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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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심보가 썩어빠진 녀석들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안통한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뭐 당연한 소리지만 옛날부터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 잉런 놈들을 제대로 교정하지 못했기 ㄸ재문에 현대는 한심한 어른들 천치가 된 게 아니겠는가 반대로 말하자면 이 녀석들은 지금의 어른들을 보며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른 사회에 편견과 차별이라는 왕따 현상이 있는 한 아이들의 왕따 현상도 사라지지 않는다."  p 34 

 

"도박으로 돈을 벌어 봤자 결국 내 손에서 다 빠져나가게 마련이야. 그런 식으로 인생을 허사는 바보같은 어른들이 지천에 널려 있지. 돈은 일해서 버는 게 가장 좋은거야. 그렇게 번 돈은 소중하게 쓰니까" p 76

 

"저기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그리고 교사도 인간이고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p 117

 

 

"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p 152

 

 

"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 학교 운동장에도 있고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달리는 차안에도 다 사람들이 타고 있지. 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웃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항상 너희들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니야. 야노의 다리가 느리다거나 나카야마의 배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 따위 다들 금세 잊어버려 그런데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휠씬 스케일이 큰 것들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p 186

 

 

" 하지만 보살피는 이상 책임도 져야해. 자식에게 밥만 먹이고  그 자식이 어떤 식으로 클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하는 부모님응ㄴ 무책ㅇ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그런데 그런 부모들 많아요.

" 그래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 거야.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처음의 교사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이렇다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없다 작은 소동이라고 하는게 낫지않을까 싶다.

아이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 사소한 일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은 끔찍하고 힘든일들이 일어난다.

무심하고 게으른 비정규 교사가 그 사건들을 풀어낸다.

그가 대단한 탐정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가  당돌한 어린아이였다가 삐딱한 청소년이었다가 이제는 시니컬해진 청년이 되었기때문에 그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너희라고 다르진 않구나.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엿같구나 하는 마음...

그냥 대담하고 당돌한 아이들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그게 다 어른탓이구나

내탓이구나 .. 하고 내가 섬뜩해진다.

어른들의 세계가 정글이고 무심하고 무서운데 아이들이라고 무슨 똥배짱으로 천진한 천사의 얼굴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도 나름의 정글이고 치열한 세상일 수 밖에....

마음 편하게 집어 들었다가  비정근교사에게 내가 한방 먹은 기분이다.

 

다만.. 이런 학교 현실이 우리에겐 조금 비껴가길 그냥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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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ㅇ ㅜ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 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대부분의 우리는 늙는 데 연연한 적이 없다. 내 판단이지만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아니 내 말뜻은 이렇다.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학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 후로... 그후로 깅거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며 동시에 패자의 자기기만 이기도 하다.

 

 

 

다시 읽은 책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두번째는 자꾸 번역이 걸린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은 것이 나의 짧은 식견탓이 아니라 번역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들이 앞뒤가 맞지 않다거나 뭔가 어색한 번역투라는게 이번엔 자꾸 보인다. 다시 읽는 것이라 몇군데는 건너뛰기도 했다.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둘  토니가 그렇게 잘못한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경솔했다는 건 있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이전 애인이 친구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면 열받지 않을 젊은이가 있을까. 순간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고 뭐 그런 유행가가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상황이 아닌가... 심하긴 하지만 그런 편지를 써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젊은이라면 그런 편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 편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뜯어보고 결국은 그 편지에 적힌 시덥잖은 충고마저 (그 여자의 엄마를 만나보라고 하는) 받아들인 에이드리언이 더 쫌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문제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조각에 씌인것처럼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의 소재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인생의 선택을 누구에게 책임지울것인가...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셋  토니가 찌짏고 못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인간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나이먹으면서 아집이 강해지고 왠만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토니의 말대로 과거는 내 마음대로 미화되거나 윤색되어 사실과는 다르게 추억이 되기도 하고 대단치 않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기도 하고 뭔가 심각했던 상황들은 대수롭지 않게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서 넘길 수 있는 일임에도 토니는 남아있는 유일한 피해자인 베로니카에게 사과를 한다. 너무 늦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내가 그땐 전혀 눈치채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 일인것을...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넷..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토니가 유산문제로 일기장 문제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베로니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적응하면서 토니라는 존재는 잊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에 어느날 갑자기  이미 지워져 버린 그 이름 토니.. 라는 작자가 실체가 되어 일기장의 소유를 주장하고 나서니 순간 열받지 않았을까

에이드리언도 지워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토니의 등장은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되었을 것이다. 토니의 이메일은 단순한 이메일이 아니라 베로니카가 덮어놓고 있던 과거의 기억  불쾌감 배신감 모욕 그리고 무거운 책임을 줄줄이 감자캐듯이 드러나게 만든 시발점이 되버렸다.

웃기지도 않다. 지가 뭔데.. 지금 와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소유를 주장한단 말이야?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기억들 기록들에서 토니의 편지를 다시 기억해내고 모든 원인을 토니에게 돌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놈의 편지만 아니면... 아니 예전에 이놈이랑 얽히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불쾌하게 대하고 증오를 드러내고 마구 무시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 미련하고 무지한 녀석이 무슨 죄라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따뜻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물론 그런 모습이 토니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

베로니카는 안그래도 힘들고 지친.. 하지만 이제는 적응해가는 일상에 토니가  침범한게 싫었을 것이다. 넌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만 꺼지라고 하지만  눈치없는 토니는 자꾸 엉겨붙고 일기장을 핑계대고  결국 베로니카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바보야 문제는 일기장이 아니야. 니 편지도 아니야...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다섯.

몰라도 되는 일은 그냥 모르는 채 살아가면 그게 더 행복할까?

아니면 꾸역꾸역 미련하게 파고 들어서 상처입고 불행해지더라도 알아야 하는 걸까

호기심이라는 게 고양이만 죽이는게 아니다. 그놈의 호기심이 관심이 결국 옛상처를 건드리며 세상에 드러났다. 그래도 드러났으니 내가 몰랐던 잘못에 대해 나의 오해에 대해 사과할 수 있다고 토니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냐고... 베로니카 편을 들어야 할까

나의 만족 정직성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가해도 되는 걸까? 그건 선일까 악일까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여섯.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언으로는 에이드리언이 죽기 마지막 몇달간은 행복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죽었을까.. 무엇이 에이드리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 했을까

토니 어머니 말대로.. 너무 똑똑해서 였을까?

살아남은 자들보다 갑작 죽은 이의 슬픔이 고독이 느껴졌다. 아.. 첨 읽을 땐 에이드리언은 그냥 하나의 소모품이었구나. 토니를 꺠닫게 하고 베로니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장치로만 봤나보다.

두 사람에게 열중하느라..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자살을 선택한 에이드리언.. 그리고 예전 학창시절 자살했던 롭슨

두 사람의 영민함은 다를 지 몰라도 삶에 대한 불안이나 절망의 무게는 같았을까

책은 결국 에이드리언의 이야기는 하나도 해 주지 않고 끝이 난다.

하긴 그게 중요한건 아닐지 모른다.. 깊은 슬픔을 느끼게는 되지만 문제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고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면을 보여준다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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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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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의 서평이나 책읽기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긋고 한 귀퉁이에 자신의 생각을 끄적이는 습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늘 읽는 책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한 구절이라든가  작가의 중심생각이라든가 의미있는 어떤 문장.. 하다 못해 어딘가 인용하기 근사한 문장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난 서평이나 리뷰를 읽으면서 저자가 책에서 느낀 그 무엇보다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그 인용들이 더 놀라웠다.

나도 나름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고 생각했는데 난 영 밑줄과 친하지 않다.

아무리 좋았던 책이어도 몇번을 되풀이 해서 읽은 책에서도 난 밑줄을 긋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겨우겨우 억지로 이것이 저자의 생각이 아닐까 싶은 것 혹은 이게 그 순간 내 무언가를 건드렸따는 문장을 찾기는 하지만.. 그게 영 서툴렀고 뭔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번 소설은 정말 남은  페이지를 세기가 아까웠다.

다른 단편에 비해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다 싶었지만 야금야금 아껴 읽었는데 어느새 작가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열한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겪었던 일들 내가 들었던 일들 그동안 깊이 묻어두기만 했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담담하게 전해준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행동하고 경험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이야기들은 지극히 사소하고 사적인 것이지만 그 작은 이야기들은 묵직하게 마음에 자리를 만들어간다. 팸 이모의 젊은 날의 사랑이 그러하고 낡은 시계사의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러하다. 큰 누나가 술을 마시며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이혼한 소설가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와 내 기억속에서 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 모든 이야기들이 아주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하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좋아서 어딘가 나도 밑줄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연필을 들고도 어디에 줄을 그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깊이 느끼고 공감하고 울컥했던 건 어떤 문장 하나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이야기에 감동하고 행복하고 아팠던 거였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통째로  줄을 긋든가 아예 복기를 하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누구는 문장이 화려하고 누구는 구성이 좋고 누구는 이야기의 힘이 좋다고 한다. 난 아직 초보 독자라 그런 깊고 세밀한 독서법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문장과 어떤 구성이 모이더라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좋다.

천일야화를 들려주던 세라자데도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거나 말을 잘했다거나 문장구성력이 좋아서 그렇게 오랫동안 죽지 않았던 것은 아닐것이다. 어눌하고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고 표현이 서툴더라도 그 이야기가 가지는 진정성과 힘이 그녀의 목숨이 오랫동안 이어지도록 한게 아니었을까

내게 소설 읽기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가슴을 쾅쾅 두들기면서 분하고 안타까운 그 우엇이었다.

 

열한편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들려줬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말라고 그 순간의 서툴고 찌질했던 순간도 지금의 나를 성장시켰던 좋은 기억있었다고 아픈 가족사도  그게 최선의 진심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  오히려 그것이 누군가에게 부담이고 실패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무언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눈을 감고 모른 척 넘어간 그 순간 그 갈피가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작가를 통해서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그렇게 가만히 내게 왔고 스며들었고 아프고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다시 펼쳐 읽으면서 어디에도 밑줄을 칠 수가 없었다 도데체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어느 한부분만 툭 잘라내서 밑줄을 그을 수 있단 말인지...

그게 나의 무능이라면 무능이고 단순함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 많은 이야기가 11개의 단편으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어디선가 본.. 그리고 내가 경험하기도 했던 이야기들이 서로 섞이고 녹여지고 발효하고 부풀어서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그에게서 흘러나왔고 독자들은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들려주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을 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큰 의미가 없고 대단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게  그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에게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소중하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모두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도 많지 않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하거나..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는 소설이라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소일거리일뿐이고 누군가의 지어낸 별 쓰잘데 없는 소설이라는 것이.. 그 이야기라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공감이 되어주고 괜찮다 다 괜찮다고 내 어깨를 쓸어주는 눈물나는 손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멋진 캐시미어 코트도 훌륭하고  캐나다에서 넘어온  구스도 겨울나기에 멋지지만 그저 솜을 두둑히 넣은 깔깔이나 오래되어서 귀퉁이가 낡고 밤중에 파다닥 튀는 불꽃쇼마저 보여주는 낡은 나이론 담요만으로도 충분히 겨울을 날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낡고 반들반들한 촉감이주는 눈물나는 위로가 있다.

이야기는  소설은 대단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노벨상을 받을  위대한 걸작이어서도 아니라

그냥  누군가 무심히 던지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소박한 공감이 있고 그리고 남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운 하지만 나는  혼자 충분히 알 수 있는 위로가 있다.

다들 김연수 김연수 하지만 난 아직 그가 왜 좋은 소설가이니.. 과연 대단하긴 한지 모른다.

하지만 추운날 그의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한숨쉬고 웃고  눈가가 붉어지면서 때로는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냥 낡은 담요를 덮은 것처럼 포근하고 좋았다.

그건 그라서 좋았다기 보다 그가 들려준 그 이야기들의 소박함이 하지만 은밀하게 누군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무언가를 엿보는 기분이 주는  정전기의 불쫓처럼 짜릿하고 눈물나게 따뜻한 그것들이 좋았다.

그래서 한때 행복했고 책장을 넘기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을 다 읽고  누군가의 서평을 보면서 나는 밑줄 그을 문장을 발견했다. 내가 책을 일으며 생각은 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문장이 그제야 나왔다.

 

집 나갔던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에상처럼 그가 가진 것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방랑의 체험을 통해 또다시 성장하고 성숙하여 가장 심원하고 놀라운 섹는 바로집이고 고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이 결국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바로 인물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는 문학을 알거나 기어하지 못했던 고유명사를 하나의 인물을 이곳으로 데려와 소개하는 것이 작가의 새로운 일일 것이다. ....................................

편견어린 시선을 보았을 때 그저 그러 소년들 중 한 명에 불과할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이 거느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지평을 마련한다.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치통같은 개별적인 고통에만 절대적으로 함몰되면 결국 글쓰기는 유아론적인환상에 그치게 되다. 우리가 세계와 시대로부터 무언가를 빌리고 있으며 그 ㅍ채무의 대상에는 고통도 포함된다는 것을 푸른 색 볼펜과 초상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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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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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등이 하나둘 꺼진다. 하얗게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일요일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순간, 사내의 두개골 아래에 고인 어둠이 번쩍 밝아온다.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머릿속에 들어앉는다. 희미해진 파울라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머릿속에 펼쳐진 새하얀 길이 사내의 눈초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놀란 표정을 만들어낸다. 사내는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아이가 들춘 야구의 진실에 부르르 몸을 떤다.

야구는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다.

하지만 집을 떠났던 모든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

내가 잘못해서도 안되지만 나혼자 잘한다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누군가가 함께 뛰어야 하고 함께 호흡을 맞춰지주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길거나 아예 차단되어버린다.

야구는 그래서 어쩌면 아주 몹시..... 무서운 경기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가장 고생스러운 길은 어쩌면 집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김경욱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가 어떤 소설을 써왔고 어떤 작품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지독했다.

한장한장 넘어가는게 두려워서 몇번을 중간에서 멈추었다.

다음장에 무엇이 나올지 두려웠다.

노란 토끼가 파란토끼가 될까봐 나도 두려웠고 그 앞에서 무능력하게 아무런 대처를 못하는 사내가 두려웠고  염소를 만날까 혹은 만나지 못할까도 두려웠다.

늘 야구에서 9회를 보지 못하는 사내에게 지독하게 공감하면서 한장한장 넘겨 마침내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 씬을 발견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문제는 아니다. 어짜피 소설속의 이야기이므로..

하지만 홈메트앞에  텐트를 놓아주고 잠자리를 마련한 아비는 세상 어떤 젊은 아비보다.. 칼슘을 풍부하게 주는 아비보다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중간 아우의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 "스카우트"가 생각났다,

거기서 주인공도 광주까지 선동렬을 스카우트 하러 내려갔다가 큰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오지만 떠날때의 그가 아니다.

선동렬도 얻지 못했고 첫사랑도 지키지 못했고.. 암튼 그랬다.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본 어떤 그 시대 광주 영화보다도 더 강하게 왔었다.

그저 임창정이 나와서 싱겁게 웃기고 허풍떠는 걸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

그냥 5월의 봄날 웃고 건들거리다 신문 귀퉁이의 기사를 보다가 나중에 모든 걸 알고 충격을 느꼈던 딱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데체 아비와 아들은 왜 길을 떠나는지 .. 그 사내의 아비는 왜 죽어서도 눕질 못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다 뒤통수를 맞았고... 하지만 마무리가 따뜻했다.

결국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테니까..

 

내가 알던 아버지도 야구를 무지 좋아하다가 이제 그가 왔던 집으로 돌아갔나보다.

사내의 아버지와 라이벌이었던 거인을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가 새삼 또 떠오른다.

나랑 하등 상관없어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연고라는 낡은 인연으로 끈질기게 집착하던 모습이 그 승패에 하루의 심기가 결정되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땐 그게 따뜻한 장면이라는 걸 몰랐다.

사내도 어쩌면 호랑이의 경기에 희비가 엇갈리던 제 아비의 모습을 이젠 따뜻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엉뚱하게 든다.

그리고 이제 9회를 맘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남에게는 무수히 해대면서 가족에게는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는 말을 아들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은 사내라면 이제 야구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야구는 참 매력있는 경기다.

집으로 돌아가는 경기...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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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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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키득거리고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하나같이 이런 주인공들일까 싶어서 안쓰럽다가도 이제는 지친다 싶다.

일상에서 마주치면 왠지 피해가고 싶은 하지만 자꾸 뒷꼭지가 땡겨서 다시 돌아보게 될지도 모를 사람들... 나라고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조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내내 등장한다.

이렇게 웃다가 슬퍼졌다.

다들 웃기기만 한게 아니다. 웃기려고 작정한것도 아닌데 왜 자꾸 웃음이 나게 되는 건지를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슬퍼졌다.

시봉이는 자해공갈단도 제대로 못하고 몸만 망가지거나 누군가에게 쪽파를 맞고 이젠 우유팩으로 맞을 순간이지만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게다가 국기계양대에서 흘리는 눈물이라니..

국기를 뜯어내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국기계양기를 애인처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릴 그를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 없다.

게다가 수영씨는 또 어떤가. 시멘트로 발라버린 교보문고를 뚫기위해 곡괭이와 한몸이 되고 곡괭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설가라니....   폴 오스터가 그랬던가 작가는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작가로 태어나는 거라고.. 작가로 선택되는 거라는 말이  엉뚱하게 떠올랐다.

작가가 된다는 것 그 중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온 몸을 쓰고 힘을 쓰고 노동에 가까운 것일게다. 어떤 희안한 작가처럼 내 땀이 피눈물이 스며든 원고를 힘겹게 채워가는 사람이 소설가인걸까?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만만하게 볼 수많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떤 글이건 이야기건 숭고하고  아름답고 의미있다.

쉽게 읽고 버려지고 잊혀지더라도 이야기는  위대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웃음기가 적은 "할머니 힘내세요" 가 좋았다.

이야기가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원을 드러내고 풀어내 주는 것 그 과정이 위로가 되고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

하나의 원혼을 달래주는 굿처럼  조금은 극단적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달래주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또다른 힘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오래동안 질기게 매달린 이야기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힘이 쎄다. 그 이야기에 매달린 염뭔이 너무 크고 한이 크다는 건 어떤 화려한 문장으로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걸 진정성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

한바탕 살풀이처럼 혹은 진혼굿처럼 풀어낸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의 작가의 유머아닌 유머까지도... 그럼 그렇지 ..

 

어쩌면 읽고 난 후 이 작가 골때리네... 웃기는 양반이야.. 하고 그저 그런 껄렁껄렁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을 만큼 톡톡 튀고 어이없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한심하다는 듯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묘하게 빠지게 되고 중독되고 그가 몹시 궁금해진다. 도데체 어떤 사람이지?

박경리를 외할머니라 뻥 친 인물같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맷집만 좋아서 우연으로 줄줄이 당하는 찌질한 소년같을 거라고 여기다가도 글에대한 진지한 성찰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숨에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장을 뒤적이게 하는 것도 작가의 힘이 아닐까..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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