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가정폭력 상담활동가를 위한 양성교육"을 듣게 되었다.

과정이 끝나고 활동가로 활동을 하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강의 내용이 좋아서 신청을 했다,

가보니 관심이 있어서 신청한 일반인보다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100시간의 과정이수가 필요해서 오신분들이 많고 몇몇 나처럼 그냥 관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

혹은 다른 분야에서 상담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

강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보다 아는 것이 명확하게 정리되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의외로 아직도 사람들의 사고가 여성, 페미니즘  가정폭력에 무지하고 무심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다시 느끼는 경험이었다,

일주일에 두번  6시간씩의 강의가 쉽지는 않았다.

앉아서 듣기만 하면 되는 거지만.. 일단 모든 강의가 3시간을 꽉꽉 채워서 끝났고

모든 이야기가 쉽게 듣기엔 힘들때도 있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강사들이 울컥하는 모습에 저절로 나도 울컥해질 때도 있었다.

아직 초반이라 남은 강의가 많지만 여태 걍의는 다 괜찮았다,

특히 성 소수자에 대한 강의는 그게 최근이어서도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혀 거부감 없기  이해하기 쉽게 성정체성 성별정체성 등등을 설명하는데 3시간이 30분처럼 흘러갔다,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았떤 개념들이 정리되고 아하.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어졌다.

유익할 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어서 왜 여태 아무도 저렇게 쉽게 설명하거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싶기까지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돌아와 딸한테 설명하면서 이런 강의가 학교마다 행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순진하게 말했더니 (난 그저 쉽고 아무런 거부감없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너무 감동해서)

딸이 무심하게 말한다,

 "그런 강의 한번 하면 아마 학부모 항의전화가 빗발칠껄..."

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난 학생들도 충분히 이해가능한 좋은 강의라는데만 촛점이 맞춰졌는데

그 내용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구나... 양성애도 동성애도 가능하고 그건 이상현상이 아니라는 것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는 여성 남성 이외의 다양한 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 언급만으로도 불편하고 불쾌할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 하는 건 깜빡했다,

나 역시 강의 한 번 들었다고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건 아닐것이다,

어쩌면 귀가 얇아서 쉽게 빠졌을 수도 있고 조금은 의식있고 다르게 보이려는 마음에서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하게 이기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이해된 개념들이 다시 꼬여가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게 된건

 

세상이 모두 이성애자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어버리는 사회적인 관습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누가 당연하다고 정한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고 우리가 무른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세상에 소개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하나의 특권이고 권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성적 지향이나 성 정채성으로 차별 받을 수는 없다는 것

 

자기가 이성애자라거나 타고난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지만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이거나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 등록된 성별과 자기의 정체성이 다를 경우는 그걸 일일이 셜명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입장은 평등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것이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단지 타인에게 내가 누구이고 어떤 취향인지 (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책을 통해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 그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다른 강한 충격이고 꺠달음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더 넓은 세계가 있고 내가 아는 범위밖의 존재들이 있고 그 세계와 그 존재들이 결코 비정상적이거나 모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비정상적이거나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때문에 차별받고 부당하게 대우 받을 이유는 없다, 그건 사람이 사람을 해치거나 위해를 가하는 일이 아니다,

 

상담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것은 성 소수자들이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란다, 그들은 자기의 취향과 존재에 당당하지만 그런 자기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하나밖에 없는  가치관과 기준때문에 남들이 자신들을 다르게 보고 모자라게 보고 비정상적으로 보는 시선이 두렵고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다,

솔직히 나도 내 아이가 그런 소수자가 아니길 바라고 아니었으면 좋겠고 아니면 다행일 것이지만

행여 그렇다면.... 그렇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멸시받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이유로  그런 어쩌면이기적인 이유로 .. 지금 현재 그들이 차별받거나 무시당하지 않기를 원하고 지지하려고 한다,

어쩌면 여태까지 내가 그게 어때서? 라고 했던 태도들은 나와 상관없다는 입장에서 조금은 시혜를 베푸는 입장에서  그냥 무관심하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뭘... 하는 심정으로 괜찮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닌다음에야.. 다르다는 것은 차별의 이유가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이제는 믿게 된다,

 

 

강의이후 읽게 되는 벨 훅스의 책은 쉽게 정리되어 들어온다,

 

 

즉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 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를 누리고 누구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모든 것과 반대가 된다,  우리 여성들은 대부분 아버지나 남자 형제 또는 이성애자 여성의 경우  연애관계까지 사생활에서 접하는 친밀한 관계에서 남성의 지배를 경험했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남정과 여성이 모두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의 감정적 행복은 더 깊어질것이다,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는  언제나 우리를 속박에서 자유로 사랑없는 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이끈다, 상호 동반자 관계야 말로 사랑의 토대다, 그리고 페미니즘 의 실천은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운동이다,

 

    17장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페미니즘 운동은 연령과 여남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차별주의를 철페하기 위해 노력해야 진보한다, 이런 노력을 실천하기 위해 꼭 어떤 단체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선 그에서 페미니즘을 위한 행동을 하면 된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가르치며 페미니즘을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

(중략)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 흑인 여성 페미니즘 사상가로서 나는 페미니즘 투쟁이 흑ㅇ니의 삶을 개선하는데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모든 흑인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구체적인 관심사와 전략을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흑인의 삶에서의 젠더 역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구적인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제국주의 백인 우월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내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끔 젠더와 인종 계급의 관점에서 각자의 삶을 용감하게 되돌아 보라고 격려한다,

 

                      19장 페미니즘의 미래

저자는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마 남자를 반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성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성차별주의적 남성성 규범에 맞지 않게 행동을 할  때  이런 학대의 대상이 된다' '가족내 성차별주의자의 주요 전파자는 대게 여성 양육자이다' '성인 여성이 아동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페미니즘 운동이 직시하려들지 않으면 여성이 다양한 형태로 아동을 학대하는 현실을 쉽사리 무시하게 만든다' 같은 구절은 그도안 페미니즘에서 강조되어온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 다른면을 정확히 짚어낸다 젠더를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남선을 없애는 식으로는 성차별주의를 없앨 수 없다,

벨 훅스는 "케럴 길라건같은 페미니즘 사상가들이 질리지도 않고 여성이 더 다정하고 윤리적이라고 말했지만 여성들이 자시보다 더 힘없는 다른 여성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도무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여성들이 자신이 속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같은 민족이나 인종집단에 보이지 않은 보사림의 윤리는 그들이 공감할 수 없고 동질성이나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통력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테어나는 것이 아니라 민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르므로 여성 혹은 남성이라도 이원화된 성별 구분은 페미니스트 되기에 있어서 결정적이지도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나는 이런 시대에 특히 예민함이라는 감각이 재평가되ㅓ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다거나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예민함은 이상한 상황을 이사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에민하다는 건 주어진 질서의 오류와 모순을 눈치 챌 정도로 지적이며 동시에 강인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을 멈추지 않은 삶이라는 점에서 예민함이란 감각은 자기에의배려 혹은 통치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예민함은 약자에게 강요되어지는 부정의한 제약을 거부하는 감각이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 권력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쥔 사람이다, 사실 진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 착취와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에민할 겨를이 없다, 예민함이라는 감각을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게 되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스스로 점점 무력해진다고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불어 '상처받았다"  발화자의 위치를 피해자의 위치로 지정해서 말하기에서 ' 상처주네?"라고 상대에게 되묻는 말하기로 전환하는  페미니즘 정치학을 제안하고 싶다, 페미니즘은 약자를 위한 정치학이지 약자가 되자는 정치학은 아니다.

 

 

                 해제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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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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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감정 단어는 몇개나 될까?

감정 단어를 세면서 두 손을 다 써야 한다면 그나마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이란다,

화난다 기쁘다 슬프다 우울하다  외롭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부끄럽다  미워하다 의심스럽다 등등...

과연 내가 느꼈던 감정을 열 손가락 이상 말할 수 있을까?

쉽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게 쉽지 않다,

내가 감정을 잘 느끼는 편이라고 믿었다면 다시 한번 생각 해보시길,,,

과연 나는 감정에 민감한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일 뿐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풀어내지 못한 나의 욕구의 표출이다,

내가 지금 이순간 이 상황에서 누군가 때문에 불쑥 솟아 오르는 감정이 그저 이 상황탓이거나 상대방 탓이다, 니가 그렇게 말해서 혹은 니가 그렇게 나를 무시해서 지금 상황이 너무 따라주지 않아서 에상했던 상황이 아니어서  그래서 나의 감정이 올라오는게 아니었다,

지금 이순간 혹은 나의 오랜 무의식속에 숨어있던 어떤 나의 욕구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어서 그렇게 불쑥 불쑥 어떤 상황과 마주하는 순간 나의 욕구는 나의 감정을 올려보낸다,

인정받고 싶고 지지 받고 싶고

안정감을 느끼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바람 그것이 욕구다,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내 마음에 어떤 상황이 부딪치고 어떤 사람과 만나서 갈등을 일으키는 순간 나는 나도 이름붙일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그 이름을 알아차려야하지만

나는 의외로 감정에 둔감하고 감정에 무지해서

그저 화가나!!! 슬퍼!!!! 행복해!!!! 아 짜증나,.... 너무너무 우울해,,,

그런 한손만으로도 충분한 감정들만 알아차린다,

외로움을 감추고 싶어서 행복할 수 있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숨기고 싶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짜증을 내고 지지받고 존중받고 싶은데 해결되지 않아서 우울하기도 하는 것을 그저 감추어진 감정은 알지 못하고 화나고 우울하고 짜증나고 그저 괜찮기만 할 뿐이다.

 

책은 아이들 눈눞에에서 다양한 감정을 다양한 상황으로 보여준다,

그 또래 아이들이면 경험했을 상황들을 예로 들면서 그때그때 내 마음을 채웠던 그 감정의 이름들을 알려 준다,

내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알게 된다면

그 감정 뒤에 숨은 내가 원하는 바람을 알게 되고

그 바람이 무엇을 원하기에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이 힘들어서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그 모든 상황이 결국 나로 인한 것임을 내 감정은 결국 나의 것이고

어떤 감정이든 나쁜 것은 없다는 것 ...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이렇게 느끼는 것 이렇게 휘둘리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내 감정이 잘못되었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마음대로 감정을 터뜨리는 일이 잘못된 일임을 알게 된다,

 

누구나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믿는다,

"나"라는 존재는 다른 무엇이 아닌 '나"이므로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것

그러나 의외로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나와 소통하고 내가 나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나를 존중하고 나와 소통해서 공감할 수 있다면 세상에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일이 없고 내가 소통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시간은 조금 많이 걸릴지라도......

흔히 상담에서 이용하는 감정카드 대신 이 책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그림도 귀엽고 상황들도 쉽게 남득할 수 있다,

다만.....

같은 상황에 대해서 제각각의 경험이나 성격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어두운 방안에서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불안을 느끼고 누군가는 공포를 느낀다,

비맞는 아기 고양이를 보고 누군가는 마음이 아프고 누군가는 슬퍼지고 누군가는 애가 타고 누군가는 간절해지는 법이다,

딱 이런 상황은 이런 감정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책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이런 상황에서 너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고 한 번 물어보고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치면 좋을거 같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틀린 건 아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걱정해야 할 일이지만 조금씩 다른 결의 마음을 가지는 건 괜찮은 것 아닐까?

각각 상황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어른인 나도 한번 더 생각해보기로 하자,.....

 

감정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기에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의외로 누구도 알기 쉽지 않은 미묘하고 에민한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친해질 가치가 있다,

내 감정을 아는 것 그건 나를 알고  내 곁에 누군가을 알아봐 주는 일이다,

감정은 무엇이든 틀리지 않고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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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옹호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나는 모든 불평등에 분노한다,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과 피해 고통 억압은 저항의 대상이며 교정되어야 한다,

이것과는 별개의 논의다, 다만 이 글에서 문제 제기하고 싶은 것은 기존의 차별 기준이나 개념 자체가 차별을 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차별을 시정하는 것만큼이나 차별 현상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작업의 '해방적' 의미에 대해서이다,

차별은 불평등이 아니라 다름으로 재개념화 하는 것은 차별의 기준과 내용을 누가 정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상대방이 차별한다 해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생각한다면 억압자가 의도한 차별의 효과는 이익을 보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할 때 차별에 대한 다양한 실천도 가능하다, 차별 가해자에게 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투쟁도 필요하지만 상대방의 시선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도 중요한 저항이다,

일상에서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세게 공용어가 영어라서 미국사람들은 행복할까? 요즘 미국인에 대한 정의는 1개 국어를 쓰는 사람이다, 미국의 문맹율이 전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지금 이 살벌한 글로벌 경제에서 1개 국어만 해도 먹고 사는데 별 지장 없는 무식한 사람들은 미국인 밖에 없다,  (중략)

한국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노동자는 대개 모국어와 한국어를 둘 다 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보통 한국인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난 그들을 우월하다거나 지식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어는 구경도 못해본 대개의 미국인이 영어잘하는 한국인을 대하듯 말이다,

탈 식민 햏방이란 지배 세력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정의하는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의 시선으로 나를 정체화하고 그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상대화 하는 것 서울을 기준으로 삼지 않은 것 서울을 안식의 참고문헌에서 제외하는 것 서울을 왕따시키는 것 서울과의 거리로 지기 지위를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상기해야 할 사실 중의 하나는 "평등"이 대개는 흡수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울이든 미국이든 남성이든 후리가 흔히 중심이라고 불리는 경계선 그 집단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집단 내부는 결코 균질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이 다 같은가? 미국 내부의 차별이 얼마나 많은가? 남성 내부의 차이는 남녀간의 차이보다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심과 같아짐을 의미하는 평등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 이전에 불가능한 프로젝트이다,

 

                                          - 차별의 효능- 중

 

 

 

저항이란 무엇일까 이기는 것인가? 인간다운 것인가? 정의인가? 단도직입적으로 약자가 저항하면 이익을 보는가? 아니면 약자는 도덕적이어야하므로 이익보다 대화를 추구해야하는 가? 윤리적 사법적 문화적 차원에서 저항의 개념은 모두 다르다, 이 불일치때문에  피해자들은 저항하면 할수록 2차 3차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약자들이 저항할 줄 몰라서 저항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저항하면 더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저항해서 자존감이 회복되거나 실질적 보상을 얻는 경우는 드물다, 저항과정의 사소한 문제가 가해의 본질보다 더 문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질'은 하지 않지만 ' 있는 자;들은 이 억울함을 모른다, 없는 이들의 저항은 폭력으로 간주된다, 하회불안 조정세력이 되거나 허수아비 취급을 받으면서 누가 시켰느냐며 배후를 조사받는다면 가해와 피해의 상황은 사라지고 양비론에 사생활까지 파괴된다,.... 저항해도 저항하지 않아도 비난받는다, 부정의는 끝이 없다, 유명진보 인사나 강남좌파가 저항하면 명에든 실질적 힘이든 얻을 확율이 있지만 없는 이들이 저항하면 박수보다 뭉개진 억장에 다시 억장이 덮친다, 저항하지 않았다는 누구의 시선인가? 그들은 저항했다,

 

                -그들은 저항했다- 중 

 

 

 

 

상실은 보편적 경험이지만 애도는 자격을 요구한다, 그 자격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했는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름만 식구이거나 심지어 가족을 괴롭혔던 사람도 정상 가족 규볌에 부함하면 가족으로 간주된다, 장레식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가족간의 갈등이나 주먹다짐은 그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처럼 부고란은 이성애제도와 중산층 중심의 일부일체제를 생산 유지 상기하고 이데올로기를 사실로 만들어 보도한다, 인위적 제도가 자연스러운 인생사로 둔갑하는 것이다,

삶이 불공평하듯 죽음 역시 그러하다, 애도의 위계는 말할 것ㄷ 없다, 애도를 서열화 하는 사회 제도와 문화적 인식은 매우 다양하다, 누구의 죽음을 슬퍼하고 기념할 것인가? 죽음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은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이다,

 

 

보편적이라고 여겼던 것들

상식이라고 믿어버린 것들에 대해 뒤집어서 다르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쩌면 누군가가 자기의 혹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것이 보편적이고 상식이며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이라고 지칭한 것들에 대해 나는 (우리라고 하고 싶지만 일단은 나는) 아무런 고민없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왔다,

그냥 뒤집어 볼 생각없이

뭘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하냐고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그렇게 말도 안되고 논리도 없이 믿고 살아왔다,

세상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고 권리도 제각각 다르다,

모두가 나의 정의를 세우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며 나의 평등을  내세운다면

세상은 지옥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누구와 같지 않고 욕구도 감정도 다 다르다,

그 다름이 매일 매시간 매 초 부딫지지만 우리가 그나마 안전하고 평화롭게 사는 건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 몸속 어딘가 간직하고 있는 양보와  주저함 그리고 믿어주는 유전자때문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정의라고 하니까 상식이고 보편이라고 하니 그렇게 믿고 내가 조금 고치면 되겠지 내가 조금 양보하고 불편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그나마 세상이 굴러가고 있는게 아닐까

세상을 뒤집어보고

마땅하다 믿었던 것들이 사실 말 하지 않았지만 몹시 불편했었다고 한다면

또 어디선가 나같은 사람이 사실은 나도 그랬어 라고 소심하게 말할지 모른다,

 

내가 까다롭고 성질이 못되서 불편했었나 싶었던 것들이 나만이 아니었음을....

비록 내 판단이 틀릴 수 있을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말고도 있음에 반가웟다,

주저하지 말고  그럼에도 예의있고 이런거 불편하지 안나요? 하고 말을 거는 행위가 필요한 시대다,

나는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여겼던 어떤 관행들 일상들 언어들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따끔하게 다가갈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살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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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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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넓다.
농인과 청인 그리고 코다.
내가 모른다고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라이에게 감정이입하며 따라가다보니 다른 세상을 만나고 그 사이에서 외로웠을 그를 이해하게된다
투박하지만 좋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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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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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는것 그건 이야기속에서 내 모습을 찾는 일. 나는 아니야 아니야 ...계속 거부하지만 끌려들어가고 결국 이야기속에 내가 있는건지 들어가버리게 되는건지 알 수없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는 힘이 세다.
수잔을 미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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