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가정폭력 상담활동가를 위한 양성교육"을 듣게 되었다.

과정이 끝나고 활동가로 활동을 하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강의 내용이 좋아서 신청을 했다,

가보니 관심이 있어서 신청한 일반인보다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100시간의 과정이수가 필요해서 오신분들이 많고 몇몇 나처럼 그냥 관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

혹은 다른 분야에서 상담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

강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보다 아는 것이 명확하게 정리되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의외로 아직도 사람들의 사고가 여성, 페미니즘  가정폭력에 무지하고 무심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다시 느끼는 경험이었다,

일주일에 두번  6시간씩의 강의가 쉽지는 않았다.

앉아서 듣기만 하면 되는 거지만.. 일단 모든 강의가 3시간을 꽉꽉 채워서 끝났고

모든 이야기가 쉽게 듣기엔 힘들때도 있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강사들이 울컥하는 모습에 저절로 나도 울컥해질 때도 있었다.

아직 초반이라 남은 강의가 많지만 여태 걍의는 다 괜찮았다,

특히 성 소수자에 대한 강의는 그게 최근이어서도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혀 거부감 없기  이해하기 쉽게 성정체성 성별정체성 등등을 설명하는데 3시간이 30분처럼 흘러갔다,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았떤 개념들이 정리되고 아하.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어졌다.

유익할 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어서 왜 여태 아무도 저렇게 쉽게 설명하거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싶기까지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돌아와 딸한테 설명하면서 이런 강의가 학교마다 행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순진하게 말했더니 (난 그저 쉽고 아무런 거부감없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너무 감동해서)

딸이 무심하게 말한다,

 "그런 강의 한번 하면 아마 학부모 항의전화가 빗발칠껄..."

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난 학생들도 충분히 이해가능한 좋은 강의라는데만 촛점이 맞춰졌는데

그 내용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구나... 양성애도 동성애도 가능하고 그건 이상현상이 아니라는 것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는 여성 남성 이외의 다양한 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 언급만으로도 불편하고 불쾌할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지... 하는 건 깜빡했다,

나 역시 강의 한 번 들었다고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건 아닐것이다,

어쩌면 귀가 얇아서 쉽게 빠졌을 수도 있고 조금은 의식있고 다르게 보이려는 마음에서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하게 이기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이해된 개념들이 다시 꼬여가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게 된건

 

세상이 모두 이성애자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어버리는 사회적인 관습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누가 당연하다고 정한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고 우리가 무른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세상에 소개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하나의 특권이고 권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다.  성적 지향이나 성 정채성으로 차별 받을 수는 없다는 것

 

자기가 이성애자라거나 타고난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지만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이거나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 등록된 성별과 자기의 정체성이 다를 경우는 그걸 일일이 셜명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입장은 평등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것이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단지 타인에게 내가 누구이고 어떤 취향인지 (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책을 통해서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 그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다른 강한 충격이고 꺠달음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더 넓은 세계가 있고 내가 아는 범위밖의 존재들이 있고 그 세계와 그 존재들이 결코 비정상적이거나 모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비정상적이거나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때문에 차별받고 부당하게 대우 받을 이유는 없다, 그건 사람이 사람을 해치거나 위해를 가하는 일이 아니다,

 

상담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것은 성 소수자들이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란다, 그들은 자기의 취향과 존재에 당당하지만 그런 자기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하나밖에 없는  가치관과 기준때문에 남들이 자신들을 다르게 보고 모자라게 보고 비정상적으로 보는 시선이 두렵고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다,

솔직히 나도 내 아이가 그런 소수자가 아니길 바라고 아니었으면 좋겠고 아니면 다행일 것이지만

행여 그렇다면.... 그렇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멸시받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이유로  그런 어쩌면이기적인 이유로 .. 지금 현재 그들이 차별받거나 무시당하지 않기를 원하고 지지하려고 한다,

어쩌면 여태까지 내가 그게 어때서? 라고 했던 태도들은 나와 상관없다는 입장에서 조금은 시혜를 베푸는 입장에서  그냥 무관심하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뭘... 하는 심정으로 괜찮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닌다음에야.. 다르다는 것은 차별의 이유가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이제는 믿게 된다,

 

 

강의이후 읽게 되는 벨 훅스의 책은 쉽게 정리되어 들어온다,

 

 

즉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 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를 누리고 누구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모든 것과 반대가 된다,  우리 여성들은 대부분 아버지나 남자 형제 또는 이성애자 여성의 경우  연애관계까지 사생활에서 접하는 친밀한 관계에서 남성의 지배를 경험했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남정과 여성이 모두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의 감정적 행복은 더 깊어질것이다,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는  언제나 우리를 속박에서 자유로 사랑없는 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이끈다, 상호 동반자 관계야 말로 사랑의 토대다, 그리고 페미니즘 의 실천은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운동이다,

 

    17장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페미니즘 운동은 연령과 여남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차별주의를 철페하기 위해 노력해야 진보한다, 이런 노력을 실천하기 위해 꼭 어떤 단체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선 그에서 페미니즘을 위한 행동을 하면 된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가르치며 페미니즘을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

(중략)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 흑인 여성 페미니즘 사상가로서 나는 페미니즘 투쟁이 흑ㅇ니의 삶을 개선하는데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모든 흑인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구체적인 관심사와 전략을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흑인의 삶에서의 젠더 역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구적인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제국주의 백인 우월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내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끔 젠더와 인종 계급의 관점에서 각자의 삶을 용감하게 되돌아 보라고 격려한다,

 

                      19장 페미니즘의 미래

저자는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마 남자를 반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성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성차별주의적 남성성 규범에 맞지 않게 행동을 할  때  이런 학대의 대상이 된다' '가족내 성차별주의자의 주요 전파자는 대게 여성 양육자이다' '성인 여성이 아동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페미니즘 운동이 직시하려들지 않으면 여성이 다양한 형태로 아동을 학대하는 현실을 쉽사리 무시하게 만든다' 같은 구절은 그도안 페미니즘에서 강조되어온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 다른면을 정확히 짚어낸다 젠더를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남선을 없애는 식으로는 성차별주의를 없앨 수 없다,

벨 훅스는 "케럴 길라건같은 페미니즘 사상가들이 질리지도 않고 여성이 더 다정하고 윤리적이라고 말했지만 여성들이 자시보다 더 힘없는 다른 여성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도무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여성들이 자신이 속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같은 민족이나 인종집단에 보이지 않은 보사림의 윤리는 그들이 공감할 수 없고 동질성이나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통력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테어나는 것이 아니라 민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르므로 여성 혹은 남성이라도 이원화된 성별 구분은 페미니스트 되기에 있어서 결정적이지도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나는 이런 시대에 특히 예민함이라는 감각이 재평가되ㅓ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다거나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예민함은 이상한 상황을 이사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에민하다는 건 주어진 질서의 오류와 모순을 눈치 챌 정도로 지적이며 동시에 강인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을 멈추지 않은 삶이라는 점에서 예민함이란 감각은 자기에의배려 혹은 통치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예민함은 약자에게 강요되어지는 부정의한 제약을 거부하는 감각이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 권력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쥔 사람이다, 사실 진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 착취와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에민할 겨를이 없다, 예민함이라는 감각을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게 되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스스로 점점 무력해진다고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더불어 '상처받았다"  발화자의 위치를 피해자의 위치로 지정해서 말하기에서 ' 상처주네?"라고 상대에게 되묻는 말하기로 전환하는  페미니즘 정치학을 제안하고 싶다, 페미니즘은 약자를 위한 정치학이지 약자가 되자는 정치학은 아니다.

 

 

                 해제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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