불충분과 직관에 의한 해결이 나에겐 걸림돌로 작용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추리를 추천하라고 하면 많은 책들 중 이 한편도 추천하고 싶다. 어린 시절 내가 애거서의 책과 셜록 홈즈의 책 등으로 추리에 재미를 붙인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애거서의 책을 짬짬이 읽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작가인 것은 틀림없다. 가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그 영향력을 보고 생각할 때마다 위대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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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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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힘들게 읽었다. 작가가 말했듯이 바깥 세계와 내면 세계를 동시에 반영하기 위해 일반적인 문법과 서술규칙을 모조리 무시한다. 네 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일인칭과 삼인칭이 왔다 갔다 한다. 서술과 독백과 대화가 과거와 현재 시제와 뒤섞여 있다. 대단한 집중력과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그 재미를 놓치기 십상이다. 사라마구와 마르케스의 칭찬을 제대로 누리기가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아구스티나다. 그녀의 남편 아길라르나 과거의 연인 미다스나 외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는 별개의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와 직접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제목처럼 광기를 보여주는 개인은 아구스티나이고, 사회의 광기를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미다스다. 이 둘을 통해 내면의 황폐화된 모습과 시대의 현실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아구스티나의 집은 부자다. 그녀는 물질적 결핍을 모르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녀의 늦은 귀가와 남자 친구에 대한 아버지의 근심과 걱정은 막내인 비치에게 옮겨가면 폭력으로 발전한다. 아들이 보여주는 여성 같은 행동과 말투가 그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아버지와 소피 이모 사이의 불륜을 알고도 덮어둔 현실이 드러나는 순간 가족이 보여주는 연극은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녀가 광기에 휩싸이고, 폭발하는 장면들이 그 연원을 올라가면 이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이야기 속에서는 가족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아길라르는 대학교수였다. 아내를 위해 교수직을 포기하고, 사료 배달을 한다. 물론 교수직을 포기하기 전 학교가 잠시 문은 닫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를 돌볼 시간을 더 갖기엔 사료 배달이 더 좋다. 아갈라르는 그녀의 광기를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낸다. 사랑으로 가득한 그는 이 속에서 아구스티나 가족의 역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모든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했고,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고 질문한다. 인상적인 장면은 전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느낀 편안함과 이 편안함에 취해 있을 때 나타난 아구스티나의 관심이다. 이 관심으로 사랑이 충만하고, 그녀의 광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 세탁을 하는 미다스는 부패와 폭력과 마약 거래와 살인 등의 사회적 현실을 말한다. 가난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가 아구스티나의 오빠 호아코를 만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는 돈의 위력을 알고, 호아코의 행동과 말을 흉내 낸다. 성장한 후 부자들과 마약상들의 돈을 세탁하고, 자신도 부를 쌓아간다. 나름대로 부를 이루고, 멋진 여자를 거느리지만 그가 가진 것은 아직 약한 기반위에 세운 모래성과 같다. 그 모래성은 그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싸우지 않고 포기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녀의 광기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려면 외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독일 이민자에 피아노 연주자였던 그의 현재와 과거를 보면 그녀의 행동이 단순히 개인적, 사회적 문제만이 아닌 유전적 요소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의 누나 일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듣는 순간 그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이 그것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역자는 원작의 문장이 주는 난해함을 어느 정도 읽기 쉽게 풀어내었다. 그래도 익숙하지 않다. 절반 정도를 읽으면서 그 문장과 시제와 인칭 때문에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집중력은 약해졌다. 그런데 절반을 넘어 끝으로 가면서 앞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도가 붙고 힘겨웠던 문장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재미도 있었다. 비록 거장들이 누린 재미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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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북
F. E. 히긴스 지음, 김정민 옮김, 이관용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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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아주 큰 것에서 조그마한 것까지. 그 비밀을 숨기고 싶은 마음과 남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생기곤 한다. 이해 당사자들에겐 숨기고 쉽고, 그 일과 전혀 관계없고 그 비밀로 자신에게 피해가 없는 경우는 말하고 싶어 한다. 후자의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는 짐을 덜기 위해서다. 블랙북은 러들로가 마음의 짐인 비밀을 받아 적은 것이다. 그 비밀들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참으로 희안하다.  

 처음은 작가의 창작이 아닌 블랙북과 러들로 피치의 회고록을 발견하고, 그것을 편집해서 출간한 것으로 포장한다. 누구나 소설임을 알고 있다. 그런 후 본격적으로 러들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첫 장면은 러들로가 악명 높은 돌팔이 의사 앞에서 눈을 뜨는 것이다. 그의 부모가 아이의 이빨을 의사에게 팔러 온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지만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묶여 있지 않던 발로 아빠의 배를 힘껏 찬 후 달아난다. 상대들이 좇아온다. 그러다 한 마차를 타게 된다. 마차 주인은 제레미아 래체트고, 그가 사는 곳은 파구스 파르부스다. 우연히 탄 마차로 도착한 곳이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된다.  

 

 러들로는 소매치기다. 부모에 의해 소매치기로 키워졌다. 하루 동안 돈을 훔쳐 가져다주지 않으면 매가 날아온다. 부모는 그 돈을 술로 탕진한다. 그러다 아이를 팔아 한 몫 챙기려 한 것이다. 필사의 탈출 후 만난 사람이 조 자비두다. 그는 전당포 주인이다. 새롭게 온 마을에 전당포를 열고 사람들의 물건을 산다.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진짜 목적은 사람들의 비밀을 듣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돈을 지급한다. 가격은 비밀의 정도에 따라 조에 의해 결정된다. 왜 이렇게 비밀을 사는 것일까? FBI를 만든 후버의 경우라면 이 정보로 권력과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는 결코 그런 의도를 비밀을 사는 것이 아니다.  

 

 러들로와 조가 도착한 마을은 빈곤과 빚에 허덕인다. 마을의 부자 제레미아는 자신의 돈이 떨어지면 세를 올려 받아서 충당하고, 상대방의 비밀이나 약점을 잡아서 돈을 긁어내거나 자신의 수하로 부린다. 마을 사람들의 비밀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악한 행동들은 대부분 그와 관련이 있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빚이 있다. 그러니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무리다. 자신들 속에 첩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단결조차 힘들게 만든다. 그런 그에게 조의 전당포는 자신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비밀이나 집에 있던 물건들을 팔아 자신의 빚을 갚아가기 때문이다. 조에게 악의를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일반적 판타지라면 조와 제레미아의 대결로 압축되겠지만 작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 조는 단지 기다릴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고, 자신들의 바람을 착각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조차도 기다린다. 인위적으로 변화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 기다림은 당사자에겐 지독하게 길고 힘든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비밀을 사고 기록하는 입장에선 다르다. 비록 제레미아가 만들어낸 악취 나고 추악한 행동에 마음이 움직인다 하여도 중립을 지킨다. 처음 읽으면서 이해가 힘든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러들로의 회고록 기록과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시점의 변경으로 다른 관찰자를 등장시킨다. 시대 상황도 같이 보여준다. 비밀을 담은 블랙북을 둘러싸고 강한 액션도 마법도 없다. 약간은 밋밋할 것 같은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과 사람들을 짓눌렀던 비밀들로 읽는 재미를 준다. 뒤에 가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개운한 느낌을 주지 않고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군중심리는 다시금 인간 본성과 이기심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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