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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그의 이름은 사드 사드, 아랍어로는 희망 희망, 영어로는 슬픔 슬픔이다. 이 문장에 사드가 느낀 감정과 삶이 다 들어있다.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보고 있으면 황당하여 거짓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어느 정도 창작을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라크의 현실을 이렇게 냉혹하고 참혹하게 표현한 작품은 처음이다. 사실 이라크를 배경으로 쓴 현대작품도 처음이다.
슬픔 가득한 그가 가고자 하는 런던은 이상향이자 희망 가득한 곳이다. 그 앞에 놓여질 현실은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다. 런던을 가고 싶어한 이유는 어린 시절 금서로 지정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은 탓이다. 단순히 추리소설 때문이라고, 아니다. 그것은 평화로운 삶 속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살인을 명확하게 추리해서 해결되는 사회와 도저히 그 답이 보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혼란과 폭력이 가득한 나라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도피를 의미한다.
초반은 이라크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독재자 후세인이 집권한 후 국민의 입은 다물어지고, 어디서 무슨 이유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사는 그들을 보여준다. 독재의 불안 속에 살던 그들이 미군을 바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제1차 걸프전쟁은 사드 사드의 누나 둘을 과부로 만들었고, 이후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는 약품과 생필품 부족으로 조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때문에 오히려 사담 후세인은 국민들의 구세주도 등장하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9.11 이후 제2차 걸프전쟁은 이라크 사회를 다시 혼돈과 폭력과 질병과 공포로 가득한 곳으로 만든다.
사드 사드에겐 누나가 모두 넷이다. 아들인 그가 나왔을 때 부모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애지중지 키운 그가 잘 자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시대는 결코 그를 평온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쿠웨이트 침공으로 매형 둘을 잃었다면 나머지 둘은 2차 걸프전쟁 후 자살테러와 미군의 오인 사격으로 죽는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사드를 제외한 모든 성인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거기에 사드가 사랑했던 레일라는 테러리스트의 로켓포 공격으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 이제 그는 이라크를 떠나 이상향인 영국으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것이 싶지 않다. 그곳으로 갈 여권도 돈도 없기 때문이다.
이상향으로 떠나기 위해 그가 시도하는 일들은 다양하다. 먼저 알 카에다 요원으로 위장해서 이라크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만 그 조직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마약상의 차를 타고 이집트로 간 것이다. 여기서 난민을 신청한 후 정치적 망명을 하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볼 때 이라크는 미군에 의해 해방된 나라다. 그 참혹한 나라에서 살았던 그가 볼 때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없다. 이것은 소설 처음에 나온 것처럼 출생지 때문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뜨끔하였다.
정치적 망명이 되지 않으면 단 하나의 방법만이 남는다. 그것은 밀입국이다. 이미 수많은 불법이민자로 고생하고 있는 유럽 각국이 이 사람들을 그냥 받아들일 리 없다. 10명 정원인 배에 50명이 타고 지중해를 건넌다. 중간에 다른 배가 침몰해 사람들이 죽어난다. 경찰에 발각되어 밀입국은 실패하고, 수용소에 갇힌다. 다행스럽게 탈출하지만 이번엔 배가 침몰한다. 친구는 죽고 그는 겨우 살아난다. 그곳은 시칠리아다. 사실 이곳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정착도 가능하지만 그는 이상향인 영국을 잊지 못한다. 다시 힘겨운 여행을 한다. 중간중간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잡히고, 도망가면서 목적지로 나아간다.
작가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자주 끄집어낸다. 그가 집으로 가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와 사드는 목적이 다르다. 오디세우스에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고, 사드는 집을 떠나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그가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죽은 아버지가 유령으로 그의 곁을 지킨다. 아버지는 그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정보와 힌트를 주기도 한다. 그가 겪은 힘든 여정은 아버지와 충동을 빚어내기도 한다. 아버지가 냉철하게 인생은 꿈이 아니라고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할 때 사드는 말한다. “아빠, 제 여행의 목적이 뭔 줄 아세요? 짐을 내려놓으며 ‘다 왔다’고 외치는 거예요.”(283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그가 겪은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고난과 슬픔 등도 같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그의 이름이기도 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