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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장르문학 단편집을 제외하고 참 오랜만에 한국단편소설집을 읽는다. 90년대에 한창 이상문학상 등을 읽던 것을 생각하면 요즘은 정말 뜸하다. 그 사이에 많은 문학상이 생겼고, 이전과 같은 재미를 많이 느끼지 못한 것도 그 뜸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덕분에 이 수상작품집에 나오는 작가 몇몇은 처음 읽는 이도 있다. 예전 같으면 신인이나 처음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올라온 작가만 그럴 텐데 말이다.
모두 열 작품이 실려 있다. 수상작가인 박민규 씨의 <근처>를 포함해서 말이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늘 호불호가 나누어지는데 역시 이번에도 마음에 드는 작품 몇이 있다. 물론 이것은 작품의 완성도보다 개인적 취향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수상작 <근처>, 김숨의 <간과 쓸개>, 김중혁의 <c1+y=:[8]:> 등이다.
<근처>는 간암 말기인 호연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정리하기 위해 초등학교를 보낸 고향으로 내려와 산다. 이때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창을 만나 추억을 회상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 삶을 되돌아보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타임캡슐이다. 그 속에 든 것은 단순히 추억만이 아니다. 그의 바람과 그 당시의 마음과 시선이 담겨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다른 친구도 이미 이 타임캡슐을 팠고, 다른 상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얼까? 제목 근처가 의미하는 것은 또 무얼까? 아마 그것은 그가 바라는 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바로 그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알면서도 순임에게 돈을 빌려주었을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김숨과 김중혁의 소설은 처음이다. 집에 찾아보면 그들의 소설이 한두 권 정도는 분명히 있다. 단지 게으르고 장르문학과 외국문학에 빠져 사는 최근 취향 때문에 손이 가질 않고 있을 뿐이다. <간과 쓸개>는 역시 암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박민규의 작품이 40대라면 이 작품은 60대다. 말년을 홀로 보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의 마음을 풀어내는데 감정이입이 잘 된다.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마지막에 몸에 호스를 꼽고 생명을 이어가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 그로 하여금 울음을 터트리게 한다. 표고버섯을 키우는 고목과 누나의 생존이 겹쳐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c1+y=:[8]:>은 제목만으로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제목이다. 이것은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예찬을 읽다보면 이 의문이 조금씩 풀리게 된다. 그리고 재미난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수상작품집에서 가장 밝고 가벼운 소설이기도 하다. 문득 화석 연료가 바닥나면 정말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이미 정글 같은 미로와 흐름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그가 도달한 그곳은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자 그의 바람이 담긴 곳일 것이다.
김경욱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도입부의 힘을 마지막까지 이어가지 못한 것이 아쉽고, 강영숙의 <그린란드>는 그 남편들의 실종이 왠지 와 닿질 않는다. 김사과의 <정오의 산책>는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하다. 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뚱뚱한 한 여자의 하루와 감정도 돋보이지만 그 반응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은 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과거의 추억이 빛바랜 사진처럼 다가올 뿐이다. 전성태의 <이미테이션>은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풍자적으로 보여줘 눈길을 끈다. 낯선 작가지만 기억해둬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의문이자 재미난 기록이 있다. 앞에 나오는 수상작 발표에서 최종적으로 올라간 세 편 중 하나인 김숨의 작품이 2심에선 두 사람만 추천을 하였고, 네 사람이나 세 사람이 추천한 작품과 달리 최종 경합을 벌인 후 본심 진출작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절대적으로 좋은 문학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비록 그녀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심사위원들이 세 작품 중 어느 누구의 작품이 선정되어도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