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ㅇ ㅜ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 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대부분의 우리는 늙는 데 연연한 적이 없다. 내 판단이지만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아니 내 말뜻은 이렇다.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학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 후로... 그후로 깅거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며 동시에 패자의 자기기만 이기도 하다.

 

 

 

다시 읽은 책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두번째는 자꾸 번역이 걸린다. 매끄럽게 읽히지 않은 것이 나의 짧은 식견탓이 아니라 번역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들이 앞뒤가 맞지 않다거나 뭔가 어색한 번역투라는게 이번엔 자꾸 보인다. 다시 읽는 것이라 몇군데는 건너뛰기도 했다.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둘  토니가 그렇게 잘못한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경솔했다는 건 있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이전 애인이 친구와 눈이 맞았다고 한다면 열받지 않을 젊은이가 있을까. 순간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고 뭐 그런 유행가가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상황이 아닌가... 심하긴 하지만 그런 편지를 써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젊은이라면 그런 편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 편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뜯어보고 결국은 그 편지에 적힌 시덥잖은 충고마저 (그 여자의 엄마를 만나보라고 하는) 받아들인 에이드리언이 더 쫌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문제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조각에 씌인것처럼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책임의 소재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인생의 선택을 누구에게 책임지울것인가...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셋  토니가 찌짏고 못나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인간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나이먹으면서 아집이 강해지고 왠만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토니의 말대로 과거는 내 마음대로 미화되거나 윤색되어 사실과는 다르게 추억이 되기도 하고 대단치 않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기도 하고 뭔가 심각했던 상황들은 대수롭지 않게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서 넘길 수 있는 일임에도 토니는 남아있는 유일한 피해자인 베로니카에게 사과를 한다. 너무 늦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내가 그땐 전혀 눈치채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한 일인것을...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넷..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토니가 유산문제로 일기장 문제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베로니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적응하면서 토니라는 존재는 잊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에 어느날 갑자기  이미 지워져 버린 그 이름 토니.. 라는 작자가 실체가 되어 일기장의 소유를 주장하고 나서니 순간 열받지 않았을까

에이드리언도 지워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토니의 등장은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이 되었을 것이다. 토니의 이메일은 단순한 이메일이 아니라 베로니카가 덮어놓고 있던 과거의 기억  불쾌감 배신감 모욕 그리고 무거운 책임을 줄줄이 감자캐듯이 드러나게 만든 시발점이 되버렸다.

웃기지도 않다. 지가 뭔데.. 지금 와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소유를 주장한단 말이야?

그리고 거슬러 올라간 기억들 기록들에서 토니의 편지를 다시 기억해내고 모든 원인을 토니에게 돌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놈의 편지만 아니면... 아니 예전에 이놈이랑 얽히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불쾌하게 대하고 증오를 드러내고 마구 무시한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 미련하고 무지한 녀석이 무슨 죄라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따뜻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물론 그런 모습이 토니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

베로니카는 안그래도 힘들고 지친.. 하지만 이제는 적응해가는 일상에 토니가  침범한게 싫었을 것이다. 넌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만 꺼지라고 하지만  눈치없는 토니는 자꾸 엉겨붙고 일기장을 핑계대고  결국 베로니카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바보야 문제는 일기장이 아니야. 니 편지도 아니야...

 

다시 읽고 드는 생각 다섯.

몰라도 되는 일은 그냥 모르는 채 살아가면 그게 더 행복할까?

아니면 꾸역꾸역 미련하게 파고 들어서 상처입고 불행해지더라도 알아야 하는 걸까

호기심이라는 게 고양이만 죽이는게 아니다. 그놈의 호기심이 관심이 결국 옛상처를 건드리며 세상에 드러났다. 그래도 드러났으니 내가 몰랐던 잘못에 대해 나의 오해에 대해 사과할 수 있다고 토니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냐고... 베로니카 편을 들어야 할까

나의 만족 정직성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가해도 되는 걸까? 그건 선일까 악일까

 

다시 읽고 드는 생각 여섯.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언으로는 에이드리언이 죽기 마지막 몇달간은 행복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죽었을까.. 무엇이 에이드리언으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 했을까

토니 어머니 말대로.. 너무 똑똑해서 였을까?

살아남은 자들보다 갑작 죽은 이의 슬픔이 고독이 느껴졌다. 아.. 첨 읽을 땐 에이드리언은 그냥 하나의 소모품이었구나. 토니를 꺠닫게 하고 베로니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장치로만 봤나보다.

두 사람에게 열중하느라..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자살을 선택한 에이드리언.. 그리고 예전 학창시절 자살했던 롭슨

두 사람의 영민함은 다를 지 몰라도 삶에 대한 불안이나 절망의 무게는 같았을까

책은 결국 에이드리언의 이야기는 하나도 해 주지 않고 끝이 난다.

하긴 그게 중요한건 아닐지 모른다.. 깊은 슬픔을 느끼게는 되지만 문제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고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면을 보여준다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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