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글씨도 커서 쉽게 읽힌다,

슬픈 건 이렇게 큰 폰트의 글자도 이젠 읽기가 힘들만큼 노안이 심해졌다는 것

내내 안경을 올리고 읽었다, 슬프게도

이다혜 기자는  씨네 21보다는 팟빵 빨간책방을 통해 더 잘 알게 된 작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말이 빠르고 간혹 이동진의 말을 끊고 들어올 때도 있어서

가끔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하지 않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하기도 불편한 것이었고

많이 읽고 많이 노력하고 많이 애쓰며 살고 있다는 느낌...

잘 알지 못하지만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말투속에서 쓰는 언어들 속에서 느껴져서 그냥 모르지만 좋아하지도 않지만 응원하게 되는 편이다,

 

이 책은 너무 얇다, 글씨도 커서.. 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전반적으로 책값이 너무 비싸긴 하지만,,,가끔 무식하게 글자 수에 따라 혹은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 책들이 더 많아지려나?

그냥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스스로를 많이 오픈해서 저자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그냥 끄덕거리면서 읽다가  가운데 부분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책에 대한 부분은 빨간 책방에서 말하는 논지와 조금 겹치기도 하고  별다르지 않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했었던 강연을 정리했다는 저 부분은   여학생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거고 누구나 후회할 수도 있는 부분 그리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만 결국은 눈치로 체득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이야기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시원하다,

그 부분을 모두 옮길 수도 없고...

그 또래의 여학생이라면 딸이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엄마나 선생님 말은 죽어도 안들어도 누군가 언니같고 선배같은 이의 말은 또 찰떡같이 들을 나이인지라... 괜찮았다.

 

세상에는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차별이 있다,

남자와 여자

대학생인가 대학생이 아닌가

중산층인가  기초수급자에에 가까운가

가끔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차별을 당하는 존재 이며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누군가 선망하는 존제가 되며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단순히 돈이 없다는 문제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나

선택이라는 단어자체가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벽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 누구나 쉽게 자유롭게 선택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라고 말하지만  그 선택조차 다시 태어나는 것부터 바꾸지 않으면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글 말미에 가해자의 선택이 아니라 늘 피해자 특히 여성의 선택에 더 많은 의미와 존중이 들어간다는 말도 공감한다. 남성들에게는 왜? 라고 어째서? 라고 묻지 않은 것을 여성에게는 따른다는 말도 그렇다,

얼마전에 읽고 다시 감동했던 <제인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의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고   "당신을 당신 딸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은 것 어떻게 달라지나요?스스로에게 자학하며 던지는 말을 딸에게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는 대목에선 나도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 된 카페에서 시간 죽이기 용으로 읽기도 딱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도 괜찮다.

 

 

 

 

 

 

 

 

 

 

 

 

지난 번 읽었던 이 책과 함께 내 딸에게 읽게 하고 싶은 책목록에 넣는다,

먼저 쉽게 이다혜의 책을 보다가 이 책을 보면 괜찮겠다고 혼자 흐뭇하다...

 

 

 

 

 

\

 

 

 

 

 

 

 

 

 

 

처음 이사람 저사람 나와서 인터뷰하는 거랑 여러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는 부분만 넘기면 정말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 시간이 금방 간다,

엄마들이란  호주나 한국이나 다를게 없구나

엄마들사이에서도 여왕벌이 있고 돼지 엄마가 있고 소문을 몰고 다니는 여자들이 있고 이유도 모르고 왕따를 당하는 엄마도 있고 목소리가 크고 정의롭기만 한 엄마도 있고 아름다워서 질투를 받거나 무조건 추앙을 받는 엄마도 있다,

아이들 사이의 왕따나 따돌림이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그런 엄마가 되고 또 그런 아이들을 만든다,

한편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는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폭력을 쓰는 아이를 기른다, 거울도 안보는 남자마냥 스스로의 얼굴을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사소한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페리가 섹스 뱅크스라고 속인 거짓말?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셀레스트는 자기가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숨긴다,

제인은 귀여운 아들 지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쉽게 말할 수 없다,

매들린은 전 남편 네이선의 가족이 한동네 한 학부형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만 그 속내까지는 꺼낼 수 없다.

저 여자들의 공통점은 뭔가 문제로 아파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 잘못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셀레스트는 끊임없이 페리를 쪼개며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분리해내고 자꾸 좋은 면을 생각하려고 하기만 하고 제인은 그날 밤의 사건이 자기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매들린은 화끈한 만큼 걱정도 많다.

셀레스트가 가진 문제가 가정폭력이라면 제인의 문제는 일종의 데이트 폭력이다.

폭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지만  내 잘못도 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그 나쁜 남자가 한편으로는 좋은 아빠이고 좋은 남편일 때도 있다는 생각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나도 함께 때렸으니까 내가 먼저 저 사람을 도발했으니까 라고 자꾸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고 그가 다시 다정하고 친절하고 나를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더 중심을 둔다. 내가 맞고 있고 그가 때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그렇게 멍해지고 몽롱하게 길들여간다,

그날 그 바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엘리베이트를 타고 룸에 가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내 단점 나는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던 사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못생겨서 냄새가 나서 역겨워서.. 그런 일을 당한걸까? 그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고 누굴 만나도 그날 그 말이 나의 삶의 판단 근거가 된다.

매들린도 어쩌면 남편이 생후 한달되 딸과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분노를 이겨내고 함께 삶을 헤처나왔던 그래서 딸이며 동시에 동지이고 전우이기도 한  에비게일이 아빠의 집으로 떠나는 순간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엄마라서 그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고 쿨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다. 딸이 주는 배신감앞에서 전남편과 지금의 남편을 비교하게 되고 자꾸 지금의 자식들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내가 남편의 새아내보다 못한게 있는 거 같고 자꾸 더 뒤쳐지는 것 같은 열등감이 커지게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면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남에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나조차 속여버린 사소한 거짓말들을 이 책을 말하고 싶었을까?

다들 속물이고 한편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럴수 밖에 없었겠다.라는 마음이 더 드는 건 나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 많이 다른 세여자가 서로 친해진다는 것 의심없이 믿어주고 서로를 위해 싸워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악녀인줄 알았던 레니타의 반성도 참 동화적이다,

 

지구 저쪽 호주에서 겪는 여자들의 불편함과 불안이 이곳에서와 다르지 않다는게 참 서글프다,

많이 배웠든 지위가 어떻든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지는 무게가 있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겠지만

여자들의 그 무게는  무게를 느끼고 토로하면 여자답지 않거나 모성이 부족하거나 모든게 내 잘못으로 인한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까지 덧씌워진다. 세 여자는 누구도 악녀는 아니다,

남편에게 맞는일이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성적인 모욕을 당하는 일은 내가 명백한 피해자이고 혼자 키워온 내 아이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인간적으로 당연할 수 있는데 그 당연한 감정에 자꾸 죄책감이 덧칠되고 무게가 늘어간다.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견주고 무게를 재며 내가 좀 낫다고 여기거나 내가 더 억울하다고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위에 웃음을 걸어놓는다. 모두가 통속적이고 속물이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게  그들이 원죄이진 않다는 것

 

이렇게 여름이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모름지기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고 같은게 도움이 될 확률이 매우 낮다. 어떻게 나를 변화 시킨 것들이 당신을 변화시키겠는가? 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대체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당신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과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p64

 

어떤 것에 대한 설명은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으로 들리기가 너무도 쉽다는 사실 때문이다,

 

                                          p101

 

어떤 사람들이 특정 가치에 접근하는 거슬 막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음험한 정서적 폭력의 한 형태다 그리고 우리 문화는 소외집단들을 끊임없이 쪼그라뜨리고 침묵시키기 위해 그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p 118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다른 범죄보다  '더 나쁘기' 때문에 강간 농담을 배제하려는 게 아니다,우리가 그것을 배제하는 이유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폭행의 정의를 축소시키기 위해 애쓰는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는 스토킹 행위를  로맨스에다 집어넣고 희생자들이 잘못된 옷을 입고 잘못된 장소에 갔거나 잘못된 상대와 시시덕거렸다고 비난하며 여성 혐오가 깔린 변명 (남자는 다 그래) 으로 후토하고 강강범죄 신고에 대한 정서적 사회적 비용을 말도 안되게 높여버려서 신고를 꺼리게 만들며 실제로 이루어진 나쁜 행동보다 무고행위가 더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말하고 강간 희생자에게 그들이 성적 유린을 당한게 '신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선거에서 뽑고 재판까지 간 강간 사건에 대해 5퍼센트도 안되는 비율로 유죄판결을 내린다. 코미디언이 자구 살인이나 다른 범죄 행위들에 관해 우리가 농담을 할 때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그건 이중 기준이 아니냐고 항변한다. 뭐 다행히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고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거나 그런 일을 당한 것을 신고하지 못하게끔 억압하는 문화적 서사는 없다 아마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강간도 다른 범죄처럼 취급하기 시작할 것이다,

                            p 249 

 

어떤 일을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p 297 

 

 

 그가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무서웠다. 그에게는 같이 즐겁게 일하는 여자 동료가 있었고 그를 사랑하는 실제 인간인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그가 온라인에서 재미로 여자들을 괴롭혀서 정신적 외상이 남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어떻게 그 두 인물이 같은 뇡서 나올 수 있는 걸까?   트롤들은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다, 극장에서 나를 만났는데 내가 나쁜  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린다, 혹은 식당에서 내 시중을 들었는데 내 가슴이 사진에서 봤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거나 혹은 6년 전에 한 바에서 내 옆에 앉았는데 당시 내가  먹은 메뉴들이 이러이러한 것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것은 실제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터넷 트롤들 덕분에 나는 문명 세계와 우리의 가장 끔찍한 자아 사이에 경계가 그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울리게 된다

                                     p 364

 

지금 나의 직업적인 삶에서 내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들아에 공개적으로 나서서 틀렸다고 단단한 방패를 내걸고 그것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한것보다 쿨한 것을 더 중시하는 사람에게 그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내 몸을 무기로 만들어 나를 공격하고자 하는 여성혐오주의자들을 향해  그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네 들이 화가 났을 때 불태울 땔감으로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내 관심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남자들에게 그런 생각은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배아보다 덜 중요하다고 ㅈ장하는 종교적 열성당원들에게 그건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내 본능을 향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회가 여자들에게 정해놓은 경계 고분고분하고 다른 이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명령을  걷어차서 무느뜨리고 나 자신의 경게를 세우는 한가지 방식이다, 나는 이걸 할거야 저걸 할거야 하면서 말이다, 당신이 나를 예속시빌 수 있다고 믿는 한 나는 당시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다, 나는 바쁜 사람이고 내 시간이 무슨 공공재도 아니다 당신은 지루해빠진 사람일 뿐이니 그냥 내 앞에서 꺼지란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p368

 

 

페미니스트는 한가지 방식이 아니다, 엄격하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단 하나의 신념이 아니다, 수많은  이질적인 생각들 서로 다른 입장과 그들의 생각들이 모여서 서로를 인정하고 폭넓게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단지 남성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차별과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아우르는 일이다,

엄격하게 이런것이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일들이 모두 페미니즘이 될 수 있다,

단 마음을 열고서

그럴 수 있겠구나.

니가 틀린 건 아니야  라고 하면서

누군가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았는지 예민하게 감수성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고나 관념에 대해 비판할 수 있고 반대할 수 있지만 그 존재를 무시하지 않는 일이다,

 

저자는 뚱뚱한 페미니스트임을 전반에 내세우지만  비만 혐오나 다이어트 문화 외모지상주의 이외에 낙태 생리 몸에 대한 여러가지를 다루고 있다,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은 누구보다 내가 먼저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유쾌하고 통쾌한 방식으로....

글은 내내 유머가 넘치고 사이다처럼 시원하지만 그래도 저자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상처가 느껴저서 마냥  즐겁게 넘길 수 없다, 게다가 그 문제는 지구반대편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이다,

'일베'는 어디나 있구나 하는 씁쓸함도 함께 알게 된다,

내가 속한 세대 사회 구성원이 모든 것이 아님에도 내가 느끼지 않은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꽉 막힌 사고가 자꾸 편견을 낳고 소외를 낳는다.

내가 어떤 크기의 세상을 살건인가 그건 내가 정할 일이다,

깨지는게 나쁘진 않다, 세상이 확대되는 일일 수 있다면...

 

처음엔 좀 산만하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용이 그림이 자꾸 19금을 향하고 있다... 애들이랑 같이 보는데ㅜㅜ

이제 스즈랑 친구들도 고등학생이 되고 막내언니는 결혼을 할거고 다른 두 언니도 편안하고 좋은 남자친구가 생겼고 가족 구성도 조금씩 변하면선 안정감이 느껴진다.

아직 철이 없는 엄마는 여전하고  이모 할머니의 욱~도 여전하시시만

다들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걸 보면.. 역시 만화는 만화구나 싶으면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건?? 뭔지 모르겠다.

뭐든 좋게 끝나는게 이젠 좋은 모양이다,

 

말이라는 게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라도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끊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장 아프고 힘든 대상이지만 끊어낼 수 있다고 마음을 먹으면 별 일 아닐 수도 있게 된다.

또 다음 권은 언제 나올지...

그냥 잊고 있다보면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또 다시 발간되겠지...

 

우울하고 기분이 처질 때 쌓아놓고 읽으면 참 많이 힘이 나는 만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은 켈리는 사랑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안경끼고 키도 크지 않고 근육도 없고 공부 잘하고 글을 잘 쓰지만 남자 답지 못한 그는 절대 고백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사랑한다고 믿는다.

함께 동굴같은 살캥이 편집실에서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서로 말이 잘 통한다는 것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이 일과처럼 되고

함께 연말 파티에 가고 함께 세상을 돌아보면서

그는 어떤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

켈리와 농염한 사랑을 꿈꾸고 미래에 의사가 된 자신과 의사 부인이 된 그녀와 함께 하는 일상을 꿈꾸지만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나를 좋아할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착각하고 믿어버리면서

다른 날 사소한 행동으로 그가 나를 밀어내고 나를 싫어한다고 단정한다,

혼자 믿고 혼자 단정하는 일....

그건 찌질한 일일뿐 아니라 폭력이다.

나 혼자 모래성을 지었다 허물었을 뿐이라고 하겠지만 그 일방적으로 흐르는 마음은 폭력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다. 상대의 마음이나 감정은 조금도 상관없다.

그냥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한 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모든 것이 서로 간의 관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나의 일방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 파장이 30년동안 휘몰아쳤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혼자만의 판단이 몰고 온 비극에서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설령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나의 어긋나고 삐뚤어진 마음이 어디서 스파크를 일으켜 불꽃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쿡이 로맨스를 쓰나보다 생각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감추면서 뭔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거라는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  전개된다,

너무너무 속터지게 결과를 까보고 싶지만 문장은 한없이 느리고 한없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면서 흘러간다.

녹색의 여륾날 그 화사한 햇살이 손가락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고

덥고 답답한 공기가 휘몰아쳤다가

춥고 으슬한 공기가 다시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가 사라진다,

문장문장은 한업이 늘어져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한문장 한문장을 건너뛰고 갈 수도 없다. 어디서 어떤 묘사가 어떻게 튀어나울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렇게 한없이 느리고 답답하게 이어지는 벤의 독백과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 나오겠구나 싶은 순간.....

어떤 한마디의 증오의 씨앗이 30년동안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준다,

누구도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했던 증오의 추문이 결국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갔다.

어디서 멈출 수 있었을까?

누구의 죄가 가장 무거울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처음부터 정해진 시간의 질감은 되돌릴 수 없다.

 

그동안 쿡은 불안과 수치심 그리고 의심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칡덩굴에 엉켜 있었다.

느리고 매혹적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본성과 마주한다,

이 책도 결국 예외는 아니었다,

그저 찌질하기만 한 벤만 따라갔는데 벤 혼자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들

질투 탐욕 배신 증오 무고 등등의 저마다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남부 작은 마을에서 뒤섞이면서 사건을 만들어내고 누구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도 부끄러움과 의심을 풀어버릴 수 없다.

 

별거 아니지만....

별 거 아니라는 것조차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을지///

 

 

나는 부인에게서 눈을 떼고 켈리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나머지 모든 사람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라일과 실라와 로지 메리와 레이먼드 심지어 토드까지 모두 하나같이 작고 어린아이같은 얼굴이었다. 모두의 눈동자가 마치 그들의 청춘 그들의 희망 그들이 계획했던 미래 저 앞에 보이지 않은 덫이 놓일 줄은 사상도 하지 못하듯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깨달았다. 언젠가 켈리가 묘사한 것처럼 어쩌면 촉토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모아둔 하나의 온전한 세계였다고 . 그와 똑같이 알 수 없는 세계에 같혀 있었던 게 틀림 없다고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어딘가에서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봉합하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낸다고 그렇게 의지 ㅇ않은 길고 어두운 상처의 핏줄을 만들어내며 흐르는게 틀림없다고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어두운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평생을 애써왔다.

머구름과 폭풍우가 어울리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진흙탕을 달리는 그녀의 발이 생각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햇빛 쨍쨍한 한 낮에 일어났으며 그녀의 다리는 그해 유독 길었던 봄날의 끝 무렵에 훌쩍 자란 짙푸른 칡덩굴에 엉켜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문 디에 숨어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시퍼렇게 번득이는 칼날로 서늘하고 냉정한 총구로 본다. 뾰족한 모퉁이 뒤에서 또는 밤을 삼킨 짗은 안개에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서성거리다가 위협하며 다가오는 검은 형체  골목길 끝에서 작고 사악한 눈을 번득이며 점점 다가오는 것으로 종종 상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세이류는 읽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누구든 타인의 개인적인 기록을 알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알아야 할 것들 몰라서는 안되는 것들로도 충분히 넘쳐나는데

그냥 남의 일상사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더워지고 짜증이 나고 누군가의 행복이나 여유에 질투가 날거 같았다.

그냥 모른 채 넘어가면 없는 일이 되고 그러면 내 마음이 순간이나마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도서관에서 아무 생각없이 꺼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는 순간..

이건 빌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단단하고 무심한 문장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낸다

나에게는 낯선 도시 파리에서 내가 절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의 일상과 말과 행동들이  그림처렴 펼쳐졌다,

무심한 일상이고 그저 저자가 아는 세상의 이야기들이지만 묘하게 매력있었다,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들이 아름답다,

여름엔 그저 모든 장식을 뺀 단순한 옷이 가장 아름답고

최소한의 양념으로 원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이 더 끌리는 법이다,

천체 망원경을 구입한 노인이나 누구에게나 부탁을 잘 하는 앨리스나  저자의 아랫층에 사는 의사까지 나는 알지도 못했던 그들의 사소하고 은밀한 일상이 궁금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름에 읽기 좋은 글들이다.

 

 

 

 

 

 

 

 

 

 

 

 

 

 

저절로 튀어나온다,

어이구 어쩌면 좋아....

혹시 이렇게 전개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한치의 어긋남 없이 그대로 펼쳐진다,

뻔하다는 생각보다 사람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아름답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일임에도 아무도 그 희생은 보지 않고 그저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칭송할 뿐이다. 몸이 따르지 않은 입에 발린 찬사들은 개똥보다도 쓸모없다.

아이를 집에 두고온 젊은 엄마의 날카로운 불안

젊은 부부의 미묘한 갈등

뭐라고 말 할 수 없지만 밉고  성가진 이웃 부부

자녀의 가족사에 끼어드는 장민과 장모

어쩌면 이런일이.... 어쩌면 이렇게.... 라는 예상에 딱딱 맞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결국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허무함이 남는다,

어떤 상처나 어떤 흉도 덮어서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두꺼운 덮개를 씌우고 깊이 파묻어도 그 고약한 악취나 밑에서부터 썩어가는 걸 막을 순 없다. 묻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손톱밑 작은 가시를 방치하면 손끝은 나도 모르게 곪아가고 썩어서 끝내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반드시 닥친다,

더구나  인간사의 소소한 일들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버린다, 빌어먹게도...

앤과 마르코  부부가 곁에 있다면 등짝이라도 후려치고 싶다 . 이제라도 정신차리라고..

제 무덤을 파버린 부부에게 해 줄게 그거 밖에 없다.

습습하고 끈적거리는 소설이다, 여름처럼

 

 

 

 

 

 

 

 

 

 

 

 

 

 

 

 

100시간의 가정폭력 상담 교육이 끝나고 함께 스터디 하기로 한 도서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은 상호의존적이다, 

개인적인 일이 정치적인 일이다,

상담가와 내담자는 평등하다

역량을 강화한다.

여성의 시각은 가치있다,

 

위의 원리에 따라 상담이 진행된다,

단순히 상처받고 불안한 개인을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가부장적 사회에 모순과 거기서 소외당하고 평가절하된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가치관의 전환의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가치판단과 거기에 따르는 비난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울어진 사회가치의 문제라고 본다,

여성주의 상담은 여성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고 나아가 사회의 변혁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여성주의 이론과  상담의 방법과 실제들이 차레로 나오며 여성주의 상담가의 길을 가고 있는 저자들의 자기성찰적 고백이 있다.

꼭 여성주의 상담뿐 아니라 상담을 하는 사람들

나아가 일상에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이 우선 알아야 하는 것은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판단하는 선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가지게 되는 가치관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가진 생각이나 판단이 정말 옳은 것일까

아니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정의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은 없을까?

결국 살아가는 일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하고 그리고 다시 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긴 쉽지만 행하긴 어려운 것이다,

여름 이 한권의 스터디가 끝나면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한달에 한번 갖는 독서 모임에서 이달에 함께 읽을 책

지난 달 다시 읽은 제인에어가 다들  제각각의 이유로 좋았다고 했다.

다만 예전에 읽었던 기억과  영화등의 영향으로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의 기억이 뒤섞여 있다는 의견이 많ㅇ서 내쳐 이 책까지 읽기로 했다.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와 함꼐 읽은 제인에어만큼 좋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