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기왕이면 원시도 함께 살었더라면

아니어도  시 제목이랑 작가는 알려주었더라면 글을 읽고 함께 공감할텐데

미루어 짐작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시가 읽고 싶다.

그냥 내 느낌 가는대로 읽고 싶다

 

오랜만에 기형도와 김종삼과 박정만을 읽는 밤을 맞이하고 싶다.

 

 

내 마음을 울리는 시는 그때 그 순가네 내 경험과 부딫쳐 오는 시

함꼐 공명하며 큰 울림을 주는 시가 아닐까...

그렇게 무심하게

아무 생각없이

시를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이런 문화는 없는 줄 알았다.

운동장 하늘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운동장을 빙 둘러서 천막이 쳐지고  아이들은 와아. 함성을 울리며 달리고 뛰고 그리고 부모들은 옹기종기모여 함꼐 도시락을 먹고... 뭐 그런 운동회

나의 초등 6년은 그런 운동회의 연속이었는데 막상 내가 학부형이 되면서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가 벌써 6학년인데 첨이다.

 

뭐 큰아이 2학년때 그런 운동회를 할뻔 했다.

주위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올 만큼 음악을 울리며 연습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는 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런데 그 운동회를 하루 이틀 앞드고 가족여행이 잡혀 있어 아이는 운동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만일 그때 아이가 그 운동회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우겼다면 아마 여행을 미루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나 쿨하게 운동회를 포기하고 여행을 가겠다고 했고

남녀학생 머릿수맞춰 짝을 지워놓은 선생님의 원망을 뒤로하며 운동회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교장이 바뀌어서인지

학부모가 참가하지 않는 아이들만의 운동회가 치러졌다.

그냥 하루 수업하지 않고 운동장에서 게임하고 달리기하는 것

그리고 급식먹고 간식먹고 돌아오는 것

그래서 나는 그 시절 내가 경험한 운동회를 학부모의 입장에서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끝날 줄 알았다. 그게 뭐 섭섭한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좋았다.

힘들게 도시락을 쌀 필요도 없고 뭔가 먹거리를 준비하고 아이를 응원하고 사람들과 부대끼고 하는 거 없이 쿨하게 아침에 시원한 물이랑 간신 몇가지만 챙기고 나면 끝.

그리고 아이가 돌아오면 여느 때와 같은 일상

뭐 그렇게 흘러갔다.

아이도 경험을 못하였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고 부족함을 몰랐다.

 

그리고 전학..

6학년이 되어 첨응로 그런 고전적인 운동회를 경험한다.

물론 집에서 김밥을 싸고 닭을  튀기고 과일을 깍는 일은 없지만 반끼리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아이들을 응원하고....

아는 사람이 많고  엄마 참여가 있는 작은 아이반에서 주로 있었다

6학년 큰 빈이네는 아는 엄마도 없었고 잠깐 들렀을 때도 인원이 10명남짓이라 어색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빈이네 엄마들이랑 밥 먹고 연습하고 참가하고 웃고 떠들다가 6학년이  공연이 되었다.

이제 다 크면 엄마들이 와서 사진을 ㅁ찍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동생만 챙기면 서운할거 같아서 신경써서 구경했따.

사회를 맡은 이가 말한다.

"이제   초등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6학년들 입니다.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아... 그렇구나

이게 초등 마지막 운동회구나.

그리고 이런 고전적인 운동회의 처음이겠구나.

첫경험이 마지막이 되는 우리 큰 빈이

연습한대로 깃발춤이 멋있었고 무사히 끝났다.

1학년 꼬맹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몸동작도 크고 간혹 여기저기 시큰동하게 여기는 아이들 행동도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초등생들...

이런 것들이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다.

겨우 한 살 차이고 한학년차이지만  초등과 중등이 주는 말의 무게는 하늘과 땅차이다.

저 아이도 이제 어른이 되려고 하나보다

엄마 품을 떠나려고 하나보다..

코가 찡하고 맘이 뭉클하다.

어릴적 부터 유난히 키가 커서 늘  어리다는 생각을 못했다.

남들보다 목하나 더 큰 키때문에 늘 큰 애 취급 받았고 또 어울리게 의젓하고 혼자 알아서 잘 하는 녀석이라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키가 컸을 뿐이지 생각이 컸거나 더 성숙한건 아니었다.

그런데 초년병 엄마는 그것까지 몰랐다.

큰 키 만큼 큰 아이라고만 생각하고 엄마의 기준은 자꾸자꾸 높아가기만 했다.

받아쓰기나 수학문제 틀리는게 이상하다고만 여겼고

한번 이야기하면 이해하지 못하는게 화가 났고 짜증이 났었다.

남들보다 못하는게 도무지 마뜩치 않았고 키가 큰 만큼 다른 부분도 앞서야 하는 거 아닌가

잘하는 건 당연하고 못하는 건 콕콕 눈에 밟혔다.

그런 단점이 더 크게 보여서 맘에 들지 않았고 화가 났다.

아이에게 화가 나는게 아니라 내가 만든 내 기준에 나 혼자 안달복달하고 흥분했었다.

그런데 둘째를 학교에 보내면서..

아 3년전 그 아이도 이렇게 아기였구나 이렇게 서툴렀구나 ... 하고 처음 알았다.

그렇게 알았으면서도 이 엄마는 여전히 변한 건 없었다.

그땐 아기였어도 지금은 3년이 지났는데 좀 더 의젓하고 할일을 알아서 잘 해야하는 거 아닌가

공부도 좀 더 하고 .

작은 아이는 숙제만 해도 대견했고 시험지에 동그라미가 몇개 보이기만 해도 맘이 뿌듯했는데

큰아이는  빈둥거리는 꼴을 못보겠고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안했다.

그렇게 내마음을 볶아치고 아이에게도 다그치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유년을 빼앗았던 아이가

이제 정말 그 유년기를 졸업하려고 한다.

 

아이랑 씨름하고 볶으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는데

막상 아이는 혼자 크고 있었다.

혼자 저만큼 자랐고 혼자 세상을 배우고 상처받고 치유하고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나보다

늘 큰아이로만 여기면서 한해한해 자라는 걸 놓치고 있는 내가 바보였는지...

큰아이답게 늘 기대하면서도 애틋함은 컸지만 그걸 표현할 줄 몰랐으니 그건 나도 엄마노릇 겨우 13살이라 그랬다고 변명해본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도 함꼐 나이를 먹는다.

아이가 한살이면 엄마도 한살이고 아이가 초등하교 1학년이면 엄마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아이가 철이 없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엄마도 함께 죄충우돌하고 후회하지만 늘 혼나는 건 아이몫이다.

왜 그렇게 야무지지 못하는지 왜그렇게 실수만 하는지.. 함꼐 한다는 걸 모르고, 내 눈엔 내 허물은 보이지 않는다. 항상  두눈이 나에게 향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뻗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둘째를 키우면 또 나아지느냐.... 그것도 아니다.

또 다시 반복이다. 이젠 한 술 더 떠서 좀 안다고 ,., 선무당이 되어서 아이를 잡는다.

 

전교생이 함께 서 있는데도 내 아이는 눈에 띈다.

키가 커서 그런것 만은 아닌거 같다.

그저 내 아이라 그렇다.

어디에 묻혀 있어도 내 아이가 틀리는 건 귀신같이 잡아내고 어딘가 이상하고 아파 보이는 것도 귀신같이 잡아낸다. 엄마노롯하면 는건 그것뿐이다.

 

이제 초등을 마치고 중학생이되면 무서운 사춘기가 기다린다.

이미 스타트는 끊었다.

어떻게 달려나갈지 어디로 달려나갈지 알 수 없다.

또 엄마도 함께 사춘기를 앓으며 치열하게 싸울것이다.

우짜든둥 아이를 이겨먹으려고 철없는 없마는 엉뚱한 최선을 다할 것이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머쓱해하는 걸 반복하게 될것이다.

아이는 그러면서 자랄것이라고 믿는다.

여태 혼자 잘 자란것 처럼 쑤욱 자라서 나를 놀라게 할테지...

 

아이의 처음아지 마지막 운동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그러나...

 

집에 와서  피곤해하는 아이에게 놀지 말고 쉬지말고 학원가라고 등떠미는 엄마도 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aint236 2012-10-1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눈물이 왈칵하네요.

푸른희망 2012-10-17 18:45   좋아요 0 | URL
^^ 쑥스럽네요..
 

 

 

 

 

영화를 보면서 문뜩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거기서 상우가 그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 상우가 아직도 그렇게 순수하고 조금 찌질하게 남아있다면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단다."

 

한때 빛나던 것들도 다 낡을 수밖에 없고 지금은 초라하고 낡은 것들도 한때는 빛나던 때가 있었다. 그냥 그렇데 변해가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에 삶이 아닐까

언제나   환하고 새로운걸 찾아가고 싶고 그것이 더 탐나기도 하는 것도 삶이고 인간이기도 하다.

 

영화속 마고는 평범한 인물이다 결혼생활에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같고 가족같은 남편은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고 시가쪽 식구들과도 허물없이 지낼만큼 문제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마고에게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뭔가 다이나믹하고 반짝거리는 것 두근거리는 무언가 설레임이 필요한데 남편과의 생활은 너무나 안정되어있다. 그건 남편의  묵직하고 한결같은 성격 그리고 미래의 유머까지도 준비하는 반듯하고 정돈됨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성격은 닭 하나를 가지고 요리책을 만드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녀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설레임 그 남자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웃에 있다.

언제나 눈길 닿는 곳에 그가 있고 손을 내밀면 잡을 만한 곳에 그가 있다.

그러니 발랄한 마고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 아닐까

유부녀라는 이유로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하지만 그럴 수록 끌리는 마음은 어쩌지 못하고 남편의 한결같음조차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나이든 여자들 젊은 여자들이 거리낌없이 나신을 드러내며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 없다는 말을 할때 참 숙연했다. 익숙한 몸들을 보면서 그렇게 늙고 쳐지고 살찐 몸들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설레게 했을 것이고 탄력있고 팽팽한 젊음이었다는 걸 말없이 보여준다.

시간이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익숙하버린 무심함이 그냥 무심함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한때 아이가 그랬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생활이 뭐가 좋으냐고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야하고 뭔가 다이나믹하게 신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때 나도 그랬단다.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반복되는 건 견딜 수 없다고

하지만 살아온 시간이 쌓이면서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다이나믹함이라는 것신나고 파란만장하다는 것이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그것이 오래되면 멀미만 날 뿐이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지금 지리멸렬하게 느끼는 익숙함이나 반복들이 한때는 빛나는 다이나믹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신나는 놀이기구도 때가 되면 조명이 꺼지고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마냥 계속되는 두근거림 신남 흥분이란 건 없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간 심장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결국 마고는 그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take the waltz가 흐르면서 새로운 격정적인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말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심장이 터질만큼 두근거린 사랑도 결국은 일상이 되고 지루해지고 무심해지는 것을

남편의 동생이 말했다.

"누구나 인생에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틈을 메우려고 하진 않는다"

맞는 말이다.

조금 부족한대로 처지는 대로 맘에 안드는 대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산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누군가는 또 다수와는 다르게 한사코 그 틈을 메우고 싶고 완벽해지고 싶어하기도 한다.

30년뒤의 약속을 하면서 그때 58세가 된다고 하는 걸 보면 아직 주인공들은 20대라는 뜻

그렇게 팔팔하고 피가 뜨거운 청춘일때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뭔가 빈틈이 적을 때이고 한두개의 빈틈이라면 기어이 메우고 완성시키고 싶은 욕망이 더 클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 빛나고 신나고 두근거리는 무언가를 찾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것도뭐라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저돌성에 상처받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렇게 뛰어들어야만 풀리는 사람들은 뛰어들어야 한다. 아무리 붙들고 익숙함 무미건조함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알 수 없다.

 

세상에 식지 않은  사랑이 없다고 하고 오히려 그렇게 사랑이 식어서 무덤덤해지면서 깊어지는 정이 더 의미있다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마고가 혼자 탄 놀이기구는 더 이상 다이나믹하지고 신나지도 않다 그냥 어지러울 뿐이다.

어느순간 그 떨림 설레임이 멀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서글프다.

 

봄날은 간다의  영악한 은수는 그걸 알았단다. 지금은 열병처럼 들떠서 서울과 강릉을  마치 집앞슈퍼가듯 달려가는 상우도 언젠가는 지루해지고 덤덤해질거라는 걸.. 그리고 은수도 마고처럼 그런것이 견디기 힘들었던것이 아닐까 왜냐면 이미 겪어봤으니까..

상우는 아직 열정이 식어서 덤덤해지고 무심해지는 걸 모르니까 아직도 저러는 거고

그 상우에게 아직도 어려서 다이나믹한 삶을 사랑을 찾는 모두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

 

영화 중간에 마고와 이웃 남자가 바에서 말로서 섹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는 마고의 미묘한 표정

그리고 남자의 나즈막한 목소리

그 어떤 영화의 섹스씬보다 더 로멘틱하고 짜릿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귀신새 우는 밤 반달문고 25
오시은 지음, 오윤화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로움을 가진 아이

누구랑도 놀지 못하는 아이

소심한 아이

그 아이들이 귀신을 만난다.

귀신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리고 첨으로 친구가 되고 재미를 느끼고 뭔가 뿌듯함을 느낀다.

나도 친구가 있구나

내가 먼저 다가갈 수도 있구나

 

어쩌면 외로움이 가장 먼저 외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서

외로움은  또다른 외로움을 쉽게 볼 수 있어서

외로운 아이들끼리 친구가 된다.

 

사실 세상이 이렇게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쉽게 맞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내가 조금 용기를 내고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 조금 참고 따라주는 것

그게 세상의 모두가 아니라서 다들 외롭고 힘들고 혼자 운다.

 

외로운 아이들은 귀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냥 그도 외로운 존재일 뿐이니까

친구를 찾는 것 뿐이니까

그래서 오히려 편견없이 두려움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의 외로움을 정직하게 마주보는 것

그것이 외로움을 이기는 일이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면 이제 괜찮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

이렇게 책에서 처럼 친구가 생기기도 할거다.

 

 

가끔 내눈에 보이는 헛것들도 외로워서 내 눈에 띄고 싶어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무심하게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개 장발 웅진책마을 44
황선미 글, 김은정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덮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부업삼아 개를 키워 돈을 버는 목청씨. 그리고 그의 개 장발

사실 첫만남부터 두 사람은 서로가 마뜩치 않았다.

장발은 어미나 다른 형제와 다른 자신의 생김새때문에 자신이 없었고 주눅이 들어 성장했고

목청씨는 다른 개에 비해 값어치가 떨어질것같은 외모를 가진 장발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은 서로에게 그다지 끌리지 않았고  데면데면했다. 처음엔

 

그러나 여러 우여곡절끝에 목청씨에게는 장발만이 남았고 장발에게도 가장 만만하면서도 의지가 되는 상대가 목청씨였다.

제앞가림에도 정신없는 자식들은 늙은 목청씨 부부를 자주 찾지 않았고

형제들이 팔려가고  어미는 도둑에게 잡혀가고 자기가 낳은 새끼도 사라지는 곡절을 겪은 장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이 참 닮았다.

외롭고 고단한 삶을 누구에게도 응석부리지도 투정하지도 않고 속으로만 묵묵히 쌓아갔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세월을 지나왔다.

자기 새끼를 팔아치우는 목청씨. 한번도 자상하게 불러준 적없는 목청씨

그리고 데면데면하게 구는 장발

둘은 그렇게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그 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서로 팽팽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그냥 딱 그만큼의 거리에 바로 상대가 있어 편하기도 했고 믿을 구석이기도 했고 그랬다

부른배를 안고 사고를 당한 장발을 구하기 위해 힘겹게 손수레를 모는 것도  목청씨고

따뜻한 밥한릇 챙기고 행여 사고칠까 목줄을 당기는 것도 목청씨였다.

그리고 장발 자체가 목청씨에게는 또다른 자신이기도 했고  자식을 대신하는 존재이기도 했을것이다.

나의 외로움을 투영할 수 있는 존재

나의 서글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존재

그러면서도 서로 말하지 않아도 푸념하지 않아도 위안이 되는 존재

 

목청씨는 뒤에서는 궁시렁거리면서 오지 않는 자식들을 원망하지만 막상 자식이 오면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손자 동이를 위해 달팽이 계단을 만들어 줄만큼 정이 많은 사람이다.

정은 많아도 표현이 서툰 우리네 아버지 같은 목청씨

눈마저 덮어버린 긴 털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장발의 깊은 속이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

 

아비와 자식이 (어쩌면 딸이)그러하듯이 아주 다정하지 안으면 서로 데면데면하며 무심하듯이 장발과 목청씨는 그렇게 무뚝뚝하게 굴면서도 서로에게 깊이 의지가 되었나보다.

서로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미워하고 미워하고 또 그 미움을 짐짓 모른척 딴청하면서 의뭉스럽게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표현할 줄 모르고 그 깊은 정을 모르는 아비와 딸처럼 그렇게 서로 미워하면서 그 마음이 사실은 사랑이라는 걸 몰랐던 사이였다.

그런 관계는 장발과  이웃고양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서로 끊임없이 아웅다웅하고 특히 장발에게는 같이 태어난 막내를 물어죽인게 고양이인만큼 이해가 가지 않고 미움의 대상이지만 서로 한 생을 함께 하면서 그렇게 으르렁거리는 미운정이 켜켜이 쌇여갔다.

늘 으르렁거리는 얄미운 이웃처럼 서로 대거리하고 맞붙는게 어쩌면 서로 나이듦으로 느끼는 서글픔을 위장하고 함께 공감해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나이를 먹으면 느끼는 것

진하고 끈끈한 정이라는 건 마냥 좋아서 헤실거리는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극악스럽게 목청을 높여 대거리를 하고 저 놈때문에 저 녀 ㄴ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살지 싶다고 악악거리면서 쌓이믄 미운정이라는 것  그게 주는 무게감 만한건 없다.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놓을 수록  믿음이 깊을 수록 실망이 커지고 미움이 쌓이는 건 사람만이 아닌걸까.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미움도 관심도 가련함도 함께 느끼고 뒤섞이는 것 그것도 사랑이어라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