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상

 

 

 

 

 

 

 

계유정란의 이야기가 배경이지만 내 눈에 이 영화는 슬픈 아비 이야기였다.

김내경이나 문종이나 둘 다 애닯고 처연한 아비였다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

어린 아들을 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일국의 왕이나

세상 모든 이의 앞날을 예감하고 심지어 살인자까지 척척 찾아내는 관상쟁이가 제 아들 단명할건 알아보지 못했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을까

김내경이 산골생활을 접고 서울로 상경한 것도 제 아들 잘 거두어 먹이고자 함이었고 과거를 버리고 과거길에 올라 말단 벼슬을 가진 아들 진형을 다시 만나서도 그저 아는 척 하지 않고 무탈하게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었을 것이다.

허나 왜 그 잘난 관상장이는 제아들 운명을 .. 아니 자신이 아들을 잃을 거라는 운명은 보지 못했을까 . 아무리 신기가 내린 관상장이라도 제 가족앞에서는 눈먼 장님이나 다름없다는 것..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이성도 마미될 때가 있다는 걸 보여준게 아닐까 싶었다.

영화에서 누구나 칭찬하는 연기력을 가진 김종서의 백윤식이나 수양대군의 이정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무난하게 흐름을 이어가는 배우였을 뿐이다.

내내 나는 김내경이게 그리고 일찍 화면에서 사라진 문종에게 집중되었다.

쇠약한 아비는 한나라의 국왕이라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내가 왕이 아니었다면 내 아들이 왕의 계승자만 아니라면 아무 일도 아닐 것들이 다만 왕이라는 , 혹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목숨마저 위태롭고 눈을 감아도 감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비는 아들을 살리려고 관상장이를 부르고 많은 증거들을 남기지만 아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고 결국은 아들을 구하려는 충신들은 호히려  수양을 왕으로 만들어 놓는 꼴이 되고 만다.  (영화장면중 점을 그려넣는 장면에서 결국 그러했다. 저렇게 어리석은 자들이 한 사내를 기어이 왕으로 만들고 마는구나.. 어쩌면 저 점만 아니면 왕이 아니될지도 모를 것을...)

영화에서 김내경과 그의 처남은 어쩌면 부부관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미가 저렇게 호들갑스럽고 수다스러우면 조금 동정이 가지 않고 눈쌀을 찌푸릴까 어미자리에 대신 처남 그러니까 외삼촌을 넣었던게 아닐까 싶게

그의 처남은 어미처럼 김내경의 아들 진형이를 위한다. 아비몰래 아들에게  원하는 길을 가게 일러주고 다시 만났을 때도 소소한 정을 주지 못해 안달이다. 그저 지금 눈에 보이는 내 아이의 안녕을 위해 오히려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눈먼 어미처럼 그렇게 아이를 품고 싶어 안달이다.

그래서 그 지극한 안달과 사랑이 지나쳐서 오히려 대의를 망치고 남편(매부)를 망치고 아이를 잃게된다. 그게 아니었음에도...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혹시 문종도 가능했다면 왕위를 동생에게 주어버렸다면.. 뭐 그게 가능하지 못했으니 그런 사단이 났겠지만 어쩌면 아들을 잃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이제 나이를 먹은 송강호는 아비 역활이 참 잘어울린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비 역활이 참 잘어울린다.

"효자동 이발사" 그 영화에서도 순박하고 착하지만 큰 흐름에 휘말려 아들을 잃어버리는 아비로 나왔고 이 작품 감독의 다른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도 악의는 없지만 딸과 소통이 안되서 고립된 아조폭 아비로 나온다.

아비들은 그렇다 자식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하고 사랑해주고 싶어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소통하는 방법을 모른다. 아니 알지만 그걸 행하기엔 너무 어색하고 쑥스러워 모른 척 한다.

그래서 그 사랑이 엉뚱하게 오해되고 오해는 또다른 오해를 낳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면 모든 오명은 혼자 뒤집어 쓰고 견딘다.

우아한 세계에서 유학간 딸은 끝내 아비의 속을 모를것이고 화살에 맞고 죽어가는 진형도 어쩌면 그 아비가 왜 그랬는지 모든 걸 알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어린 단종도 유약한 아비 문종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 전전긍긍했었는지 알았을까...

지금 상황이 그래서인지.. 자꾸 영화에서는 어리석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아비들이 보이고 있다.

 

 

2. 부에노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솔직히 예고편이 너무 좋았던 영화다.

"언어의 정원'을 보러갔을 때 에고편이 너무 좋아서 이걸 꼭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아니 별로라기 보다는 너무 늦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이미 도시에서의 쓸쓸함, 고독 소외 이런건 왕가위가 다 써먹었고 이전에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여러명이서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속내는 털어놓지만 끝내 만나지는 않는 영화가 있었는데..

이미 모두 써버린 소재를 가지고 영화가 늦게 나왔다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날거면 좀 더 일찍 만나지.. (아니 대면이 아니라 통신상의 만남을 보더라도) 너무 늦게 소통하고 스치고 지나는 장면이 짧아서 지루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삭막한지를 너무 오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내가 전혀 몰랐던 부에노스의 거리풍경.. 어디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난개발의 상황 그리고 불법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뚫어버린 창들과 벽의 광고들의 기발함은 맘에 든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래서 깨닫는다. 뭔가 획기적인 기획이라는 것도 때가 있다는 것. 이미 남들이 하고 지나간 걸 꼭 다시 하고싶다면 뛰어난 스토리나 감각을 가지고 할것.

이건 영화와 상관없이 내가 내게 하는 충고이기도 하다.

 

3. 블루 재스민,

 

블루 재스민

 

 

우디알렌이 그동안 말랑말랑한 여행기만 보여주더니 여기서는 다시 날카로워졌다. 아주 심한 건 아니고 그래도 두고두고 생각해볼 것들을 던져준다.

나이먹고 다시 읽었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참 울림이 많았다..

블랑쉬도 이해가 되고 스텔라도 이해가 되면서 둘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 어쩌면 한 사람의 내면에 들어있는 두가지 자아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끊임없이 꿈꾸고 이상만 바라보고 허공에 떠 있던 블랑쉬나 현실적이고 소박하지만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스텔라가 모두 내 속에 있지 않나 싶었고 그러면서 내심 주목받는 블랑쉬보다 현실에 안주해야하는 그리고 스텐리를 견뎌야 하는 스텔라가 더 안타까웠다.

차라리 꿈꾸는 동안은 나는 행복하다  남이야 뭐라고 하던말던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나의 행복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한다. 내가 가진 행복이나 이상은 일정수준 저당잡히고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꿈꾸는 언니를 바라보는 스텔라가 많이 갈등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더 고통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았다.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우아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들이나 스타일은 너무나 부럽고 멋지고 상징적으로 들고 입었던 에르메스나 샤넬도 어쩌면 그렇게 맞춤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지.. 눈이 즐거웠다. 게다가 그녀의 강박증 신경쇠약 현실 부적응등도 우아하기까지 하다.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기댄 면이 많지만 내가 상상했던 주인공들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재스민은 유약하고 비 현실적이라서 라기보다는 그저 이기적이고 아직도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이라면 남도 가지게 할 수 없다는 이기심이 재스민을 바닥까지 치게 만들었다. 내가 하는 거짓말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순간 감정이 충실했던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 그렇게 현실감이 없고 순수하기만 해서 누구에게나 짐이 되고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어리석고 미성숙한 인간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미성숙함이 그녀를 꿈속에서 살게 하고 현실파악을 못하게 하는 이유기 되었다. 끝임없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를 파멸하게 한다는 것이 나는 끔찍했다.

하지만 인형처럼 어떤 외부적인 요소만으로 무너지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그 추락에 원인이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내것이 아니면 남도 가질 수 없다는 욕심에 남편을 고발하고 스스로도 무너진다. 어쩌면 고발 하는 순간까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너무나 뇌마저 순수한 그녀였으므로.

스텔라를 대신한 진저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였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극악스럽지 않고 착하고 순수하다. 언니를 동경하면서 한때 언니를 흉내내려고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선택지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여자이다. 그래서 큰 굴곡은 없을지라도 더 이상의 변화조차 없는 그래서 슬픈 여자 였다. 왠지 웃고 있고 끄덕이고 긍정하고 있는 그녀가 더 슬펐다. 그래도 그녀의 남자는 희곡속의 스탠리보다는 신사적이고 따뜻하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는 아쉬웠다. 그래도 할처럼 이기적이고 사기꾼이 아닐지라도 그가 걸친 옷들 그가 가진 배경들을 보면서 그저 이것이 저것보다 더 낫다고 선택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것.. 그래서 슬프고 아쉽고 그랬다.

나이를 먹고 때를 먹고 세상살이가 교과서대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이것과 저것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물론 도덕적 법적인 테두리를 지킨다는 건 언제나 맞는 말이지만 그 범위안에서 얼마만큼의 선택을 하고 어느 정도까지 눈감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딜레마이다.

재스민이 안쓰럽고 허황되다는 걸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녀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고 진저의 현실성을 높게 사면서도 그녀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공존하는것

내게 있어 찰리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것 그만하면 착하고 성실하다는 걸 알지만 사기꾼 할에게도 끌릴 수 밖에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 내내 누가 악당이고 누가 선한건지 구분할 수도 없고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누구든 나일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슬프고 아름답고 답답하고 기묘한 영화였다.

역시 우디알렌이라는 말만 할 수밖에...

영화를 보고 나의 속물스러움을 들킨 기분도 들면서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마음도 들고 암튼 그랬다.

하지만 재스민이 누군가에게 혹은 아무에게나  의식없이 혼자 중얼거리고 대화하는 모습은 여전히 짠하고 저렇게만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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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잘랐는데 왕자표 크레파스의 메인모델이 되버렸다.

앞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했는데 깜빡한 미용사가 잘라버리는 통에 그만.. 몽실이 윌리윙카 혹은 왕자표 크레파스 머리가 되버렸다. 나이나 어리면 귀엽기라도 하지 마흔 중반의 아줌마로서는 대책이 서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왠만하면 약속을 만들지 않고 나가더라도 일찍 들어오며 저 멀리 누군가 아는 얼굴이 보이면 돌아간다. 얼른 머리가 자라길 바랄 뿐이다.

옛날 엄마들 처럼 보자기를 두르고 다녀야 하나싶다. (머리통이 커서 맞는 모자가 없다. ㅠㅠ)

이 머리를 하고 서울로 그것도 광화문 한복판으로 영화를 보려갔다.

제목도 다정하고 고풍스러운 "우리 선희"

갑자기 고등학교때 수학선생님을 짝사랑한 심한 곱슬머리 선희라는 동창이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당시 교복자율화였는데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녹색 원피스를 입고 온 적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시니컬하게 한마디 했었다. " 선생님 생맹이잖아. 니가 그렇게 입어도 우중충하니 회색으로 보일껄.." 갑자기 수학샘도 선희도 궁금하다.

각설하고

우리 선희 (Our Sunhi

 

참고로 광화문으 스폰지 하우스는 혼자 영화보기 정말 좋은 곳이다. 그곳은 누군가와 함께 오는 사람이 더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함께 판매하는 커피맛도 괜찮다. 가격도 그리 사악하지 않다.

영화는 늘 그렇듯 홍상수 영화다.

 

1 늘 나오는 배우들 비슷한 성격과 정말 리얼한 일상들의 묘사탓일까

  보면서 지난 번에 내가 본 홍상수 영화의 제목이 기억나질 않고 제목이 기억나는 영화는 내용이 어쨌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뭐였더라 이 장면 이 주인공의 행동이 지난번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각각의 영화가 뒤엉켜버려서 옥희의 영화인지 북촌 방향인지 해원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뒤엉켜도 별 상관없구나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주인공들의 성격도 여전하구나.. 비슷해서 식상하다는 느낌보다는 어짜피 일상이라는 것이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걸... 어제 본 놈이나 오늘 같이 술을 마시는 놈이나 찌질하고 한심하긴 마찬가지고  뭐 그런 정말 잔인한 현실감을 느낄 뿐이다.

 

2.카메라맨은 정말 할 일이 없겠다.  연극무대처럼 카메라는 그자리에 박혀있고 인물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혹은 길게 길게 대화하고 연기한다. 저거 한번 실수하면 끝이겠구나 싶은 생각에 내가 엉뚱하게 긴장되었다.. 술도 마시면서 다들 참 능청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배우라는 걸까 아니면 저게 저 사람의 본모습일까

 

3. 혼자 있을 때는 모든 인물들이 멀쩡하다.

   둘 이상이 되면 이상해진다. 거기에 술까지 들어가면 망가진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보일 수 없는 바닥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웃을 수만도 없고 냉소적일 수도 없다. 그게 나니까..

 

4. 정말 말들이 많다. 하지만 거의가 동의반복적이다. 내가 했던 말을 저놈이 또 자기것인양 딴놈에게 하고 딴놈은 제것인냥 내게 한다. 어라 어디서 듣던 말인데... 누가했지? 아하.. 내말이구나 뭐이런.. 그렇게 말의 잔치가 벌어지는데 전혀 소통이 되질 않는다. 우라질.

다들 제말만 하고 있다. 타인의 말에 귀이울이지도 않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꼬이면서도 계속 혼자 지껄인다. 서로 이해하건 상관없다. 열하루는 입도 못뗀 사람처럼 그래서 입속의 군내를 없애려는 듯이 말을 해댄다. 그래서 외로워보인다. 다들 소통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마주앉아서 술을 마시지만 혼자 떠들고 자기랑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아.. 슬프다.

 

5.결국 긴 시간 술을 마시고 떠들지만 상대방을 알지 못한다. 나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술이 깨면 필름이 끊어지고 어젯밤이 생경해지는 것처럼 다음에 멀쩡하게 만나면 서로 서먹하고 묵묵해진다. 뭔가 상대에게 근사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찌질하 놈만 아니면 다행이다.

 

5. 결국 선희를 만난 세 남자는 선희를 잘 알까? 내가 본 선희를 선희의전부라고 생각할 뿐이다.

선희는 그 세남자를 잘 알까? 그래도 선희가 영악하다면 그들을 잘 알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기 바랄 뿐이다. 뭐 타인에 대해 그렇게 잘 이해하는게 꼭 필요한건 아니다.

그래도 슬프다.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 의미없어져버린다는게..

 

6. 나와 남이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건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도데체 어디서 익혀야 한단말인가..

 

사족..

이제 이선균은 거의 홍상수의 남자가 되었나보다. 찌질하고 귀엽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자기 옷처럼 잘 맞아 떨어진다.

김상중의 제 2의 문성근이 되려는 걸까? 하지만 문성근이 가진 지적이고 세련된 모습뒤의 야비함 보다는 귀엽고 어설퍼서  매력적이다.

정재영은 홍상수 영화에서는 첨이지만 잘 스며든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의 " 아는 여자"에서의 연기가 가장 좋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나영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정유미는 이제 정말 내가 아는 여자같다. 똘똘하고 영리하지만 어딘가 똘끼가 충만하고 허당스러운... 정말 사랑스럽다.

여기서 유준상의 귀여운 찌질함을 못 봐 안타깝고..  김상경의 느물거리는 모습도 이제 보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를 보니 낯술 생각이 간절하다. "언어의 정원"보다도 더...

영화를 보고 가까운 덕수궁이라도 갈까 싶었지만 힐끗 들여다 본 궁안은 아직도 초록일색이다.

조금 더 붉은 색 노란색이 많아지면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궁으로 가야겠다.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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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할아버지 비룡소 걸작선 41
울프 스타르크 지음, 안나 회글룬트 그림, 최선경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외할아버지가 없는 소년이 있었다. 친구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외할아버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 친구는 함께 양로원에 갔고 거기서 멜방 바지를 입고 친구와 똑같이 턱에 반창고를 붙인 닐스 할아버지를 만난다.

친구 베라때문에 오긴 했지만 우쎄는 닐스 할아버지를 외할아버지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용돈을 받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쎄는 베라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함께 외출을 해서 할아버지가 아끼는  이야기가 담긴 실크 스카프와 넥타이로 연을만들기도 하고 누워 있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좋아하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함께한 외할아버지의 생일 세 사람은 함께 외출을 하고 할아버지가 좋았던 기억으로 남은 버찌서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세상엔 쉽게 되는게 없단다. 연습만 하면 된다. 연습없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렇게 서로 만나고 익숙해지고 서로 할아버지가 되고 손자가 되는 연습을 하면서 서로 알아간다.

그리고 닐스 할아버지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배운 우쎄는 열심히 연습한다.

연습만 하면 되는 거니까..

다음에 만날땐 꼭 휘파람을 불어주기 위해 양로원도 가지 않고 연습한다 또 연습한다.

그리고 마침내 휘파람을 불 수 있게 된 날 두 아이는 길가에 핀 가장 아름다운 장미 한송이를 꺽어서 양로원으로 간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없다.

토요일 두 아이는 교회로 가고 우쎼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에게 휘파람을 불어드리고 드디어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연을 날린다.

함께 한 일상이 시간은 힘이 쎄다.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웃고 화내고 빈둥거리는 동안 보이지 않는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빈둥거리며 텔레비젼을 보거나 서로가 먼 산만 바라보면서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어도 상관없다. 밥상에 앉아서 서로 대화가 없이 그냥 묵묵히 밥먹을 입만 벌려가며 있어도 상관이 없다. 그냥 그런 일상들이 쌓여서 추억이 될테니까.. 사실 그랬다 지난 더운 여름 아버지를 보내고 이제 더이상 그런 조금은 어색하고 미안하고 불편한 일상을 반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뭔가 미안하고 잘못한 일들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아하면서 한귀로 흘려가면서 들었던 잔소리같은 것들 건성으로 대답하던 것들 그리고 사소한 반찬 투정들 툴툴거리는 짜증들 어쩌면 가까워서 어색하고 묻기가 난감했던 안부들이 이젠 그립다. 귀찮았던 전화통화  사소한 습관이 주는 불편함혹은 어색함이 이제는 그냥 추억이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동안은 그저 시간이 쌓이는 일상이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건너면 그 모든 것은 추억이 되어버린다. 추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것인가를 처음 알았다. 그저 낭만적인 것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어쩌면 추억이라는 것은 이제 더이상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여름을 견디면서 알았다.

예전 아버지가 암수술을 하고 회복하시는 동안 서울에 머물렀었다. 그때 난 무슨 베짱인지 아무리 암이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리가 없다고 믿었다. 목숨이 오가는 심각한 암이 아니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60을 앞둔 나이에 암이라는 건 보통일은 아니지만 난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에 계실거라고 믿었다. 그건 믿음이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아비없는 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억지였고 투정이었고 궤변이었지만 괜찮을거라고 믿었고 내가 당시에 임신중이라는 핑계로 병원엘 자주 가지도 않았다. 어쩌피 고비를 지나면 괜찮아질거라고... 냉정하고 무심한 딸이라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병원이 두려웠다. 가면 아픈 사람만 있고 조금이라도 덜아프다는 것이 축복일 수 있는 공간이 두려웠다. 내가 병원에 가면 사실을 봐야하고 인정해야한다는 게 두려워서 그냥 욕을 먹고 피하자는 마음이 컸던거 같았다. 어쩌면 누구보다 다른 형제보다도 겁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아버지는 병을 이겨냈고 당분간 부산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서 회복기를 가졌다.

그때 아버지를 모시고 인사동으로 삼청동으로 안국동으로 간 적이 있다.

인사동 끝머리에 있는 조금에서 솥밥을 먹고 안국역을 지나 선재미술관을 지나 한옥이 있는 거리를 걸었다. 그땐 아버지는 목소리 잃었지만 걸음걸이는  편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예 말을못하는게 아니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무렵이었을 것이다.)

예전 당신이 대학 다닐적에 입주과외를 했던 동네라고 하셨다. 당시 동숭동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위해 이 동네 어느 부잣집에서 입주과외를 했다고 아마 선재 미술관이 그 근처가 아닐까 싶다는 말들. 그때 남의 집이라 눈치를 많이 봤다는 것.. 배가 고파도 늦게 들어오면 밥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도 부잣집이라 먹거리에 궁색하거나 인색하지 않았지만 왠지 자격지심에 달라고 먼저 말한 적 없다는 것.. 그 때 학생은 지금 미국에 이민가있다는 것등등... 혼잣말처럼 하신 게 생각이 난다. 아마 그때도 난 건성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고학이야기야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아.. 이 부근이었구나 하는 생각 이상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단 둘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그땐 몰랐으니까. 그 순간이 일상에서 추억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난 배가 부른 임산부였고 아버지는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였다.

그래서 느린 걸음으로 동네를 돌고 다시 인사동으로 와서 차를 마시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조금 깊은 속내를 이야기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건성이었고 무덤덤했고 묵묵했다.

지금 그게 많이 아프다. 몰랐다는것도 미안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래서 이 동화책속의 우페가 부럽다. 무언가를 도모하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고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볼 줄 아는 아이. 아이가 나보다 어른이다. 그래서 우페는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담담하게 휘파람을  불 수 있었을 것이다. 난 그저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다고만 할 뿐이었는데.. 게다가 이건 반칙이라고 억지를 부리고만 있었다.

우페의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두 사람이 쌓은 일상은 담담하고 편안하다.

나는 .. 나도 담담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많을 거라고 믿는다. 미안한 순간이든 아름답고 고마운 순간이건 이젠 그저 일상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내가 아버지를 많이 좋아하긴 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것도.. 이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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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닫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 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p 30-31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다른 어떤 동물도 죽을 줄 아는 길로 걸어가지 않는데 왜 사라만은 그게 자기를 파멸시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일까.....p49

 

 

 

'....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브 노블은 애잔하기 짝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여지는 소설이기때문이다. 스텐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짖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긁적이는 것이다. 그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쓴느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  p 60

 

 

"그렇다면 왜 쓰는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문학을 쇄신하기 위해? 인류를 사랑하기위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질문에 부정이 계속되었지만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중략) 그렇게 한달 정도 썼을 때쯤 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 ㅣ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ㅇ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ㄴ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파스칼ㄹ의 회심과 같은 대단한 일이 일어난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라는 문장에 해당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단숨에 깨달으면서 파스칼의 지복과 비슷한 감정을 잠시 느꼈다는 말이다."p66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ㄲ개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게 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딘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벼렸다. 이미 저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  p 152

 

 

 

"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중략)연잎이  주름지고 또 시든다고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히지는 않을 것읻.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이 있었다. 예컨대 글을 잘 읽었다. 라든가.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싶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되는 듯하다.p196

 

 

 

" 김시습이 맞닥뜨린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두운 밤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도 어둡고 어두운 어둠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둠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주 하찮은 조각에 불과알지도 모른다.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건 중학교 2학년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수업이었지만 또 내 평생 잊히지 않는 쉅이기도 했다." p 202

 

한권의 책을 읽고 누군가를 안다고 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이 한권을 읽고 나니 이 작가라기 보다는 인간 "김연수"에 대해 조금 알거 같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비슷한 때에 학교를 다녔고 같은 노래를 들었고 얼추 닮은 경험치를 가져서는 아니다.

 

어쩌면 살면서 가장 비루하고 찌질했던시절에  한줄의 글이나 한권의 책이 준 위안을 풀어놓은 이 책이 그땐 나도 그랬다는 그리고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나도 이렇게 한권으로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배운다.

작가가 앞에서 다시는 이런 글을 쓸 일이 없을거 같다고 한 것 삶을 설명하는데는 한문장이면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처럼 나도 더 이상 돌아볼 시간은 없다.

돌아본다고 되돌릴 수도 없고 그 모든것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추한 것은 여전히 추하고 비루한 것은 비루하며 부끄러운 것은 낯도 들지 못하게 부끄럽다. 그래도 어쩌랴 그게 모두 내가 살아오고 저지른 나의 삶인 것을

작가는 그렇게 자기의 단편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아련해지기도 하고 희미하게 미소짓기도 하고 많이많이 미안해하기도 한다. 나도 함께 였다.

왜 김광석은 그 젊은 나이에 죽었는지.. 왜 꽃잎이 피는 것이 지는 것 보다 더 처연하게 보이는 때가 있는 것인지 나무나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너무나 사소한 일에 위로받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왜 즉석떡볶이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맛이나 요리 폼새가 달라지는 것인지.. 내가 부모에게 받았던 것들이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이해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나도 작가와 함께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소설 쓰는 사람에게 참 할말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소설보다 더 좋았다.

이전 읽었던 이후 작품인 지지않겠다는 말.. 보다도 좋다. 내게는..

어쩌면 가장 겸손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은 어느 순간이 아니면 영영 나오지 않은 것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뭋든 내게도 푸른 청춘은 있었다는 걸 문득 알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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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29, 2013 : 실시간

2 데이즈 인 뉴욕 (2

 

 

 

줄리델피가 많이 나이를 먹었다.

이전작이었던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뱃살과 늘어진 볼 주름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나왔을때 참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여배우인데.. 그것도 프랑스 여배우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그런데 그게 참 좋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주름지고 늘어나고 불어나는 게 정상이 아닐까

그의 외모는 많이 변해서 참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되었지만 그의 팔팔한 정신과 세계관은 여전하다. 전작에 이어 여기서도 남편과 혹은 주위사람과 참 많이 싸운다.

싸운다는 것이 그저 소모적인 행위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에너지를 마구마구 내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고 남을 받아들이려는 행위로 인식된다.

그녀는 비포... 시리즈에서도 참 많이 떠들고 싸웠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나이든 부부가 자식 문제 등등으로 호텔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걸 보면서 아.. 부부마다의 문제나 갈등이 프랑스라고 우아하지는 않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부러웠던 건 싸움이 참 싸움답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거나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하지 않고 마주보고 듣고 말하고 또 듣고 말하고.. 그렇게 계속 싸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적어도 피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니까

정말  잘 산 부부는 이렇게 싸울때도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싸울 줄 아는 부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에서의 줄리 델피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프랑스 여자인 그녀는 감정기복도 심하고 조울증을 보이기도 하지만 유쾌하고 자신에게 솔직하다. 조금은 가벼워보이는 그녀의 남자친구도 그녀와 참 합이 잘 맞다.

프랑스에서 온 가족 문제로 두 사람이 언쟁하는 씬이 몇번 나온다.

레스토랑에서 동생이랑 치고박고 싸운 후 밖으로 나가 언쟁하는 씬이나 그  전시회가 망했다고 생각하고 거리를 헤메고 와서 둘이 투닥거리는 씬이 참 좋았다.

서로를 피하지 않고 비난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싸움

그렇게 서로에게 열렬하게 퍼부으면서 자기 생각을 조율해나간다는 게 부러웠다.

 

싸우면 감정적이 되고 옛날 해묵은 감정까지 스멀스멀 올라와서 욱하게 되고 결국은 누구 하나는 그냥 회피하거나 무시하게 되는 싸움은 그냥 싸움이다.

끝이 없고 반성도 없고 감정만 남을 뿐이다.

그런 싸움만 이어지면 아이들 보기도 창피하고 결국은 왠만하면 안싸우려고 하지만 그건 화해나 이해가 아니라 그냥 회피이다. 아예 모른 척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겉으로 아닌척 하는 것 웃으면서 상대의 커피잔에 침을 뱉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영화 내내 난 커플의 다툼이 부러웠다.

현명하게 누군가와 다투고 언쟁을 할 줄 아는 그녀가 부러웠다.

뱃살이 나오고 얼굴이처져도 여전히 나보다 아름답고 게다가 말싸움도 쌈박하게 잘하는 프랑스 여자... 그녀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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