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글씨도 커서 쉽게 읽힌다,

슬픈 건 이렇게 큰 폰트의 글자도 이젠 읽기가 힘들만큼 노안이 심해졌다는 것

내내 안경을 올리고 읽었다, 슬프게도

이다혜 기자는  씨네 21보다는 팟빵 빨간책방을 통해 더 잘 알게 된 작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말이 빠르고 간혹 이동진의 말을 끊고 들어올 때도 있어서

가끔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하지 않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하기도 불편한 것이었고

많이 읽고 많이 노력하고 많이 애쓰며 살고 있다는 느낌...

잘 알지 못하지만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말투속에서 쓰는 언어들 속에서 느껴져서 그냥 모르지만 좋아하지도 않지만 응원하게 되는 편이다,

 

이 책은 너무 얇다, 글씨도 커서.. 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전반적으로 책값이 너무 비싸긴 하지만,,,가끔 무식하게 글자 수에 따라 혹은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 책들이 더 많아지려나?

그냥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스스로를 많이 오픈해서 저자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그냥 끄덕거리면서 읽다가  가운데 부분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책에 대한 부분은 빨간 책방에서 말하는 논지와 조금 겹치기도 하고  별다르지 않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했었던 강연을 정리했다는 저 부분은   여학생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거고 누구나 후회할 수도 있는 부분 그리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만 결국은 눈치로 체득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이야기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시원하다,

그 부분을 모두 옮길 수도 없고...

그 또래의 여학생이라면 딸이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엄마나 선생님 말은 죽어도 안들어도 누군가 언니같고 선배같은 이의 말은 또 찰떡같이 들을 나이인지라... 괜찮았다.

 

세상에는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차별이 있다,

남자와 여자

대학생인가 대학생이 아닌가

중산층인가  기초수급자에에 가까운가

가끔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차별을 당하는 존재 이며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누군가 선망하는 존제가 되며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단순히 돈이 없다는 문제여서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이나

선택이라는 단어자체가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벽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 누구나 쉽게 자유롭게 선택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라고 말하지만  그 선택조차 다시 태어나는 것부터 바꾸지 않으면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글 말미에 가해자의 선택이 아니라 늘 피해자 특히 여성의 선택에 더 많은 의미와 존중이 들어간다는 말도 공감한다. 남성들에게는 왜? 라고 어째서? 라고 묻지 않은 것을 여성에게는 따른다는 말도 그렇다,

얼마전에 읽고 다시 감동했던 <제인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의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고   "당신을 당신 딸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은 것 어떻게 달라지나요?스스로에게 자학하며 던지는 말을 딸에게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는 대목에선 나도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

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 된 카페에서 시간 죽이기 용으로 읽기도 딱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도 괜찮다.

 

 

 

 

 

 

 

 

 

 

 

 

지난 번 읽었던 이 책과 함께 내 딸에게 읽게 하고 싶은 책목록에 넣는다,

먼저 쉽게 이다혜의 책을 보다가 이 책을 보면 괜찮겠다고 혼자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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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사람 저사람 나와서 인터뷰하는 거랑 여러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는 부분만 넘기면 정말 책장이 저절로 넘어간다, 시간이 금방 간다,

엄마들이란  호주나 한국이나 다를게 없구나

엄마들사이에서도 여왕벌이 있고 돼지 엄마가 있고 소문을 몰고 다니는 여자들이 있고 이유도 모르고 왕따를 당하는 엄마도 있고 목소리가 크고 정의롭기만 한 엄마도 있고 아름다워서 질투를 받거나 무조건 추앙을 받는 엄마도 있다,

아이들 사이의 왕따나 따돌림이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그런 엄마가 되고 또 그런 아이들을 만든다,

한편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는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폭력을 쓰는 아이를 기른다, 거울도 안보는 남자마냥 스스로의 얼굴을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사소한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페리가 섹스 뱅크스라고 속인 거짓말?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셀레스트는 자기가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숨긴다,

제인은 귀여운 아들 지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를 쉽게 말할 수 없다,

매들린은 전 남편 네이선의 가족이 한동네 한 학부형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만 그 속내까지는 꺼낼 수 없다.

저 여자들의 공통점은 뭔가 문제로 아파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 잘못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셀레스트는 끊임없이 페리를 쪼개며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분리해내고 자꾸 좋은 면을 생각하려고 하기만 하고 제인은 그날 밤의 사건이 자기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매들린은 화끈한 만큼 걱정도 많다.

셀레스트가 가진 문제가 가정폭력이라면 제인의 문제는 일종의 데이트 폭력이다.

폭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지만  내 잘못도 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그 나쁜 남자가 한편으로는 좋은 아빠이고 좋은 남편일 때도 있다는 생각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나도 함께 때렸으니까 내가 먼저 저 사람을 도발했으니까 라고 자꾸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고 그가 다시 다정하고 친절하고 나를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 더 중심을 둔다. 내가 맞고 있고 그가 때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그렇게 멍해지고 몽롱하게 길들여간다,

그날 그 바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엘리베이트를 타고 룸에 가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내 단점 나는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던 사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못생겨서 냄새가 나서 역겨워서.. 그런 일을 당한걸까? 그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고 누굴 만나도 그날 그 말이 나의 삶의 판단 근거가 된다.

매들린도 어쩌면 남편이 생후 한달되 딸과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분노를 이겨내고 함께 삶을 헤처나왔던 그래서 딸이며 동시에 동지이고 전우이기도 한  에비게일이 아빠의 집으로 떠나는 순간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엄마라서 그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고 쿨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다. 딸이 주는 배신감앞에서 전남편과 지금의 남편을 비교하게 되고 자꾸 지금의 자식들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내가 남편의 새아내보다 못한게 있는 거 같고 자꾸 더 뒤쳐지는 것 같은 열등감이 커지게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면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남에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나조차 속여버린 사소한 거짓말들을 이 책을 말하고 싶었을까?

다들 속물이고 한편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럴수 밖에 없었겠다.라는 마음이 더 드는 건 나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 많이 다른 세여자가 서로 친해진다는 것 의심없이 믿어주고 서로를 위해 싸워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악녀인줄 알았던 레니타의 반성도 참 동화적이다,

 

지구 저쪽 호주에서 겪는 여자들의 불편함과 불안이 이곳에서와 다르지 않다는게 참 서글프다,

많이 배웠든 지위가 어떻든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지는 무게가 있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겠지만

여자들의 그 무게는  무게를 느끼고 토로하면 여자답지 않거나 모성이 부족하거나 모든게 내 잘못으로 인한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까지 덧씌워진다. 세 여자는 누구도 악녀는 아니다,

남편에게 맞는일이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성적인 모욕을 당하는 일은 내가 명백한 피해자이고 혼자 키워온 내 아이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인간적으로 당연할 수 있는데 그 당연한 감정에 자꾸 죄책감이 덧칠되고 무게가 늘어간다.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견주고 무게를 재며 내가 좀 낫다고 여기거나 내가 더 억울하다고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위에 웃음을 걸어놓는다. 모두가 통속적이고 속물이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게  그들이 원죄이진 않다는 것

 

이렇게 여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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