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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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을 때 누군가가 등짝이라도 두둘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뺨을 맞기엔 좀 심하다 싶고 등짝이라도 세게 누군가가 두들겨 준다면 그걸 핑계로 그냥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생각하는 주제중 하나인데

감정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참 서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쩌면 나만의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내 감정을 직면하고 느끼고 알아가는 일이 참 힘들다

기쁘다, 너무너무 좋다 어쩔 줄 모르겠다,

이런 감정을 내보이는 건 너무 건방지고 오만한거 같아서 되도록이면 누르고 싶다,

슬프다, 그냥 펑펑 울고 싶다

이건 쪽팔리니까 힘들고 누군가 내 속에서 징징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거 같아 쉽게 내색하기 힘들다

화가 난다, 뭐든 때려부수고 싶고 아무에게나 소리치고 싶다, 내가 폭발해버릴 거 같다

이런 건 사회악이 될까봐 내가 쫀쫀하고 못난 놈이 될까봐 함부로 듣러내기 위험하다

한없이 우울하다 땅을 파고 그 속으로 꺼지고 싶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것도 먹기 싫고 하기 싫다,

이건 때때로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온전하고 푹 빠지는 건 늘 시간에 쫒기는 일상탓에 힘들다

그렇게 감정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마주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슬픔이 닥쳤을 때 그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어쩌면 모두가 억제하고 누르며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 상황은 메이 아줌마의 장례식부다 더 장례식답고 푸근했다, 일단 장례식을 직업으로 삼은 장의사나 목사같은 외부인들이 오면 사람들의 슬픔마저 어떤 틀에 맞춰야 한다, 마치 극장에 들어갈 때 누구나 줄을 서는 것처럼 또는 병원에 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그저 트레일러안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고 몇날 며칠이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짬도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리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레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애기 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명의 친척과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낼 도리밖에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보브 아저씨와 나는 난데없이 사교계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p 53-54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2년전 아버지 상을 떠올렸다,

나쁘다 좋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관혼상제라는 틀속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슬퍼하게된다는 걸 그때 경험했다,

예전 어릴적 아직 어떤 사별도 한  경험이 없을 때 간혹 조문을 가면 웃거나 일상적인 말을 나누는 상주들이 그렇게 어색했고 언짢았다, 누군가는 죽었는데 그 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을까?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도 몹시 곤혹스러웠다,

장레다운 엄숙하고 슬픔이 충만한 것 그런건 영화나 드라마 속인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도 그때 슬픔과 함께 일상적으로 처리해야할 일들이 함께 했다,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고 종종 사무실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요구하고 중간 정산을 하고 일정을 다시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듣고 그리고 화장실도 가고 세수도 하고 밥도 먹었다,

일상과 슬픔이 뒤섞였고 이때는 그저 정신차리고 지금 하는 일들을 잘 해나가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딱 한번 시신을 염하는 자리에 가서야 모두가 목놓아 통곡을 하긴 했지만 그리고 돌아와서는 어머니나 형제들 아버지의 형제들 모두가 일상적인 일을 이어갔다,

입관을 하고 모든 절차가 끝나고 뿔쭐히 집으로 와서는 지친 몸뚱이 속에 어떤 사고도 감정도 없었다, 그땐 부끄럽지만 그냥 자고 싶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절차가 끝나고 금전관계 행정절차를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사하고 전입신고하듯이 아이 학교에 가게 취학통지서를 받듯이 담담하게 일처리가 지났다,

그리고 첫 명절이 지나고 제사가 지나고 그제야 슬픔이 나타났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이제 정리되고 감정도 추스려졌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것이 들이닥쳤다,

이제 아버지가 없다는 것 남편이 없다는 것이 가족을 덮치고 슬픔이 밀려오고 두려움이 밀려오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내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감정을 도무지 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미 정리되었다고 믿는 타인들에게 그 감정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았다,

눌러야 하는가? 터뜨려야 하는가?

나이를 먹도록 알지 못하는 건 여전히 많았다,

책속에서 어떤 상황속에서 아버지가 떠오르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꼐 두 발을 뻣대고 울고 싶은 마음이 뒤석이면서 힘들었다,

가장 힘든건 역시 절대 힘들다는 걸 내보이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때  도움이 된 책이  줄리언 반스였다,

 

 

 

앞의 기구 이야기를 꾸역꾸역 읽어내려간 후 만난 줄리언 반스의 애도 이야기가 나를 위로했다,

애도의 시간은 끝이 없다. 지나치게 긴 것도 없다는 말이 가슴을 쳤다,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 잊어라...

하는 위안이 진심임을 안다. 위로하기 위해 나름 생각하고 생각해서 한 말인 걸 알지만

그건 절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충분한 애도와 슬픔에 잠기지 않는다면 끝날 수 없는 것이 애도이다,

그걸 줄리언 반스가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위안을 얻었다,

 

오브 아저씨와 서머도 충분히 메이 아줌마를 애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과 부재는  남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더 이상 무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조가 하루에도 수십번을 교차하는 시간을 지나야 하고 충분히 슬픔에 젖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항상 누군가가 해야하는 숙제와 같았던 섬머는 처음 알게된 천국같은 메이아줌마 오브 아저씨와 함께한 트레일러 생활에 금이 갈까 전전긍긍이다. 메이아줌마의 빈 자리는 너무나 크고 조만간 오브 아저씨마저 떠날까 마음을 놓을 틈이 없다. 늘 긴장하고 화가 나있고 무언가를 준비하고 살피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오브아저씨조차 그 나이에도 처음 겪는 상실로 주위를 볼 수도 챙길 수도 없다,

서로를 잊고 자기 슬픔에 빠졌으되 그 속에 깊이 잠기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너무 불안할 뿐이다,

그때 클리스터가 나타났다,

엉뚱하고 더럽고 아무거나 모으는 클리스터는 뜻밖에 두 사람에게 중요한 역활을 한다,

그 아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그 아이는 두 사람을 깊은 애도와 슬픔으로 빠져들게 한다,

충분히 기억하고 충분히 슬퍼할 시간 .....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분수처럼 슬픔이 터지고 나면 비로소 후련하고 그 사람을 진짜 보낼 수 있다,

메이 아줌마의 마지막 독백은 참 슬프면서 따뜻하다,

이제 오브 아저씨도 서머도 살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그림책속의 아이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 이제 괜찮아진 것처럼 두 사람도 함께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나의 애도는 이제 끝에 닿았을까?

아직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냄새를 위해 환기를 하지 않는 아이나 모두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슈퍼앞에서 보초를 서는 여자의 표정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틈틈히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면서 조금씩 내 감정을 들여다 본다,

한때 미워하고 무심했고 부담스러웠지만 언제나 내갠 든든한 산이었음을 이제 안다,

많이 닮아서 미웠던 것도 알았고 그래서 모른 척하기 더 힘들다는 것  알고 보면 큰 산이 아니라 아주 인간적이고 약하다는 것도 알아가면서 그를 애도하려 한다,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또 한가지....

엄마의 역활을 생각해본다,

부모란 엄마 이외에 아빠도 있고 조부모도있고 친척이나 형제도 있겠지만 늘 엄마의 역활이 모든 걸 떠안는다,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막말로 모든 정신적 문제는 엄마의 양육탓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나 대상관게 애착관계 등등 엄마에게 너무 무겁게 짐을 지운다,

그 부담감에 저항하면서도 엄마란 어떤 역활을 해야하나 생각하게 한다,

메이 아줌마는 엄마로서 꽤 괜찮다,

가난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해 줄 수 있는 것에 많은 제약이 있지만 늘 긍정적인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 어떤 말이든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아끼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는 것...

그건 가장 쉬운데 가장 어렵다,

어쩌면 건강해서 늘 따라다니며 챙기고 돈이 여유있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가장 쉬운지 모르겠다,

솔직하고 건강해서 언제나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아이가 무엇이든 말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기지.. 그것이 엄마라는 사실이 참 어렵고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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