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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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등이 하나둘 꺼진다. 하얗게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일요일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순간, 사내의 두개골 아래에 고인 어둠이 번쩍 밝아온다.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머릿속에 들어앉는다. 희미해진 파울라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머릿속에 펼쳐진 새하얀 길이 사내의 눈초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놀란 표정을 만들어낸다. 사내는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아이가 들춘 야구의 진실에 부르르 몸을 떤다.

야구는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다.

하지만 집을 떠났던 모든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

내가 잘못해서도 안되지만 나혼자 잘한다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누군가가 함께 뛰어야 하고 함께 호흡을 맞춰지주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길거나 아예 차단되어버린다.

야구는 그래서 어쩌면 아주 몹시..... 무서운 경기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가장 고생스러운 길은 어쩌면 집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김경욱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가 어떤 소설을 써왔고 어떤 작품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지독했다.

한장한장 넘어가는게 두려워서 몇번을 중간에서 멈추었다.

다음장에 무엇이 나올지 두려웠다.

노란 토끼가 파란토끼가 될까봐 나도 두려웠고 그 앞에서 무능력하게 아무런 대처를 못하는 사내가 두려웠고  염소를 만날까 혹은 만나지 못할까도 두려웠다.

늘 야구에서 9회를 보지 못하는 사내에게 지독하게 공감하면서 한장한장 넘겨 마침내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 씬을 발견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문제는 아니다. 어짜피 소설속의 이야기이므로..

하지만 홈메트앞에  텐트를 놓아주고 잠자리를 마련한 아비는 세상 어떤 젊은 아비보다.. 칼슘을 풍부하게 주는 아비보다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중간 아우의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 "스카우트"가 생각났다,

거기서 주인공도 광주까지 선동렬을 스카우트 하러 내려갔다가 큰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오지만 떠날때의 그가 아니다.

선동렬도 얻지 못했고 첫사랑도 지키지 못했고.. 암튼 그랬다.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본 어떤 그 시대 광주 영화보다도 더 강하게 왔었다.

그저 임창정이 나와서 싱겁게 웃기고 허풍떠는 걸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

그냥 5월의 봄날 웃고 건들거리다 신문 귀퉁이의 기사를 보다가 나중에 모든 걸 알고 충격을 느꼈던 딱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데체 아비와 아들은 왜 길을 떠나는지 .. 그 사내의 아비는 왜 죽어서도 눕질 못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다 뒤통수를 맞았고... 하지만 마무리가 따뜻했다.

결국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테니까..

 

내가 알던 아버지도 야구를 무지 좋아하다가 이제 그가 왔던 집으로 돌아갔나보다.

사내의 아버지와 라이벌이었던 거인을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가 새삼 또 떠오른다.

나랑 하등 상관없어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연고라는 낡은 인연으로 끈질기게 집착하던 모습이 그 승패에 하루의 심기가 결정되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땐 그게 따뜻한 장면이라는 걸 몰랐다.

사내도 어쩌면 호랑이의 경기에 희비가 엇갈리던 제 아비의 모습을 이젠 따뜻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엉뚱하게 든다.

그리고 이제 9회를 맘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남에게는 무수히 해대면서 가족에게는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는 말을 아들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은 사내라면 이제 야구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야구는 참 매력있는 경기다.

집으로 돌아가는 경기...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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