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잘랐는데 왕자표 크레파스의 메인모델이 되버렸다.
앞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했는데 깜빡한 미용사가 잘라버리는 통에 그만.. 몽실이 윌리윙카 혹은 왕자표 크레파스 머리가 되버렸다. 나이나 어리면 귀엽기라도 하지 마흔 중반의 아줌마로서는 대책이 서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왠만하면 약속을 만들지 않고 나가더라도 일찍 들어오며 저 멀리 누군가 아는 얼굴이 보이면 돌아간다. 얼른 머리가 자라길 바랄 뿐이다.
옛날 엄마들 처럼 보자기를 두르고 다녀야 하나싶다. (머리통이 커서 맞는 모자가 없다. ㅠㅠ)
이 머리를 하고 서울로 그것도 광화문 한복판으로 영화를 보려갔다.
제목도 다정하고 고풍스러운 "우리 선희"
갑자기 고등학교때 수학선생님을 짝사랑한 심한 곱슬머리 선희라는 동창이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당시 교복자율화였는데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녹색 원피스를 입고 온 적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시니컬하게 한마디 했었다. " 선생님 생맹이잖아. 니가 그렇게 입어도 우중충하니 회색으로 보일껄.." 갑자기 수학샘도 선희도 궁금하다.
각설하고

참고로 광화문으 스폰지 하우스는 혼자 영화보기 정말 좋은 곳이다. 그곳은 누군가와 함께 오는 사람이 더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함께 판매하는 커피맛도 괜찮다. 가격도 그리 사악하지 않다.
영화는 늘 그렇듯 홍상수 영화다.
1 늘 나오는 배우들 비슷한 성격과 정말 리얼한 일상들의 묘사탓일까
보면서 지난 번에 내가 본 홍상수 영화의 제목이 기억나질 않고 제목이 기억나는 영화는 내용이 어쨌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뭐였더라 이 장면 이 주인공의 행동이 지난번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각각의 영화가 뒤엉켜버려서 옥희의 영화인지 북촌 방향인지 해원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뒤엉켜도 별 상관없구나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주인공들의 성격도 여전하구나.. 비슷해서 식상하다는 느낌보다는 어짜피 일상이라는 것이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걸... 어제 본 놈이나 오늘 같이 술을 마시는 놈이나 찌질하고 한심하긴 마찬가지고 뭐 그런 정말 잔인한 현실감을 느낄 뿐이다.
2.카메라맨은 정말 할 일이 없겠다. 연극무대처럼 카메라는 그자리에 박혀있고 인물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혹은 길게 길게 대화하고 연기한다. 저거 한번 실수하면 끝이겠구나 싶은 생각에 내가 엉뚱하게 긴장되었다.. 술도 마시면서 다들 참 능청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배우라는 걸까 아니면 저게 저 사람의 본모습일까
3. 혼자 있을 때는 모든 인물들이 멀쩡하다.
둘 이상이 되면 이상해진다. 거기에 술까지 들어가면 망가진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보일 수 없는 바닥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웃을 수만도 없고 냉소적일 수도 없다. 그게 나니까..
4. 정말 말들이 많다. 하지만 거의가 동의반복적이다. 내가 했던 말을 저놈이 또 자기것인양 딴놈에게 하고 딴놈은 제것인냥 내게 한다. 어라 어디서 듣던 말인데... 누가했지? 아하.. 내말이구나 뭐이런.. 그렇게 말의 잔치가 벌어지는데 전혀 소통이 되질 않는다. 우라질.
다들 제말만 하고 있다. 타인의 말에 귀이울이지도 않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꼬이면서도 계속 혼자 지껄인다. 서로 이해하건 상관없다. 열하루는 입도 못뗀 사람처럼 그래서 입속의 군내를 없애려는 듯이 말을 해댄다. 그래서 외로워보인다. 다들 소통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마주앉아서 술을 마시지만 혼자 떠들고 자기랑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아.. 슬프다.
5.결국 긴 시간 술을 마시고 떠들지만 상대방을 알지 못한다. 나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술이 깨면 필름이 끊어지고 어젯밤이 생경해지는 것처럼 다음에 멀쩡하게 만나면 서로 서먹하고 묵묵해진다. 뭔가 상대에게 근사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찌질하 놈만 아니면 다행이다.
5. 결국 선희를 만난 세 남자는 선희를 잘 알까? 내가 본 선희를 선희의전부라고 생각할 뿐이다.
선희는 그 세남자를 잘 알까? 그래도 선희가 영악하다면 그들을 잘 알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기 바랄 뿐이다. 뭐 타인에 대해 그렇게 잘 이해하는게 꼭 필요한건 아니다.
그래도 슬프다.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 의미없어져버린다는게..
6. 나와 남이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건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도데체 어디서 익혀야 한단말인가..
사족..
이제 이선균은 거의 홍상수의 남자가 되었나보다. 찌질하고 귀엽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자기 옷처럼 잘 맞아 떨어진다.
김상중의 제 2의 문성근이 되려는 걸까? 하지만 문성근이 가진 지적이고 세련된 모습뒤의 야비함 보다는 귀엽고 어설퍼서 매력적이다.
정재영은 홍상수 영화에서는 첨이지만 잘 스며든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의 " 아는 여자"에서의 연기가 가장 좋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나영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정유미는 이제 정말 내가 아는 여자같다. 똘똘하고 영리하지만 어딘가 똘끼가 충만하고 허당스러운... 정말 사랑스럽다.
여기서 유준상의 귀여운 찌질함을 못 봐 안타깝고.. 김상경의 느물거리는 모습도 이제 보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를 보니 낯술 생각이 간절하다. "언어의 정원"보다도 더...
영화를 보고 가까운 덕수궁이라도 갈까 싶었지만 힐끗 들여다 본 궁안은 아직도 초록일색이다.
조금 더 붉은 색 노란색이 많아지면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궁으로 가야겠다.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